필박스, 디어스토커, 바라클라바……. 암호처럼 느껴지는 이 말이 무엇인지 바로 캐치했다면, 당신은 아마도 한켠 작가의 ‘전일도 사건집’ 시리즈 애독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이름들은 바로, ‘전일도 사건집’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자의 이름들이다. 전일도 탐정은 (모자 수집가라는 작가의 취향을 성실하게 반영이라도 하듯) 매 사건마다 색다른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 세상의 모든 모자 종류가 떨어지면 이제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과 우려를 안겨 주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모자를 한 번 썼다고 버리지는 않는 모양으로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모자를 돌려쓰고 있어 모자 종류가 떨어지는 바람에 시리즈가 끝나는 비극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집값, 교육, 취업, 입시, 자살 등 현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논란이 되는 이슈들을 놀랍도록 빠르게 해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작가의 재주는 여전해, 전일도 탐정은 대학 입학 컨설팅부터 보이스피싱, 직장 내 성희롱, 창업 컨설팅, 조력자살, 임신 중지, 학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사건들을 맞닥뜨린다. 그 과정에서 온갖 나이와 성별의 사회인들과 학생들과 취준생들의 애환이 그려져 입맛 씁쓸한 웃음을 전해 주는 것은 덤. 가장 최근 작품인 「그 때 그 한마디 말」에서는 요즘 가장 핫한 주제인 학폭을 다루고 있는데, 학폭의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그 상황을 방관한 비겁한 침묵 역시 또 다른 가해였다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처럼 SNS 상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되는 삶에도 그 이면에는 다 희노애락이 있을 것이다. 누구의 인생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팍팍한 현실에 지치고 힘든 순간 마법처럼 나타나 등 툭툭 두들기며 내 사연을 들어 줄 탐정 언니(혹은 동생, 혹은 누나)가 있다면 또 한 번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위로가 되지 않을까.
*본작은 다음 분기 출판 지원작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