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아포칼립스

작가

2017년 5월 둘째 주 편집부 추천작

종말의 한가운데 피어나는 꽃봉오리, 희망인가 절망인가?

꽃가루 때문에 사방이 뿌연 서울, 방독면을 쓴 사내가 홀로 마포 대교 위를 걷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밤섬에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꽃봉오리가 자라나고 있었고, 대기로 뿌려진 꽃가루가 끼친 영향으로 사람들은 이미 광기로 서로를 죽이고 멸망한 후다. 대혼돈이 지나간 지 10년, 사내는 물자 확보를 위해 여의도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방독면도 쓰지 않은 채 활보하는 한 여인이 나타난다. 시작부터 허무맹랑한 소리를 떠들어대는 여인은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꽃가루 아포칼립스」는 최근 황사, 미세먼지, 꽃가루 등으로 인해 비염과 아토피, 기관지염을 호소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끔찍한 소설이 될 듯하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눈을 비비고 자기도 모르게 연달아 재채기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꽃가루는 요즘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소재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한 멸망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꽃가루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저자가 태그를 통해 언급했듯이 『유년기의 끝』이나 『블러드 뮤직』 등 SF 고전을 오마주한 느낌의 결말에 이르러선, 창밖의 뿌연 하늘을 흔한 일상으로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다소 작위적인 듯 보이는 여인의 행동과 대사는 의도했다손 치더라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을 주긴 하지만,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낸 작가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