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도 없고 노력도 않는 무늬만 작가인 ‘나’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뮤즈’가 나타난다. 기묘하고 축축하고 음산한 존재인 ‘그것’이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받아적는 것만으로도 나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본래 자신의 것 이상의 지나친 행운을 잡은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들은 보통 이 지점에서 두 가지 분수령을 만난다. 하나는 본인의 분수를 망각하고 과도하게 능력을 휘두르다 그 능력의 대가로 역풍을 맞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언제 진정한 자신의 정체가 들킬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쪽인데 「뮤즈의 속삭임」은 후자의 흐름을 따른다.
여기까지는 여지없이 익숙한 플롯인데, 작품을 재미있게 만드는 지점은 작가가 소심한 주인공에게 부여한 유쾌한 인간미에 있다. 주인공의 (비범한) 소심함은 ‘뮤즈의 속삭임’을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오롯이 즐기지도 못하는 애매한 수준이라, 결국 그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 망가진다. 그와 비례하듯 그의 빈정거림(괄호로 표현되는 속마음)은 작품의 흐름과 함께 일취월장하는데, 아마도 뮤즈의 속삭임을 받아적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대사치는 스킬이 숙련된 덕택일까? 속마음 대사들의 쓰임이 적재적소에 찰지기 그지없어, 작품 흐름상 웃길 일이 전혀 없는 순간인데도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된다. 어쨌거나 작품 제목을 짓는 것도 작가의 소양이라면, 적어도 주인공에게도 작가의 재능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녹슨 핏자국』, 『거꾸로 가는 시계』, 『비탄의 눈』,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등등의 내용이 뭐였을지 궁금하다. 괴작 영화의 냄새가 팍팍 나는 「네 피에서는 쇠맛이 난다」는 어떤가. 당장이라도 영화표를 예매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는가?
“어느 날 뮤즈가 찾아옵니다. 귓가에 이야기를 속삭여 주죠.”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저 평범한 비유가 더는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