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정의하는 데 있어 명료한 이야기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김유정 작가의 단편 「수직(垂直)」 또한 마찬가지다. 싱그러운 연둣빛 심상이 작품 전반에 드리워진 이 작품은, 드넓은 세계에서 우연한 만남과 이별을 거친 누군가의 평범하고도 아렴풋한 이야기다.
‘나’는 열세 살 연하인 동성 애인과 동거를 시작했다. 비록 보잘것없는 반지하 방이었지만 각자 좋아하는 색으로 벽면을 나눠 칠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꾸며나갔다. 기껏 적갈색으로 칠해 놓은 벽에 모스부호처럼 괴상한 녹색 선을 하나 그어놓기도 했던 연인과 함께, 엉성하고 완벽하지 않은 그 나름으로 만족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이루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수직(垂直)」 은 실로 기묘한 이야기다. 한참이나 어린 동성 애인과 동거를 시작하고, 친한 친구의 VR 에피소드가 스쳐 지나가고, 어쩌다 이별을 맞이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인공지능의 인지 심리 연구 결과 같은 것들이 분별없는 정보처럼 이야기에 마구 뒤섞인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흩트려진 무분별함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한다. 온갖 노이즈와 끝이 없는 정보로 배열된 망망한 우주 속에서, 무한으로 펼쳐진 경우의 수 중에서, 오로지 ‘나’에게 수직으로 내리꽂혔던 관계의 우연과 의미에 온힘을 다해 집중하고자 한다. 무수한 난수의 별 아래에 ‘나’는 존재했고, 무작위로 뽑힌 조합처럼 우연히 ‘너’와 만났고, 결국엔 깊은 연둣빛 틈새만이 남겨졌다는 단 하나의 고유한 이야기로서.
이 이야기는 어쩌면 만남과 이별을 다룬 지극히 평범한 로맨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전하는 심상이 남다른 이유는, 무한한 공간과 정보 값을 대입해 개인의 존재를 깊이 있게 다루며 관계의 의미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데 있다. 무수함 속에서도 ‘우주를 하나로 꿰뚫는 마음’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브릿G에서 만날 수 있는 작가의 또 다른 단편 「진저와 시나몬」과 중편 『고래뼈 요람』에 이어, 느긋하고 담담하게 삶을 관조하며 관계의 문제를 고찰하는 작가의 시선과 필치가 뛰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