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러독스

  • 장르: SF
  • 평점×5 | 분량: 7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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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타임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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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존재 박약증이라는 병이 있다.

먼 미래에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되어, 일단의 시간여행자들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이 나라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옴으로서 인과관계에 뒤틀림이 생겼다. 타임 패러독스라는 것으로, 원래라면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선천적 존재 박약증이란, 쉽게 설명하자면 백투더퓨처라는 영화에서 점점 사진 속의 사람이 사라져가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불안정한 존재로 태어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현상이다.

+ + +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선생님! 유진이가 없어요!”

소풍날에는 언제나 이랬다.

“어머나, 그래? 유정아, 미안하지만 찾아 와 줄 수 있어?”

그리고 언제나 내가 찾아오는 역할을 맞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여동생인 유진이는, ‘선천적 존재 박약증’ 환자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눈에 띄지 않게’ 된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가 인식되지 않게 되는 병, 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유진이를 잊어버린다. 근처에 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그것이 ‘증상’인 것 같다, 라고 어린 시절의 나는 생각했었다.

“유진아~!”

나는 소리를 지르며 동물원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유진이는 사자 우리의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유진아-!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사자한테 돌을 던지고 있어.”

유진이는 기쁜 듯이 말했다.

“돌 던지면 안 돼.”

유진이는 괴롭히면 반응해 주는 동물들을 아주 좋아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쉬운 병에 걸렸으니까.

“나, 저기 사자 인형을 갖고 싶은데…….”

“돈 없어? 이번에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자.”

“안 돼! 엄마도 또 잊어버릴 거야!”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말하고 나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미안…….”

나는 사과했지만, 유진이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피했다.

유진이와 나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다.

그런데도 그 병은 유진만이 걸렸다. 쌍둥이이지만 ‘일란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 같다.

“괜찮아. 언니는 착하니까. 언제나 나를 찾아내 주는 걸.”

그렇게 말하며, 유진이는 손을 뻗었다. 따뜻한 손이 나의 손을 잡았다.

“가자, 너무 늦으면 안 되니까.”

유진이와 나는 함께 달렸다.

달리다가 한 번 뒤돌아보며, 유진이의 존재를 확인했다. 달리다 보면, 같이 달리고 있는 유진이를 잊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이 무서워서 유진이의 손을 꼭 맞잡았다.

모두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유진이에 대해서 잊어버렸던 듯 놀란 표정으로 유진이를 바라보았다.

유진이는 눈썹을 찡그렸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 유진이와 나는 항상 같은 반이었다. 내가 없으면 선생님이 유진이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5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유진이의 출석을 부르지 않고 넘어갔다.

그때 유진이가 ‘저 여기 있어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서, 선생님은 당황해하며 사과했다.

쉬는 시간에 나와 유진이는 함께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했다. 다 같이 하는 놀이를 하면, 유진이를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거 맛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유진이가 보여준 페이지에는, 과자 사진이 커다랗게 들어가 있었다.

유진이는 머리가 좋아서, 별로 공부하지 않아도 언제나 시험에서는 100점을 받았다.

나는 유진이에게 지는 것이 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100점을 받았다.

둘 다 똑같은 점수지만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것은 나뿐이다. 다른 애들이 부러워하는 것도 나 하나만.

나는 어쩐지 화가 났지만, 유진이는 웃고 있었다.

유진이는 운동신경도 뛰어나서, 달리는 것도 잘하고 철봉운동도 잘했다. 그렇지만 유진이는 운동회 때 달리는 일도 없었고, 수업시간에 철봉을 하는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유진이가 손해만 보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몰래 조례를 빼먹기도 하는데다, 국어 시간에 일어서서 교과서를 읽어보라고 시키는 경우도 없었다. 기술가정 시간에 몰래 과자를 굽는 것을 좋아했다.

남자아이가 나한테 짓궂은 장난을 쳤을 때, 그 남자애를 때려서 도와주기도 했다.

“언니는 인기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언제나 나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남자애를 보며, 유진이는 능글맞게 웃었다.

“아니야! 쟤는 언제나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애야!”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유진이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전에 교실에 있을 때 들었거든. 저 애가 언니 좋아한대. 다른 남자애들이 놀리는 걸 보기도 했었어.”

자기가 있는 교실에서 걔네들끼리 얘기했다며, 유진이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다.

수업시간 중에 비가 내리는 날이야 여름이면 몇 번 씩 있기 마련이라, 체육 시간에 비가 오면 우리는 대체로 자습을 했다.

나는 평소대로,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도서실에서 빌린 책을 읽었다.

책에 한참 빠져있을 때, 유진이가 조용히 다가와서 물었다.

“무슨 책 읽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웃을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쩍 책표지를 가렸다.

그러나 유진이는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기어코 책제목을 읽기 시작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책이야?”

“……응.”

“아직도 동화책 읽어?”

유진의 솔직한 의견에, 나는 약간 울컥했다.

“뭔가 언니랑 잘 안 어울려. 이런 거 유치원 애들이나 읽는 거잖아?”

아마, 유진이는 별로 나를 깔봤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걸 알면서도,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바보 취급하는 유진에게 화를 내버렸다.

“아냐, 안 유치해! 그러는 넌, 애니메이션으로 해주는 거 말고 제대로 읽어본 적 있어?”

“별로……어차피 읽을 나이는 지났고.”

계속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일순간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화를 냈다.

“아니라니까! 게다가 난 그림이 좋아서 보고 있는 거란 말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깨닫고 보면, 교실 안에 있던 모든 애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반 친구들이 중얼거렸다.

“……가 혼자서 소리를 지르고 있어.”

“깜짝 놀랐어…….”

유진이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거기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없고, 소리를 작게 내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를 알아듣기 힘들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으면,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 병이다.

나는 아까까지의 분노는 다 잊고 당황해서 말했다.

“아니야, 나 지금 유진이랑 얘기하고 있어…….”

그러나 내 말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각자가 내뱉는 소곤소곤 거리는 소리만 되돌아왔다.

“유진이가 누구야?”

“아, 반에 한 명 있어. 유정이 여동생이야.”

“혼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진이랑 얘기하고 있었단 말야!”

내가 소리쳤지만, 반 아이들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든가 하는 이유로 당분간 학교를 쉬게 되었다. 대신 다른 선생님이 오셨다.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있어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다. 내주는 숙제도 많고, 수업 중에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무척 화를 냈다.

선생님은 학생 중에서도 유진이가 싫은 것 같았다.

확실히 유진이는 출석을 부를 때 시간이 걸리고, 수업에 나와 있는지 아닌지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취급하기 힘든 학생이라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 때문일까, 그 선생님은 유진이에 대해서는 유독 화를 더 냈다.

이를테면 점심시간 때의 일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복도에서 밥을 받아 교실에서 급식을 먹었는데, 유진이는 식사를 못 받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셨다.

“자, 이제 감사인사 하고 먹어라.”

“선생님, 유진이가 아직 밥을 못 받았어요.”

나는 일어서서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다가, 눈썹을 찡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귀찮게 시리…….”

유진이는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나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진아?”

반 친구들 대부분은 유진의 행동을 깨닫지 못했다. 유진이를 보고 있는 아이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알아차린 건지도 모르겠다.

유진이는 선생님의 옆에 서더니, 퉤엣 하고 국에다가 침을 뱉었다.

“유진아!”

유진이의 행동을 보고 있던 애들이 입을 딱 벌렸다.

선생님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숟가락을 움직였다.

그것을 보던 아이 중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와, 방금 유진이 엄청 대단했어.”

나는 수긍했다. 유진이의 무용담에 대한 소문이 한동안 학교에 돌았다. 선생님을 싫어했던 학생들이 단결해, 유진이에게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온 유진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 강렬한 자극이었다.

본궤도에 오른 유진이는, 선생님에게 여러 가지 짓궂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수업 중에 칠판지우개를 던지거나, 앉으려고 하는 의자를 뒤에서 잡아 빼는 등, 제멋대로였다.

반 친구들도 덩달아 기세가 올라서, 다양한 일을 유진이에게 부탁했다.

나는 유진이를 말렸지만,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관심을 받은 적이 없던 유진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다. 반 친구들은 재미로 부추길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인식하기 어려워도, 도를 넘어선 악행이 계속되다 보면 발각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우려대로, 결국 선생님은 부모님을 호출해 버렸다.

나는 교문 앞에서 유진이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집에서 혼자 기다릴 수는 없는 기분이었다.

바닥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데, 시야 너머가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드니 해가 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석양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해가 가라앉자 조금씩 추워졌다.

스웨터의 소매 부분을 꾹 그러쥐어서 손을 감췄다.

“…….”

나는 지금 아마도 화가 난 상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아 행동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일을 유진이는 지금까지 할 수 없었다.

모두가 가진 선생님에게의 반감과 유진이의 당찬 성격. 그 둘이 합쳐져서, 모두가 유진이를 인식하고, 일치단결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부른 것이지만, 유진이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귀중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해가 가라앉았다. 그즈음에 학교 본관 건물에서 유진이와 엄마가 걸어 나왔다.

나를 찾아내고 유진이는 뛰어들 듯이 내 가슴 안에 안겨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는 끄윽끄윽 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하도 서럽게 울어서 어쩌나 싶었지만, 돌아가는 와중에 그럭저럭 그치게 되었다.

“선생님이 나보고 못된 아이라고 했어. 병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한테 귀찮은 아이로 취급받는데, 여기에 못된 장난까지 치니까 커서 무슨 어른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어.”

“유진이는 못되지 않아. 병도 별로 귀찮다고 생각한 적 없어.”

나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어’라는 말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추었다.

깨달아 버렸다. 어른이 된 유진이를 상상할 수 없었다. 유진이의 병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 탓일까.

“나는 유진이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내 자신의 불안정한 기분과 함께 유진이를 껴안았다.

“응…….”

유진이가 대답했다. 엄마는 우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는 평소대로 통학로를 따라 집까지 걸어갔다. 왼손으로 유진이의 오른손을 꾹 잡은 채였다.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일순간, 그 온기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도.

아마 나는 이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중학교.

나와 유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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