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성 간 무인 탐사선 ‘오디세이’가 지구 궤도에 도착한 것은 그 우주선이 같은 궤도를 이탈해 여정을 시작한 지 43년이 지난 후였다.
헬리오스피어(태양풍 자기권) 횡단을 통해 람제트 추진기관의 효용성이 입증되자 인류는 처음으로 태양계 너머 다른 항성계 탐사 실현을 꿈꾸게 되었다. 궤도상에서 조립된 오디세이는 5년에 걸친 건조기간과 수백억 불의 비용을 통해 인류가 만든 우주 건축물로서는 가장 큰 600여 미터의 크기를 자랑했고, 이는 최초의 항성간 우주선이란 항목과 더불어 기네스북 기록을 갱신했다.
행선지는 지구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항성계인 4.3광년 떨어진 알파센타우리로 설계상 계산된 수치대로라면 오디세이는 최대 광속의 60%까지 도달하는 속도로 편도 20년 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도착 후 최대 2년의 조사기간을 설정한 이 무인 탐사선은 수많은 이들의 기대를 뒤로 하고 보조추진기관인 이온추진엔진을 작동시켜 자신의 요람인 지구 궤도를 서서히 벗어난 후 람제트 작동이 가능한 속도에 도달하자 순식간에 태양계를 벗어나 첫 항성간 항해에 돌입했다.
헬리오스피어 돌입 전까지는 지구의 관제센터와 데이터 수신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완전 자동으로 전환되었고 지구의 부모들이 오디세이의 존재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헬리오스피어 너머로 되돌아오는 42년 후가 될 예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수건의 트러블이 속출했지만 150여 년에 가까운 우주개발 노하우의 총집산격인 오디세이의 통제 컴퓨터는 비교적 무난하게 그 고비를 넘기고 20년 후 알파센타우리에 도달, 그리고 그 후 2년간 제작자들의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후 고향으로의 귀로에 올랐다.
역시 여러 트러블이 일어났지만 오디세이는 그 작명의 유래답게 고난을 이겨내고 예상 기간보다 1년 정도 늦어진 43년의 고단한 항해를 마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변은 오디세이호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사전에 주입된 프로그램에 따라 헬리오스피어 권역에 진입한 이후 오디세이는 지구의 관제센터를 향해 계속해서 통신을 보냈지만 예정과는 달리 그 어떤 답신도 없었다.
오디세이의 통제 컴퓨터가 인격을 가진 존재였다면 의문을 품었겠지만 돌아오지 않는 답신에도 상관없이 오디세이는 최초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지구로의 귀환을 묵묵히 행했다. 길고 지루한 감속 과정을 끝낸 오디세이가 지구궤도에 안착한 후에도 지구에서는 여전히 그 어떤 명령도 보내오질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궤도에 도착한 후 대기하던 유인우주선이 도킹한 후 알파센타우리에서 얻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샘플을 회수할 예정이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몇 명의 사소한 장난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오디세이는 여기에서 그 임무를 다 끝내고 지구궤도를 떠도는 수많은 인공물체 중 하나로 그 장대한 인생을 끝냈을 것이다.
궤도상에서 오디세이의 건조가 거의 다 끝나가는 동안 지상의 엔지니어들은 오디세이에 장착될 통제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및 기타 작업을 행하고 있었고, 그 중 탐사 프로그램을 맡은 부서의 인원들이 작업 후 가진 맥주파티에서 일어난 일이 발단이었다.
맥주가 위에 들어가 적당히 취하기 시작한 그들은 이런 저런 농담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그러하듯 자신들의 작품에 뭔가 재치 있는 자취를 새겨 놓을 궁리를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이 기껏 지구로 돌아왔는데 반겨줄 인간이 다 사라지면 저 놈은 어떻게 할까 라는 말을 내뱉었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럼 지구를 탐사하게 하면 되지 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 후 다들 낄낄거리며 남은 맥주병을 비웠지만 다음날 그 둘은 정말로 탐사 프로그램 코드에 그런 항목을 넣어버린 것이었다.
추가한 그 코드는 검수 과정에서 들통났지만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말 농담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검수 관계자들도 개발자들의 악의 없는 농담에 기꺼이 어울려줬다.
추가된 코드는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았다. ‘지구에 도착해서도 365일이 지나도록 그 어떤 접촉도 받지 못할 경우, 탐사모드로 전환해서 지구를 탐사할 것.’
그리고 지구궤도 도착 후 365일이 지나자 농담으로 추가된 프로그램에 따라 오디세이의 통제 컴퓨터는 탐사모드로 전환했다.
탐사모드로 바뀐 후, 오디세이가 한 첫 작업은 궤도 아래의 행성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오디세이가 돌고 있는 주회궤도의 고도 및 행성의 직경을 통해 지표면에서 받게 될 중력이 1G라는 것을 계산한 후 각종 시각 센서를 통해 관찰한 후 밑의 행성을 액체상태의 물이 존재하는 매우 전형적인 지구형 행성으로 결론내린 오디세이는 계속해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대기 스펙트럼 분석도 뒷받침해 줬지만 자외선 필터로 관측한 행성의 표면은 엽록소를 기반으로 한 식물이 매우 광범위한 범위로 서식하는 걸 보여줬고 원거리 적외선 관측은 동물의 존재도 역시 확인시켜줬다.
생명체 존재행성의 발견은 오디세이의 원래 임무에서도 매우 큰 우선권을 가진 임무였고, 이 경우 거의 모든 오디세이호의 리소스는 우선적으로 이 임무에 할당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디세이는 단순 원거리 관측탐사에서 직접 탐사로봇을 내려 보내는 적극적 탐사로 전환했다.
탐사로봇을 내려 보내기 전,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을 발견 시 동반되는 후속 절차에 따라 오디세이의 통제 컴퓨터는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행성 전역에 걸쳐 인공 건축물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그건 도시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존재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행성 전체에 널려 있는 건축물들의 규모와는 정반대로 그 어떤 에너지 활동도 감지할 수 없었다. 오디세이가 궤도를 따라 태양을 등진 행성의 밤에 돌입했을 때 시각 센서에 잡힌 아래의 모습은 과거 지구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소름이 끼칠 만큼 완벽한 어둠 그 자체였다.
그 후로도 수회에 걸쳐 궤도상를 공전하며 아래쪽을 관측한 오디세이는 이 별의 지적생명체는 대규모 에너지 전환기술을 가지지 못한 제2단계 문명을 가진 것으로 분류한 후, 탐사로봇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탐사로봇을 착륙시킬 후보지를 선정하기 시작했는데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착륙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지형적으로 안정된 지역이어야 했다.
후보지는 손쉽게 세 자리 수를 넘어갈 정도로 발견되었으나 탐사기의 돌입각도 및 기타 최적조건을 만족시키는 후보지는 대여섯 곳 정도였고 그 중에서 가장 착륙 성공률이 높다고 예측되는 곳을 선정한 오디세이는 지난 알파센타우리의 탐사에서 사용되지 않은 마지막 예비 탐사기를 관측중시형 탐사모드로 설정한 후 발사했다.
세라믹 단열재의 캡슐에 둘러싸인 탐사로봇은 대기와의 마찰열로 인한 플라즈마의 빛을 내뿜으면서 행성의 지표를 행해 맹렬한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캡슐 외부에 설치된 레이저 거리계가 지상 위 10킬로를 가리키는 순간. 폭발 볼트가 단열재 캡슐을 분리시킨 후 탐사기 상부에서 거대한 낙하산이 펼쳐졌다.
급격하게 하강속도가 떨어졌으나 여전히 탐사로봇의 내구력이 버티기엔 높은 속도였고 지표와의 거리가 100여 미터 정도로 줄어드는 순간 낙하산과 탐사로봇을 연결하는 케이블의 중간부위에 위치한 소형 로켓부스터가 점화되었고 탐사로봇은 먼지의 폭풍과 함께 무사히 지상에 착륙했다.
착륙과 로켓 분사로 인한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탐사로봇은 절차대로 우선 자신의 이상유무 체크를 시작했다. 수분에 걸친 자가체크과정에서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자 탐사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탐사기는 1.4미터 길이의 유선형의 금속 몸체에 상부엔 튀어나온 센서모듈 탑을 가지고 있고 몸체 좌우에 3개씩 총 6개의 다리와 몸체 전면의 하부엔 2개의 손을 가진 보행형이었다. 그런 탓에 개발과정에선 철거미나 철게로 불리우는 일이 흔했고 실제로 탐사로봇의 코드명은 ‘스파이더’였다.
내부의 동력원으론 플루토늄 핵전지가 내장되어 있지만 탐사기의 금속외피 자체가 태양전지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소재인 탓에 가동시간은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이 탐사로봇은 자가 체크를 끝낸 후 3개의 관절을 가진 다리 하나를 지표로 내디뎌서 지면이 충분히 탐사로봇의 무게를 지탱 가능하다는 걸 다리 끝의 압력센서로 확인한 다음 6개의 발을 마치 생물체처럼 유연하게 사용해서 착륙지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탐사기가 착륙한 장소는 과거 어떤 작물이 재배되던 농지였지만 지금은 잡초와 기타 야생식물로 인해 완전히 원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었다. 모선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에 입력된 정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탐사로봇은 궤도에서 관측한 도시로 향하기 위해 센서모듈의 한 부분을 위쪽으로 높이 뽑아내어 경로 분석에 들어갔다.
인간이 리얼타임으로 통제할 수 없는 항성 간 탐사인 탓에 오디세이의 통제 컴퓨터도 그렇지만 직접 탐사할 행성에 보내질 탐사로봇들에는 기술역사상 가장 완성도가 높은 AI가 탑재되어 있었고 그런 탓에 탐사로봇은 기본적인 목표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나머지 행동에는 완전히 자율성이 부과되어 있었다.
수 미터 위에서 관측한 데이터를 기초로 탐사로봇은 순식간에 이동 경로를 확인, 결정한 후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 시간 동안 무성한 식물의 벽을 헤치면서 고르지 못한 지형을 전진하던 로봇이 다시 경로 확인을 위해 센서를 위로 올린 순간 거대한 인공구조물의 존재를 발견했다.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구조물로 접근하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 탐사로봇의 시각 센서에는 매우 긴 도로가 도시 쪽을 향해 끝없이 펼쳐 있는 모습이 잡혔다.
그리고 그 도로의 건너편에 존재하는 반대편 도로에는 이제는 녹슬어 그 원형을 거의 짐작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탐사로봇의 AI로는 한쪽 도로에만 차의 폐허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할 능력은 없었다. 생각하는 건 나중에 데이터를 회수해 분석할 인간들의 몫이고 탐사로봇과 탐사선은 데이터의 수집에만 충실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탐사로봇이 도로로 올라가 차들의 폐허를 향해 다가가자 좀 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로는 오랜 시간 사용되지 않은 탓인지 얇은 표토층이 도로 위를 뒤엎고 있었고 그 위를 잡초가 무성히 자라난 상황이었다. 만일 탐사로봇이 지닌 정확한 사물 인식기능이 아니었다면 이것이 도로였다고 쉽게 알아보기는 힘들었으리라.
차에 접근한 탐사로봇이 샘플 채취를 위해 오른쪽 팔에 달린 소형 드릴을 작동시키자 미약한 진동음과 함께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드릴로 녹이 슨 차의 옆문에서 자그마한 샘플을 채취한 후 체내에 내장된 분석기를 통해 이것이 순도 99%의 철이란 걸 확인한 탐사로봇은 이 별의 추정 문명레벨을 초기치 2에서 4로 올려야 한다는 권고 테그를 작성해서 샘플데이터에 붙여 메모리에 저장한 후, 3차원 스캐너를 통해 폐허가 된 차의 전체 모습을 스캔했다.
약 10여 분에 걸친 스캔작업이 끝난 후 작업을 한 차량 옆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차량의 폐허를 본 후 잠시 사고모드에 돌입했다. 원칙적으론 지적존재의 창조물이 확실한 물건에 대해 접근 가능한 한 모든 데이터를 얻는 것이 기본이지만 탐사로봇에게 주어진 제1목표는 도시로 향해 이 별의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양쪽의 명령순위권을 잠시 고민한 탐사로봇은 2.1초에 달하는 오랜 사고를 끝낸 후 도시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결론을 내렸다.
과거 수많은 차들이 지나갔을 도로 위를 바퀴가 아닌 다족보행으로 이동하는 탐사로봇의 시각센서에 도로 한편에 서 있는 이제는 녹슨 표지판의 존재가 들어왔다.
오디세이가 건조될 무렵에는 이미 싸구려 아동용 완구에도 들어갈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는 문자인식기능을 창조자들은 탐사로봇에 넣지 않았던 탓에 탐사로봇은 그 표지판에 적힌 문자를 알 수가 없었으나 지적생명체의 문자체계일 가능성이 89%란 결론을 내린 후 그 표지판을 촬영하여 데이터로 저장한 후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만일 탐사로봇에게 문자인식기능이 들어가 있었다면 그 표지판에 적힌 문자가 알파벳과 한글이고 그 둘이 의미하는 건 동일한 지역명이란 것을 알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 기능을 누락한 설계자들을 비난할 순 없을 것이다. 아무리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외계의 낯선 행성에서 지구의 문자를 읽을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해가 거의 질 무렵에 탐사로봇은 도시의 외곽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도달했다. 태양전지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동력 시스템이었다면 활동을 중지하고 다음 해가 떠오를 때까지 대기모드로 전환해야 했겠지만, 내장된 핵 전지와 낮에 충전된 전력으로 밤 시간대의 활동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렇지만 탐사로봇은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주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제 명확해졌다. 이것은 지적생명체가 만들어 올린 도시였다. 야간투시모드로 전환된 탐사로봇의 시각센서는 식물로 뒤덮인 도로의 양쪽을 따라 계속해서 도열해 있는 건물들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한쪽 면에 위치한 건물로 다가가자 도로 위의 수풀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각센서를 이동시키고 적외선 감지모드로 전환하자 작은 동물의 존재가 탐지되었다.
탐사로봇의 존재를 안 동물은 가만히 숨죽여 있다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느릿하게 반대편 도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관찰한 탐사로봇은 그 동물이 데이터베이스상 지구의 토끼로 분류되는 종과 극히 유사하다고 판단했지만, 외계 생명체의 데이터 수집은 이번 임무의 목표는 아니었다.
제1순위는 어디까지나 외계문명의 관측과 지적생명체의 존재여부 확인인 것이다. 다시 건물 쪽으로 주의를 돌린 탐사로봇은 건물의 전체 모습을 스캔한 후 외관의 풍화도를 예측 시뮬레이트한 후 재질상 이 건물이 건축된 지 50년 이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가 건물의 벽면에 일련의 종이들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이동한 후 그 모습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종이엔 적색의 원형 갈퀴 3개가 삼각형 구도로 서로 등을 맞댄 도형이 그려져 있었고 그 도형 밑에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역시 탐사로봇으로선 그 문자를 이해할 순 없었으나 도형은 로봇이 가진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지구상에서 생물학적 재해를 뜻하는 마크와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로봇은 잠시 사고모드로 들어가 이 모순된 공통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탐사로봇의 AI로는 극히 희귀한 확률로 동일한 도형이 두 외계문명에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결론을 낸 후 사진을 찍어 데이터화한 후 건물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한 결과 같은 도형이 그려진 종이가 계속해서 건물과 건물로 이어지면서 붙여져 있다는 걸 탐사로봇은 발견했다.
세월에 의해 태반이 찢겨져나가고 원 형태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로봇의 인지기능은 같은 형태의 도형이 그려진 종이가 최소 240장 이상 이어져서 붙여져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형에 대한 작업이 일단락된 후 탐사로봇은 도시 전체에 대한 관찰에 들어갔다.
느린 속도로 전진하면서 계속해서 건물들에 대한 스캔과 동시에 자료화를 진행하던 로봇의 앞에 갑자기 생명체가 나타났다. 로봇은 작업을 일시 정지하고 그 생명체에 대한 관찰을 시작했다. 탐사로봇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챈 듯한 그 생명체는 입에 뭔가 다른 생명체의 일부를 물고 있었다. 아마 사냥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 생명체는 강한 적개심을 보이며 로봇의 주변을 느릿하게 원을 돌기 시작했는데 탐사로봇의 시각 센서에 들어온 영상은 그 생명체가 지구의 쥐, 그것도 집쥐와 70% 정도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외형의 유사성은 거의 100%지만 크기가 도저히 데이터베이스상의 쥐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쥐와 유사한 그 생명체의 크기는 90센티를 넘고 있었다.
첫 번째 접촉했던 생명체와는 달리 이 쥐와 닮은 생물은 매우 호전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외계생명체와의 조우 시 지켜야 할 준수절차에 따라 로봇은 상대와 자신에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도주모드로 전환하고 뒷걸음질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이 거대쥐라고 할 수 있는 생명체는 갑자기 물고 있던 다른 생명체의 일부를 입에서 떨어트린 후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떨어트린 다른 생명체의 일부는 아마 팔이었던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전체 모습을 추측하기엔 너무나도 자료가 부족했다. 팔의 일부분으로 추측되는 것에 자그마한 다섯 개의 손가락이 붙어있는 것만 가지고는 당연한 결과였다.
거대쥐의 울음소리에도 상관없이 도주 경로를 따라 서서히 뒤로 물러나던 탐사로봇의 주위에 삽시간에 동형의 생명체 무리가 나타났다. 완벽하게 도주로를 차단당한 로봇의 주위로 12마리의 거대쥐들의 떼가 둘러싸고 있었고 그 모습을 관찰한 탐사로봇은 첫 번째 거대쥐가 완전한 성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뒤에 나타난 거대쥐들은 평균 11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도주로가 차단당해 움직임을 멈춘 탐사로봇을 향해 갑자기 성체에 해당하는 거대쥐 한 마리가 달려들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거대쥐들이 로봇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돌진했다.
통상적인 생명체라면 일격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법한 공포스런 공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탐사로봇의 외피 강도는 그 정도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강했다. 계속된 공격에도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는 탐사로봇의 모습에 거대쥐들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거리를 유지한 채 한두 마리씩 계속해서 공격을 해가면서 어딘가 존재할 약점을 찾는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탐사로봇은 첫 공격으로 얻어진 데이터로 이 생명체는 로봇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교착상태를 지속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적대적 외계생명체와의 조우시 긴급피난 사항을 적용시키기로 하고 로봇은 왼쪽 팔에 내장된 스턴건을 작동시켰다. 얼마만큼의 전압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최소전압인 5V부터 시작해서 공격해 오는 로봇을 향하여 스턴건을 내밀었다. 스턴건을 맞은 거대쥐는 약간 놀란 거 같았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었고 계속해서 다른 거대쥐들이 로봇을 향해 달려들었다.
탐사로봇은 거대쥐들이 공격을 해올 때마다 계속해서 전압을 올려갔고 70볼트를 넘어서자 거대쥐들이 공격하는 것을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간격이 느려졌을 뿐 그치지 않고 공격이 계속되었고 따라서 스턴건의 전압도 계속 올라갔다. 결국 150볼트까지 가서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모양인지 거대쥐들은 포위망을 풀고 밤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떠나가면서도 거대쥐들은 계속해서 탐사로봇을 뒤돌아봤고 일부는 다시 돌아와 공격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청각 센서에 거대쥐들이 내는 발자국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위협이 제거되었다고 확신한 탐사로봇은 다시 원 임무로 복귀해서 도시 탐사를 속행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거대했다.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높이가 각기 다른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때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폭이 좁은 다른 도로가 이어져 있는 등 그 복잡성은 실로 대단했다. 단 한 대의 탐사로봇으로 돌아다니기엔 그 규모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전체 도시의 조망도를 완성하기 위해선 수년이 걸릴 만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도로는 풀이 자라 있었고 도로 위에 세워진 수많은 탈 것들은 완전히 삭아 있었다. 원래는 여러 가지 색상이 칠해졌을 차량들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결과 도장은 벗겨지고 녹이 슬어 모든 차량은 녹이 슨 철색으로 완전히 통일되어 있었다.
건물들도 그 크기나 정교함으로 창조자들의 기술적 완성도를 짐작할 기념비들이었지만 모든 건물들은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버려진 지 오래된 것들이었다. 건물 외관을 휘감은 덩굴줄기는 어떤 건물의 경우 4층 높이까지 이어져 있어 원 형태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을 관찰하면서 탐사로봇은 관찰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를 계속 추가하면서 추정 시뮬레이터를 가동하고 있었고, 해가 뜰 무렵에는 30년에서 허용오차 2년의 범위 이전의 시기에 이 도시가 버려졌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한때 위대한 창조자들이 존재했었던 것은 확실했다. 여기 그 기념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그 기념비들은 녹슬고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 도시에서 몰아낸 것인지 추측할 데이터는 없었다.
해가 중천을 가를 무렵 로봇은 과거 광장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달해 있었다. 지금까지의 관측 데이터를 통해 탐사로봇은 이 도시가 버려졌다는 것에 대해 90%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10%의 확인을 위해 장기 임무로 전환할 것인지 아님 다른 임무가 내려올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관측 데이터의 송신을 겸해 모선인 오디세이와 통신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에 이 광장이었던 장소는 최적이었다.
40분 후면 오디세이가 서쪽 하늘을 가로지르는 궤도를 따라 이 하늘에 나타날 것이다. 탐사로봇은 빠른 송신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를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대기모드로 회전시키고 있던 시각 센서에 뭔가 움직임이 잡힌 것이다. 탐사로봇은 즉시 데이터의 압축작업을 중지하고 움직임이 감지된 방향을 향해 센서를 정렬시킨 후 해당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지한 움직임이 어제 조우한 두 종류의 생명체일 가능성이 74%였지만 그렇다고 이 수치가 새로운 생명체 더 나아가 지적생명체일 가능성을 무시할 정도로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움직임이 감지된 건물 쪽을 향해서 탐사로봇은 전진을 시작했다. 오디세이와의 교신 기회를 날려버리게 되겠지만, 다음번 오디세이의 궤도 통과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탐사로봇이 움직임이 감지된 건물에 다가서자 갑자기 더 많은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건물은 도시 내 다른 건물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층수인 5층에 불과했지만 풍화도는 심하지 않았다. 움직임은 주로 건물 앞쪽 도로 여기저기에 엎어져 있는 녹슨 차량들 사이로 보이고 있었다.
갑자기 로봇은 차량들의 배치가 어떤 목적 하에 행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무작위적인 배치가 아닌 이 건물 앞에 놓인 차량들은 명백하게 건물 바깥쪽을 향한 원형 형태를 이룬 상태로 옆으로 엎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적생명체와의 접촉 확률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을 느끼면서 탐사로봇은 접근 속도를 줄이며 건물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앞에 뭔가가 떨어져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