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달

소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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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작품이 잊히지 않는다. 작품보단 이야기에 가깝지만 상관없다. 그에겐 세상 어떤 작품보다 큰 영향을 끼쳤으므로.

잠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남자는 종종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그 이야기, 이야기를 들려 줄 때의 말투, 목소리, 숨결까지.

– 옛날 얘기 해주세요.

– 자야지, 우리 복덩이. 많이 늦었어요.

– 하나만, 딱 하나만요! 네? 네??

– ……. 그래, 그럼..

옛날 옛적에, 달이 있었단다.

처음에 그 것은 있는 줄도 모를만큼 작았단다. 넓고 넓은 우주에 자분자분 떠 있는 작은 이들 중 하나였지. 우주를 이리 저리 다니는 여행자들이 미처 알아보지도 못해 지나다 툭 치고는, 자기가 쳤는지 마저도 모르는 그런 작은 이였단다.

처음으로 그를 알아본 것 역시 그런 여행자였어. 그는 긴 여행에 지쳐 잠시라도 엉덩이 붙일 곳을 찾는 중이었지. 두리번 거리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겨우 깔고 앉을만한 아주 자그맣고 하얀 덩어리였어.

“여기 이런 별이 있었네?”

그는 말을 하고도 고개를 갸웃했단다. 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거든. 하지만 쉴 곳이 필요했던 그는 일단 그것을 깔고 앉았어. 엉덩이 두 짝이 겨우 들어갈만큼 좁고 꼭 끼었지만 그럭저럭 두 다리를 펴고 쉴 수는 있었지.

“아, 넌 달이구나!”

얼마나 쉬었을까, 그가 갑자기 외쳤어. 자기 위치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거든. 그 하얀 덩어리는 엄마 별을 중심으로 조금씩 동쪽으로 가고 있었던거야. 그리고 그 순간, 달은 스스로의 존재를 알아차렸단다. 마치 잠에서 깨듯이.

달이 너무 작아서였을까? 그는 금방 일어나 떠나버렸단다. 달은 자기를 깨워준 그가 우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만 보았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달은 주변을 구경했어. 주변의 다른 별들, 푸른 엄마 별, 엄마 별에 있는 많고 많은 것들, 우주의 여행자들까지. 항상 바빠보이는 그들은 때때로 달을 툭 치고 갔단다. 그럴때면 달은 휘청했고 하얀 파편이 날렸으며 몸에는 멍자국이 생겼지.

하지만 예전과 달리 여행자들은 자기가 달을 쳤다는 걸 알았단다. 모를수가 없었지. 달은 계속 커지고 있었거든. 어떤 날은 조금만 커지고, 어떤 날은 급격히 커졌지.

달은 궁금했어. 자기는 왜 커지는건지, 또 자기 몸을 이루는 이 하얗고 단단한 건 무엇인지. 그래서 그는 더 자세히 주변을 관찰했단다. 까만 우주 어딘가에 답이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가 가장 자주 바라본 건 엄마 별이었어. 푸르고 아름다운 그곳엔 여러 가지 것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달의 관심을 끈 건 인간이었지.

그들은 아주 특이했단다. 잠깐씩 다녀가는 우주 여행자들과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주 달랐어. 그들은 엄마 별 곳곳으로 퍼졌는데 다른 것들과 달리 엄마 별을 바꾸려고 애를 썼단다. 그래서 달은 그들이 흥미로웠어.

그러던 어느 날, 달은 깜짝 놀랐어.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는거야. 다른 것들처럼 먹기 위해 죽이는 게 아니었지. 그냥 죽였어.

더 이상한 건, 그들 중 진짜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주 조금 뿐이었다는 거야. 그들 대부분은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채로 그저 남이 시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였단다.

끝없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들이 터지고 날아다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그리고 그들 주위에선 전우의, 친구의, 가족의 죽음에 분노하는 슬퍼하는 이들이 피같은 눈물을 흘렸단다.

그리고 그 날, 달은 급격히 커졌어.

싸움이 길어질수록 달은 점점 더 커졌어. 밤이 되면 엄마 별에서도 보일만큼 커졌지.

그는 무겁고 커진 몸이 힘들었어. 왜 이리 불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 무섭기도 했지.

두 번째 여행자가 온 건 그 무렵이었어.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길고 우아한 꼬리와 보드라운 털을 가진 그 여행자는 달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았단다.

“안녕? 넌 못 보던 별이구나.”

그가 가르랑 거리며 인사했어.

“어..안녕. 반가워. 난…아마 생긴지 얼마 안된거 같아.”

“그래, 그래 보여. 지난번 여행할 땐 널 못 봤거든.”

그는 꼬리를 위 아래로 한가롭게 탁탁 치며 얘기했어. 그가 내려칠때마다 달의 하얗고 바짝이는 결정들이 조금씩 튀었단다.

“응…그래.”

달은 뭐라고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어. 입이 생긴 이래 말을 해보기도 처음이었고, 누구와 말을 해 본적도 없었거든. 달이 어색해하자 여행자는 이내 대화에 흥미를 잃었어. 그는 몸을 쭉 뻗더니 길게 기지개를 켰어. 꼬리를 한가롭게 치면서 크게 하품을 했지. 그 바람에 하얀 알갱이가 그의 입에 들어갔단다.

“아유, 짜! 넌 소금이구나!”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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