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

  • 장르: 추리/스릴러 | 태그: #한이 #추리소설 #추리단편 #추리스릴러단편선
  • 평점×10 | 분량: 98매
  • 소개: 아브라힘은 실수로 그만 사람을 살해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피해자의 형제가 보복하기 위해 그를 뒤쫓는다. 더보기

피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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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성을 도피성으로 선정하여 과실로 사람을 죽인 자가 피신할 수 있게 하라… 과실로 판명되면 그를 복수하려는 사람들에게서 구하여 그가 피신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내라. 그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한다.”
― 광야 방랑기(민) 35:11,25. 현대인의 성경; 1985.

아브라힘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인생이 끝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 하지 못했다. 늘 블레셋과의 전투 중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일 년에 한 달씩 윤번하는 의무 복무기간을 마치고 돌아온 고향 욕브하에서, 그것도 절친한 벗의 집 식탁에서 끝나게 될 것이라고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아브라힘은 손에 든 맷돌을 떨어뜨렸다.

맷돌이 탁자에 부딪히며 등잔대와 그릇이 와르르 쏟아졌다.

맷돌에는 피와 머리카락이 묻어 있었고 그 옆에 우리엘이 누워 있었다. 그의 관자놀이는 언제인가 보초 임무를 맡았던 므깃도의 골짜기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브라힘의 집과는 달리 돌과 석회를 반죽하여 포장한 바닥으로 우리엘의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아브라힘은 바닥의 골을 따라 서서히 퍼지는 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들려온 비명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아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브라힘은 탁자를 성큼 돌아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잘라버릴 듯 물어뜯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더 힘껏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고의가 아니었어. 고의가 아니었다고.”

손가락 사이로 남편을 잃은 여자의 비통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왜 하필 선반 위에 올려놓은 맷돌이 떨어졌는지, 그리고 왜 하필 그것이 우리엘의 머리에 떨어졌는지……. 이건 우연한 사고야? 그렇지?”

그녀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도리질했다.

“사고였어. 그렇지? 마아가?”

아브라힘은 그녀의 머리에 코를 파묻으며 속삭였다.

마아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브라힘은 입을 막았던 손을 풀었다. 중지에 그녀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볼에서 눈물을 닦아 올렸다. 그녀는 돌무화과를 찌르던 소녀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간이 그녀의 눈가에 깊은 상처를 몇 군데 남겨 두었지만 부드럽고 장난기 많은 검은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그의 손이 작은 떨림을 일으켰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서 도피성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곳에서만 그는 복수자의 손에서 안전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누가 문을 열고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그녀를 감싸 안았다.

축받이가 끼익 소리를 내며 출입문이 회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아가? 안에 있어, 마아가?”

뚱뚱한 여자 특유의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여자가 들이닥칠 것이다.

도로에서 뜰로 들어오는 문이 하나밖에는 없어서 그녀를 피하지 않고 나가는 방법은 없었다.

그는 눈으로 누군지 물었다.

“쇼발의 아내예요.”

억눌린 목소리로 마아가가 대답했다.

“나는 도피성으로 갈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아브라힘은 우리엘의 시체를 펄쩍 뛰어넘어서 창밖을 살폈다. 피 묻은 맷돌을 들어 격자창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는 등 뒤로 꽂히는 마아가의 시선을 느끼면서 소매로 부서진 창살을 대충 털어내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가 ‘빵 굽는 자들의 거리’를 빠져나가 내달리고 있을 때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쇼발이 형의 죽음을 전했을 때 부리엘은 마구간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이방인들과의 전쟁에서 쟁탈해 온 말의 털을 손질해 주고 있었다. 녀석은 윤기가 흐르는 갈색 털에 헤르몬 산의 녹지 않는 눈처럼 흰 갈기가 목덜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부리엘은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쇼발은 빵 만드는 자들의 거리에 살면서 고리 모양의 핫초트나 하트 모양의 레이보트 등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만드는 킥카르처럼 둥글둥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복무 기간 중에는 부리엘의 직속 부하로 있었다. 달려오느라 그런지 쇼발의 얼굴은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자는 어디로 간 건가?”

부리엘이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마아가, 아니, 천부장님의 형수이신 분에 따르면 사고였다고 하니, 아마도 도피성으로 달려간 듯합니다.”

“자네라면 어느 쪽으로 갔겠는가?”

쇼발은 땀을 훔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스라엘에는 모두 여섯 군데의 도피성이 있었다. 요르단 강 동편에 세 곳, 서편에 세 곳.

“아마도 랍바를 거쳐 헤스본 산을 지나 베셀로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곳이 가장 가깝다는 이점뿐만 아니라, 욕브하에서 랍바까지만 가면 도피성으로 가는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종을 불렀다.

“예렛! 군장을 준비해 주게.”

안채에서 희미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솔질이 멈추자 말이 볼을 비벼댔다. 부리엘은 멈추었던 손을 계속 움직였다. 녀석이 만족스러운 듯 투레질을 했다.

안채에서 예렛이 그의 군장을 준비해 왔다. 부리엘은 예렛이 내미는 대로 몸을 맡기고 군장을 챙겼다. 칼은 허리에 차고 방패는 쇼발이 들게 했다.

부리엘이 말의 귓등을 쓰다듬자 녀석은 더욱더 그에게 몸을 비벼댔다. 그가 슬며시 칼을 꺼낼 때에도 역시 그렇게 하고 있었다. 부리엘은 녀석의 뒤로 돌아가 날카로운 날을 휘둘러 오금줄을 그었다. 잠시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녀석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녀석이 일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앞발만을 허우적거릴 뿐 일어나지 못했다. 비통한 울부짖음이 허공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예렛, 병거와 함께 태워버리게.”

부리엘이 명령하자 예렛이 조용히 몸을 굽혔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의해 전쟁터에서 쟁탈한 군마는 오금줄을 잘라 다시는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그 말이 전쟁에 다시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법은 적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유대인들을 위한 법이었다. 이스라엘이 적들의 군마를 쟁탈하여 강성해져서 자신들이 승리하게 된 원인이 ‘야’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 때문이라고 교만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리엘은 그것이 회당에서 온갖 규칙들을 만들어대는 연로자들의 어리석은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살이 잘리고 피가 튀는 전쟁터에 서보지 않은 서기관들이거나 아니면 전쟁터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혹은 어린 시절의 무용담으로만 남은 노인들의 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로자들의 화를 돋우어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지나치게 자부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금줄을 끊는 일은 한가함을 잊기에는 그만이었다.
도망자는 부리엘이 쇼발과 함께 집을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담장의 그늘진 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가 우리엘의 ‘고엘 핫담, 피의 복수자’가 될 것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엘의 동생, 이스라엘 군대의 천부장, 오만한 부리엘이었다.

아브라힘은 겉옷으로 최대한 얼굴을 가리면서 담을 넘을 만한 곳이 없는지 살폈다. 5큐빗(약2미터)이나 되는 담장은 좋은 은신처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그는 담장을 빙 돌아 뒷문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 대부분의 집은 출입문이 하나밖에는 없었는데 부리엘의 집은 뒷문이 있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자 삐걱하는 소리가 울렸다. 아브라힘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집 안에서는 담장 밖의 소란스러움이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마구간은 안채를 돌아 바깥에 있었다. 흰 갈기를 지닌 말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직 버둥거리고 있긴 하지만 흘러내린 피로 인해 서서히 그 움직임도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아브라힘은 담장 너머로 들려오던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부리엘의 시종 예렛이 물로 바닥을 씻어내고 있었다. 예렛이 물을 더 떠오기 위해 자리를 뜨자 재빨리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살육 장면을 보아서인지 마구간에 매여 있는 일곱 두의 말들은 모두 극도의 흥분 상태 속에서 투레질을 하며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말들의 흥분을 진정시켜서 데리고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구간 구석에서 짐바리용 나귀 한 마리를 찾아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힘을 태우고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계획 전체가 모두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결국 ‘고엘 핫담’의 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부리엘은 그를 붙잡을 것이고 그는 저 쓰러진 말처럼 비참하게 죽어가게 될 것이다.

아브라힘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나약한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라 움직일 때였다.

그는 자신에게 과연 시간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 헤아려 보았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흥분한 녀석들의 뒤편에서 조용히 여물을 씹고 있는 비루먹은 말 한 마리를 찾아내었다. 그 녀석은 혈기왕성한 놈들이 흥분해서 발광하고 있을 때 그럴 힘도 없는 듯 여물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사에 달관한 듯 보였다. 아브라힘은 녀석에게 마구를 대충 걸치고 올라탔다. 그리고 나귀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허리를 쿡 찔렀다.

아브라힘은 전신의 피가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급류처럼 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부리엘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애초에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복수자인 부리엘의 집에서 필요한 말을 훔쳐 간다는 생각이 언뜻 보기에는 거창하고 대담한 계획인 것 같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예렛이 말없이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그가 멍하니 내려다보자 예렛이 물주머니를 흔들었다.

아브라힘은 예렛이 내미는 물주머니를 받아들고 안장에 묶었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렛은 손사래를 치더니, 핏자국을 씻어내는 일을 계속했다.

아브라힘은 나귀의 고삐를 채면서 부리엘의 집을 빠져나왔다.
우리엘의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부리엘은 그가 늘 맡아왔던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피 냄새, 그리고 그 피가 굳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비릿한 냄새였다. 물론 전장에서는 더 많은 피가 흘러넘쳤지만 때로는 그것을 맡을 수 없었다. 수십, 수백의 피에 젖다보면 나중에는 피 냄새 따윈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몰려들고 있는 형의 집에서 우리엘의 피 냄새는 이질적인 무엇인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부리엘은 형의 피가 복수를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의로운 자 아벨의 피가 형 카인에 의해 땅에 흩뿌려졌을 때 그의 피가 호소했던 것처럼.

부리엘은 형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었다.

시체는 그가 전장에서 늘 보던 시신들과 다름이 없었다. 누워 있는 사람이 형이라는 것만 빼면. 형의 얼굴은 말발굽에 짓밟힌 것처럼 어그러져 있었다. 처음 전장에 나갔을 때에야 죽은 시체를 보고 토악질도 하고 헛구역질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한차례의 전투가 끝난 자리에서 빵을 뜯어먹기도 하고 많은 적을 죽인 것을 축하하며 양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부리엘은 형수를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방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정말 사고였소?”

침대를 막고 있는 얇은 베일을 걷어내며 부리엘이 물었다.

마아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국경 수비를 마치고 돌아온 아브라힘을 불렀어요.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 탁자에 앉았는데 선반이 기울어지면서 맷돌이 떨어진 거예요. 그리고 그만…….”

부리엘은 침대 위의 나무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리품 가운데 고르고 골라 그가 선물한 팔찌, 가슴대, 귀고리, 머리띠, 장식품들이 들어 있었다. 형수는 이교도 여자들의 화려한 장신구는 정숙한 이스라엘 여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의 선물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최근에 형님은 성전 문 앞의 연로자들을 찾아가려고 했소. 혹시 그것에 대해 아는 일이 있소?”

“없어요.”

부리엘은 물끄러미 마아가를 내려다보았다.

달처럼 밝은 이마, 부드럽게 호를 그린 숱 많은 눈썹. 한 번도 손질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썹은 늘 완벽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그 눈썹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야밤.’”

부리엘이 마아가의 귀에 찰랑이는 귀고리 하나를 대어보면서 말했다.

야밤은 다른 말로 시숙 결혼인데, 죽은 형제가 가계를 이을 자손이 없이 사망했을 경우 형제 가운데 하나가 아들이 없는 과부와 결혼해야만 했다. 그렇게 얻은 맏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서 형제의 가계가 지워지지 않게 해야만 했다. 그 의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마아가의 얼굴에 경멸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그런 말이 나오나요? 아직 형님의 피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놈은 곧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요.”

“도련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숙 결혼은 할 수 없어요. 전 형님의 아이를 가지고 있거든요.”

부리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인가?”

마아가는 대답 대신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부리엘은 입술 아래로 내려온 자신의 수염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는 여자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에서 저 오만한 표정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것 참, 다행인 일이로군. 형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니. 그럼 나는 고엘 핫담의 의무를 수행하러 가야겠소. 아마 쇼발이 준비를 마쳤을 것이오.”

“모든 것이 ‘야’의 뜻대로 되길 빌어요.”

마아가가 차갑게 말했다.

부리엘이 침대에서 나가면서 말했다.

“아, 참. 조심하시오, 형수. 요즘 어떤 여자들이 부주의하게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다른 사람의 싸움에 휘말렸다가 아이를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주, 아주 조심하시오.”

마아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부리엘은 마아가에게 조만간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브라힘은 계속 말을 달렸다. 문제는 나귀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랍바로 내려가는 주도로에 도착하자 먼저 말에서 내려 자신의 짐을 나귀로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여벌옷을 벗어서 주변에 있는 돌덩이를 단단히 감싸서 말의 등에 옮겼다. 이것으로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좋았다. 그는 그 잠깐이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자 말의 궁둥이를 때려서 엘르알레와 헤스본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귀의 고삐를 잡고 라못-길르앗으로 향했다. 정비된 도로로 가기 보다는 광야로 가는 방향을 택했다.

해가 졌다.

광야는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그는 부지런히 그리고 꾸준히 걸음을 옮겼다. 때로는 나귀의 등에 타기도 했고 때로는 고삐를 잡고 함께 걷기도 했다. 사위가 조용했다. 가끔 간간이 들리는 이리와 승냥이의 울음소리 정도가 고작이었다.

별이 떠올랐다.

점점 더 추위가 몰려왔다.

아브라힘은 잠자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마땅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준비한 모든 옷을 몸에 걸쳤다. 그리고 나귀의 짐을 적당히 덜어내 자신이 짊어졌다. 그렇게 움직이자 몸에서 조금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땀이 나면 체온을 모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를 더 걸었을까, 항아리 모양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발견했다. 위에서는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지만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지형이었다.

그는 바위를 벽 삼아 앞에 불을 피우고 모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벽에 반사된 열기가 그의 굳은 몸을 풀어주었다. 어느새 하늘은 흐릿해졌고 별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승냥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부리엘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앞에는 겉옷에 싸인 돌덩이를 짊어지고 있는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랍바 도로에서 벗어난 메바앗 산이었다.

부리엘과 그 일행이 아브라힘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랍바 근처였다. 그들은 당연히 베셀 도피성으로 향하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고 마침내 아벨-그라밈 근처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주도로를 벗어나 그곳으로 향했는지는 의문이 갔지만 아마도 그들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서 수작을 부리는 것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부리엘은 놈의 겉옷을 챙겨 넣고 명령했다.

“메소밥, 자네는 북기, 요글리와 함께 헤스본을 거쳐 베셀에 가서 진을 치고 있게. 놈을 만나면 생포해서 내게 데려와.”

메소밥이 그의 명령을 듣자 신속하게 달려갔다. 메소밥은 군복무가 없는 시기에는 도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신중해서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쇼발, 밉할, 하구바. 자네들은 나를 따라 가세. 오늘은 더 이상 놈의 흔적을 찾는 것이 힘이 들 테니 여기서 노숙을 하고 ‘해가 비치자마자’ 떠나세.”

부리엘은 몸속의 내달리는 흥분을 느꼈다. 사냥감이 교활하면 교활할수록 도전은 더 커지고 사냥의 흥분이 살아나는 법이 아니던가. 그는 입맛을 다시며 이 사냥이 좀 더 길어지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이번 사냥감을 쫓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브라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멀리 미스바의 성곽이 보였다.

그는 거의 다 비어버린 물통을 기울여 입 안을 헹구어 냈다.

미스바는 변한 것이 없었다. 일명 파수꾼의 도시라고 알려진 이곳은 거친 모래 바람 속에서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는 공동 샘물에서 나귀에게 물을 먹이고, 자신의 수통도 채웠다. 그리고 저잣거리에서 킥카르와 매운 향신료 몇 가지를 구입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도피성으로 달려가는 살인자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언제라도 자신 역시 고의가 아닌 살인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는 서둘러 자신의 일을 마치고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 앞에서는 나이 지긋한 ‘자켄’들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탁자 앞에서 저울을 속인 한 상인에 대한 판결과 어려운 형제에게 비싼 이자를 받은 한 여자에 대한 판결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비롯한 노인들과 남자들, 여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미스바의 대부분의 주민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아브라힘은 그들 가운데서 묘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젊은 남자와 여자의 차례가 되자 극에 달했다. 아브라힘은 나귀의 고삐를 움켜쥐고 자신도 모르게 인파에 섞였다.

매의 부리처럼 날카로운 코를 가진 노인이 젊은 남자에게 물었다.

“오말, 정녕 그대의 아내가 자네가 아닌 다른 남자와 간음하였는가?”

오말은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내는 처녀가 아니었습니다.”

군중들 가운데서 가벼운 소란이 일었다.

“그대의 증언을 입증할 두 명의 증인이 있는가?”

“오홀리압과 하셈입니다.”

이어서 남편 또래로 보이는 두 명의 증인이 여자의 부정에 대해서 증언했다. 그들은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그곳에 머문 이방인 남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아브라힘이 보기에도 그것은 무엇보다도 명백해 보였다. 여자는 두꺼운 베일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아랫배는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불룩해 보였다.

“미리암, 오말과 결혼하기 전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였는가?”

미리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깊숙이 고개를 내리 숙인 채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주재자는 다른 연로자들을 불러내어 작은 목소리로 숙의를 거듭했다.

간음한 여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힘은 마음을 졸인 채 자켄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가 기침을 토해냈다. 군중이 그에게 힐난의 눈빛을 보냈다.

마침내 매부리코 연로자의 입술이 열렸다.

“미리암, 그대는 오말과 정혼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고, 그 이후에도 그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하였다. 이에 연로자의 회는 사형을 명한다. 오홀리압, 하셈. 시작하게.”

오홀리압과 하셈은 땅에 떨어진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들이 돌을 들기는 하였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뭇거리고 있자 노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를 지은 자를 돌로 침에 있어서는 증인들이 먼저 손을 대어야 함을 잊었는가? 시작하게.”

노인의 카랑한 목소리가 신호가 된 것인지 오홀리압의 팔이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튕겨나갔다. 그의 손에서 날아간 돌은 여인의 어깨를 강타했다. 여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셈 역시 잠시 머뭇거렸지만 노인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 돌을 날렸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간 돌은 여인의 아랫배를 가격했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아랫배를 감싸고 있었다. 여자의 몸이 반으로 접혀졌다. 그리고 연로자들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땅에서 돌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돌 세례가 이어졌다. 한동안 여인은 입술을 앙다물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팔매를 견뎌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던진 돌이 여자의 이마를 찢고 지나갔다.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참한 여자의 얼굴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보자 흥분한 군중들은 점점 더 세게, 더 강하게, 더 힘차게 돌을 던졌다. 여자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쓰러진 여자에게 돌무더기가 날아들었다.

아브라힘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리가 땅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한 어린아이가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브라힘이 내려다보자 소년은 천진하게 웃으며 돌을 쥐어주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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