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트리밍

  • 장르: 호러, 일반 | 태그: #유튜브 #컨텐츠 #유튜버
  • 평점×39 | 분량: 51매
  • 소개: 유튜브 채널 ‘천방지축 융하네’에 라이브 컨텐츠 예고가 올라온다. 더보기

라이프 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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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2월 17일 유튜브 채널 ‘천방지축 융하네’ 커뮤니티 공지

융하융하~ 구독자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제 2월도 중반인데 다들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이번 달에 일정이 너무 바빠 통 영상 업로드를 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푹 쉬고 오라고 격려해 주시는 댓글들을 보고 저희 천하네 가족 모두 감동했습니다. 융융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다음 주 토요일 저녁 7시 특별한 라이브 콘텐츠를 준비했으니 모두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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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는 사람과 잘 웃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가치 차이가 있을까? 모든 이가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 사람은 인간을 대상으로 자본주의식 계산을 들이미는 건 잘못됐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결국 도덕 교과서나 생활윤리 시험지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회는 잘 웃는 사람을 원한다. 상대의 말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을 원한다. 깨끗한 얼굴과 세련된 옷과 올바른 식사 예절과 명확한 발음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따라서 사회가 원하는 인물상에서 한참 벗어난 나는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타인에게서 직접 나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무언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으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이제 곧 생일을 맞이한다. 2월 24일에 맞이하는 스물두 번째 생일이다. 하지만 그날 내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는 열리지 않는다. 굳이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생일을 축하해 줄 만한 사람이 적기도 하거니와 훨씬 중요한 일정을 잡아 두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들려준다면 필경 질문이 뒤따르겠지. 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조차 뒤로 제쳐 둘 정도로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핸드폰의 달력 앱을 열고 2월 24일에 예정된 일정을 확인한다. ‘천하네 특별 라이브 방송 예정일.’ ‘천하네’는 유튜브에서 가족 브이로그를 운영하는 채널 ‘천방지축 융하네’를 가리키는 줄임말이다.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이 안방 시청률을 두고 맹렬히 다투던 시절이었다면 연예인도 아닌 자들이 방송에 출연할 순 없었겠지만 시대는 실로 꾸준히 달라져 왔다. 인터넷과 방송 장비와 편집 기술이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인방송은 앞선 선배들보다 자유롭게, 하지만 더욱 가파른 유행을 타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천하네’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영상을 업로드하며 구독자들을 확보했다. 그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지금은 ‘융하네를 응원하는 사람들’, 통칭 ‘융융이’들로 이루어진 팬카페가 운영될 정도로 유명한 채널이 되었다.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나 또한 그 카페의 회원이다.
이걸 들으면 누군가는 내 심정을 대강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천하네’ 방송을 달력에 기록해 놓은 이유는 가치 없는 내 생일을 챙기는 대신 밝고 명랑한 유튜버의 방송을 챙겨 보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의 암울한 처지를 잊기 위해 유명 유튜버들에게 악질적인 시비를 걸어 음울한 욕망을 채우려는 것도 아니다.
내 이름은 유나.
나는 ‘천방지축 융하네’의 외동딸이자 메인 캐스트 중 한 명인 하유나다.
자신의 암울한 처지를 비관하며 유튜브만 시청한 나머지 정신이 병든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꺼내 본다. 너무 자주 꺼내 보는 바람에 발급받은 날짜까지 외워 버린 주민등록증에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내 이름 석 자가 실려 있다. 여기 실린 주민등록번호와 지문과 이름으로 나를 증명해 온 횟수는 구태여 세어 볼 필요도 없겠지. 하유나. 2월 24일 출생. 이상의 신분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한 칸 크기의 사진이 나를 응시한다.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묵묵히 플래시를 번쩍이며 찍어 준 사진. 4.5cm와 3.5cm로 이루어진 네모난 틀 속에 있는 나.
그 속에는 화상 때문에 한쪽이 일그러진 얼굴이 있다. 손을 대서 고쳐 보려고 해도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건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거대한 덩어리. 그게 내 얼굴이다. 많은 의료진이 날름대는 불길과 달아오른 철골 속에서 간신히 살아난 나를 도와주려 했으나 녹아내리고 뒤엉킨 피부를 제자리로 되돌려 주진 못했다. 의식을 똑바로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없었다.
‘가족 유튜버로 유명한 한 가정이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다.’ 자극적인 기사가 사고 직후 즉각 뽑혀 올라가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우리 가족이 채널 운영을 중단한 덕이었다. 유명세가 올라갈수록 조회 수와 구독자 수에 연연하게 되니 잠시 흐름을 끊고 서로 간의 관계에 집중해 보자. 오랜 가족회의 끝에 그런 결론이 나왔을 때 우리 세 사람은 조금 초췌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엄마와 나를 위해 따뜻한 차와 케이크를 준비했고 우리 셋은 영상의 구도나 상표의 노출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가족 여행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유나야, 어떻게 할까?”
채널 영상 편집은 주로 엄마가 맡았지만 손이 모자랄 때에는 외삼촌이 도와주었다. 예전에 케이블 방송사에서 영상 편집 담당이었다는 외삼촌은 초보 방송인인 우리 가족의 든든한 파트너이기도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많은 일들을 수습해 준 외삼촌은 거대한 현실 앞에 남겨진 나를 향해 물었다. 유나야, 어떻게 할까.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그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외삼촌은 간병인 의자에 앉은 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초침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냥……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고 싶어요…….”
삼촌은 그렇게 해 주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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