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는 일찍 간판 불을 껐다. 기다리다 보면 늦은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 두엇은 더 받겠지만 내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마음이 들떴다. 레몬수 병을 씻어 엎고 음악을 껐다.
이게 얼마 만의 휴가며 얼마 만의 해외여행이란 말인가.
유미는 1초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카페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앞치마를 돌돌 말아서 숄더백에 넣고 카운터를 빠져나오는데 ‘띠링!’ 하고 가게 문이 열렸다.
“죄송하지만 영업….”
하지만 손님은 상당히 허스키한 목소리로 유미의 말허리를 잘랐다.
“커피 두 잔 값을 낼 테니 잠깐만 쉬었다 가게 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밤색 트렌치코트에 검정색 페도라를 깊이 눌러쓴… 누군가였다. 손님은 유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카운터에 만 원권 지폐를 올려놓고는 입구 정반대쪽 구석자리로 갔다.
어이가 없어서 손끝으로 지폐를 콕콕 찍고 있는데 다시 ‘띠링!’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119 구조대원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큰 개 못 보셨습니까? 이 앞쪽 골목으로 지나갔을 텐데요.”
“큰 개요?”
유미가 의아한 눈길로 되물었다. 유기견을 포획하겠다고 119 대원들이 출동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유미도 알고 있었다.
“아, 그게… 상당히 긴급한 상황입니다.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것으로 보이는 큰 개가 뛰어다닌다는 신고가 동시다발로 접수되었거든요. 중간에 시민 한 분이 포획을 시도했다가 충돌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고요. 아, 개가 사람 옷을 입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유미의 눈길이 만 원권 지폐로 옮아갔다.
모자로 얼굴을 가린 데다 손에도 흰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