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도시를 걷다(제1회 우수작)

  • 장르: 판타지, 호러 | 태그: #좀비 #영상화된작품 #ZA문학공모전 #황희 #모정
  • 평점×5 | 분량: 115매
  • 소개: 좀비로 뒤덮인 세상. 딸과 떨어져 혼자 살던 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딸의 구원 요청에 목숨을 걸고 딸을 향해 달려간다. MBC 2부작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소설 더보기

잿빛 도시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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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비전 고글을 쓰고 밤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은 지원의 넘버원 취미였다.

물론 헤드라이트 따윈 켜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어둠의 바다에 완벽하게 잠수 할 수 있으니까. 자동차 카세트테이프에서 레이디 가가의 살짝 맛이 간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며 천천히 레드우드 빌리지 근처를 돌았다.

언제나 이 시각의 도로는 차 한 대 없었고 그녀는 이 황량한 어둠을 사랑했다. 이곳은 도시와는 동떨어진 고지대 산동네라 공기가 신선했고 가끔 새벽엔 야생 사슴과 토끼가 나타나기도 한다. 공동묘지 겸 공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원길을 천천히 드라이브했다. 6개월 전에 죽은 엄마의 묘 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사거리로 나왔다.

빨간불. 신호대기를 하고 있자니 소방차와 구급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한밤에 듣는 사이렌 소리는 언제나 머리끝을 쭈뼛하게 만든다. 이 시각에 누군가 죽었을까? 아니면 화재라도? 남의 비극 따위는 지원의 관심을 그리 오래 끌지는 못한다.

단지 자동차 문이 잠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신호가 길어지자 지원은 도로의 좌우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데 확 지나가 버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단념했다. 감시카메라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편하자고 제 멋대로 했다가 나중에 우편함에서 신호위반 벌금을 내라는 독촉장을 발견하고 싶진 않았다.

신호를 기다리던 지원의 시선 안으로 문득, 무엇인가 비일상적인 모습 하나가 잡혔다. 지원은 재빨리 헤드셋에 붙어 있는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비일상적인 존재의 모습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목을 오른쪽으로 꺾은 채 걷고 있다. 맥없이 흐느적거리는 두 팔. 절룩이는 한쪽 다리와 지면에 질질 긋는 다른 쪽 다리. 교통사고를 당한 노숙자? 아니면, 술 취한 노숙자?”

경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나날이 노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 그녀의 추측은 몹시 현실적인 셈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노숙자의 묘사를 마친 지원은, 아까부터 마을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는 덩치가 크고 더러운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흰 앞치마를 입고 있다.

고글을 당겨 남자의 얼굴을 확대해 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이 남자의 얼굴 또한 어딘가 이상했다. 눈두덩은 퀭하게 들어가 있고 양쪽 볼은 움푹 패였다. 입술은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거무튀튀한 색이었다.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한쪽 팔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의자 밑으로 들어가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음에서 돌아온 시체 같다. 밤이란 것이 늘 알 수없는 얼굴이지만 오늘 밤은 어딘가 몹시 이상하다.”

중얼거리며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지원은 헉. 하고 숨을 멈추었다. 머리끝이 뾰족하게 일어나고 등골로 오한이 달렸다. 단 몇 초 사이, 아까 횡단보도를 걸어오던 그 노숙자가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노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힘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노숙자가 두 팔을 앞으로 내밀더니 힘껏 상체를 뒤로 젖혔다가 보닛을 꽝. 하고 내리쳤다.

“악!”

머리끝이 쭈뼛 섰다. “씨발.” 험한 욕지기가 절로 튀어나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도로 옆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남자도 뒤뚱거리며 도로를 건너오고 있었다. 지원의 차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남자의 손엔 정육점에서 고기의 뼈를 자를 때 사용하는 도끼 칼이 쥐어져 있었다. 숨을 헐떡이던 지원은 후진해 차를 뺀 다음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줄행랑을 쳤다.

아파트로 돌아온 지원은 혹시라도 좀 전에 자신이 겪은 해괴한 사건이 나올까 싶어 TV를 틀었다가 TV요금을 내지 않아 한 달 전에 TV가 끊겼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월세를 내야 할 날도 다가오고 있었고 인터넷 요금을 지불해야 할 날도 가까웠다.

자동차 보험금도 내야 했고 난방비와 수도세, 전기세들을 내야 했다. 지불해야 할 돈을 생각하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었다.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돈과의 싸움은 죽을 때까지 반복될 일이었다.

위층에서 우당탕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가 난다. 어떤 작자들이 사는 건지 오밤중에 부부 싸움이라니. 어제는 앞 동에서 유리창이 박살나고 요란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오늘 아침에는 어느 동인지 어떤 여자가 베란다에 나와 서서는 하루 종일 미치광이처럼 “학, 까르르르, 학, 까르르르” 이런 미친 소릴 내며 웃어댔다.

대박 한번만 터져주면 이런 정신병동 같은 아파트에서 나가는 건데……. 그나저나 아까 식겁한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수다를 떨고 싶었다. 담배를 피며 거실을 서성이던 지원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훑어보며 오늘 밤의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대가 있는지, 그러니까 ‘미친년 지랄하네.’ 라며 정신병자 보듯 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 친구가 있는지 생각했다. 관둬라. 진지한 얼굴로 들어주더라도 내가 자리에 없으면 곧장 험담으로 바뀌잖아.

그러니까 사람들과 말을 섞고 사는 건 바보짓이다. 수다를 떨기 위해 ‘친구’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자신을 비웃는 지원은 심하게 비뚤어져 있었다.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머릿속으로 ‘지겹도록 오는 비’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머리맡의 수첩을 펴고 문장을 적어 넣으려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관뒀다. 솔직하지 못한 문장이었다. 지원은 1년 내내 비가 내려도 좋아할 인간이었다. 오히려 화창한 날은 공포증을 느낄 만큼 싫다. 집 밖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남들의 행복에 겨운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은 고문이었다.

지원은 손가락 끝으로 굳게 내려진 블라인드를 살짝 들어올려 밖을 살폈다. 어두침침한 아침 9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손을 뻗어 전기스위치를 올렸다가 욕지기를 퍼부었다. 누군가의 뺨이라도 때리듯 전기스위치를 후려쳐 내렸다. 침대에서 내려선 지원은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방광을 비웠다.

세수를 할까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부엌으로 와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역시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블라인드 밖으로 아파트 단지를 내다보았을 때 정전이라도 된 듯 어두컴컴해 보였던 것이 떠올랐다.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는 동안 어제 밤새 써둔 글을 읽는데 ‘쿵. 쿵.’ 하고 누군가 거실 창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왜 문 놔두고 유리창을 두드리고 지랄이래? 그녀는 인상을 쓰고는 거실 창쪽으로 걸어갔다. 이런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누구세요!”

현관문에 대고 짜증스럽게 물었다.

“원아. 엄마.”

대체 뭐라는 거야? 지원은 얼굴을 찡그리며 거실 블라인드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집 안을 엿보는 붉은 두 눈과 마주쳤다. 악! 지원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블라인드가 화르르 내려와 이글거리던 붉은 눈을 지워냈다.

지원은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서서 조금 전에 본 얼굴을 떠올렸다. 유리창 너머에 서 있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내는 순간 꽝! 하고 번개가 치며 시퍼런 불빛이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엄마의 얼굴은 상한 소고기처럼 거무죽죽했고 뜯겨나간 살가죽 위로 허연 광대뼈가 솟구쳐 있었다. 머리는 산발에다가 군데군데 진흙과 함께 뭉쳐 있기까지 했다. 찢어진 스타킹은 시뻘겋게 피가 말라붙은 무릎 살밑에 가까스로 붙어 있었다.

비바람이 불자 엄마의 다리에 붙어 있던 스타킹은 찢어진 검은 비닐봉지처럼 휘날렸다. 새끼발가락은 뭉개진 살가죽을 비집고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발 복사뼈는 흰색 알전구처럼 발등 옆에 튀어나와 있었다.

엄마는 6개월 전에 죽었다.

엄마는 6개월 전에 죽었다.

같은 말이 입 안에서 게거품처럼 뽀글뽀글 끓어올랐다. 지원은 다시 창쪽으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걷었다. 엄마는 조금 전과 똑같이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고 있다가 지원의 얼굴이 보이자 쾅! 하고 이마로 유리창을 들이받았다.

두리번거리던 빨간 눈알 한 쌍이 지원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마치 야광 빔처럼 붉은 기운이 흉물스러운 눈알 주위로 번져나는 것만 같다.

“원아. 엄마. 원아. 엄마……”

엄마는 뭉개진 입술을 벌려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양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탕. 탕.’ 내려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웩.’ 하고 토했다. 시뻘건 핏덩이가 유리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원의 심장이 귀밑에서 벌컥댔다. 눈앞이 아찔해지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매끄러운 유리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물 속에 눈에 익숙한 것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절단된 손가락, 새까만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두피조각, 어느 부위인지 알아볼 수 없는 살점. 살점. 살점. 아직도 지난밤의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질근 눈을 감았다 떴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그곳에 서서 새빨간 눈으로, 피투성이 얼굴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아. 쿵. 엄마. 쿵. 원아. 쿵. 엄마. 쿵. 원아. 쿵. 엄마……”

엄마는 다시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원은 엄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표정을 만드는 근육이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않는 듯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왼쪽 눈썹 위의 사마귀는 그대로였고 색이 바래긴 했지만 영구눈썹문신도 그대로였다.

땅속에 묻혔던 엄마는 대체 어떻게 땅속에서 걸어 나온 것일까. 어제 새벽 거리에서 마주쳤던 시체 같았던 두 남자의 모습과 언젠가 전 남편과 함께 보았던 일본 영화가 떠올랐다. 「환생」 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어느 작은 마을에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한다는 설정이었다.

음침한 공동묘지를 끼고 있는 레드우드 빌리지라면 그런 이상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묘지에서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 모녀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문득 자신이 쇼윈도 안에 갇힌 먹잇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진다.

문을 열까. 말까. 열까. 말까. 엄마 추울 텐데.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에도 엄마는 “원아. 엄마. 원아. 엄마.” 하고 외쳐댔다. 단조롭고 슬픈 목소리에 코끝이 찡해져왔다. 문손잡이를 잡는데 박쥐우산을 쓴 옆집여자가 엄마 옆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옆집 여자는 아파트 이웃들 중 그나마 얼굴을 아는 편에 속했다.

그녀의 직업이 작가라는 소릴 들은 후로 가끔 빵을 구워 건네주기도 했던 이웃이었지만 우울증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거절할 수가 없어 헤헤 웃는 친절한 얼굴로 빵을 받긴 했지만, 빵 속에 뭘 집어넣었을지 찜찜해 곰팡이가 피도록 까지 방치해 두었다가 버리곤 했다.

멋모르고 빵을 받고는 냄새에 홀려 와작 깨물었다가 죽은 생쥐 반 토막을 씹은 적이 있었다.

이웃 여자는 평소에 쓰고 있던 도수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엄마의 몰골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겁도 없이 엄마의 곁으로 다가서더니 한없이 친절한 표정을 짓고 엄마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았다. 바로 그 순간, 여자의 좁은 이마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양쪽 귀가 놀란 토끼처럼 쫑긋해지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제야 엄마의 턱밑으로 줄줄 흐르는 붉은 피와, 엄마가 서 있는 자리 주변의 핏물을 발견한 것이었다.

여자는 황급히 손을 떼고 악 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엄마가 여자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목덜미를 와작 깨물었다. 지원은 유리창 안쪽에 서서 한번 죽었던 엄마가 산사람의 생살을 물어뜯고 우물우물 씹어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엄마의 이빨이 바닥에 쓰러진 이웃여자의 목덜미를 덥석덥석 물때마다 여자의 하체가, 슬리퍼를 신은 발이 꿈틀거렸다.

엄마의 식사는 계속되었다. 커다랗게 벌어진 여자

의 입 안으로 팔을 집어넣더니 시뻘겋고 물컹한 내장을 줄줄 끌어내 먹기 시작했다. 지원은 휴대전화를 집어 든 채 달달 떨고만 있었다. 신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 역시 우산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지원은 구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누군가, 그녀 대신 이 끔찍한 상황을 신고해 주길 바랐다.

덩치가 큰 남자는 천천히 걸어오더니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슥 한 번 쳐다보더니 앞 동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덩치 큰 남자가 앞 동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지원은 남자가 어젯밤 정육점 칼을 들고 있던 바로 그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원아. 쿵. 엄마. 쿵. 원아. 쿵. 엄마. 쿵……”

식사를 마친 엄마가 다시 일어나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손이 아닌 머리였다. 이마로 쿵쿵 유리창을 부술 듯이 덤벼왔다. 그녀는 재빨리 119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는 불통이었다.

“에이 씨!”

그녀는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다. 곧장 부엌으로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고 냉장고 속의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냈다. 선반까지도 빼내고 나자 플러그를 뽑아내 버렸다.

만약의 경우 빠져나가기 쉽도록 뒷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전기 충격기를 단단히 거머쥐고 다시 현관으로 와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몇 번 심호흡을 한 다음 현관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엄마! 들어와! 젠장.”

그들은 소리 없이 움직인다.

당신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나타나 덥석 목덜미를 문다. 그렇기 때문에 등은 항상 벽에 붙이고 움직여야 한다. 엄마는 지원을 끌어안을 듯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뻗정다리로 걸어들어 오더니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곤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전기 충격기를 들이밀었다. 전기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은 엄마를 냉장고 안으로 밀어 넣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왜 하필 냉장고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미리 준비해 둔 박스테이프로 냉장고를 친친 감아 문을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열어놓은 뒷문을 걸어 잠그고 거실로 돌아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냉장고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담배연기를 세게 빨아 당기자 날카롭게 솟아 있던 신경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사람이 뜯어 먹히는 일이 일어났다. 이웃 여자는 비명을 질렀고 흥건하게 쏟아진 피는 멀리서 봐도 선명하게 보인다. 아무리 비가 오는 날이라도 그렇지 누군가 봤을 텐데 아파트는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다.

꽤 오랫동안 엄마가 이상한 목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꽝꽝 두들겨댔는데 옆집 여자 말고는 누구하나 창문을 열고 내다보지도 않았다. 아주 가끔 한밤중이나, 새벽을 이용해 외출할 뿐,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 그녀로서는 이 아파트 단지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 도리가 없다.

경찰이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미뤄봐서는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 것 같다. 돈을 못 내 TV와 인터넷이 끊겨서 그렇지 수돗물도 잘나오고 난방도 잘된다.

하지만……. 며칠 동안 우편함은 텅 비어 있었고, 밤마다 싸우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육점 칼을 쥔 그 놈이 앞 동으로 들어갔고 오늘은 정전이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 부엌 서랍장에서 손전등을 꺼내들다 주춤했다. 차에 두고 내린 나이트비전 고글을 이럴 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 세워둔 곳까지 가기가 두려웠다. 버리러 나가기가 싫어 거실에 세워두었던 부서진 스탠드 봉을 무기 대신으로 챙겼다.

그리고 공동세탁실 사용이나 우편물 확인이 아닌 다음에야 나갈 일이 없던 뒷문을 열었다. ‘나가지 마. 나가면 죽을지도 몰라.’ 마음 한구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경고를 보내왔지만 지원은 복도로 나섰다.

복도는 몹시 어두웠다. 지원의 기억으로는 복도엔 항상 불이 켜져 있었는데. 정전 때문인가. 아니면……. 먼저 공동세탁실을 확인했다. 단단히 잠겨 있었다. 작년 겨울에는 웬 부랑자가 들어와 자고 있는 바람에 세탁하러 들어왔다가 기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세탁실 옆은 조금 전 엄마에게 뜯겼던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채 망설였다. 그녀가 알기론 이웃 여자는 어떤 남자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게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치자 ‘딱. 딱.’ 하고 차가운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잠시 기다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귀를 대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누가 있었다면 여자가 물어뜯기며 비명을 지를 때 달려 나왔겠지. 마지막 확인삼아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지원은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각 호마다 들러 문을 두드려 볼 작정이었다. 위층 첫 번째 집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소리를 내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서며 버릇처럼 현관 벽으로 손을 뻗어 전기스위치를 올렸다. 역시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불법가택침입 같아 현관에 선 채로 손전등만 휘휘 비춰보고는 돌아섰다.

3층부터는 신발을 신은 채로 과감하게 남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확인한 호수가 많아질수록 그녀는 몸이 떨려왔다. 아파트 전체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천장을 구르는 소리가 났었다. 그렇지. 천장을 구르는 소리. 지원은 1층으로 다시 뛰어 내려갔다.

“실례합니다. 누구 계세요?”

현관문의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크게 소리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었다. 동그란 손전등 불빛이 어둠 속에 숨은 집안의 풍경을 조금씩 부분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거실로 접근했을 때였다.

동그란 불빛 속으로 누군가의 발이 먼저 드러났다. 거무튀튀한 맨발은 소파 밑에 내려져 있었고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발을 지나 다리를 거슬러 올라갔다. 무릎을 비춰보던 그녀는 흠칫 놀라 멈추었다. 또 다른 발이 있었다. 아주 작고 앙증스러운 두개의 발. 이 작은 인간이 어른의 무릎을 타고 앉아 뭔가를 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츱. 츱. 츱. 냠. 냠. 냠. 고양이가 생쥐의 살점을 뜯어먹을 때 이런 소리가 나겠지. 두 개의 발이 작고 연한 입으로 혓바닥을 놀려가며 뭔가를 먹고 있다. 뭔가를…… 뜯어먹고 있다.

‘그냥 돌아서. 나가.’

지원은 자신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도망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손전등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비추었다. 아이의 작은 얼굴이 검은 물 위로 달이 떠오르듯 동실 떠올랐다. 크르렁……. 아이의 목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그녀를 노려보는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붉은 순막으로 뒤덮여있었고 코밑은 시뻘건 피로 젖어 있었으며 턱 밑으로 끈적끈적한 피가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내아이인지 계집아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이가 피로 물든 작은 이빨을 드러내며 크르릉 거렸다. 그녀는 토하고 싶었다.

뒤로 한 발짝 물러서는 순간,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아이가 달려들었다.

지하로 달려 내려온 그녀는 뒷문으로 들어와 문을 꽝 닫고 재빨리 잠금장치를 걸었다.

“원아. 엄마. 원아. 엄마.”

냉장고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지원이 나간 뒤에도 계속 저러고 있었던 것일까. 마치 고장 난 앵무새 인형 같다. 지원은 휴대전화를 열고 119를 눌렀다. 받아. 받아. 제발. 받아. 신호음이 끊겼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전화했다가 끊었던 분이시죠?”

“네. 죄송합니다. 아까는…….”

“그곳 위치가 어딥니까? 대체 어디서 전활 거는 거죠?”

“여긴 레드우드 빌리지 아파트예요.”

“이런 맙소사. 아직 그곳에 있는 겁니까?”

“네?”

“거긴 벌써 끝났다고요!”

“끄, 끝나다니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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