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큰 예배당이었다. 조용하지는 않았다. 한쪽에서는 젊은 엄마 품 안에 안긴 아기가 연신 칭얼거리고, 다른 쪽에서는 한 노인이 잔 기침을 하고 있었다.
강단 위의 늙은 목사는 나이에 비해 힘이 가득한 눈으로 예배당 안을 쭉 훑었다. 개척 교회를 열고 열 손가락 수에도 못 미치는 교인을 마룻바닥에 앉힌 채 첫 예배를 열었던 젊은 시절도 떠올랐다. 이만큼 교회를 키워내었다는 자부심이 뿌듯하게 가슴을 채웠다.
목사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오늘의 성경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낭독하던 목사의 말이 끊겼다. 누군가가 예배당 문을 기세 좋게 열어젖힌 것이었다.
“아니야! 틀렸어!”
한 남자가 예배당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남자는 허리에 양 손을 댄 채 큰 소리로 다시 한 번 외쳤다.
“다 거짓말이야!”
다시 한 번 안경을 고쳐 쓴 목사는 깜짝 놀라 성경 책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예배 중에 불쑥 나타나 불경한 말을 외친 남자는 목사가 아는 얼굴이었다. 1년쯤 전, 목사가 직접 추도 예배를 하고, 화장터까지 배웅한 사람이었다.
*
죽은 이들 중 일부가 살아 돌아온 일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묻혔던 이도 있고, 화장된 이도 있고, 조장(鳥葬)된 이, 수장(水葬)된 이, 수목장(樹木葬)으로 묻힌 이 등 장례가 이루어진 방식은 다양했다. 나이와 성별, 인종에도 편중된 점은 없었다. 죽은 지 1년 사이의 인물이라는 것과 모두가 독실한 각자의 종교를 가졌다는 것만이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돌아온 이들은 전 세계에 걸쳐 같은 주장을 펼쳤다.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위한 방법은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위해 얼마나 동정심을 가지며 그 동정을 실천하는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가라는 것에 각기 점수가 매겨지고 있다. 그렇게 일정 점수를 넘어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심지어 믿던 종교에 천국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이들마저 같은 주장을 펼쳤다.
처음에는 죽은 이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점만이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차츰 그들의 일치된 주장이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죽음에서 돌아온 이들을 따르는 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돌아온 이들은 약 1년여를 살며 말로, 책으로, 강연으로, 인터뷰로 같은 주장을 펼쳤고 다시 한 번 사망했다. 사람들은 이 1년 간의 사건을 두고 ‘위대한 귀환’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0여 년 전쯤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던 그들의 주장은 이제 사람들 사이에 진리로 남아 있다. 이제는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라 죽은 후에 살아야 할 세상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현우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다지 독실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신자였던 어머니의 성화에 10여 년 전, 마지못해 아내와 함께 끌려가듯 참가했던 ‘위대한 귀환’의 전도사 강연이 계기였다.
그때까지 현우 씨의 인생에 열심히 공부해라, 명문 대학에 가라, 대기업에 입사해라 등의 지시를 내려왔던 어머니는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 버린 듯이 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 승진이나 큰 연봉에 얽매이지 마라, 다른 이들을 배려해라, 죽은 뒤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덕택에 현우 씨는 그런대로 이름이 알려진 대학을 나와 꽤나 탄탄한 회사에 입사했지만 마흔을 넘겨 버린 지금에 와서는 대리라는 자리에 마냥 주저앉아 있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나 늦겠어요. 빨리 식사 하세요.”
아내의 목소리에 현우 씨는 회상에서 깨어나 급히 숟가락을 놀렸다. 식탁 너머를 보니 아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국에 떠오른 파를 건져내고 있었다.
“이 녀석. 파도 먹어야지. 힘들게 밥 차려 준 엄마의 정성을 무시하면 천국에 못 간다.”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간 외아들은 한숨인지 콧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내고는 젓가락 끝에 달라붙은 파를 털어 내었다. 최근 좀처럼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는 아들과 말다툼이라도 일어날까 싶어 현우 씨는 잔소리를 거두었다.
시간이 흐르면 아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보란 듯이 위대한 귀환이 알려 준 진리를 무시하는 녀석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사회에 나오게 되면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게 된다. 아들도 이제 슬슬 반항기가 시작될 나이이기도 하니 지금은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
현우 씨는 급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식탁을 정리했다. 아내를 돕는다는 기분도 내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통한 천국 점수를 조금이나마 쌓을 수 있는 일이다. 위대한 귀환 전도 연대에서 출판한 천국 가이드 서적에 나온 것이니 확실할 것이다.
아내는 3년 전부터 보험 설계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현우 씨의 회사에서 후하게 연봉을 올려 준 해였다. 나이가 제법 든 사장이 천국에 가기 위한 방편으로서 회사의 이익을 줄이고 직원들의 보수를 올렸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럼에도 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가정을 지키고 가족들에게 충실한 배려를 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천국 점수를 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현우 씨에게는 아내를 배려하여 점수를 딸 기회가 생기고,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가정에도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쁠 건 없었다. 가정에 있어 사소한 걱정거리라고는 아들이 또래에 비해 키가 작다는 점과,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정도뿐이었다. 너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아닌가. 오히려 그것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
회사에 도착한 현우 씨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잠시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들을 훑었다. 사회는 평화롭다. 위대한 귀환 이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한 일과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에만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현우 씨가 대학생이었을 무렵 부정부패의 대표로 손꼽혔던 나이 많은 국회 의원 하나가 불우 이웃을 위해 상당한 거액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여성 하나가 자살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자살은 최근에 와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자살은 천국 점수에 마이너스가 되는 최악의 행위 중 하나였다. 현우 씨는 혀를 찼다. 죽은 젊은 여성에 대한 동정심이 이는 한편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커피 생각이 나, 현우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리님은 좋겠어요. 걱정이 없어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는 건데 말이에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마주친 후배 직원이 몇 마디의 잡담 끝에 한탄하듯 말했다. 현우 씨와 같은 직급인 대리가 된 이후에도 꼬박꼬박 현우 씨에게 대리님이라고 존칭하는 친구였다. 현우 씨는 후배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동정과 배려를 노출하기 위해 덧붙였다.
“아버님께서는 여전하신가? 정말 고생이 많네. 하지만 그게 다 나중에 천국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겠죠. 꼭 그래야죠. 아버지는 뭐…… 요즘 많이 기운 차리셨어요. 글쎄 지난 주에는 제가 회사에 있는 동안에 설거지를 하신다면서 그릇을 두 개나 깨뜨리셨지 뭐에요?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 참……. 앞으로 점점 나아지시겠죠.”
현우 씨의 후배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었다. 혼자 아들을 길러 온 그의 부친은 몇 년 전에 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다. 후배는 그런 부친을 몇 년이나 열심히 돌보았다. 덕택에 그의 부친은 천천히 회복하여 요즘은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된 모양이었다.
현우 씨는 후배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했다.
“결혼이라도 하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편해질 텐데 말이야. 만나는 아가씨는 없나?”
“웬 걸요. 결혼하자고 쫓아다니는 아가씨는 많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그래.”
“농담이 아니라 진짜에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천국 점수를 따겠다는 거죠. 웃기지 않아요, 대리님?”
후배는 다 마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 여자들은 내가 좋아서 결혼하자는 게 아니에요.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아니죠. 오히려 불행해지고 싶은 겁니다. 현세에서 불행을 쌓을수록 천국에 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식이죠. 그런데 그 아가씨 중 하나를 골라서 제가 결혼을 한다고 치면, 부인될 여자에게 불행한 삶을 제공하게 되는 저와 제 아버지는 뭐가 됩니까?”
내뱉듯이 말하는 후배에게 뭐라 위로를 해 줘야 할지, 현우 씨는 마땅한 말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이 너무나 평온한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해졌다.
현우 씨의 침묵이 길어지자 후배는 표정을 바꾸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전략 기획부 강부장님 기억하시죠? 작년에 퇴사하신 분. 며칠 전에 우연히 뵈었는데요.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 노점을 하고 계시던데요. 혹시 아셨어요?”
“뭐?”
강부장은 현우 씨보다 고작 1년 먼저 입사한 선배였지만 고속으로 승진을 계속하고 있던 엘리트였다. 업무 능력이나 발상은 뛰어났지만 소문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회사 임원진들 눈에 들기 위해 임원진 자원봉사 때마다 열심히 따라다닌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 그는 지난 해에 부친이 위독하다며 간호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표를 냈다. 그 뒤로 소식이 끊겼던 그가 노점상이라니?
“그런데 대리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떡볶이나 튀김 같은 건 사실 애들 건강에 나쁘다고 하잖아요.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은 아니죠. 그런데 애들은 그걸 아주 좋아한단 말이죠. 못 먹게 하면 싫어해요. 그건 애들을 기쁘게 해 주는 일이 될까요? 천국 점수에 플러스가 될까요, 마이너스가 될까요?”
기세 좋게 떠들어대는 후배와 천국 점수에 대해 토론할 마음은 없었다. 현우 씨는 시계를 보고는 후배에게 손짓을 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강부장은 현우 씨가 입사했던 무렵에 잠시 그의 멘토를 맡아 주었던 인물이었다. 현우 씨가 장래에 대한 야심과 포부로 가득 차 있던 무렵이었다. 이후로 강부장이 계속해서 승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현우 씨는 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모두 다 위대한 귀환이 있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 말아먹으면 사표 던지고 내 사업이나 시작하면 되지 뭘.
회사 업무에 있어 누구보다도 눈부신 활약을 하던 강부장의 입버릇은 그랬다. 말은 그렇게 해도 강부장이 기획한 프로젝트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강부장의 부친이 대단한 자산가라는 소문도 있었다. 실력과 배경이 그래서인지 강부장은 언제나 자신만만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시작한 사업이라는 게 고작 노점일 리는 없었다. 신경이 쓰였다.
현우 씨는 오늘 해야 할 업무 목록을 살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은 없었다. 오늘 그가 자리에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 터였다. 현우 씨는 급히 조퇴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조퇴 이유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점, 즉 천국 점수에 도덕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거라는 사실만큼은 가슴이 아팠다.
*
강부장은 많이 변해 있었다. 고작 1년 사이에 머리에는 새치가 부쩍 늘었고, 눈 밑은 거뭇거뭇했다. 살도 무척이나 빠져 보기에도 빈곤한 인상이었다. 이전의 믿음직스럽고 때로는 위압감을 주던 인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왔어?”
말투도 퉁명스러웠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던 현우 씨는 답답하면서도 가슴 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강부장님이 여기 계시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어떻게 지내시는가 궁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