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요람

살인자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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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었다.

나는 포장되지 않은 외길을 걷고 있었다. 길의 양옆으로는 말라비틀어진 갈대가 끝없이 늘어섰다. 그 위로 짐승의 아가리를 닮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먼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여기가 어디고,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조차 나는 알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괴이한 포효가 들렸다. 케에에엑 하는 소리만으로는 도저히 그것의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어 무서웠다.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무턱대고 걷다가 뾰족한 돌멩이를 밟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제 보니 맨발이었다.

대체 나는 무슨 일에 휘말렸던 걸까? 맨발에 이름 모를 숲을 헤매고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신발조차 신지 못하고 간신히 탈출이라도 한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고 어느 기억도 선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중추 신경을 교란하는 약물이 투여 됐을지 모를 일이다. 현재의 상황으로선 그 정도밖에 짐작할 수 없다. 이유가 뭐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거리는가 싶더니 등 뒤에서 의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또 빨라지다가 갑자기 멈춰 버렸다. 대신 서늘한 숨결과 묘한 냄새가 습한 공기를 타고 밀려와 코끝을 스쳤다.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자 적막한 어둠이 시커먼 눈으로 나를 마주봤다.

산짐승일까? 이런 산길이라면 뭐가 나타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나는 겁에 질려 이 길을 빠져나가려고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길은 곳곳에서 구불거리며 갈대숲을 끼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인가다. 드디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반색하며 불빛 쪽으로 달려갔다. 성인 남자의 키만큼이나 자란 갈대밭 사이로 오두막집이 보였다. 한쪽 벽에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이 두 개 있었고, 그 옆으로 닫힌 문이 보였다.

갈대숲을 헤치고 달리다가 오두막 앞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오두막집을 보는 순간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었던 것이다. 문득 신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산중에 외딴 오두막이라니 수상쩍기로 따지면 날 쫓는 정체모를 존재와 다를 바가 없다.

대체 저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갈대뿐이다. 길도 보이지 않고 어디에도 사람이 사는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며 손에 땀이 났다.

어쩌면 내가 맨발로 도망쳐 나온 곳이 이 오두막일지 몰랐다.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다가 원점으로 돌아온 건 아닐까? 하지만 불확실한 추측으로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릴 수는 없다. 몰래 접근해서 창문으로 오두막 안의 동태를 살피는 게 좋겠다. 분위기를 봐서 여차하면 튀는 거다.

갈대숲을 헤치며 살금살금 접근하는데 오두막을 에워싼 숲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에 마치 귀신들린 여인의 곡소리 같은 괴기스러운 흐느낌이 섞여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어둠을 살피니 서슬이 시퍼렇게 오른 수십 개의 안광(眼光)이 갈대숲 저편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앞에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오두막집.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안광. 이렇게 된 이상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물쭈물하기엔 돌아가는 상황이 긴박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갈팡질팡하는 사이에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집주인이 부디 선량한 사람이길 기대하며 나는 오두막집을 선택했다. 허겁지겁 뛰어가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창문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안에 누구 안 계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얼굴을 창문에 바싹 갖다 대고 안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노인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텔레비전을 보며 느긋하게 의자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노인은 귀가 어두운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밀려와 갈대숲이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기괴한 소리는 점점 커져 급기야 귀를 막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고막을 세차게 두드렸다.

창문은 돌처럼 단단했다. 마치 벽의 연장인양 두드리면 손이 아플 정도다. 방탄 유리일까? 할 수 없이 문 앞으로 돌아가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며 고함을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갈대숲을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와 맹수처럼 그르렁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놈이 가까이 다가서자 달빛 아래 서서히 모습이 드러났다.

놈은 마치 인간의 형태로 빚으려다 실패한 석회반죽 같았다. 온몸에 진물이 흘러내리고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놈은 좀비처럼 양손을 축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 오두막집으로 다가왔다.

곧 비슷하게 생긴 놈 셋이 한꺼번에 숲 속에서 나타났다.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놈들이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이런 염병할!”

놈들은 오두막집을 포위한 채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다. 온몸에 털이 바짝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이 순간 달아날 곳은 오직 오두막뿐이었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문 열라고! 제발, 문 좀 열란 말야!”

가장 앞선 놈이 흉물스럽게 생긴 손을 뻗어 날 만지려 했다. 나는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꼼짝도 못한 채 굳어 버렸다. 그때 오두막집의 문이 열렸고 나는 혼비백산해서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허리가 꼽추처럼 굽은 노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밖에서 길게 늘어난 손이 내 뒷덜미를 잡으려고 따라 들어왔다가 닫히는 문에 잘려나갔다. 주인을 잃은 손은 금세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 밖에 저게 뭐에요?”

숨을 헐떡이며 물었지만 노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듯 다시 흔들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진자 운동을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주말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나쁜 자식, 결혼한 지 3일 만에 딴 년이랑 놀아나?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럴 수가 있든 없든 노인의 느긋한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밖에는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있는데 드라마 따위나 보고 있다니. 놈들이 모두 달려들면 이런 허약한 나무집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기 전에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냥 괴물? 아니면 치명적인 전염병에 감염된 변종 인간? 모두 정신병자 취급 받기 딱 좋은 얘기들이다.

“저 소리 안 들려요? 창밖을 좀 보라고요.”

내가 노인의 귀에 대고 있는 대로 고함을 지르자 비로소 노인이 입을 열었다. 뜻밖에도 노인은 모든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경 쓸 거 없어. 어차피 여긴 못 들어오니까.”

노인은 귀찮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텔레비전 볼륨을 조금 높였다. 대체 이런 여유와 느긋한 말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정말 뭘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아무리 봐도 믿음이 가지 않는 노인네다.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나를 보고 노인이 혀를 찼다.

“아, 글쎄 괜찮다니깐. 너도 이리 와서 테레비나 봐.”

당최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덩치가 작은 것도 아니고 머릿수도 저렇게 많은데 어째서 여기까지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인가.

어느덧 창밖에는 괴물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오금이 저리는데 노인은 무덤덤했다. 이상한 점은 놈들이 가만히 서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 유리창을 두드린다거나 도구를 이용해 오두막을 부수려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노인의 말대로 마치 이곳이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 안에 들어온 후부터는 신경을 긁는 것 같은 놈들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창문을 기점으로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다른 차원이라도 되는 양 완벽하게 분리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도무지 무슨 조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놈들은 여기 못 와. 암, 못 들어오고말고.”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은 한 번 더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유를 묻자 그냥 그런 게 있다며 말을 얼버무렸다. 본인도 잘 모르는 것인지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귀찮았는지 그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텔레비전 볼륨을 높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놈들이 침입하지 못할 거란 노인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TV 소음 때문에 귀를 막고 창가를 서성이며 바깥을 살폈다. 이상한 상상들이 온갖 망상과 억측을 만들어 냈다.

대체 놈들은 왜 이 집엔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오두막집에서 저들이 싫어하는 냄새가 날 수도 있고, 영화에서처럼 누군가 주술적인 힘으로 집에 결계를 쳐 접근을 막는지도 모른다. 놈들의 괴상망측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저것들은 뭐죠?”

나는 메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이 집에 사람이 온 건 3년만이야.”

노인은 내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 딴 소리를 했다.

“3년 전에 그놈은 죽어서 나갔지.”

“뭐라고요?”

죽었다는 말에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지가 잘려서 죽었어. 킬킬…….”

머릿속이 아찔했다. 괴물들을 피하니 이번에는 정신 나간 노인네가 불길한 소리를 지껄였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킬킬 대며 웃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죽었는데요?”

“몰라, 나도. 이 방에선 다들 그렇게 죽어.”

노인은 또 킬킬 웃었다.

나는 망령든 노인네의 헛소리 따윈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돌아보면 무턱대고 무시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문득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들어온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네 형과 누나도 여기서 죽었어.”

노인은 급기야 내 가족까지 들먹였다. 그런데 나에게 형과 누나가 있었던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알아듣게 말을 해 봐요.”

“아, 죽었다는데 뭔 얘길 더 해?”

프로그램 중간에 대출 광고가 끼어들자 노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곤 도저히 심심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집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두막집 안에 사람이 들어오면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위험한 존재가 찾아와 침입자를 종이처럼 찢어발긴단다. 기계처럼 정확하고, 무자비한 그놈은 어떤 말로 목숨을 구걸해도 봐 주는 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분이 나빴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이 집이 바깥보다 더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가고 싶어도 창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괴물들을 쳐다보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놈이 유리창에 걸쭉한 녹색 액체를 토하더니 시들시들 말라가는 게 보였다. 나는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이다가 전화를 떠올리고 발작적으로 외쳤다.

“전화기 좀 빌려 주세요. 어딨어요? 전화.”

“그런 건 없어.”

그러나 노인의 말과 다르게 침대 옆 선반에 보란 듯이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나는 노인을 슬쩍 흘겨본 뒤 침대 앞으로 가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112번을 눌렀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이제 보니 선이 중간에 누가 물어뜯기라도 한 것처럼 거칠게 잘려 있었다.

“빌어먹을.”

나는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어째서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걸까? 전화도 되지 않는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지만 답이 없었다. 일단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위험하단 놈이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르니 그 안에 뭐든 수를 내야 한다.

창밖의 괴물들도 언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잠깐 사이 두 놈이 말라비틀어진 걸 보면 남은 놈들도 곧 기력이 쇠하거나 제풀에 죽어 나갈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나는 오두막 한 편에 놓인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집 안을 자세히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오두막은 단순한 구조였다. 방이 따로 있지는 않았고 바닥에 양탄자가 깔린 큰 거실과 주방, 욕실로 보이는 닫힌 문이 전부였다.

가구라고 해 봐야 내가 앉아 있는 침대와 노인의 흔들의자뿐이었고, 주방도 싱크대나 조리 기구 없이 2인용 식탁과 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는 필라멘트의 수명이 다한 듯 이따금씩 위태롭게 깜빡거렸다.

멍하니 노인의 어깨 너머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배가 고팠다. 참아 보려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허기가 져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도 우스웠다.

“저, 죄송하지만 뭐 먹을 거 없나요?”

“뭐든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

망설인 게 민망할 정도로 노인은 흔쾌히 냉장고를 내주었다.

주방에 가서 냉장고를 열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은 냉장고엔 싱싱한 과일과 고기가 가득했다. 고작해야 오래된 김치 쪼가리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치즈 케이크, 오렌지, 사과, 포도, 스테이크, 훈제 칠면조, 프라이드치킨, 석류 주스, 튀김, 닭꼬치 등 모두가 신선한 음식뿐이었다. 죄다 꺼내서 정신없이 먹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왔다.

잠시나마 행복해졌다. 배가 부르자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노인 곁에 앉아 자꾸 아래로 떨어지는 고개를 곧추 세우려 애쓰다, 어느 순간 얕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을 쳐다봤다. 다행히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혹시 꼬박 하루를 잠들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노인도 여전했다. 나는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데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얼마나 잔 거죠?”

“한 열 시간쯤 됐네.”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열 시간이라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두운 걸까.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갔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보다 어둠은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너무 검어서 달도 별도 안 보였다.

“농담하지 마세요. 그렇게 잤으면 지금쯤 해가 떠 있어야죠.”

“농담이 아니야. 뭘 모르나 본데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고.”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 영감 정말 노망이라도 났나 보다.

“열 시간 동안 계속 그러고 계신 거예요?”

“그게 일이니까.”

노인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했다. 이런 외딴 오두막집에서 방송 모니터링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인지 입이 바짝 말랐다.

대화를 중단하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데 벽에 걸린 기묘한 형태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분침과 초침 없이 시침만 있는 시계는 12시에서 멈춘 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구나.’

나는 고개를 흔들며 노인의 옆자리에 주저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말장난을 이용한 유머와 빠른 전개가 노인 취향과는 맞지 않을 것 같은데도 용케 이런 걸 불평 없이 보고 있다.

“재밌어요?”

“나한텐 선택권이 없어.”

채널이 하난가? 이렇게 시골이니 그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데 내 짐작과는 다르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채널이 저절로 잘도 돌아갔다. 심지어 케이블 방송까지 나왔다. 노인이고, 텔레비전이고 도무지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노인과 내가 아무리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창밖은 여전히 밤이었다. 도저히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무작정 집 안에 틀어 박혀 있는 게 능사는 아닐 터다. 지금은 사라졌다고 해도 언제 다시 괴물들이 나타날지 모르니 그들이 사라진 지금이 달아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창문에 얼굴을 대고 어두컴컴한 갈대숲을 바라보다가 마음을 굳히고 현관문 앞으로 갔다. 심호흡을 한 뒤 문고리를 잡고 돌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이거 안 열려요.”

“여긴 한 번 들어오면 끝이야. 못 나가.”

노인은 텔레비전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다시 한 번 문을 힘껏 당겨 보았다. 그러나 열리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마치 벽에 문고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노인은 문고리와 씨름하는 날 힐끔 쳐다보더니 능글맞게 웃었다.

“괜히 힘 빼지 말고 너도 이리 와서 테레비나 봐. 못 나간다니까. 그러네.”

“제발 좀 그만해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문을 통해 들어왔으니 나가는 길이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으로 밀고, 어깨로 부딪치고, 급기야 발로도 차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경첩 사이에 미세한 틈이 있으니 조금은 흔들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벽을 차는 것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노인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빌며 이번에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창문도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리인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검게 칠한 강철일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유리를 때린 내 손이 이렇게 아플 리 없으니까.

나는 손에 피가 맺힐 정도로 유리에 주먹질을 하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괴성을 질렀다.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이 이상한 방에 갇혀 버린 것이다.

“거 봐 내가 뭐랬어. 못 나간다니까.”

노인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키득거렸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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