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은 완전히 헛걸음했지 뭐예요.”
호연은 시트에 착석하자마자 인사 대신 섭섭함을 전했다. 특유의 그 아늑한 목소리는 불만 토로조차 다정한 말처럼 들리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급히 반차를 내야 했어요.”
이곤은 사과를 전하면서 호연의 혈압과 심박수를 확인했다. ‘요람’, 즉 전신을 감싸는 형태의 시트에서 자동으로 측정된 결과가 모니터에 전송된 참이었다. 혈압은 73에서 112. 심박수는 78. 오늘도 안정적이었다. 그의 나긋한 음색처럼.
호연은 얼굴 없이 활동하는 목소리 배우였다. 두툼하고 포근한 겨울 이불처럼, 듣기 좋을 만큼의 무게감이 전해지는 편안한 목소리. 그가 입을 열면 다들 한 번쯤은 반사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남다른 재능이 깃든 소중한 몸을 호연은 각별히 관리했다.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선별해 먹는 것은 물론, 인기 궤도에 오른 지 한참인데도 매일 발성과 연기 트레이닝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호연이 세상에서 가장 무심히 여기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은 좌우가 무척 달랐는데, 왼쪽은 20대 초반 청년의 모습이지만 오른쪽은 안면 전체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허물어진 상태였다. 우측 피부는 용암이 흐르듯 검붉게 일그러졌고, 귓불과 턱, 목은 경계랄 것 없이 급격한 내리막길처럼 납작했다. 눈꺼풀은 눈동자를 거의 덮은 채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시력은 없었다. 볼 중앙에는 화석처럼 움푹 팬 둥그스름한 자국이 있었다. 이곤이 들은 바로는 유년기에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진 흔적이었다.
호연이 요람에 누울 때면 얼굴 좌우의 대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으나, 이곤에게는 이제 익숙한 모습이었다. 고객의 겉모습이 어떠하든 꿈 이식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신경 쓸 바도 아니었다.
호연은 언제라도 복원 수술을 받을 수 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복원 수술을 권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호연이 주소지 근처에 있는 모프시스 센터 대신, 직원 여섯뿐인 교외의 작은 지점까지 일부러 찾아온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뇌파도 1차 시작합니다.”
이곤은 다음 검사로 넘어갔다. 요람 상단 반구형 홈 내부에 삽입된 전극이 호연의 뇌파를 읽기 시작했다. 이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상태에서 1차 측정, 수면에 들어가 진정된 상태에서 2차 측정한 뇌파도가 모두 정상 범위로 확인되어야 했다.
지금은 몸이 안정된 수치를 내보내고 있으나 헛걸음했다던 그날 측정했다면 결과값이 달랐을 거라고 이곤은 생각했다.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는 소식에 예약 시간에 맞춰 방문했을 호연은 무척 불쾌했을 테니까. 그러나 그날의 기록은 없었다. 호연이 준비된 꿈을 이식하기는커녕 재예약을 하지도 않고 그냥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점장은 다음 날 출근한 이곤에게 그가 우리 지점을 다시 찾지 않을 것 같다고 언짢게 말했다. 이곤이 자리 비운 탓을 하는 것이었다. 지점장이 그러는 것을 이곤도 이해했다. 호연이 여러모로 까다로운 고객이기는 해도 이 지점에는 하나뿐인 VIP였다.
그날 이후 이곤은 호연에게 몇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생각보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다른 지점에서 입맛에 맞는 새로운 설계자를 찾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완성된 꿈은 30일 이내 이식되지 않을 경우 보안 절차에 따라 폐기해야 했다. 29일째까지도 호연에게서는 응답이 없었고, 이곤은 그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써 설계한 꿈이 아깝기는 해도 심의위원회의 규정이 그랬다. 그런데 그날 저녁 호연에게 재예약 문의가 왔다. 내일 이식이 가능하겠느냐고. 이곤은 하루가 남았으니 물론 괜찮다고 했다. 바로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