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 683과 757을 중심으로

  • 장르: 호러, 기타 | 태그: #일상 #비밀집회
  • 분량: 127매
  • 소개: 683과 757은 일 년에 한 번 뿐인 집회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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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 683과 757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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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남편의 물음에 757은 스팸이라고 짤막하며 답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밥 한 숟갈을 뜨고 757은 스팸 문자를 지우는척하며 재빨리 내용을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6.23, 7,500, 홍대’

“차단해놓든지 하지, 귀찮게”

정우는 찌개를 떠먹으며 말했다. 권유하는 건지 명령을 하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인지도 모르는 별 의미가 없는 말. 그저 공간을 채우는 말이었다. 757은 그 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 문제에 있어선 앞으로도 늘 이렇게 행동 없이 말로만 때워 주기를 바랐다.

‘그냥 귀찮아서,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757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아주 사소한 걸 대하듯 말했다. 남편은 답이 없었고 마침 초등학생 아들이 아빠를 불렀다. 757은 한 번 더 문자의 내용을 읊조렸다.

‘‘6.23, 7,500, 홍대’

757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족함 없이 돈을 벌어오는 남편과 가끔은 화나게도 하지만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 이 작은 가족에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지만 그날이 757의 인생에 커다란 활력을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활력은 이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활력이었다. 1년에 한 번 그날의 활력으로 일 년을 사는 건지도 몰랐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일탈이라 부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757에겐 질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흐트러진 퍼즐을 다시 맞추는 일. 느슨해진 나사를 조이는 일, 말라가는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그날의 준비가 시작되려 한다.

“아니 커피 하나 제대로 못 타?”

김 부장은 오늘도 성실하게 683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명 진 과장!! 아니 믹스 커피 한 봉지 다 넣고 커피 몇 알 더 넣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683는 믹스 커피를 한 봉지 다 넣고 분명히 커피를 좀 더 넣었지만, 매일 그렇게 하고 있지만 작정하고 괴롭히려는 사람 앞에선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683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박을 주면 면박을 받아야지 하루가 잘 흘러가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재고 파악하라고 한거 했어?”

683은 대답 대신 깔끔하게 프린트한 문서를 내밀었다. 몇 번이나 확인해서 완벽하게 맞추어 놓은 재고였지만 김 부장은 반드시 뭔가를 트집 잡을 것이다. 683는 오늘은 또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트집을 잡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늘 그 기대를 저버리긴 했다.

“이번 신제품 재고가 이게 맞아? 확실한 거야? 딱 봐도 아닌 거 같은데?”

틀에 박힌 트집. 683은 신기하긴 했다. 어떻게 매일 거의 비슷한 말을 거의 같은 시간에 반복하는지.

‘자 이젠 수정 씨를 불러야지?’

683은 그다음 레퍼토리인 경리과의 이수정 사원을 자신의 앞으로 부를 차례라는 걸 알았다. 683에게 뭐라고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김 부장은 이수정 사원을 불렀다.

‘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함이라니…”

683은 자신이 배워야 할 덕목은 아닐까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정 씨, 재고가 이게 맞는 거 같아요? 이따가 천천히 체크 좀 해줄래요? 급한 건 아니에요. 이 과장이 좀 믿음이 안 가서.”

이수정 사원이 알겠다고 짤막하게 대답하자 김 부장은 흡족한 듯 수정 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자리를 떴다. 손에 들고 왔던 식어빠진 커피는 683의 자리에 놓은 채로.

이수정 사원은 자리로 683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683도 짧게 목례를 했다.

이수정 사원이 처음 입사를 했을 때는 683이 이미 파악한 재고 조사를 김 부장이 다시 시켰을 때 다시 조사를 했었다. 하지만 683은 늘 정확했으며 틀리는 일이 없었고 이수정 사원도 거의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언젠가부터 대답만 하고 다시 하지는 않았다.

683이 처음부터 무시를 당하며 회사를 다닌 것은 아니다. 별로 크진 않은 회사지만 건실한 회사였고 683도 입사하여 차근차근 승진하여 과장이 되었다. 사람이 오며 가며 생활하는 곳이라 갈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회사의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몇 년 전 회사의 대표가 자신의 아들을 회사에 취직 시키면서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대표의 아들이라 곧 대표가 될 거라는 건 모두가 알고는 있었지만 대표 아들은 되바라진 사람이었다. 입사 두 달 만에 있지도 않았던 팀장이라는 직책으로 쾌속 승진했다. 일도 서툴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일을 벌였고 누군가가 수습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걸 견디다 못한 직원들은 하나 둘 떠났고 그 자리를 대표의 지인이 채웠다. 김 부장도 그 지인 중 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좀 더 노골적으로 자르고 싶은 사람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월급을 많이 주어야 하거나 그저 대표 아들과 지인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직원이 생기면 이런저런 핑계로 업무에서 배제 시키거나 전혀 맞지 않고 불필요한 일들을 시켰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은 한두 달 안에 자진해서 퇴사했다.

683도 그렇게 찍힌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찍히게 되었는지는 683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683도 언젠간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순서가 된 것뿐이었다. 다만 683은 이 회사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받는 급여, 그리고 회사까지의 거리, 업무의 강도 등 완벽한 회사는 아니지만 683에게 적당한 회사였고 이런 회사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683이 그날의 준비와 그 일을 하기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적당한 회사에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처음엔 갑자기 683을 업무에서 배제 시켰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무 일 없이 책상 앞에 앉아서 인터넷만 하다가 퇴근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은 이 상황을 한 달도 못 버텼다. 예민한 사람은 업무에서 배제되자마자 퇴사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683은 이 회사가 자신에게 필요했고, 대표 아들과 그 지인에게 오기도 생겼다. 683은 그 시간을 나름 즐기면서 보냈다. 지루한 건 좀 힘들었지만, 마음의 압박 같은 건 명상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두어 달이 지나자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는데 쓸데없는 업무를 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683은 매일 아침 커피를 타야 했고 손님이 방문했을 때 커피를 타는 것도 683의 몫이었다. 퇴근쯤에는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고 틈틈이 창고 정리도 해야 했다. 하지만 683은 오히려 이게 나았다. 컴퓨터 앞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이 훨씬 시간이 잘 갔다. 그래서 나름 그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한 지가 벌써 8개월째. 대표의 아들은 반 포기 상태고 김 부장은 매일 짜증을 내고 윽박지르며 대놓고 무시하는 것으로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에 따라 683도 명상의 강도를 높였다. 마음의 보호막은 더 두꺼워져 쉽게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 열반에 드는 건 아닐까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683은 자리에 앉았다. 이제 점심 먹기까지는 별다른 터치가 없을 터였다. 683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중략-

홍대 입구 9번 출구 앞.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붐볐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또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

757은 다행히 좀 일찍 도착해 주변을 좀 서성였다. 저녁에 이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을 와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걸 757은 깨달았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문 닫을 때까지 수다를 떨고, 다음 날 새벽 첫차 시간까지 맥주를 퍼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757의 핸드폰에서 7시 50분을 가리키는 알람이 울리자 757은 핸드백에서 배지를 꺼내 왼쪽 가슴에 달았다. 배지는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로 짙은 붉은색 천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좀 연한 붂은색 실로 ‘757’이라 수놓아져 있었다.

683도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주위를 좀 서성이다 배가 고파 빵을 하나 사 먹은 참이었다.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던 683은 7시 50분 정시가 되자 주머니에서 붉은색 천으로 된 배지를 꺼내 왼쪽 가슴에 달았다. 연한 붉은색 실로 ‘683’이라고 수놓아져 있었다. 683은 시계를 보았다. 저녁 7시 51분. 683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풍경 속에서 왼쪽 가슴에 붉은색 배지를 단 여성이 683의 눈에 들어왔다. 683은 그 여성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757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 사이로 네이비 정장을 입은 남자가 757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757은 그 남자를 왼쪽 가슴을 보았다. 붉고 동그란 배지. 757이 찾던 사람, 757이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757도 남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질서인 동시에 혼돈, 683입니다.”

남자는 757에게 손을 내밀었다. 757도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혼돈인 동시에 질서, 757입니다.”

“이젠 어쩌죠? 집회 준비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라서…..”

683은 어색한 듯 말했다.

“저도 사실 처음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이 장소에 오면 뭔가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757이 대답했다. 둘은 막막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폐지를 모으는 노인이 수레를 끌고 둘에게 다가왔다. 왼쪽 가슴엔 역시 붉은색 배지를 달고 있었다. 둘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질서인 동시에 혼돈, 599입니다”

노인의 인사에 둘도 밝게 웃었다.

“혼돈인 동시에 질서”

노인도 웃었다. 그리고 곧장 박스 더미에서 누런 서류 봉투를 꺼내 둘에게 건넸다.

“둘이 만나면 이걸 전하라 했습니다. 지령입니다.”

757은 얼떨결에 봉투를 받았다. 노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의 오늘 임무는 여기까지”

노인은 왼쪽 가슴에서 배지를 떼 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둘에게 윙크를 한번 하고는 다시 박스 수레를 끌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봉투를 뜯었다.

봉투에는 깔끔하게 타이핑 된 붉은색 종이가 한 장 들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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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줏집 ‘바이젠 하우스’로 향할 것.

그곳에서 8시 40분에 도착하는 퀵을 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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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