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호러 | 태그: #김종일 #공포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셋방살이요정 #더바로워스 #앙괭이 #아지랑이 #소음 #공명
  • 평점×5 | 분량: 178매
  • 소개: 내집 장만의 꿈을 실현했다는 환희와 함께 이사온 아파트. 그러나 이사온 첫날부터 위층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부부는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소음이 들려올 때마다 집 안의 물건들이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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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잘되리라 믿었다.

사실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셋방살이 6년 만에 얻은 내 집이었다. 24평에 방이 자그마치 셋이었다. 작은 방 하나쯤은 내 서재로 활용할 수도 있을 터였다.

집을 보러 갔던 날, 널찍한 베란다로 햇살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실내를 둘러보며 나는 이미 가구 배치를 구상하고 있었다.

물론 헐값이라고는 해도 아파트 매입금은 우리에게 적잖이 큰돈이었다. 3년간 부어 왔던 적금을 깨고도 부족한 액수는 은행 대출과 빚으로 메웠다.

하지만 드디어 내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는 뿌듯함에 시댁과 친정, 심지어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내밀면서도 얼굴 화끈거리는 줄 몰랐다.

운이 좋았다. 이 아파트 905호가 시세보다 800만 원이나 싸게 급매물로 나왔다는 정보를 전해 준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상희였다.

그때 내 귀는 번쩍 띄었다. 집주인이 난치병에 걸린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집을 헐값으로 내놓았다고 했다.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밤, 남편과 축배를 들던 나는 끝내 눈물까지 찔끔댔다. 남편이 짓궂게 물었다.

“뭐야, 우는 거야, 지금?”

“좋아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허, 이거 큰일 났네. 울 일이 하나 더 있는데……. 나 말이야, 오늘부로 과장 승진했어. 인제 자기도 대리 마누라가 아니라 과장 사모라고. 박인하, 그동안 몸 고생 맘고생 많았지? 앞으론 애들 과외고 뭐고 때려치우고 소설만 열심히 써.”

당시 부업으로 고등학생 서넛을 데리고 논술 과외를 하고 있던 나를 배려해 어깨를 다독이는 남편이 그렇게 미덥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남편이 몸담고 있는 광고 회사에 인사 발령이 있을 거라는 얘기는 진작 들었지만, 남편 말고도 유력한 후보가 따로 있어 우리 둘 다 기대하지 않았던 터였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한 달 전에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 떨어졌다. 난데없이 걸려 온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아 보니 충무로의 중견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1년 전에 출간된 내 소설 『이창』을 흥미롭게 읽었다며 그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초판도 채 팔리지 않은 내 소설을 유명 감독이 영화화하겠다며 연락을 해 온 것만으로도 반색할 일인데, 그는 40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계약금까지 제시했다. 원작 계약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내 소설의 판권을 가진 출판사는 한 달 후까지 계약금 전액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감독을 만나 내가 구두로 계약을 허락한 지 불과 사흘 만의 일이었다. 경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작 계약을 한 다음 날, 아침을 먹던 나는 갈치튀김의 비린내에 유독 비위가 상하는 걸 느꼈다. 이상했다. 평소 생선 비린내에는 별로 민감하지 않았던 나였다.

“왜 그래?”

된장찌개를 들던 남편이 묻기에 나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비린내가 좀…… 심하지 않아?”

남편은 갈치튀김이 담긴 접시에 코를 박다시피 하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이상하네. 내가 맡아 봐선 잘 모르겠는데? 당신 혹시 입덧하는 거 아니야?”

말투는 농담조였지만 남편의 눈은 기대와 설렘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피임을 그만둔 지 3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입덧은 무슨…….”

코웃음 치고 넘어가려다 헤아려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리 예정일을 넘긴 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따 나 퇴근하고 같이 병원 한번 가 볼래?”

“에이, 그렇게 피임을 오래 했는데, 바로 임신이 됐겠어? 이따 약국서 테스트기나 사다 한번 묻혀 보지, 뭐.”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으면서도 가슴은 두근거렸다.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임신 테스트기를 사다 소변을 묻혀 보니 결과 창에 또렷한 두 줄이 그어졌다. 병원 진단 결과는 임신 4주째로 나왔다.

열 일 제쳐 두고 산부인과로 달려온 남편은 고대했던 선물을 받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화사한 프리지어 한 다발을 내민 그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나를 꼭 안아 주며 속삭였다.

“축하해. 박인하, 인제 자기도 아기 엄마네? 홑몸이 아니니까 앞으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해. 알았지? 그리고…… 고마워.”

구름을 밟고 떠다니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도리어 불안할 지경이었다.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진 탄탄대로 어딘가에 시커먼 함정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만 같은 불안, 자칫 발을 헛디디면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이었다. 하지만 이내 기우로 여기고 털어 버렸다. 호사다마는 그저 옛말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아파트 계약하면서 막혀 있던 우리 운이 탁 트였나 봐, 계약하자마자 대박이 줄줄이 터지는 걸 보면. 당신 생각은 어때?”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던 남편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물어 왔다. 나도 밝은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었다. 공교롭게도 아파트 명칭마저 ‘대복아파트’였다.

홍주시 교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둥지를 튼 이 한 동짜리 아파트의 정경은 요양원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산하고 고즈넉했다.

교외이기는 해도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을 터였고, 전에 살던 집에 비해 남편의 직장이 더 가까워 출퇴근도 한결 수월했다.

차에서 내리며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추슬렀다. 반지하 전셋방에서 벗어나 내 집으로 이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이사 트럭은 우리보다 먼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트럭에서 내린 짐을 사다리차로 올리고 있었다. 서둘러 차에서 내린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하나 마나한 잔소리를 공연히 늘어놓았다.

“죄송한데 식기나 액자 같은 건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가구는 절대 흠집 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직원들은 포장 이사 처음 해 보느냐고 되묻는 듯한 눈빛으로 흘끔대며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하기만 했다.

사실 난생처음 해 보는 포장 이사였다. 여태껏 이삿짐을 싸고 푸는 일은 늘 우리 부부의 몫이었고, 이삿짐을 운반하는 일은 저렴한 개인 용달의 몫이었다.

“3823 차주 되시는 분! 차 좀 빼 주세요! 3823 무쏘, 차 빼요!”

부슬비마저 추적추적 내리던 이사 날 아침, 추레한 세간을 잔뜩 실은 1.5톤 트럭이 비좁은 골목길 어귀에 아무렇게나 세워 둔 차 때문에 오도 가도 못했던 일, 그 차에 연락처조차 붙어 있지 않아 손나발을 하고 악을 쓰며 골목을 뛰어다녀야 했던 수년 전 남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나는 드넓은 아파트 주차장을 휘둘러보았다. 이제 퇴근길에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아 동네를 몇 바퀴씩 돌 일도 없을 테고, 남의 집 앞에 차를 세워 두었다가 집주인과 옥신각신할 일도 없을 터였다.

툭하면 글의 맥을 끊어 놓던 잡상인의 확성기 소리, 유별나게 앙앙거리던 주인집 딸아이의 울음소리,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더 거슬리던 주인 여자의 발작적인 신경질, 밤마다 고양이처럼 앵앵대던 옆방 아가씨의 교성, 툭하면 삿대질을 하며 다투던 옆집 노인네들의 악다구니……. 글쓰기를 끊임없이 방해하던 훼방꾼들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터였다.

남편이 트렁크에서 귀중품만 따로 담아온 여행용 가방을 꺼내는 동안 나는 눈앞에 서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대복아파트’라는 검은 글자가 울룩불룩한 아파트 겨드랑이에 커다랗게 박혀 있고, 회색 외벽 군데군데에 자잘한 금들이 담쟁이덩굴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는 외관이 자못 삭막했지만 그 정도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나는 재산 목록 1호인 노트북이 담긴 가방과 소중한 물품을 담은 종이 상자를 챙겨 들고 남편과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니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히려는 참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타고 있었다.

“잠깐만요!”

나는 기다려 달라는 의미로 다급하게 외치며 엘리베이터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러나 여자는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가까스로 그 앞에 당도한 내가 상승 버튼을 누르자 비로소 거의 다 닫혔던 문이 다시 스르륵 열렸다.

“죄송합니다.”

예의상 목례를 했지만 여자는 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9층 버튼을 누르며 보니 10층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이 아파트가 계단식이라는 걸 고려해 보면 여자는 내가 들어와 살게 된 905호의 바로 위층인 1005호나, 그와 마주 보는 1006호에 사는 셈이었다.

짐을 잔뜩 든 나와 남편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의 공간은 금세 가득 찼다. 여자 옆에 서 있던 꼬마가 아이답지 않은 걸걸한 목소리와 거친 말투로 서슴없이 불평을 쏟아냈다.

“아 씨, 좁아 뒈지겠네.”

곧바로 그 꼬마 바로 앞에 서 있던 아이가 녀석을 팔꿈치로 윽박지르며 눈을 흘겼다.

“밀지 마. 애자 새끼야.”

닮은 얼굴과 목소리에 두 살 정도 터울 져 보이는 게 형제인 모양이었다. 한데 녀석들의 거친 언행에도 여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저 입속으로 딱 하는 소리를 내었을 뿐이었다.

여자는 껌을 씹고 있었다. 딱 하는 소리는 껌에 공기를 밀어 넣어 어금니로 터뜨려 내는 소리였다. 딱. 껌을 터뜨리는 데에는 도가 텄는지 소리는 귀청이 따끔거릴 정도로 컸다.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나란히 서서 듣기에는 꽤 거슬리는 소리였다.

금세 반감이 고개를 들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몇 초 동안만 참으면 될 일이다 싶어 꾹 참았다. 엘리베이터는 더디게도 올라갔다. 딱. 엘리베이터가 5층을 지날 즈음 불현듯 여자가 사무적인 투로 물어 왔다.

“이사 오시는 거예요?”

그러고도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한 본새가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딱. 눈매가 매섭고 콧날이 날렵하게 오뚝한 데다 앙다문 입술마저 얇은 게 범접하기 쉽지 않은 인상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밀랍 인형처럼 평생 미소라고는 지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세련된 웨이브 파마머리도 만져 보면 단단한 모조품일 것만 같았다.

“예에, 10층…… 사시나 봐요?”

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처지라면 곧잘 마주칠 거란 생각에 살갑게 되물었지만, 여자는 내 반문 따위는 못 들었다는 듯 묵묵부답으로 껌을 터뜨릴 뿐이었다. 딱.

마침내 9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서는 나와 남편의 등 뒤에 대고 여자가 나지막이 씹어뱉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끄럽구나, 아침부터.”

우리 부부의 이사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텃세였다. 딱. 상한 기분에 돌아보니 이미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고 난 후였다.

“거 여편네나 애새끼들이나 참, 초장부터 정나미 뚝뚝 떨어지는 인간들일세.”

남편도 엘리베이터 문을 쏘아보며 투덜댔다. 언짢은 기분은 이삿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사그라졌다. 위층에 대한 불쾌감이 되살아난 것은 이사를 도와준 친구 상희와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던 순간이었다.

“내 집도 장만하고 했으니까 인제 아기만 가지면 되겠네? 여자 나이 서른둘이면 노산이잖아. 그죠, 동윤 씨?”

상희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다. 상희는 내 임신 소식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더니 대답했다.

“안 그래도 부단히 노력한 끝에 결실을 맺었어요.”

평소 내 친구들과 동석한 자리에서는 농담 한마디 없었던 남편이 저러는 걸 보니 그도 꽤 들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 그래요? 계집애,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축하해, 박인하. 축하해요, 동윤 씨. 그랬구나. 잘 안 된다더니, 정말 부단히 노력하셨나 봐요. 어쩐지 동윤 씨 얼굴이 초췌해 보이더라니…….”

장난기 어린 상희의 너스레에 식탁 위로 한바탕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왁자한 웃음이 잦아든 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머리 위의 천장이 쿵쿵 울려 댄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우리는 일제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쿵쿵쿵. 위층에서 둔중한 발걸음이 바닥을 굴러서 나는 소리였다. 주방 천장에 매달린 전등갓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였다.

“뭐야, 이사는 우리가 했는데 왜 쟤들이 난리야?”

남편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볼멘소리를 흘렸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입덧 때문이 아니었다. 훌훌 털어 버렸다고 믿었던 불안이 마음의 끝자락에서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짐짓 심드렁하게 응수했다.

“우리 이사하는 거 보고 자극받아서 가구 배치라도 바꾸나 보지, 뭐.”

남편은 안주로 내놓은 골뱅이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며 상희에게 넌지시 물었다.

“상희 씨, 이 아파트가 원래 층간 소음이 심한 편인가요?”

“글쎄요,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 편이긴 한데, 저희는 위층에 점잖은 노부부가 살고 있어서 그런지 여태껏 살면서 그런 것 별로 못 느꼈거든요. 위층 사람들이 조심성이 별로 없나 보네.”

상희의 말끝에 우리 부부는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여자와 두 꼬마를 떠올리고 아하 하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여자가 바로 1005호에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막돼먹은 여자와 버릇없던 두 녀석이라면 충분히 저러고도 남았다.

“에이, 저러다 말겠죠, 뭐. 집 안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남편이 호기롭게 단언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남편의 말대로 소음은 천장을 잠시 울려 대다 꼬리를 감추었다. 하지만 소음이 잠잠해진 후에도 가슴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예의 불안은 못내 가시지 않았다.

*

“박인하, 얼른 일어나 봐.”

다음 날 깜박 늦잠을 잔 나를 남편이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 보니 어느새 남편이 김치찌개와 고등어자반, 갖가지 향긋한 봄나물로 아침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다른 날은 또 몰라도 내 집에 이사 오고 첫 아침이라…….”

앞치마까지 매고 식탁 위에 수저를 놓는 남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멋있어 보였다. 다소 신경질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의외의 자상함으로 여자를 감동시키는 남자였다.

결혼한 지 6년이 넘도록 우리 부부가 신혼 분위기를 유지하는 비결 중에는 남편의 그런 배려심도 있었다. 비스듬히 칼집을 내어 노릇노릇하게 구운 자반고등어가 접시 위에 소담스럽게 놓여 있었다.

“갈치는 비린내가 싫다며. 고등어는 괜찮지?”

아침을 먹고 난 후 남편은 원두커피를 준비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바라본 베란다 너머의 아침 풍경은 장관이었다. 교외에 지어진 데다 꼭대기와 인접한 층이라 아파트 앞으로 넓게 트인 논밭이 훤히 보였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 아파트에 입주한 데에는 이렇게 멋진 주변 조망도 한몫했다. 짙게 깔린 안개가 만조의 물결처럼 논밭을 온통 뒤덮은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남편이 등 뒤로 나를 살포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박 작가님, 내 집에서 맞는 첫날 아침 소감이 어떠신가요?”

나는 남편의 입술이 귓불을 스치는 은근한 자극을 즐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해요, 누가 이 행복을 뺏어 갈까 봐 불안할 정도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불안이라는 단어에 나는 멈칫했다. 그 순간 머리 위의 천장이 쿵 하고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위층 베란다에서 우리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다가 산통을 깨려고 훼방을 놓는 것 같았다.

쿵쿵쿵. 뒤이어 천장을 울려 대는 기세가 어찌나 우악살스러운지 금방이라도 발바닥이 천장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아니, 저 인간들은 발목에 쇳덩이를 달고 다니나…….”

남편이 베란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불평했다.

“인터폰으로 항의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나도 팔짱을 끼고 모난 말투로 맞장구쳤다. 내게서 빈 커피 잔을 받아 든 남편이 주방으로 걸어가며 대꾸했다.

“좀 더 지켜보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내가 알아듣게 얘기할게. 묵직한 화분 같은 걸 나르느라 저러는 걸 수도 있잖아.”

남편이 출근한 후, 전화와 인터넷을 개통한 나는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고 마트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산부인과에서 정기검진까지 받느라 부산한 하루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위층의 소음에 대해서는 깜박 잊어버렸다.

“어땠어, 오늘은?”

퇴근한 남편이 욕실에서 씻고 나오며 천장을 턱짓으로 가리켰을 때에야 비로소 위층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침 이후로는 딱히 위층의 소음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글쎄, 바빠서 별로 신경은 못 썼는데 그다지 시끄러운 줄은 모르겠던데?”

“거봐, 내가 그랬잖아. 자기들도 사람인데 허구한 날 난리만 치겠어?”

남편은 적잖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우리 아기 잘 크고 있나?”

그날 밤, 잠자리에 든 남편이 장난스럽게 슬그머니 티셔츠를 들추고 내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한 순간에 소음은 다시 천장을 두들기며 제 존재를 상기시켰다. 쿵. 남편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신경 쓰지 마.”

나 역시 신경 쓰였지만, 이렇게 소중한 순간에 저런 소음 따위는 무시하고 싶었다. 나는 일부러 남편의 귀에 대고 조곤조곤 속삭였다.

“오늘 초음파로 아기집 보고 왔다? 우리 아기도 봤어.”

임신 8주째의 아기는 아직 형태조차 불분명한 것이 꼭 올챙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몸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이였다. 의사는 아기의 손발과 뼈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남편에게 진단 결과를 전하는 동안에도 거칠고 둔중한 소음이 찬물을 끼얹었다. 위층 인간들이 이 아파트 안 어딘가에 감시 카메라라도 설치해 두고 우리를 낱낱이 감시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훼방을 놓는 건 아닐까.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망상마저 고개를 들었다. 남편이 끝내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시간이 몇 신데…….”

머리맡에 놓인 탁상시계는 밤 11시 13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저 인간들이 미쳤나……. 달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남편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신경이 날카롭기는 해도 좀처럼 화를 내지는 않는 그였지만, 한번 성이 나면 불같이 날뛰는 일면도 있었다.

결혼 전 내가 일찍 부모를 여의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결사반대하며 나를 문전박대하던 부모 앞에서 새끼손가락 끝마디를 자르기도 했던 그였다.

“내 뱃속에서 어찌 저리 독한 놈이 나왔남.”

사건 직후 혼절했던 시어머니는 찬물로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그렇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교한 봉합 수술 끝에 지금 그의 손끝에는 희미한 흔적만이 남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시부모의 허락을 받아냈지만 요즘도 남편은 비만 오면 삭신 대신 손가락 마디가 쑤신다며 농담하곤 했다.

술집에서 치근덕치근덕 시비를 걸어 오던 양아치들 앞에서 소주병을 집어 자기 이마에 내리친 적도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던 첫날밤의 일이었다. 양아치들은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꽁무니를 뺐고, 우리는 신혼 첫날밤을 병원 응급실에서 보내야 했다. 이마를 다섯 바늘이나 꿰맨 남편은 병원 건물을 나오며 말했다.

“텃세니 영역이니 하는 얘기들이 꼭 동물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냐. 어차피 인간 세상도 다 동물의 왕국이야. 내 먹이, 내 영역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 줄 알아? 그걸 넘보는 것들한테 본때를 보여 주는 거야.”

어찌 보면 극단적이고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그의 거침없는 강단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험한 세상살이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편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남자와 평생을 살 수는 없다며 짐부터 꾸렸다.

옥신각신 끝에 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남편에게서 앞으로는 절대 폭력으로 세상과 맞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는 한 번도 약속을 깬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남편은 거실로 나가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경비실이죠? 여기 905혼데요, 죄송하지만 1005호 좀 연결해 주시겠습니까? 예, 늦은 시간인 건 저도 잘 아는데, 이 늦은 시간에 위층 소음이 하도 심해서 그러거든요.”

나는 침실 문가에 서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남편의 통화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위층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예, 안녕하세요. 905호인데요, 밤늦게 인터폰으로 다짜고짜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 천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요. 좀만 주의해 주실 순 없을까요?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남편은 개운치 않은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뭐래?”

“노력해 보겠대.”

“그 여자 맞아? 그때 그 엘리베이터…….”

“어, 근데 저 여자, 말투로 봐선 전혀 노력해 볼 기미가 안 보여.”

노력해 보겠다고? 죄송하다 사과하고 주의하는 게 마땅한 예의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이미 예의와는 담 쌓은 위인일 거라 짐작했지만 막상 부딪치고 보니 예상보다 더한 위인이었다.

“자자, 얼마나 노력하는지 앞으로 두고 보자고.”

남편이 침실로 들어가며 나를 잡아끌었다. 과연 남편의 항의는 먹혀들었다. 그 직후부터 위층은 슬그머니 잠잠해졌고 그날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위층이 잠잠해지고도 신경이 자꾸만 천장으로 쏠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불행은 사소한 분실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후,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분명 잠자리에 들며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려 두었던 콘택트렌즈 보관함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전날 렌즈를 떼어 내어 보관함 속의 세척액에 담가 놨던 기억이 선명했기에 더 의아했다.

“잘 찾아봐. 렌즈 케이스에 발이 달렸겠어?”

보관함을 찾아 서랍장 밑을 살피는 내 등 뒤에서 남편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나 서랍장 뒤나 밑은 물론, 침대 밑까지 구석구석 뒤져 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아예 서랍장을 들어 옆으로 빼 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임신성 건망증도 있는 거 아니야?”

남편은 내 기억력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거실과 욕실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아도 허사였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밤새 누가 그것만 훔쳐간 것도 아닐 테고…….”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이 출근한 후 베란다로 나가 화분에 물을 주려던 나는 우뚝 멈춰 섰다. 이사 선물로 상희가 준 행운목 화분이 온데간데없었다.

분명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베란다로 드는 햇볕을 받으며 눈에 띄게 쑥쑥 자라나고 있던 놈이었다. 그걸 보며 머지않아 분갈이를 해 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유독 그 화분만 자취를 감추었다는 게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운목? 그걸 내가 왜 치워? 손댄 적도 없는데…….”

남편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자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중에 병원 가면 잊지 말고 꼭 물어 봐. 임신성 건망증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남편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별일 아니라고 넘어가려는데 가슴은 예사롭지 않게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어쩌면 남편의 의심대로 나도 모르게 건망증이 생겨 엉뚱한 데로 물건들을 치워 놓고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도 그런 기억은 희미하게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아무리 집 안을 헤집어도 사라진 렌즈 보관함과 행운목 화분은 나오지 않았다.

오전 내내 집 안을 뒤지던 나는 끝내 포기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렌즈 대신 쓴 안경이 콧대를 묵직하게 짓눌러 오는 느낌이 불쾌하여 나는 아예 안경을 벗어 던지고 소파 위에 길게 누웠다.

쿵쿵. 위층 인간들이 또 천장을 울려대고 있었다. 쿵쿵쿵. 그 소음은 마치 위층의 인간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불길하게 키들대는 소리 같았다. 봤지? 이제부터 시작이야. 기대하라고. 나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쿠션을 발작적으로 천장에 내던졌다.

천장에 부딪쳤던 쿠션이 소파 옆의 유리 탁자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이 거실 바닥에 떨어져 박살났다. 나는 다리를 구부리고 몸을 일으켜 팔로 정강이를 끌어안았다.

박살난 꽃병보다, 위층의 소음보다, 사라진 물건들보다 더 찝찝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일어날 불행의 불길한 전조라 믿으려 드는 내 불안감이었다. 그 불안감대로 분실은 끊이지 않았다.

“어라? 거 참 희한하네. 분명히 여기다 올려놨는데……. 자기야, 내 우표첩 못 봤어?”

이틀 후, 퇴근한 남편이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인 장식장 위를 구석구석 살피며 물었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는 우표 수집이었고, 우표첩에 보관되어 있는 우표는 그가 반평생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었다.

그것을 펼쳐 보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부터 독도 풍경 보통 우표 세트 같은 희귀 우표에 이르기까지 수천 장이 넘는 우표들이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남편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온 희귀 우표를 구입했고, 그 우표들은 남편의 손에 들어오는 족족 우표첩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심란하거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마다 으레 장식장 위에 올려 두었던 우표첩을 펼쳐 들고 한장 한장 넘겨 가며 머리를 식히는 게 남편만의 심신 안정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우표첩이 사라진 것이었다.

“잘 찾아봐. 앨범에 발이 달렸겠어?”

찌개를 끓이고 있던 나는 그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따와 그의 기분을 풀어 보려 했다. 그러나 남편은 웃지 않았다.

“어제도 보고 분명 여기 놔뒀어. 알잖아, 나 항상 여기다 그거 보관하는 거.”

그는 늘 우표첩이 놓여 있던 장식장 위의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쳤다. 동작에서 짜증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건 나도 아는데, 어디 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정말 몰라?”

반문하는 남편의 눈빛에 어쩐지 의심이 가득했다. 불쾌한 기분이 들어 나는 찌개에 넣을 파를 썰다 말고 그와 눈싸움을 벌였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정말 몰라서 모른단 소릴 하는 거냐고.”

“그럼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아니, 자기 되게 웃긴다? 지금 내가 어따 그걸 치워 놓고 모른 체하고 있다 이거야?”

“아냐, 됐어. 요새 집 안 물건들에 발이 달려서 그것들이 어디로 내빼는 거든가, 쥐새끼 한 마리가 들락거리면서 유독 그것들만 물어가는 거든가, 둘 중 하나겠지, 뭐.”

그는 빈정거리며 장식장 뒷모서리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이리저리 비틀어 앞으로 빼냈다. 거친 동작이었다. 그 바람에 장판이 장식장 발끝에 주름지며 밀리는가 싶더니, 결국 브이 자로 뜯어지고 말았다.

“조심해. 장판 뜯어졌잖아. 새건데…….”

내가 달려가 뜯어진 장판을 어루만지자, 남편이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그깟 좆도 아닌 우표첩 찾으면서 왜 소중한 장판은 뜯고 난리냐, 그거니?”

나는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 속에서 찌개가 맹렬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자기 진짜 오늘 왜 그래?”

“중학교 때부터 모은 게 감쪽같이 없어졌는데 너라면 기분 좋겠어? 이럴 때 눈에 불을 켜고 같이 찾아봐 주진 못할망정, 뭐? 장판 뜯어졌잖아, 새건데?”

연방 내게 화살을 돌리는 남편은 분명 여느 때보다 더 신경질적이었다. 차라리 내가 숙이고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같이 찾아보자. 이제 됐지?”

촤악. 찌개가 냄비 밖으로 끓어 넘치며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꺼뜨렸다. 다급히 달려가 가스레인지를 껐다가 다시 켜 보았다.

틱틱틱. 불꽃이 일어도 불은 다시 붙지 않았다. 찌개 국물이 가스레인지 점화구 속으로 스며든 모양이었다. 찌개 냄비를 옆 화구로 옮기는데 천장이 또 쿵쿵쿵 울려 댔다.

“어유, 저 쥐새끼 같은 것들. 다리몽둥이를 확 분질러 버릴라.”

남편이 천장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금방이라도 뭔가 끔찍한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한 공기가 집 안 전체를 휘돌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

“이 집에 바로워스라도 사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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