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커튼이 창문을 가려 밤인지 낮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멎어 버린 시계 밑으로 몇 가닥의 먼지 묻은 거미줄이 노인의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흔들 나부낀다.
멈춰 버린 시계와 길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버린 내 삶이 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작은 방에 도사리고 앉아 죄책감에 쪼그라들어 간다.
끼이익.
밖에서 마루를 걸어가는 누나의 힘없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낡고 들뜬 마루판은 누나의 얼마 되지 않는 체중에도 쉽게 비명을 토해 낸다.
정신을 놓은 엄마가 발자국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화장실 변기통에 머리를 찧으며 죽은 형을 부른다.
“민재야……. 민재야……. 내 새끼 민재야……. 어디 있니? 제발 이 에미한테 돌아오렴.”
아마도 그 옆방에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산송장처럼 누워 피눈물을 삼키고 있겠지.
형이 죽은 건 3년 전이다. 엄마가 미치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내가 이 방에 틀어박힌 것도 모두 3년 전이다.
형이 죽은 그날은 유독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새파랗게 날이 선 매미의 울음소리가 전날 술을 잔뜩 마셔 숙취에 시달리는 내 머릿속을 후벼 팠다.
여름휴가를 낸 누나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난 후 혼자서 출근 준비를 하던 형은 그런 나를 보고 평소처럼 잔소리를 시작했다.
“넌 이 자식아! 젊은 놈이 언제까지 그렇게 빈둥거리며 술만 퍼마시고 다닐래? 늙은 부모님이 불쌍하지도 않냐?”
유달리 시끄러운 매미 소리 탓이었을까. 아니면 끔찍한 숙취 탓이었을까. 나는 평소와 달리 형에게 대들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형의 목소리가 너무 짜증스럽게 들려 왔다.
형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나를 경멸하는 뜻을 품고 있는 듯 싶었다. 단순한 형제 싸움이었다. 하지만 가볍게 서로 당기고 밀치고 하다가 넘어진 형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생전 하지 않던 장난을 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반쯤 열린 눈꺼풀 사이로 눈동자가 바짝 오그라든 채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서야 나는 형이 죽었다는 걸 알았다.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부모님과 누나를 기다린 건 폭염 탓에 부패하기 시작한 형의 사체와 토할 것 같은 악취였다.
그날 이후 내게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들이밀었다. 와장창 깨져 버린 행복의 파편 속에 엄마가 미쳐 갔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누나는 웃음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어둡고 습한 이 방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고개 숙인 내 모습 위로 꽂혀오던 아버지의 눈빛을 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눈빛 앞에서 차마 용서를 빌 수도 없었다.
내 작은 방은 그런 칼날 같은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다. 겨우 침대 하나 들어가는 방에는 마찬가지로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화장실 하나가 붙어 있다.
3년간 내가 한 운동이라고는 이 화장실을 들락거린 게 다였다. 하루하루 말라가는 몸과 오그라드는 뼈가 내 키를 5센티미터는 줄여 놓은 듯하다. 작은 세면대에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셔 겨우 목욕을 하고 누나가 가끔 넣어 주는 생필품으로 3년을 버텨 왔다.
“민재야……. 민재야……. 어디 있니? 제발 민재야.”
엄마가 다시 형을 부른다.
“엄마, 이러지 마요. 나 좀 봐 봐. 이런다고 죽어 버린 민재가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엄마 제발 정신 좀 차려.”
엄마를 달래는 누나의 낮은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집안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조용해져 간다. 형을 찾는 엄마의 애절한 부름이 잦아지자 누나의 목소리도 잦아든다.
대신 누나의 힘없는 발자국 소리만 하루 종일 방 밖에서 왔다 갔다 한다. 누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일까.
나는 그런 누나의 발소리를 들으며 방문 아래 작은 구멍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언제부터인가 누나가 더 이상 그곳으로 밥을 넣어주지 않는다.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건, 어쩌면 가족들이 내 존재를 완전히 잊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난 그들의 시선이 두려워 차마 방문조차 열어보지 못한다. 3년 전 내가 방에 틀어박힐 때도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는 듯했다.
형은 아직도 내 방 한 구석에서 썩어 가고 있다. 분명히 3년 전 형의 죽은 몸뚱이는 뜨거운 화장터 불길 속에서 한줌의 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여전히 내 방에 남아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진 그 눈동자로 집요하게 날 쳐다보며 웃고 있다.
나를 봐라. 내가 썩어 가고 있다. 이것 봐라. 이렇게 조금만 건드려도 내 썩은 살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뭉개진다. 네가 원한 게 이런 거였니. 이리 와서 내 옆에 누워 봐라.
형은 그렇게 썩은 입과 눈으로 쉼 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떤 때는 지독한 독설로. 또 어떤 때는 상냥한 유혹으로 나에게 죽음을 공유하자고 속삭인다.
*
오늘은 정말로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다. 밥을 주지 않는 것은 밖으로 나오라는 뜻일까. 아니면 죽으라는 뜻일까. 벌써 며칠이나 굶었을까.
엄마가 다시 형을 부르기 시작한다. 엄마는 죽은 형을 무덤에서 불러내기로 작정이라도 한듯하다.
“민재야……. 민재야……. 내 새끼 민재야……. 어디냐……. 어디 있는 거냐……. 민재야……. 민재야.”
난 방문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한줌의 기운도 들어 있지 않은 듯한 엄마의 음성.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내 이름은 불러 주지 않은 엄마.
그때였다.
숨소리.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틈으로 얼굴을 바짝 갖다 댄다. 그러자 문틈사이로 숨을 쉬는 듯한 미세한 바람이 규칙적으로 흘러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