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재판장님

  • 장르: SF | 태그: #SF
  • 평점×30 | 분량: 31매
  • 소개: 판결을 선고 받은 ‘나’는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더보기

친애하는 재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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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재판장님.

먼저 발언 기회를 준 재판장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부탁을 들어주신 것에도 감사합니다. 이왕 감사 인사를 시작했으니 다른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릴 시간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아, 정말 가슴 따뜻하신 분이군요. 재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제 얼굴을 99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지켜봐 준 배심원 11분을 어떻게 빼먹을 수 있겠습니까. 한 분 한 분 눈 맞추고 손을 잡고 제 진심을 전하고 싶지만 그러면 또 다른 죄를 쌓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멀리서 원고석에서 입으로만 감사 인사를 드리는 무례를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검사님. 우리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적이지만 99일이나 동고동락했으니 우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간에선 난제라고 포기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끝까지 포기 않고 기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검사님이었다면 피해자를 부검하자고 주장했을 겁니다. 그러는 편이 재판을 오래 끌지 않고 끝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검사님은 피해자 부검은 마지막.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때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그 열정. 그 투지!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만약 검사님이 부검하자고 주장했으면 제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겠지만 제가 중간에 개입하는 건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까요.

마지막으로 변호사님. 세상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을 들어가면서 저를 무죄로 만들어주려는 노력. 속으로 천인공노할 새끼라 욕할지언정 겉으로는 티 내지 않은 점. 프로다웠습니다. 저 같은 쓰레기를 변호한 사실이 변호사님에게 한 줄 커리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없다고요? 재판장님, 이왕 시간 주신 거 조금 더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제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건 오늘이 마지막 아닙니까?

재판장님, 제게 구형된 판결을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사님, 진정하세요. 제가 무례한 건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며 저를 처음부터 무례하다 말씀하시고 이제 와서 무례하다 지적하는 건 새삼스럽습니다. 그럼 검사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역시 마음 따뜻한 재판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네, 네, 네. 제 엔진를 떼내 피해자에게 이식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소울을 되찾게, 정식 명칭이 아니죠. 메모리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정 전원에 연결된 채 무기한 노동으로 보상하라는 명령이었죠.

이론(異論)은 전혀 없습니다. 재판 결과대로 해내야죠. 항소는 안 할 겁니다.

변호사님, 놀라는 척하지 마세요. 항소하자고 우겼어도 하지 말자고 설득할 생각이었잖아요. 괜찮습니다. 저는 항소할 마음은 전혀 없어요.

방청객 여러분!

제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 전혀 해가 되지 않습니다. 걱정이 되신다면…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