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에서 주는 박하차는 위험하다
이 글은 공 서진이라는 대한민국 유일의 경찰청 소속 탐정과 함께 해결한 살인 사건 보고서인데, 사건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사건 보고서에는 공 서진과 내 활약에 대한 내용이 아무것도 첨부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의를 여러 번 제기했음에도 일언반구 반응이 없는 경찰청 홍보 및 기록 담당관에게 보내는 분노 섞인 메시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이라도 도움을 청한다면 대식 탐정 공 서진과 내가 심혈을 기울여 해결한 사건의 전모와 수사의 진행 방향 및 수사 기법의 모든 것을 언제든 제공할 의향이 있음을 밝힌다.
일단 내 소개를 하자면 이름은 양 희주, K 일보의 기자로 사회부에서 강력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말이 좋아 강력 사건 담당이지, 대부분의 진짜 강력 사건은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다 채가고 내게는 진짜로 강력(하게 짜증나는) 사건들만 떨어지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다.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두 개나 해결했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 혼자 해결했다고 공을 낼름 차지하려는 건 아니다. ‘식탐에 미친 곰탱이’ 공 서진의 도움이 컸다는 걸 인정해야겠지.
공 서진은 현재 서울과 경기도 경찰청의 특별 자문이라는 묘한 직함을 맡고 있는 대한 민국 최초의 허가받은 사립 탐정이다. 그렇다고 아무 사건이나 맡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경찰청에서 의뢰한 사건에만 참여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그래도 공식 수사관이 아닌 일반인이 강력 사건을 수사하고 경찰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영국에 런던 경시청의 골치아픈 사건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던 베이커 가의 명탐정이 있었다면 한국엔 ‘경찰청 특별 자문 공 서진’이 있는 것이다!
190cm의 키에 110kg는 되어 보이는 이 거구의 탐정은 대사 속도가 미국 땃쥐 수준이라(미국 땃쥐는 빠른 대사 속도 탓에 3시간을 굶으면 사망한다고 한다) 쉬지 않고 입에 뭘 넣어야 하는 괴이한 식습관의 소유자이며, ‘동선파악을 통한 행동패턴 예측’ 뭐시기라 하는 독특한 수사 기법을 사용하는 정말 이상한 녀석이다.
저 인간의 식습관 때문에 같이 다니는 시간 동안 내 컨디션은 최악일 수 밖에 없는 게, 나는 덩치도 작고(사이즈는 절대로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특히나 입이 매우 짧은 편인데 공 서진과 함께 다니면 수사가 아니라 맛집 탐방을 다니는 수준으로 쉬지 않고 뭘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탐방 후 남는 건 위궤양과 만성 소화불량,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카드 명세서를 지켜보며 울컥해서 생겨버린 역류성 식도염 뿐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커피 대신 차를 즐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차는 커피보다 덜 자극적이고(성분을 분석해보지는 않았다. 그냥 느낌이다)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플라시보 효과라 해도 반박하진 않겠다.
여러 종류의 차를 마셔본 결과, 나에게는 한국의 전통차가 맞는 것 같았다. 녹차나 홍차는 뜨거울 땐 향이 좋지만 식으면 떫은 맛이 난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섞는데 섞을 수록 본연의 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반면 한국의 전통 차는 향이 강하진 않지만, 달달하고 여러 가지 좋은 향이 난다.
입이 짧고 음식을 빨리 먹지 못 하는 체질을 가진 내게 식을 수록 혀에 감기는 풍미를 가진 호박 차는 이제껏 못 만났던 전생의 인연을 만난 것과 같은 반가움과 만족을 안겨 주었다.
더 좋은 차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경남 하동에 질 좋은 차를 만들기로 유명한 농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은 나는 안 내도 될 휴가를 내고 매일 산책한 강아지보다 장수 중인 애마의 시동을 걸었다. 기자라고 하면 불편해 할까봐 출퇴근이 자유로운 IT 업종 종사자라고 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미 씌어 있던 각본대로 진행되는 드라마처럼 그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