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무 살은 괴로운 나이였다.
수없이 들어왔던, 소위 성인이 된 후의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어쩌면 속아 넘어가는 체 하면서도 조금은 기대를 걸었던 탓일지 모른다. 낯선 환경에 또다시 적응하고, 낯선 사람들 틈에서 과제에 시달리고, 낯선 캠퍼스를 어정거리며 시간을 죽이다보면 하루가 사라졌다. 술자리와 새로운 만남을 떠돌며 파도처럼 밀려왔다 몰려가는 사람들의 발에 채여 둥둥 떠다니는 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짓눌려 있었다.
이건 그 시기의 이야기이다.
* * *
“어디?”
“자연관 말이야. 지하 1층 화장실에서 뭐가 나온대.”
“자연관에서 나온다니 웃기네. 왜 하필 자연관이야?”
“아니, 귀신이 과학의 힘으로 성불되는 것도 아니고. 문과 이과를 가리진 않을 거 아냐!”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A가 툴툴거렸다.
우리는 동아리방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둘 뿐이라 눈치 줄 사람이 없어서 배달받은 돈까스를 느긋이 찍어 먹는데, 불쑥 튀어나온 화제가 저것이다. 이상할 건 없었다. 애당초 우리가 소속된 동아리는 미스터리와 호러를 애호하는 집단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추리소설을 수집’하는 곳이었지만 점점 범위를 넓혀 지금에 이른 듯했다.
“선배는 뭐라는데?”
“몰라. 아직 안 만났는걸.”
동아리의 존재를 알게 된 건 A와의 우연한 재회 덕분이었다. 개강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맛없는 학식에 항복한 내가 빌빌거리며 아무 식당에 들어갔을 때, 안에 A가 있었다. 3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우리는 어제 헤어진 것처럼 수다를 떨었다. 연락이 없던 것에 대한 진심이 반쯤 담긴 사과부터, 대학 생활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아리 역시 화두에 올랐는데 A가 봐둔 곳이 있다, 하고 운을 떼었다.
고등학교 때 알았던 사람이 있다. 친하진 않고 동아리로 만난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선후배 관계라 원래라면 별 접점도 없었을 테지만, 어쩌다 서로 무서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걸 알아서 가끔 대화한 정도.
관심을 넘어서 유별났지. A가 덧붙였다.
여하튼 그 사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지 못했는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 같은 과 선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짧게 안부를 묻고, 예전처럼 괴담을 좋아하느냐, 이런 동아리가 있는데…등등.
딱히 회원 모집에 열의가 있던 게 아니라 형식에 가까운 권유였으나 A는 단번에 승낙했다. 이왕이면 아는 사람이 있는 편이 낫다.
막상 어울려 보니 나쁘지 않았어. 재밌는 사람도 많고 평범한 친구들 간에 못할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A는 나를 꼬드겼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 살갑게 구는 것이 반가워서 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때를 돌이키며 종종 포만감을 느꼈다. 아무도 채워주지 못하던 만족감이다.
“무슨 이야기?”
“꺅!”
나는 움찔했다. 입구를 등지고 있는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나는 빠끔히 열린 문으로 선배가 들어오는 걸 보았기에 호랑이가 납셨네,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쪽에 집중한 탓에 오히려 A의 비명에 놀라 버렸다.
“자연관 귀신 이야기예요.” 민망함을 지우려 말을 꺼냈다.
“자연관?”
“아, 정말. 소리 좀 내고 다니라니까요. …자연관 지하 1층에, 쓸데없이 넓은 화장실 말이에요. 에타에 익명 글이 올라왔었어요. 누가 거길 사용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더래요. 어째 주변이 뿌옇게 흐려진 것 같고. 기분이 나빠서 얼른 손을 씻고 돌아섰더니.”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 밧줄도 없이 허공에 매달려서 목이 기이하게 꺾인 사람과.
“손 씻을 때만 해도 거울엔 자기밖에 안 비쳤대.”
“그게 언젠데?”
“4월 말. 귀신 얘기 자체는 그때 처음 나왔는데 그 사람 말고 아무도 못 봐서 묻혔다나 봐. 그런데 그저께 두 번째 목격자가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굴렀어. 덕분에 소문이 쫙 퍼졌지.”
다행히 다친 사람은 가볍게 발목을 접질린 정도란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울면서 계단을 기어 올라오니 소란이 인 모양이라고.
“그래서, 아는 거 있어요?”
A가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선배에게 물었다. 괴담에 ‘유별난’ 관심이 있는 선배라면 캐낼 거리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 이제야. 정작 당사자는 시큰둥했다.
“네?”
“신경 쓸 거 없어. 별거 아니니까.”
“가보셨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내가 끼어들었다.
“가봤지. 대단치는 않았어. 그러니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으려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눈을 깜박였다. 그러곤 나를 보며 엷은 미소를 그렸다.
“뭐, 정 가보고 싶다면야. 그것도 좋겠지.”
나는 빈 그릇을 치우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