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핀과 수사 신부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프랭크스톡턴
  • 평점×59 | 분량: 76매 | 성향:
  • 소개: 어느 한 마을에 나타난 황무지의 괴물 그리핀과 선량한 수사 신부의 이야기인 「그리핀과 수사 신부」는 이기적인 마을 사람들과 흉포한 괴물 그리핀을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교훈적인 결말을... 더보기

그리핀과 수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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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어느 나라의 한 조용한 마을에 낡은 교회가 한 채 있었고, 이 교회의 문 위에는 그리핀 석상이 커다랗게 조각되어 있었다. 오래전에 그것을 만든 조각가는 자신의 작품에 엄청나게 정성을 쏟았지만, 그 석상은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핀의 커다란 머리에는 쩍 벌린 입에 포악해 보이는 이빨이 있고, 등에는 날카로운 갈고리와 뾰족한 갈퀴로 무장한 거대한 날개가 솟아 있다. 앞쪽으로는 돌출한 발톱들과 함께 단단한 다리들이 달려 있지만, 뒤쪽에는 다리가 하나도 없었다. 몸체는 길고 강인한 꼬리로 이어지다가, 끝에서 가시 돋친 점으로 마무리되었다. 꼬리는 몸체 밑으로 둘둘 말려 있고, 그 끝은 날개 뒤로 튀어나와 있었다.

조각가 혹은 이 석상의 조각을 명했던 사람들은 분명 그것에 크게 만족했던 모양이다. 같은 형상을 축소하여 만든 석상들이 교회의 벽면을 따라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고, 땅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 배치되어 사람들이 쉽게 들여다보고 그 신비로운 모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으니 말이다.

이 교회의 바깥에는 성자들부터 순교자, 기괴한 남자의 머리, 짐승과 새들, 또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생물체들까지 다양한 조각상이 있었지만, 문 위에 달린 커다란 그리핀과 교회 벽면의 작은 그리핀들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무시무시한 황무지 한가운데에는, 교회 문 위에 조각되었던 그리핀이 살았다. 어떻게 해서였는지, 이 조각가는 그것을 목격하고 최대한 기억을 살려 그 형상을 돌로 본떴다.

그 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그리핀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하지만 야생 짐승들에게서 혹은 한 마리 새에게서, 지금은 알 길이 없는 어떤 방법으로 저 멀리 어떤 교회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조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 그리핀은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몰랐다. 거울을 본 적도 없었고 그가 살고 있는 곳의 개울은 물결이 워낙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흘렀기 때문에 들여다봐도 모습이 비칠 만한 잔잔한 개울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확인한 바로는 자신이 종족의 마지막 개체였기 때문에 그는 다른 그리핀을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조각해 놓았다는 석상에 대해 들었을 때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매우 보고 싶어졌고, 마침내 그 낡은 교회를 찾아가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보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무시무시한 황무지를 떠나, 인간이 살고 있는 나라에 닿을 때까지 날고 또 날았다. 인간 세상에서는 그가 하늘에 나타나는 바람에 엄청난 소동이 빚어졌지만 그는 어디에도 착륙하지 않고 묵묵히 날갯짓만 계속해서 마침내 조각상이 있다는 마을 외곽에 다다랐다.

늦은 오후 무렵에야 그는 시냇물 옆의 푸른 초원 위에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장거리 여행을 해본 지 워낙 오래되었던 탓에, 그의 커다란 날개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리핀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마을 전체에 퍼졌고, 별난 방문객이 도착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죄다 집 안으로 도망쳐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핀은 누구라도 나와달라고 크게 외쳤지만 그가 외칠수록 사람들은 모습을 꽁꽁 감추었다. 마침내 그는 들판을 가로질러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던 일꾼 둘을 보곤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멈추라고 소리쳤다. 감히 그 말을 무시하지 못한 남자들은 벌벌 떨며 멈춰 섰다.

“당신들 모두 대체 뭐가 문제요? 이 마을에는 내게 말을 건넬 만큼 용감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이요?”

일꾼 가운데 하나가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가 워낙 떨려서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제 생각에는 그러니까…… 아마도…… 수사 신부(수도원에 들어가서 수사 과정을 거친 후에 신부가 된 성직자를 신학교에서 바로 서품한 신부와 구분하기 위해 부르는 명칭)가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서 그를 불러오시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소.”

그 유서 깊은 교회에서 일하던 수사 신부는 막 오후 예배를 마치고 주중 예배를 드리러 왔던 노부인 셋과 함께 교회 옆문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그는 친절한 성품의 젊은 남자였고, 마을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데 열심이었다.

매주 주중 예배를 주관하는 임무와는 별도로 아픈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했고 난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조언했으며, 학교를 만들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마을의 불량 소년들만 따로 모아 가르치기도 했다.

마을에 해결할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항상 이 수사 신부를 찾았다. 그래서 이 일꾼들도 누군가 가서 그리핀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젊은 수사 신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사 신부는 그를 비롯한 노부인 셋을 제외하곤 온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기이한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핀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놀랐고 두려웠다.

“나를? 그리핀이 나를 알 리가 없는데! 내게 뭘 원하는 거지?”

“오! 한시라도 빨리 가봐야 해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지금쯤 화가 단단히 났을 거예요. 신부님께서 서둘러 가시지 않는다면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른다고요.”

그 불쌍한 수사 신부는 성난 그리핀을 만나러 가느니 자신의 손을 자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리핀에게 가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자신에게 그리핀의 부름에 응할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온 마을 사람들에게 재앙이 닥친다면 끔찍한 일이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창백하게 겁에 질린 채 그리핀을 만나러 갔다.

그가 다가가자 그리핀이 말했다. “좋아, 날 찾아올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있다니 기쁘군.”

수사 신부는 스스로가 그리 용감하게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 마을의 어떤 교회 문 위에 날 닮은 조각상이 있다던데?”

수사 신부는 그리핀의 무시무시한 형상을 보곤 그것이 교회에 있는 석상과 아주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좋아, 그렇다면 날 그곳으로 데려다 주겠소? 그게 무척 보고 싶은데.”

그 순간 수사 신부는 그리핀이 온다는 걸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핀이 마을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죽을 만큼 겁을 먹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 싶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네요.” 극도로 조심스레 그가 입을 열었다. 혹시나 자신의 말이 그리핀을 화나게 할까 봐 겁이 나서였다. “지금은 교회 앞에 있는 조각상들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 거예요. 똑똑히 보고 싶다면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겁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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