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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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1.

 

 

나는 티르 스트라이크다. 삼십여 년 전부터 티르 스트라이크 하고 있다. 당신들은 티르 스트라이크 해본 적이 없을 테니 알려주는데 요즘은 티르 스트라이크 하기 좋은 시절은 아니다. 오랫동안 해온 덕분에 몇 가지 요령이 있어서 그럭저럭 해나가지만 좀 더 티르 스트라이크 하기 좋은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최근 열하루는 특히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멍청한 비를 맞고 있는 내 모습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처럼 초췌했다. 어깨를 때리는 빗줄기는 날카로운 아픔이었다. 빗줄기가 아프다고 말하면 과장이라 여기겠지만 그런 경우가 실제로 있다. 열하루 동안 땅을 파서 여섯 살짜리 카닛 소녀의 시체를 꺼낸 사람은 빗물에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쩐지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 같다. 아마 빗물이겠지.

 

후들거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나는 버샤드 포인도트를 살폈다.

 

포인도트는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평온하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그의 얼굴에서 엄청난 슬픔이나 끔찍한 충격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쩌면 비탄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렇잖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딸의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란 존재는 그런 가능성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서니 포인도트는 엿새 전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엿새 전, 서니가 완전히 침묵하게 된 후에도 땅을 파는 사람들의 손길은 느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엿새 동안 우리를 재촉한 것은 여름의 불볕더위였다. 살아있는 서니를 꺼내기 위해 닷새 동안 분투했던 우리는 엿새째부터는 포인도트 부부에게 딸의 썩은 시체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삽과 곡괭이를 휘둘렀다.

 

이 소도시에서 땅을 팔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여한 대역사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우리는 서니 포인도트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거니와 그 몸도 구하지 못했다. 지상으로 끌어올려 진 서니의 시체는 처참했다.

 

차마 쓸 수 없는 표현이지만 추악하다고 말하고 싶다.

 

서니는 폐광의 무너진 환기공에 갇힌 채 굶어 죽었다. 음식과 물을 소녀에게 내려 보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다. 대롱도 써보고 쥐에게 음식을 묶어 내려 보내기도 했고 심지어 국물을 적신 밧줄을 균열 사이로 밀어 넣어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서니가 그것을 빨 힘이 있었을지 의심스럽지만 그런 어처구니 없는 방법이라도 시도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공기보다 딱딱한 것은 서니에게 닿지 못했다. 물을 그냥 흘려넣는 방법은 서니를 익사시킬 수도 있거니와 이차 붕괴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환기공이라는 건 기다란 수갱이고 그 말은 자칫 잘못하면 그 내부에 어설프게 끼여 있던 서니가 까마득한 깊이를 수직 추락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니를 꺼내는 데 열하루나 걸린 것도 불안한 붕괴 현장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열하루 동안 서니는 땅속에서 굶주렸고, 서니 포인도트 하길 그만두었으며, 부패했다. 시체는 추악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는 허탈한 우리들을 위한 하늘의 배려 같았다.

 

‘어쩌면 비 때문에 땅이 무너져 시체를 영영 잃었을 수도 있었어. 서두른 덕분에 썩은 시체라도 손에 넣었군.’

 

비탄이나 동정심을 느끼기 힘들었다. 자원자들 대부분이 교대로 일을 했지만 이파리 하드투스 보안관과 그의 조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구출 현장에서 보내야 했다. 사람들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일만 해도 엄청났다. 이미 말했듯이 지반이 불안했기에 자칫하면 구조대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사람들을 단속해야 했으며, 그러는 틈틈이 삽을 들고 땅을 팠다. 당연히 그 열하루 동안 제대로 자거나 쉴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런 물물교환에 응한 기억은 없지만, 누가 내 머리를 떼어내고 대신 돌덩이 하나를 달아놓고 간 것 같았다. 그런 내 눈에 서니의 시체는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추한 물건으로만 보였다. 응접실에는 절대로 놔둘 수 없는 종류의.

 

이파리 보안관이 포인도트에게 다가갔다.

 

보안관은 비에 젖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진흙투성이 오크를 타고 흐르는 빗물은 불그스름했다. 흙으로 만든 오크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보안관은 바짓자락에 대강 닦은 손으로 포인도트의 어깨를 짚었다.

 

“버스. 서니를 옮기도록 하세.”

 

말이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면 보안관의 말이 포인도트에게 부딪친 다음 튕겨 나와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포인도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를 움직이려면 여러 마리의 소와 쇠사슬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 내 인상이었다.

 

이파리 보안관은 주위 사람들에게 눈짓을 보내곤 다시 말했다.

 

“어서. 애가 다 젖겠군.”

 

사람들이 포인도트를 향해 슬쩍 움직였다. 포인도트가 아주 작은 몸짓이라도 했다면 사람들은 마치 포인도트에게 요청을 받았다는 듯이 서니를 옮기는 일에 착수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이 그렇게 처리되었을 것이다. 정신없는 유족이 차분하게 뭔가를 지시하고 요청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포인도트는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곳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동시에 멈추게 했다. 모두들 당황하여 서로를 쳐다보거나 자신의 손을 바라보거나 했다.

 

보안관은 어색한 상황이 되었음을 깨달았지만 다시 한 번 곰살갑게 말했다.

 

“그래, 버스. 일어나. 장례 준비하려면 어서 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야지.”

 

보안관은 포인도트의 팔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도 보안관을 돕기 위해 반대편에서 그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멈추었다. 포인도트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보안관과 나는 그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우스꽝스러운 꼴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포인도트를 일으키려 하면 그가 나동그라지거나 혹은 우리 세 사람 모두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보안관이 약간 엄하게 말했다.

 

“버샤드 포인도트. 일어나게.”

 

무표정하던 포인도트의 얼굴에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도 표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뭔가가 출렁인다는 느낌 외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포인도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보안관과 나는 움찔했다. 포인도트는 높낮이도 없이 질겅거리듯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수고해 주셔서. 다들 바쁘실 텐데 자기 일처럼…… 서니도 고마워할 겁니다.”

 

포인도트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서니의 시체가 입을 열어 말을 한다 해도 버샤드 포인도트가 말하는 것처럼 낯설고 듣기 싫지는 않을 것 같다. 포인도트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싸고 있었다.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꼭 저렇게 시체가 말하듯 말해야 하나?

 

짜증을 느끼던 나는 갑자기 둔한 충격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죽었으므로.

 

격심한 피로라는 무거운 돌을 옆으로 젖히자 그 아래에서 지난 열하루가 꼬물꼬물 기어나왔다. 그것은 느린 죽음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는 일이었다. 느린 죽음. 그 말이 내 뒤통수를 잡아채어 서니의 시체에 내 얼굴을 처박아 문질렀다.

 

같이 놀던 동무들의 신고 덕분에 사고는 꽤 빨리 알려졌다. 보안관과 나는 거의 사고 직후에 현장에 도착했고 그때 환기공 속의 서니는 우리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서니는 보안관이 출입을 금지한 곳에서 논 것 때문에 꾸지람을 들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협박하듯 서니를 불러야 했고 결국 서니는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가 달려오고 구조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소녀는 창피함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 울음은 서니가 이 세상에서 보여준 마지막 밝은 모습이었다.

 

그 후로도 서니는 울었다. 흐느끼고 울먹였다. 신음했다. 아빠를 부르고 엄마를 불렀다. 배가 고프다고 말했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고 무서워 죽겠다고 말했다. 흙먼지를 잔뜩 삼켜 목이 쉰 채로. 그 아이는 잠들지도 못했다. 잠을 잤다면 더 오래 버텼을지도 모르지만 땅을 파는 소리가 쾅쾅 들리고 그 진동이 그대로 몸에 전달되는 상황에서 잠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땅 파기를 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구조는 고문이었다. 서니는 불면과 허기, 속박, 호흡 곤란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서니의 생애 마지막 닷새에 나를 대입하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어떠할까.

 

버샤드 포인도트는 죽었다. 그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노래를 부르라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됐네. 버스. 지금은 인사치레할 때가 아냐. 집에 가야지.”

 

“예. 저희 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하시죠. 보안관님. 모두들 목 마르고 피곤하실 테니까요. 저는 얘 옆에 있을 테니 집에 가서 저희 안사람에게, 어, 그 사람이 기력을 추슬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버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 있어야 합니다. 이 애가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도 부모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애가 열하루를 혼자 보냈습니다. 전 서니 옆에 있어야 합니다. 이해해주시겠지요?”

 

“무슨 소리야. 얘를 여기 계속 놔둘 건가?”

 

포인도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죽은 표정을 짓는 일에 있어 카닛에 비견할 만한 종족은 별로 없지만 포인도트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우리가 단체로 그를 걷어차기라도 한 것 같았다. 차라리 비통하게 울부짖는 편이 보기 덜 괴로울 듯하다.

 

포인도트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이파리 보안관도 입을 다물었다. 보안관은 포인도트의 팔을 움켜쥐어 그를 일으켰다. 반대편에서 나도 보안관을 따라 했다. 예상대로 포인도트는 아무런 협조도 보여주지 않았다. 똑바로 세울 때까지 포인도트는 당황하여 좌우의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보안관은 포인도트가 주저앉지 않도록 지체 없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가세.”

 

“보안관님. 이러지 마세요. 저와 서니를……”

 

“걱정 마. 서니는 우리가 챙길 테니 자넨 걷기나 해.”

 

“아니오. 서니에겐 제가 있어야……”

 

그때 우리 도시의 시의회 의장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