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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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우편함이었다.

같은 모양의 우편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가로로 다섯 개, 세로로 네 개. 방금 누가 다녀갔는지, 보라색 광고지가 하나씩 꽂혀 있어 더욱 똑같아 보였다. 물론 번지수가 다르니 헷갈릴 리는 없다. 그래도 그 모양새를 보고 있으니 문득 불안감이 몰려왔다.

편지를 정말 여기에 꽂아 두어도 괜찮을까.

누군가가 치워 버리는 게 아닐까. 주소를 착각한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광고지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그대로 휴지통으로 직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우편함의 주인에게 제대로 전달되리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이상의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민희는 심호흡을 하고 주머니에서 하늘색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봉투의 겉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직접 넣는 것이니 주소는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간단하게 수신인의 이름만 썼다.

나서연 님께.

그 이름을 보자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다.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다. 그런 사람을 열과 성을 다해 찾았다. 이까지 오는 데 꼬박 3주가 걸렸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만나 보아야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 동안의 사연에 대해서. 그리고 강아지에 대해서.

민희는 우편함의 보라색 광고지를 꺼냈다. 그리고 봉투의 가장자리가 잘 보이도록 끄트머리를 잘 펴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꽂았다. 그녀가 이 편지를 보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파트 통로를 걸어 나오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우편함 사이로 보이는 하늘색 편지봉투에, 3주 전 일요일, 추수감사절의 파란 하늘이 겹쳐졌다.

구름이 이렇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구나.

예배당을 걸어 나오며 민희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날은 하늘이 유독 화창한 느낌이었다. 교회 앞으로 노랗게 늘어선 은행나무가 더욱 선명해 보였다. 교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민희는 동생 민호와 함께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몇 분을 걸었다. 원래는 교회 앞에 주차장이 있지만, 아침에 할아버지의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바람에 늦게 도착해 주차장이 만원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 길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가을이 이래서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짧은 순간이었다. 방울 소리가 들린 것은.

딸랑딸랑, 하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