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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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으면 맛있다. 먹을 만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눈앞에 보이는 온갖 먹거리를 닥치는 대로 씹고 삼킨다. 야식집에서 시킨 족발과 보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동기생인 그녀가 시장에서 사다 준 이름 모를 음식들까지 먹어치운다. 목이 메 요구르트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급하다. 얼른 먹어치워야 한다.

 

요즘 인터넷 TV에서 먹방이라는 게 큰 인기다. 출연자들이 직접 재료를 공수해와 요리를 만들어 먹는 TV 프로그램도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난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먹으면 맛이야 있지만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엄청난 공을 들여 음식을 해먹고 싶지는 않다. 질보다 양이다. 목에서 넘기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맛만 아니면 된다.

 

밥상 위에 차린 음식들을 대충 씹어대다가 아예 씹지도 않고 삼킨다.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뱃속으로 밀어 넣는 게 중요한 거다. 어차피 똥으로 나올 때는 다 똑같다. 그런데도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건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시간이 지나야 한다. 이것만이 지루한 삶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이고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로 배설의 기쁨이다.

 

토하기 직전까지 음식을 뱃속에 집어넣고 나면 기분이 나쁘다. 쓰레기들이 가득 차 숨을 쉴 수가 없다.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방에 드러눕는다. 이때부터가 고통의 시작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누워있으면 얼마 안 있어 방귀가 잦아진다. 처음에는 소리만 요란하다가 점점 냄새가 지독해진다. 아무리 내 냄새라도 이건 너무 더럽다. 혐오감이 치솟는다. 그렇게 10초에 한 번씩 똥 방귀를 뀌다 보니 어느새 속이 거북하고 아랫배가 슬슬 아파진다. 본격적으로 고통과 싸워야 할 시기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때 화장실에 가겠지만 난 아니다. 아직 멀었다. 최대한 대변을 참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바로 쌀 지경에 이를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처음 배설의 기쁨을 알게 된 건 어렸을 때 보육원에서였다. 그땐 대변을 참고 참다가 바지에다 똥을 지르는 일이 잦았고 그것 때문에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을 때도 있었다.

 

통증이 심해진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누운 상태로 항문에 힘을 꽉 주자 고통이 잦아들고 나오려던 똥이 쏙 들어간다. 그것도 잠시뿐이다. 곧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올 거다. 이제 시작이다. 아랫배가 똥으로 가득 찼고 엉덩이골에 습기가 차 팬티 뒷부분이 축축하다. 조심해야 한다. 혹시 이때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최대한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일어나 걸어야 한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지릴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다시 아랫배에 고통이 찾아왔다. 앞으로는 싸고 싶다는 욕구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릴 것이다. 용을 쓰며 괄약근에 힘을 줘 똥을 틀어막았다. 항문이 따끔거리며 간지럽다. 조금만 더 견디자. 그럼 아까처럼 나오려는 게 들어가고 통증도 사라질 거다. 아직 세 번에서 네 번까지는 참을 수 있다. 거기까지가 한계다. 방귀를 몇 차례 뀌어서 장 속 똥의 부피를 줄인다. 더럽다는 생각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겨야 한다.

 

시간이 더 지나자 아랫배가 터질 것 같은 통증에 더는 누워있을 수 없었다. 일어나 앉았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 대변을 참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에 타는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안된다. 그럼 그만큼 기쁨이 줄어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다다라서야 쾌감이 극대화된다. 이럴 때는 눈 돌릴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밥상을 끌어와 음식을 집어 먹는다. 이렇게 하면 고통이 분산되고 또 배에 음식이 가득 들어가 대변의 양이 더 많아진다. 이것이야말로 배설로 얻는 쾌감의 마지막 준비단계다. 예전에 효과적인 배설을 위해 소화가 잘 되는 음식들을 먹고 변비약도 복용했었다. 더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쾌감이 줄어들었다. 소화가 덜 되야 거친 대변이 항문을 거치면서 쾌감이 치솟는다. 소화가 아예 안 되면 더 좋다. 그리고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때가 왔다. 얼굴에 식은땀이 돋는다. 온몸이 으슬으슬 춥다. 너무 큰 고통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항문이 움찔거리며 저절로 열린다. 지금이다. 이때 배설해야 한다!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끄응! 힘을 주며 뱃속에 든 똥을 한꺼번에 배출한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곧 어마어마한 쾌감이 항문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진다. 하아… 씨발, 하아… 씨발!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였다. 만족스럽지가 않다. 배설의 쾌감이 예전만 못하다. 어렸을 때는 지금 느끼는 것보다 배는 더 기분이 좋았다. 왜일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어렸을 때 보육원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고통뿐이었다. 늘 좁은 방에서 다른 아이들과 자야 했고 혼자만의 공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딜 가든 우리를 담당하는 선생님이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군대식 명령 규율에 따라야 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왠지 떳떳하지 못했고 누가 있든 없든 주눅이 들었다. 어떤 것도 재밌지 않았다. 즐거움이 뭔지도 잘 느끼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원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쾌활한 척도 하고 아양도 떨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이나 원장님이나 다들 날 싫어했다.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늘 개똥 같은 기분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의 다 이루어졌다던 보육원 후원 계약이 결렬됐다. 이유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씩씩거리며 원내를 돌아다니던 원장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넌 왜 그리 늘 똥 씹은 얼굴이냐며, 너만 보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역정을 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말마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자 원장님이 내 멱살을 잡았다. 지금 날 무시하느냐며 네가 어디에서 처음 발견된 지 아느냐고 호통쳤다. 갓난아기 때 더러운 공중 화장실에서 발견된 거라고, 네 어미는 피투성이 신생아인 널 화장실 안에 버리고 도망간 거라고 이죽댔다. 늘 조용한 원장님이었는데 그 날은 울분에 가득 찼다. 손찌검하려고 손을 들자마자 여자애 하나가 달려와 원장님의 다리를 잡고 말렸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와 같은 날 보육원에 들어온 동기생이었다. 원장님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 막는 통에 아무것도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원장님의 뒷모습과 나에게 배시시 웃어 보이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대뜸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어떤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내 생에 첫 기억이었다. 바로 누런 떼가 덕지덕지 붙은 오래된 수세식 변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기억이었다.

 

그 첫 기억은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밥을 먹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문득 떠올랐다. 그때부터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있을 수 있고 눈치도 안 봐도 된다. 더럽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양변기를 보며 나를 낳은 어미를 생각하곤 했다. 왜 날 화장실에 버린 걸까? 내 어미는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은 곧 증오로 바뀌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루한 하루하루, 이죽대던 원장님의 일그러진 얼굴과 그때 했던 말이 나를 괴롭혔다. 그럴 바에는 아예 낳질 말았어야 한다.

 

어미를 원망하며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건이 있던 그 날은 보육원 행사 때문에 바쁜 날이었다. 아침에 급하게 먹은 빵이 잘못됐는지 자꾸 배가 아팠다. 씹지도 않고 대충 삼킨 게 화근이었다. 할 일이 많아 도중에 화장실을 갈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바지에 똥을 지리기 직전에서야 여자 동기생의 도움으로 간신히 화장실에 들어왔다. 그때의 그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변기로 달려와 뱃속 가득한 똥을 힘껏 쌀 때의 쾌감!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에서부터 발끝을 부드럽게 훑었다. 처음으로 느낀 황홀감이었다.

 

변기 속에 가득 싸지른 설사 똥을 돌아보며 그제야 어미가 왜 날 낳았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배설의 쾌감 때문이었다. 눈앞의 똥처럼 말이다. 왜 이런 걸로 쾌감을 느낀 걸까? 죽일 년. 그때부터 나는 배설에 매달리게 됐다. 대변을 참고 또 참다가 바지에다 지린 게 이때부터였다. 이게 아니면 무엇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은 그때 느꼈던 엄청난 쾌감을 느낄 수 없었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배설의 쾌감은 나아지질 않는다. 오히려 점점 무뎌져만 갈 뿐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고 보육원을 나왔다. 여자 동기생이 붙잡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가 되고 싶다. 사회에서의 생활도 보육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똑같이 무미건조한 삶이 이어진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다. 지겨운 나날들.

 

뱃속이 끓어오르는 고통에 식은 땀을 흘리며 방안을 뒹군다. 참아야 한다. 여긴 어딜까.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비록 월세지만 내 한 몸 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제는 그마저도 나가야 할 처지다. 얼마 전에 집주인이 월세를 10만 원이나 올려 받아야겠다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돈에 쪼들려 빠듯한 상황인데 10만 원은 너무 크다. 5년 넘게 살았다. 이삿짐센터도 알아봐야 하고 이사할 집도 알아봐야 한다. 보육원에서 나올 때와 다르지 않다. 어디로 가든 별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똑같이 이어지는 지루한 삶. 배설의 쾌감 말고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게 없다. 어떻게 해야 더 기분이 좋아질까?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고 또 급하게 먹어야 한다. 평범하게 먹어서는 쾌감이 반감된다. 비정상적일수록 좋다. 배설하기 전까지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쾌감은 그 배가 된다. 이제는 뭔 짓을 해봐도 예전처럼 느끼지 못한다. 어렸을 때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