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상계동올림픽

어게인 상계동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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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기 전 강유풍 씨는 이불을 개고 앉아 방을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퀭한 눈이 빛났다. 며칠째 그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물에 만 밥을 후루룩 마셔도 잘 넘기질 못했다. 지난 세월이 서걱서걱 씹혀 명치가 묵직했다. 살면서 이렇듯 홀로 온전한 결심을 실행에 옮겨본 적이 있던가. 지난 칠십 평생은 오로지 오늘을 위한 고난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몇 시간 후면 맞게 될 순간을 상상하면 심장이 뻐근해졌다. 피가 몰린 머리카락 끝까지 저릿했다. 강유풍 씨는 일기장을 꺼냈다. 이사 오면서 강유풍 씨가 직접 짠 침대 서랍에는 서른 권이 넘는 일기장이 단정하게 바랜 채 들어있었다. 단어 하나만 쓰여 있는 날도 있었지만 기억의 단서로서 충분했다. 요즘엔 좀 뜸했다. 마지막 일기는 2주전에 쓴 것이었다. ‘강남구청. 탁상행정. 근무태만. 이게 살인미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법원에 행정소송 증거자료를 마지막으로 내고 온 날이었다. 강유풍 씨는 빈 페이지를 펼쳐 쓰기 시작했다.

 

 

 

만호야 만호야. 강만호 이놈아.

 

잘 있었냐. 아버지다. 니 못난 애비다.

 

.

 

.

 

.

 

 

 

전화벨이 울렸다.

 

 

 

“강유풍 선생님?”

 

“예.”

 

“선생님 오늘이 성화 봉송일입니다. 알고 계시죠?”

 

“예. 그럼요. 압니다.”

 

“잠실종합운동장 남문 8번 게이트 앞에 부스가 차려져 있어요. 그리로 8시까지 오셔야 합니다.”

 

“예, 예. 8번, 8시.”

 

“선생님, 컨디션은 괜찮으세요?”

 

“컨디션? 좋지죠. 끝내줘요 아주.”

 

“네 좋습니다 선생님. 이따 뵙겠습니다. 살펴 오세요.”

 

 

 

시계를 본 강유풍 씨는 깜짝 놀랐다. 출발하려던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었다. 황급히 채비를 하고 나섰다. 창 없는 방에 아침햇살 들 일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깥도 캄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지가 달포나 지났으니 해는 뜨고도 남을 시각이었지만 날이 좋지 않았다. 하늘이 금세 쏟아질 듯 했다. 비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다가 강유풍 씨는 발길을 돌려 횡단보도 앞에 섰다. 큰맘 먹고 택시를 타기로 한 것이다. 버스로 가는 길이 수고로워서라기보다는 애써 몰아세운 정신이 흐트러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택시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런 시간에 택시를 잡아본 일이 없는 강유풍 씨는 삭풍이 파고드는 옷깃을 여미며 코를 훌쩍 들이마셨다. 택시가 안 잡히자 강유풍 씨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손이 떨려 겨우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내뱉었을 때 빈 택시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강유풍 씨는 손을 허위허위 뻗어 저으며 한 모금을 더 빨아들이다가 사레가 들렸다. 숨넘어가는 기침을 하며 차에 타는 강유풍 씨를 택시 기사가 말없이 룸미러로 지켜보았다. 꼬챙이 같은 노인네가 목적지까지 무탈히 앉아있을 기력이 있는지 살피는 모양이었다. 강유풍 씨는 기침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잠실 종합운동장 갑시다.”

 

“… 건너서 타야 되는데…”

 

 

 

기사는 엑셀을 밟으며 중얼거렸다. 노인의 헐거워진 목구멍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눈물 콧물까지 흘리던 강유풍 씨는 기침이 잦아들자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둠을 밝히는 타워팰리스 단지를 지나 택시는 양재천을 건넜다. 창밖을 내다보며 강유풍 씨는 상념에 젖었다. 도둑기차를 타고 온 서울역, 그러니까 반세기도 더 된 일이다, 손을 아예 죽 내밀고 다니는 거지들이 이리저리 채였다. 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차림의 열네 살 소년은 인파 속을 흘러 다니다 누군가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기범이 형님이었다. 그 후 소년은 역전에서 껌과 신문을 팔고 청계천변 움막에서 열댓 소년소녀들과 포개어져 잠을 잤다. 일감을 떼어오는 기범이 형님이 하루의 시작과 끝이었다. 둥글넓적한 얼굴을 묵직하게 받히고 있는 열여덟 기범이 형님의 어깨는 움츠러든 적 없었고 천변의 소년소녀는 영원한 식구인 줄 알았다. 일제단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아우 망할 놈의 여편네들. 이게 주차장이야 뭐야.”

 

 

 

학원가 도로 가장자리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중년 여자들이 모는 고급 자가용에서 무거운 가방을 멘 젊은이들이 나와 거리로 총총 사라졌다. 아침 6시 20분. 이제 그 차들은 어디로 향할지 강유풍 씨는 문득 궁금해졌다. 맨 처음 강남땅을 밟았을 때 언젠가 자신도 각진 그랜저며 외제차를 몰게 될 줄 알았다. 전 재산 300만원을 털어 산동네 판잣집을 세 개로 쪼갠 방을 분양받았다. 길어도 삼 년이라 생각했는데 삼십 년이 지났다. 방에 고요히 앉아있노라면 어떤 때는 허허 웃음이 났다. 이 방에서 삼십 년을 살다니, 허허. 택시는 무역센터를 등지고 진 대로로 나섰다. 주차장이 도로 전체로 확장된 양 차들이 빼곡했다. 멀리 안개에 토막 난 롯데월드타워를 향해 차들은 애달프게 주춤대며 나아갔다. 차안 공기는 건조하고 뜨거웠다. 강유풍 씨의 목구멍이 자꾸만 간질간질했고 두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앞차와 조금 벌어진 틈에 택시 한 대가 끼어들다 엉거주춤하게 서 두 개 차선을 가로막았다. 택시기사는 클락션을 내리쳤다.

 

 

 

“아우 염병할. 여기 오는 게 아닌데.”

 

 

 

강유풍 씨는 6시 50분경 남문 8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가 붐벼 택시가 들어올 수 없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참을 걸으니 땀이 식어 오한이 들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선 그를 젊은 사람들이 분주한 걸음으로 스쳤다. 컨테이너 앞에서 서성이던 그를 문을 열고 나오던 한 여자가 발견하고 안으로 안내했다. 여자는 따뜻한 물을 내주고 전기히터를 켠 다음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강유풍 씨는 몸을 녹이며 눈을 감았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아무리 더워도 남자 분들 그렇게 웃통 벗고 돌아다니지 마세요.”

 

 

 

순범 엄마가 일갈했다.

 

 

 

“여자들이나 속옷 좀 갖춰 입으라지.”

 

 

 

누군가 중얼거리자 남자들이 낄낄댔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한낮이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밤이면 주민들이 한데모여 잠을 청했다. 집들이 무너진 터에 그나마 편평하게 고른 땅에 누운 사람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코고는 소리, 아이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흩어지고 공터 한 귀퉁이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간혹 고성을 질렀다. 집이 철거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내일 구청 집회 전체 다 모이는 겁니다. 총무님 출석체크 빠짐없이 하세요.”

 

 

 

위원장의 말을 끝으로 회의가 파했다. 몇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큰일 났어요. 애들이 깔렸어요.”

 

 

 

여덟 살 만호의 아빠 강유풍 씨를 비롯해 아이를 둔 엄마 아빠들이 달려갔다. 아이들이 앉아 놀 그늘이 되었던 담벼락이 무너진 것이었다. 사람들이 연장을 가지고 오기도 전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며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들을 꺼냈다. 담벼락 잔해 틈으로 작은 팔 하나가 축 늘어져 나와 있었다. “만호야, 만호야.” 만호 엄마가 울부짖었다. 만호는 정신을 잃은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만호를 업고 강유풍 씨가 내달렸다. 혜선이 아빠가 트럭을 몰고 왔다. 트럭은 병원 앞 사거리에서 급히 좌회전을 했다. 막 출동 중이던 앰뷸런스가 나오다 트럭을 받았다. 차에 탄 사람 모두 정신을 잃었다. 아시안게임이 있던 다음 해, 올림픽이 있기 일 년 전 여름이었다.

 

 

 

누군가 강유풍 씨를 흔들어 깨웠다. 어슴푸레 눈을 뜬 강유풍 씨 앞에 여덟 살 만호가 서 있다. 정수리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솟고 있다.

 

 

 

“아빠, 아빠. 같이 가요.”

 

“만호야, 만호야.”

 

 

 

성화 봉송 총괄책임자가 왔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아아… 예. 괜찮아요.”

 

“괜찮으시겠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

 

“정말로 괜찮습니다.”

 

 

 

강유풍 씨는 크게 대답했지만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졌다.

 

 

 

“네. 알겠어요 어르신. 시간 다 됐습니다. 옷 갈아입으시구요. 안에 속옷 말고는 아무 것도 착용하시면 안 됩니다. 혜원 씨, 어르신 옷 갈아입는 것 좀 도와드려. 아, 아니다. 나가서 창현 씨 오라고 해. 어르신, 옷 갈아입으시고 밖으로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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