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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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은 그림자가 진 복도를 걸었다. 맞은편에서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진료시간에 늦은 건 내가 아니라 의사인데 그녀는 마땅히 내가 걸음을 빨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래서 부러 천천히 걸었다. 내딛는 발걸음이 꽤나 무거운 것처럼. 어차피 그림자 속에서는 늘 현기증이 났다.

복도와는 반대로 진료실에 들어서니 5월의 신록에 눈이 부셨다. 나는 창문 너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키 작고 퉁퉁한 중년의 의사는 손을 씻으며 나에게 의자를 권했다. 나는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의자를 끌어 앉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상담이 길어져서. 오늘 날씨가 무척 좋지 않나요? 저는 이런 날이 너무 좋아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이죠. 막 움직여야 할 것 같고 꽃 피는 거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원래 꽃이 피는 계절은 몸과 마음이 뒤숭숭해져요.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이 꽃봉오리가 피듯 펴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묵은 먼지처럼 쌓인 마음의 짐도 털어버리게 되고, 이게 뭐 대수인가 싶어지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그의 질문에 잠시 그를 바라봤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의 눈은 나에게 작은 동조라도 바랐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사람 참 말 많다.

“선생님.”

“네.”

“늘 그렇지만, 저는 이 세상 모든 게 저와 동떨어진 느낌이에요.”

내 대답에 잠시 또 침묵이 흘렀다. 그는 볼펜 든 손을 차트 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아요. 사면에 유리벽이 둘러진 것처럼.”

정확히는 은색 철조망이라고 짚어주고 싶었다. 딱딱하고 소스라치게 차갑고 섬뜩한 울타리는 늘 나를 옭아맸다. 하지만 그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왠지 그에겐 유리벽이 주는 고귀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온실속의 가녀린 소녀 이미지처럼. 나는 의사의 작은 눈을 피해 창문 너머 회색 건물을 봤다. 길 건너 건물은 5층의 꼭대기 위로 제한생명보험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회색의 긴 세로줄 사이로 청색의 창문이 일렬로 달렸다. 밖에서 안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선 밖을 볼 수 있겠지. 이 창문처럼 투명유리가 아니라 파란색 톤으로 세상을 내다보면 좀 달라 보일까.

“오늘은 유연우 살인사건에 대한 인터뷰입니다. 기존 증언에 대한 첨부라고 생각하시면 되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의사가 흘러내린 안경을 끌어올렸다. 안경 너머 불거진 그의 눈은 유난히 작았다. 검은 눈동자가 그 눈 안에 꽉 찼다. 그 눈동자가 나를 보는 시선은 집요했다. 나는 그 집요함이 거북했다.

“소영이 얘기죠?”

“네. 소영이 얘기요. 오늘은 그날 얘기를 해볼까요?”

“음, 소영이는 그날 그 집에서 도망치려고 했었어요. 그날 그 집에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리란 걸 직감했던 걸까요? 그날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왜 그날이었죠?”

“모두가 욕망에서 만족하던 날이었으니까요.”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