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의 수은

  • 장르: SF
  • 평점×28명 | 분량: 207매 | 성향:
  • 소개: 목적지는 연방 교도소. 호송함 석빙고는 우주를 헤치며 비밀스럽게 죄수를 이송하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중앙제어장치에 연결되어 있던 온도계가 고장 나 버린다. 언뜻 대수... 더보기
작가

박부용

온도계의 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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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온도계가 맛이 갔군.’

 

엔지니어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서 생각했다.

 

“큰일인데!”

 

그 사실이 너무 심각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거라는 데 놀란 나머지, 생각만 하려고 했던 말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엔지니어가 초조하게 머리를 굴렸다.

 

온도계가 고장 났다. 그렇다고 함은 곧 중앙제어장치가 선내 온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말. 다시 말해 이 순간, 그들 식량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함선의 비상 항상성 유지 체계가 냉동고까지 실온 상태로 만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짧은 항해를 예상하고 충분한 보존식품을 가져오지 않았었다.

 

당연히, 이 온도계는 대체할 방법이 없다. 제기랄. 세상에. 수은이라니. 누가 그런 걸 예비용으로 들여놓는단 말인가?

 

엔지니어는 은테 안경을 벗고 착잡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 사실을 보고했을 때 자기에게 어떤 질타가 쏟아질 것인지…… 그는 미리 짐작하고 대비해야만 했다. 우선 첫째…… 왜 중앙제어장치에 이딴 구닥다리 수은식 온도계를 달아두었는가? 아무렴, 그러면 처음부터 이깟 폐품을 썼으려고……. 그렇지만 그들에게 아무리 설명해 보았자 자기가 저번에 고쳐낸 통신 설비가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째서 백금 도선이 필요했는지, 그래서 자기가 왜 본래 여기 붙어 있던 멀쩡한 최신식 온도계를 뜯어냈어야 했는지…… 아니 그들은 백금 도선이 당최 뭐하는 물건인지도 모를 것이다. 둘째, 그렇다고 그 중요한 물건을 지휘 계통에 아무런 고지도 없이 멋대로 갈아치웠단 말인가? 그래, 이 대목이 가장 큰 문제로군……. 하지만 예정된 경로대로만 성히 운항했더라면 문제될 게 전혀 없는 상황이었는데. 설마 느닷없이 소행성 떼가 들이닥쳐서, 제2갑판장 엉덩이만한 쌍둥이별 쪽으로 항로가 수정될 건 뭔가. 엔지니어는 그 찜통 속에서 만난 불결한 광경을 회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최신식 온도계가 그대로 달려 있었더라면 물론 그 정도 더위로 터져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통신 설비를 안 고치고 내버려둘 수도 없지 않았던가. 아무튼 그때 우리는 우라노스의 4번 타자가 그 시즌의 홈런왕을 결정짓는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엔지니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머릿속에서 오만 불편한 생각이 솟아올랐다.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인가? 그들이 나를 린치할 것인가? 모두가 굶어죽게 된다면 그것은 과연 내 책임인가? 이것들은 스스로 결코 답을 발견할 수 없는 철학적인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의 깊은 근심은 알려질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불필요한 진실들과 함께 잘 파묻혔다. 다들 “너무 더워서 있던 온도계가 터져버렸다.”라는 설명에 그냥 수긍해버린 것이다.

 

 

 

호송함 석빙고의 3차 공식 회의는 그리하여 실시된 일이었다. 함장이 마지막으로 회의실에 들어서자, 전원 기립하여 예를 갖추었다. 푸근한 인상의 덩치 좋은 남자는 손짓하여 그들에게 해맑게 답했다. 그리고 짐짓 겸연쩍은 모양으로 회의의 서두를 끊었다.

 

“본래 3차 회의는 임무 완료를 축하하는 형태가 되어야 했을 것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다소 무거운 자리가 되고 말았군요.”

 

그는 전혀 위기감 없는 얼굴을 띠는 것으로 대원들의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다.

 

“대충 이야기 다 들어서 아실 텐데, 그래도 정확한 브리핑을 들어보고 본격적인 논의는 그 뒤에 시작하도록 합시다.”

 

함장이 엔지니어에게 시선을 보냈다. 지적인 은테 안경에 키가 작고 머리가 부스스한 남자가 일어서서 긴장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흠, 흠, 엊그제 소행성대의 중심 지류를 피하고자 항로를 변경하여, 이리매 쌍성의 중간 지점을 통과한 일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무척 더웠지요. 그때 겪은 온도의 급변으로 온도 계량기에 말썽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중앙제어장치가 함내 표준 온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미 항상성 유지 체계는 고정되어 있으니까, 그걸로 저희 생활면에서 불편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만, 단지 중앙제어장치가 스스로 관리하는 식량 창고까지 실온 상태로 변할 거라서…… 아시다시피 거긴 원래 냉동고로 설계된 방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장기 보관에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임무 수행에 지장이 생기는가?”

 

각진 턱의 부함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자 관리를 담당하는 제2갑판장이 대답하기 위하여 육중한 몸뚱이를 일으켰다.

 

“온도 관리가 안 된다면, 보관·취식 가능한 식량은 2개월분밖에 남지 않습니다. 식사량을 줄이고 줄여서 아낀다고 쳐도 3~4개월이 한계입니다. 목적지까지 5개월은 족히 걸릴 텐데 그렇다면 역시 좀 무리죠.”

 

“그러면 어떡하지? 출발했던 정거장으로 돌아갈 수도 없잖아. 이미 운항 8개월 차인걸.”

 

어딘가 아파보이는 인상의 야윈 제1갑판장이 갸름하게 생긴 눈을 치켜떴다. 그는 불안한 듯 몸 여기저기를 주물러 댔다. 부함장이 거들었다.

 

“최종 목적지보다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정거장이나 보급 기지는 없어.”

 

생각보다 사정이 훨씬 심각했다. 사람들은 낙심하여 할 말을 잃었다. 함장의 생글거리는 안면 근육은 이 침울한 분위기를 더 심화시킬 뿐이었다. 그들은 속으로 아직 실감되지 않은, 그러나 곧 체감하게 될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입을 줄여야 하나?”

 

의사의 말이었다.

 

이건 좀 과한 충격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있던 거의 모든 대원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 말은, 냉동 수면 얘기였네.”

 

의사가 점잖은 표정으로 이마의 주름을 어루만지며 설명했다.

 

“그러면 식량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여건이 된다면 그렇겠지요.”

 

제1갑판장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렇지만 선내에 비치된 냉동 수면 캡슐은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마저도 사용 중이고!”

 

“어차피 사형될 텐데 그냥 바깥으로 사출시켜 버리고 한 명이라도 쓰게 하면 안 되나?”

 

“선생님!”

 

부함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지금 호송하고 있는 죄수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이슈란 말입니다. 저 테러리스트는 반드시 통지한 연방 교도소로 제시간 내에 보내져야만 합니다.”

 

“난 의사야. 정치 같은 것엔 관심 없네.”

 

그 말에 엔지니어가 옆에서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대사는 보통 이런 경우에 쓰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반박은 곧바로 묵살당했다.

 

“아무튼 그렇다고 하더라도 2명분은 줄여야 하니까, 캡슐 하나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제2갑판장이 식단표를 나풀거리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내용보다는 태도에 발끈한 듯 제1갑판장이 소리쳤다.

 

“제기랄,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잠깐 진정합시다. 서로 감정이 상할 필요는 없지요.”

 

함장이 모두를 제지했다. 연구원이 자신의 낭랑한 목소리를 이용해서 주의를 집중시켰다.

 

“다른 해결 방법은 없는 거예요? 온도계를 수리할 수는 없나요?”

 

일동 전원이 엔지니어를 쳐다보았고, 엔지니어는 한 발 늦게 반응했다.

 

“아, 아. 온도계는, 그, 장치가 부서진 건 제가 해결할 수 있는데. 다만 수은 때문에 안 될 겁니다. 온도계 안에 들어갈 수은은 오염되어서도 안 되고, 미세 단위로 정확한 정량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원래 쓰던 걸 대충 주워 담아서 재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수은을 구하면 해결되는 겁니까?”

 

“하지만 그걸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저기 바깥에 널려 있는 소행성들 중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지 않을까?”

 

제2갑판장이 투실투실한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그들은 아직 소행성 지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없을 거예요. 저것들, 벼메 성운이 폭발한 잔해물이거든요. 원래 달총터 계열 환경에서는 수은이 만들어질 여지가 없어서.”

 

연구원이 항해 중 처음으로 전문 지식을 유감없이 방출해 보였다. 약간은 기쁜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돌았다. 그래도 그녀라서 용서가 됐다.

 

“……선내에서도 구할 수 없고, 바깥에서도 구할 수 없다. 그러면 온도계를 수리하는 안은 못 쓰겠군.”

 

“앗, 잠깐, 잠깐만요!”

 

제1갑판장이 눈을 크게 뜨고 팔을 휘저어 댔다.

 

“있습니다! 선내에 수은을 쓰는 장비가 있어요!”

 

그는 자기가 발견해 낸 사실에 못내 흥분되었는지 턱까지 약간 부들부들 떨면서 얘기했다.

 

“비상시 전투 목적으로 사용할 기뢰 한 발이 기뢰관에 장전되어 있습니다. 그 뇌관에 수은이 들어 있어요. 30그램 정도에, 격발 직전까지는 순수 수은 상태로 보관됩니다. 그러니 온도계에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대단해!”

 

함장이 박수를 쳤다. 엔지니어도 얼굴을 펴고 안도감에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구먼. 그러면, 거기 있는 수은을 뽑아오면 되는 일이란 말이지?”

 

“아, 그런데.”

 

제1갑판장이 다시 손목을 주물럭거렸다.

 

“그 기뢰관이라는 게 운항 중에는 개방이 안 됩니다. 투하할 때 말고는요.”

 

“뭐라고?”

 

“그러니까, 음, 일단 기뢰를 쏘고 나서, 밖으로 직접 나가 수은을 채취해 와야겠죠. 그 수밖에는 없습니다.”

 

“밖으로 나간다고? 우주 공간으로? 그런 뒤에 수은을 채취해야 한다고?”

 

“예.”

 

“내 말은─ 그러니까 작동 중인 기뢰 안에서?”

 

누군가의 물음이 상황을 명확히 정리해 주었다.

 

“예.”

 

“하느님 맙소사.”

 

엔지니어가 신음했다. 제2갑판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 걸 누가 해온단 말이야?”

 

“애초에 떠다니는 기뢰에 접근할 수가 있는 겁니까?”

 

“가능합니다. 접착 기능이 있는 기뢰거든요. 평평한 지대가 있는 큼지막한 소행성에 기뢰를 붙여놓은 뒤, 뒤따라 제트팩으로 접근해서 착륙한다면 바닥을 디딘 채 안정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안정적?”

 

의사가 퉁명스레 되물었다. 제1갑판장이 무슨 호들갑이냐는 식으로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대함선용 기뢰입니다. 우리 함에 장착되어 있는 마스터클리크 엑스버스터 3000형 모델만큼 강력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 어지간해서 터지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말에 자신 있다면 자네가 구해오게.”

 

부함장이 명령했다. 제1갑판장은 당치도 않다는 듯 딱 잘라 반박했다.

 

“전 안 됩니다. 수전증이 있어서.”

 

“뭐라고?”

 

“아무리 그래도 뇌관은 뇌관입니다. 잘못 건드리면 반응할 거라고요.”

 

“빌어먹을,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당신, 당신이 함선 무기 운용자잖아. 수전증이 있으면 플라즈마 캐논은 어떻게 쏜다는 거야?”

 

엔지니어가 소리쳤다. 제1갑판장이 대답했다.

 

“폭발성 투사체를 발사하는 무기에 요구되는 정확도랑 폭발하는 물건 해체에 요구되는 정확도가 같습니까? 그리고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키십시오. 당신 이 함선에 승선한 지 1년은 되셨습니까?”

 

“뭐…… 뭐라고?”

 

“그래, 그러고 보면 당신이 작업을 수행하는 게 가장 적합할 듯 싶은데요. 엔지니어니까 기계도 잘 다룰 것 아닙니까?”

 

엔지니어는 그 말에 크게 당황해서 입도 미처 제대로 다물지 못했다.

 

“……난 무기에 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제가 무선 통신으로 현장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원한다면 기뢰의 설계도까지 보여드릴 수 있어요.”

 

“이건 말도 안 돼.”

 

“자, 그러지 말고. 모두를 위해서 전문가가 나선다고 생각하게.”

 

의사가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다독였다. 엔지니어는 곧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비상한 두뇌가 눈 깜짝할 새 다섯 번 정도 회전하고 난 뒤였다.

 

“아니, 오히려 전문가이기 때문에 남아 있어야죠. 제트팩을 이용해 바깥으로 나간다는 건 즉 안전줄을 매고 우주 공간을 유영해야 한다는 뜻 아닙니까? 기뢰를 우리 반중력장 안에다 쏠 리도 없으니 그 상태로 반중력장 권외까지 나가야 될 거고요.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말을 할 셈인가 하는 눈으로 제1갑판장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엔지니어는 두 팔을 높게 쳐들었다.

 

“그러면 당신들, 반중력장의 전개 설정에 관해서 공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반중력장과 안전줄이 아무 설정 없이 그대로 겹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나 계십니까? 아니면, 추출 과정 내내 반중력 필드를 꺼버릴 셈입니까? 이 소행성대 한가운데에서?”

 

“이봐, 우리도 기초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다고. 안전줄에 중력자 설정을 걸어서 반중력장을 상쇄시키는 것쯤은 이미 수십 번 가량 실제로 해 보았단 말이야.”

 

부함장이 아니꼽게 말하였으나, 엔지니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야 그렇겠지요. 그러나 이 소행성의 바다 한가운데서 시도해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부함장님께서 직접 제어 패널을 잡고? 보통의 디폴트 설정대로 100m 이상 지점 대외 안전줄 전역에 중력자 설정을 걸어버리면, 그건 곧 오만 소행성을 다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될 겁니다. 안전줄이 무사하지 못할 게 당연하겠고요. 우리는 정확히 반중력장에 걸쳐 있는 지점에만 중력자 설정을 걸어야 합니다. 따라서 제어 패널을 제 몸처럼 다루는 재빠른 실무 전문가가 필요할 테죠. 그렇다면 제가 반드시 여기 남아 있어야 하겠군요.”

 

부함장이 무어라 반론하려는 모양인지 입을 열었으나, 엔지니어가 틈을 주지 않고 덧붙였다.

 

“물론, 반중력장 권외로 나간 ‘그 친구’에게 단파 무전을 보낼 때의 설정값 또한 제가 조절해야 하고요. 저희가 왜 이렇게 비밀스럽게 운항해야 하는지는 모두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무전을 치면, 뭐 당연히 그 미친 광신자 놈들이 나타나겠죠. 발칸포를 쏘면서. 우리가 얼려두고 있는 소중한 죄수님을 내놓으라고. 저라면 국소 지점에 한정하여 유효한 무전 수신이 가능하게끔 제어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엔지니어의 속사포 같은 논박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다만 “무슨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부함장이 그렇게 투덜거렸다.

 

함장이 혼잣말하듯 물었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정말 가능한가?”

 

“선미와 선수의 안테나를 각기 다르게 적용하면 가능합니다.”

 

“자네가 미리 설정해 놓고 다녀오면 되잖아.”

 

의사가 피곤에 절은 앙탈을 부렸다. 엔지니어는 자못 심각하게 반응했다.

 

“이해가 안 되십니까? 그 모든 작업이 위치와 방향 관계를 고려해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단 말입니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기세로 상대를 몰아세웠다.

 

“아니면 선생님이 다녀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의사니까 손재주도 떨어지지 않으실 건데.”

 

“뭐야? 자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의사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눈도 침침한 늙은이한테 헬멧 씌우고, 드라이버 준 뒤, 폭탄 해체를 시켜 보내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한다면 저기 젊은 요리사 친구한테나 어울릴 일이지. 저번에 보니까 칼질도 제법 하던걸.”

 

원숙한 의사는 노련하게 위기를 빠져나갔다. 졸지에 이름이 팔린 제2갑판장이 벌컥 화를 냈다.

 

“우주 유영이라곤 트레이닝할 때가 전부였던 사람한테 뭘 시키시는 겁니까? 그러면 차라리 저기 연구원 아가씨한테 권해보십쇼. 우주 밖으로 제트팩 메고 나가서 소행성에 착륙하는 일이라니, 여기서 제일 전문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계속 잠자코 있던 연구원도 격한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다들 너무하시는군요. 남에게 떠넘길 생각만 하고! 지금은 비상사태라고요.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가는 게 당연하잖아요!”

 

“지금 그걸 가리고 있는 중이잖습니까. 보아하니 당신은 딱히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요? 난 공구 같은 건 한사코 다룰 줄 몰라요!”

 

“웃기지 마시오. 저번에 용접 커터 들고 암석 채취하면서 시시덕거리던 거 다 봤소.”

 

부함장이 난입해 공격했다. 연구원은 기가 막혀 소리쳤다.

 

“시시덕거리긴 누가 그랬다고 그래요? 내가 쓸 줄 아는 건 그렇게 돌멩이 부수는 난폭한 기구밖에 없다고요. 그러는 부함장님이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해결사 아닌가요?”

 

“나는 아니지!”

 

“뭐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 다들 잠시 숨을 고르고……”

 

함장의 목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난 안 가요. 아니, 못 간다고요!”

 

“그러니까 못 가겠다는 근거를 정확히 대 보란 말이야!”

 

“그거야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래, 당신도! 뭘 그렇게 팔자 좋게 구경만 하고 있어요?”

 

느닷없이 또 당한 제2갑판장이 움찔하며 몸을 틀었다.

 

“갑자기 뭐야?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얼렁뚱땅 넘겨 버렸지 않아.”

 

“난 아니야.”

 

엔지니어였다.

 

“오, 제발 닥쳐.”

 

“내 반론은 정당했어!”

 

“당신이 가라고, 역시 당신은 할 수 있잖아.”

 

“말씀 잘하셨네요, 부함장님! 부함장님께서도 못할 이유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신 거 같은데요!”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켜!”

 

제1갑판장이 괜히 끼어들었다. 연구원은 한마디로 그를 일축했다.

 

“참견 말아요, 비겁자.”

 

“비겁자라니?”

 

제1갑판장의 얼굴이 몹시 질렸다.

 

“……비겁자라니? 난 수전증이 있다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엔지니어가 중얼중얼했다.

 

“아니, 내 논리는 완벽했는데.”

 

의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러면 누가 가겠다는 거야?”

 

“하여튼 전 못 갑니다.”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내가 가야 하나?”

 

전 대원이 멈칫하며 마지막 발언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함장이었다. 그는 퍽 진지한 표정으로 그 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대원들의 머릿속에 멋진 콧수염을 가진 남자가 넉살 좋게 웃으며 뇌관 앞에 펜치를 들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장면도 떠올랐다.

 

“아니요, 함장님. 저희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숙연해진 일동을 대표해 부함장이 엄숙한 얼굴로 단언했다.

 

“하지만 이대로 괜찮겠어? 내가 가도 좋으니까, 내 이름도 후보에 올려놓도록 하세요.”

 

“마음만은 잘 알겠습니다, 함장님. 그렇지만 함장님은 전 함선을 통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으니까요.”

 

제2갑판장이 재차 말씀을 올렸다.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갈 사람을 정하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겠군요. 가능한 한 공평한 방법을 도출해 봅시다.”

 

 

 

여기서 회의는 2차전에 돌입했는데, 함장의 말(‘공평한’)에 근거하여 ‘그동안 가장 편히 지내 오던 사람’이 이번 일에 낙점되리라는 논리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누가 더 힘든 보직인가를 놓고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누누이 말했다시피, 전 엔지니어입니다. 선수부터 선미까지 항해 중에 제 손을 최소 세 번 타지 않은 곳이 없지요. 매일 같이 몸으로 뛰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일해 왔습니다.”

 

엔지니어가 제일 먼저 나섰고 제2갑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런 일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있지. 언제나 하루 세 끼 식단을 계획하고 조리하고 뒷정리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휴일도 없이 일하는 중이지요.”

 

“당직 근무는 제가 제일 많이 섰을 겁니다. 거의 삼 일에 한 번 꼴이었으니까.”

 

그것은 제1갑판장이 내세운 요지였는데, 엔지니어가 듣기에는 좀 이상한 이야기라 딴지를 걸었다.

 

“그거야 당신은 원래 하는 일이 없으니까. 당직 순번이 자주 돌아가는 건 당연하지.”

 

그러자 제1갑판장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했다.

 

“하는 일이 없다니? 비상 대기 업무가 얼마나 육체·정신적으로 피로한 일인지 모른단 말입니까? 하긴, 당신은 당직을 세워놓으면 하라는 경계는 안 하고 곤히 잠이나 자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요.”

 

그의 타박에 엔지니어가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나만 자는 게 아닌데. 내가 아는 한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댁이야 안 자고 버틸지 몰라도……. 우리는 일과 업무를 항상 병행하니 몹시 피곤하단 말입니다.”

 

“난 비상 대기와 당직 말고도 무기 체계를 매일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고 동시에 항해를 보조하는 항해사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날 하는 일도 없는 한량 취급하지 마십시오.”

 

“아무튼, 우리 셋은 굳이 말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지요. 의사 선생님, 어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두 사람의 의미 없는 분쟁을 불식하고 제2갑판장이 난데없이 의사에게 발언권을 던졌다. 명백히 아까의 보복전이었다.

 

“제가 보아 온 선생님의 임무란 죄수의 상태 체크밖에 더 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만, 심지어 그 녀석 냉동인간이라. 바이탈에 별다른 변화가 생기질 못하죠. 딱히 기록할 것도 뭣도 없었잖습니까.”

 

그가 실실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의사는 대인배처럼 껄껄 웃으며 자식 연배의 짓궂음을 귀엽게 받아넘겼다.

 

“허허, 그 말대로야. 의사란 게 본래 상황이 터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말이야. 자네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으니 내가 어떻게 일할 여건이 안 되질 않나. 그렇지만 정말로 그 임무를 내게 맡기진 않을 테지? 내가 가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일세.”

 

의사의 연륜은 무시 못할 만한 것이었다. 제2갑판장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라서, 무난하게 웃으며 끄덕거렸다.

 

“물론입니다, 선생님. 한 번 놀려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갑자기 회의실에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부함장이 눈썹을 추켜세웠다.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는데 지금이 딱히 웃을 상황은 아니지 않나?”

 

“아, 그럼요, 부함장님. 부함장님도 여전히 유효한 유력 후보자십니다.”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전 함선에 유지되어야 하는 지휘 통제 능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항상 눈코 뜰 새가 없다는 거 다들 아는 사실 아닌가.”

 

모든 대원이 침묵으로써 그 발언에 대한 반대 의견과 불신과 같잖음을 표시했으나, 부함장 본인은 정말로 자기가 바쁜 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거꾸로 맞는 말을 했기 때문에 아무도 반박할 수가 없는 모양이라고 여겼다. 그는 당당히 연구원에게로 과녁을 돌렸다.

 

“어디 당신도 발언해 보시오.”

 

“이건 정말 불공평한 일이에요.”

 

그녀가 불만을 토로했다.

 

“난 정식 대원도 아니잖아요. 위장을 위한 객원 멤버일 뿐이라고요. 제가 그런 조건 속에서나마 본분에 충실해서 열심히 작업을 한다고 쳐도, 여러분들이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연구원 명찰만 달고 연구실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일 텐데.”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보는 게 어떤가?”

 

부함장의 압박에 연구원이 새침한 태도로 응수했다.

 

“최근에는 여루 천체공전궤에서 수거해 온 깡달석을 가지고 동위원소 측정을 했죠.”

 

상대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연구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봐요, 역시 못 알아듣잖아요.”

 

“그게 의미가 있는 실험인가?”

 

“무슨 의미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지금 그 말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죠? 그럼 제가 헛짓거리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요?”

 

“그런 식으로 표현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지만 뭐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인 셈이군. 그래도 오해하지 말게. 방금 그건 그냥 질문이었으니까. 질타가 아니라.”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말하자면 당신 말대로지. 연구원 티를 내기 위해서 괜히 벌이는 보여주기식 행동은 아니냔 말이야.”

 

“오.”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하자면 같은 말을 또 반복하게 되는 셈인데, 이 연구의 효용성을 설명해드린다고 쳐도 그걸 이해하실지 의문이네요.”

 

부함장과 연구원의 신경전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했다.

 

“이렇게 또 한 바퀴 돌아서 원점이로군요.”

 

제2갑판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제안했다.

 

“그러면 결국 남은 수는 제비뽑기 정도밖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전 수전증이.”

 

“맙소사. 그러면 이제 제비뽑기에 이름이 들어갈 사람을 또 가려내야 하는군.”

 

“끝이 없군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오늘 안에 결론을 내야 해요.”

 

제1갑판장의 발언이었고 그것은 곧 엔지니어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지금 자꾸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게 누군데?”

 

“아니, 왜 시비입니까? 내 손이 내 맘대로 떨리는 것도 아니고.”

 

“그만 좀 하십시오.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까?”

 

“저 녀석이 먼저 시작했잖아?”

 

“이러니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거든.”

 

“제발.”

 

제1갑판장과 엔지니어가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보다 못한 연구원이 내뱉었다.

 

“둘 다 그만해요. 한심하니까.”

 

엔지니어가 수틀린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갑자기 참견이십니까. 댁이 한 게 뭐가 있다고?”

 

“뭐가 있다뇨? 제가 당신 차례 분리수거를 여섯 번은 대신 했거든요?”

 

“빌어먹을. 이제 별 시답잖은 이야기까지 다 튀어나오는군.”

 

“시답잖은 이야기? 그러면 그때 엄살 부리지 말고 국물 새는 음식물 쓰레기통 좀 비우시지 그랬어요?”

 

“이봐, 누가누가 더 개 같이 굴렀나 따져보는 소재는 방금 끝장났다고.”

 

“뭐가요? 언제?”

 

부함장이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의자가 노곤함에 겨운 금속음을 냈다.

 

“여기 조금만 더 앉아 있다간 돌아버리겠군.”

 

“같은 감상입니다.”

 

“당신,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양 말하지 마십시오. 짜증나니까.”

 

제1갑판장이 신경질적으로 날을 세웠다. 제2갑판장이 입을 다물었다.

 

“제기랄! 따지고 보면 이건 다 보급담당관의 잘못이잖아. 보존식품을 보충해 두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으니!”

 

엔지니어가 자기 잘못은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고 제2갑판장에게 분노를 돌렸다. 제2갑판장은 찔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말을 한 주체가 너무 기막혀서 처음으로 진실하게 인상을 썼다.

 

“내 잘못이라고? 아니 이 자식아. 그러면 통조림이 지겹다고 징징거리는 네 녀석들의 투정을 내가 어떻게 감당해야 했어? 그 방을 냉동고로 이용하자는 안건이 인가됐을 때 두 팔 벌리고 환영하던 자식이 누구지?”

 

“그래, 그 안건의 최초 입안자가 누군가?”

 

“그 사람 탓으로 돌리시게요? 전원 만장일치로 찬성한 그 안건을?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요!”

 

연구원이 부함장에게 삿대질을 가했다. 엔지니어는 제2갑판장의 압박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1갑판장은 미친듯이 손과 팔을 주물럭댔다. 회의실의 테이블이 엎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니면 말이야.”

 

진중한 목소리가 운을 뗐다.

 

“우리 그냥 저 죄수를 보내는 게 어떤가?”

 

의사의 말이었다.

 

부함장이 다시 일어났다.

 

“아니, 이 양반이 아까부터 정말로.”

 

“그 친구한테 한 맺혔습니까?”

 

“의사가 아니라 웬 사형집행인을 모셔왔군.”

 

“아무도 안 간다니 뭐 어쩌겠소.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이번 일에 선발되는 걸 무슨 죽는 일이랑 동일시하고 계시네요.”

 

“그럼 자네가 갈 텐가?”

 

“반대한다곤 안 했습니다…….”

 

“아까 내 말 못 들었습니까? 저 녀석은 이 근방 연합끼리 전쟁이 벌어지고 말고 하는 수준의 논란거리라니까!”

 

“어차피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저 녀석도 감옥에 옳게 배달 못하오. 잊어버린 모양인데 이건 우리 목숨도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지 않소? 상황을 따질 여유가 없을 텐데.”

 

“그건…….”

 

“그건 그렇죠.”

 

침묵이 좀 이어졌다.

 

회의는 끝났다.

 

 

 

이틀 뒤, 잠에서 깨어난 ‘바농의 소화기를 던진 자’는 우주복을 입은 채 허리에 안전줄을 매고 사출구 앞에 서 있었다. 꽤 뜬금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주변 환경을 인지해 보려고 많이 노력했다.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통신기가 달려 있었다. 통신기는 어떤 소행성과 ‘설치 지점’에 관해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거기에는 지형의 평탄성이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누군가의 OK 사인이 떨어졌고, 10번의 카운트다운이 있었다. 격한 진동이 생겼다. 30초쯤 지나자 두어 번의 박수 소리가 통신기로 얼핏 전해졌다. 하지만 일은 이제 막 시작된 모양이었다. 어떤 계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웅웅거렸고, 삑삑거리는 소리도 났다. 잠깐, 그는 그 삑삑대는 소리가 눈앞의 사출구 사이렌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이트가 천천히 장막을 걷어 올리듯 개방되었다. 그러자 수많은 별들과 자기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오로지 무한한 영원의 시간과, 지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텐데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과거의 빛줄기들뿐이었다.

 

“이보게, 내 말 들리나?”

 

통신기에서 틀림없이 가장 또렷하게 구별되는 목소리가 있었다.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 판단한 죄수가 대답했다.

 

“이게 뭐요?”

 

“난 자네 담당의라네. 자네는 지금부터 우주 밖으로 나가 유영하게 될 걸세. 내 지시를 듣고 잘 따르게.”

 

“뭐라고?”

 

갑자기 뒤에서 떠밀리는 듯한 감각이 그를 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이미 우주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오, 바농의 쏘라작이시여…… 니미럴!”

 

“제트팩은 사용할 줄 아나? 오른쪽 주먹을 쥐면 오른쪽으로, 왼쪽 주먹을 쥐면 왼쪽으로 회전하네. 오른쪽 발등을 펴면 고도 상승이고 왼발이 하강이야. 내 말 알아들었나?”

 

죄수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자기 등에 걸린 제트팩이 투명한 불꽃을 뿜고 있었다. 그리고 별들이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그는 새하얗게 질린 채 소리쳤다.

 

“당장 제트팩을 멈춰!”

 

“속도 조절 기능은 좀 어려운데, 양손을 동시에 주먹 쥐면 감속이고 발등을 동시에 펴는 게 가속이야. 동시에 움직이는 테크닉이 중요하네. 한 번 해보겠나?”

 

“그건 어떤 개자식이 만든 조작법이야?”

 

“연습은 최대한 빨리 해 보는 게 좋을 걸세. 조금 있으면 반중력장 권외로 나가서 소행성대 한복판을 날고 있게 될 거거든.”

 

“뭐라고?”

 

그는 조금 버둥거렸는데, 제트팩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빠르군, 좋아!”

 

“안 돼, 기다려! 잠깐!”

 

“G5, H5 지점, 반중력 설정 해제.”

 

의사의 것과는 다른 목소리가 조금 멀리 있는 곳에서 불분명하게 전해졌다. 그의 눈앞에서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굴절과 함께 시야가 탁 트이는 듯한 효과가 일어났다. 별빛과 대조되는 암흑물질의 색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위력으로 서로가 서로를 박살내고 있는 크고 작은 소행성 비행체의 모습들도.

 

“이이이런 니미!”

 

죄수의 정신적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피커를 꺼림칙한 표정으로 가리키며 연구원이 물었다.

 

“괜찮을까요?”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본들 늦었네. 할 수 있으리라 간절히 믿는 수밖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마음가짐을 충고하는 의사의 모습은 연구원에게 조금 더 꺼림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죄수는 최대한 눈에 담지 말고 안전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안전줄 120~130m 지점 중력자 설정 부팅.”

 

엔지니어가 바쁘게 중얼거렸다.

 

“완료. 유동적인 작용점 전환 스탠스 적용. 반중력장과의 수평 조절 작업 실시합니다.”

 

“10시 방향 지름 30m 가량의 소행성 접근 중. 속도를 늦춰.”

 

제1갑판장이 날카롭게 지시했다. 의사는 두 주먹을 꽉 쥐라는 무전을 쳤다.

 

“갑자기 감속하면 안전줄이 혼자 튀어나갈지도 몰라요. 크레인에 제동을 걸게요.”

 

연구원이 레버를 조작했다. 죄수가 허공에 두 팔을 뻗은 채 멈춰서 빙글 돌았다.

 

“수평 조절 완료. 통신 점검 중.”

 

“소행성이 통과했다. 진행해도 좋습니다.”

 

“왼쪽으로 회전을 줘. 줄이 엉킬 수 있네.”

 

“크레인 브레이크 풀겠습니다.”

 

“기뢰를 매설한 소행성이 점점 멀어진다. 함선 좌측면에 가스 분사를 실시한다. 압력은 퍼낸스 단위로 3, 0.5초간.”

 

“좌측 선체 가스 분사, 퍼낸스 단위 3, 0.5초간. 실시합니다.”

 

제1갑판장이 부함장의 지시를 복명복창하며 계기판을 설정했다.

 

“죄수가 반중력장 경계면을 통과했습니다.”

 

“고도를 조금 낮추게, 좋아.”

 

“안테나 교차 지점 설정 이상 없음. 안전줄 중력자 설정 확인. 이상 없음. G5, H5 지점 반중력장 재전개 하겠습니다. 3, 2, 1. 실시.”

 

환상적인 부팅음이 함교 안에 펼쳐졌다.

 

“통신에 이상 없나?”

 

“야 이 개새끼들아!”

 

“죄수 역시 반중력장의 영향을 받았어요. 가속이 붙습니다.”

 

죄수가 걸쭉한 수프의 파도 위를 떠다니는 듯 조금 허우적거렸다. 기술자들의 손과 입이 한층 빨라졌다.

 

“안전줄 130~140m 지점으로 중력자 설정 변경.”

 

“11시 방향, 소행성 접근 중! 현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앞을 쳐다보게. 돌아보지 말고. 가운데 검은색 물체가 박힌 소행성이 보이나?”

 

“소행성의 접근 경로가 위험한데요?”

 

“함내 무기 사용으로 차단 가능합니다. 플라즈마 캐논 충전 중입니다.”

 

“안전줄 140~150m 지점으로 중력자 설정 변경.”

 

“이제 속도를 조금 줄이게. 아니, 돌지 말고! 집중하게!”

 

“저 멍청이. 투사각이 꼬였어요! 잡아당겨야 해!”

 

“아니! 크레인을 풀게! 함선을 좌향 8도 방향으로 급선회하겠어.”

 

부함장이 조타장치를 돌렸다. 호송함 석빙고가 매끄럽게 검은 바다를 헤쳤다.

 

“안전줄 140~150m 지점, 150~160m 지점…… 좋아, 설정 변경.”

 

“으아아아아!”

 

“플라즈마 캐논 충전 완료. 그렇지만 저건 쏠 필요가 없어졌군.”

 

“방향은 안정됐어요. 하지만 이대로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함선은 다시 우향으로 돌린다. 2도씩 선회해서 본래 항로에 맞추겠어.”

 

“크레인 제동할게요.”

 

“천천히 잡아주게.”

 

“11시 방향 지름 50m 가량의 소행성 접근 중. 이번 건 큽니다.”

 

“쏴야겠군. 준비하게.”

 

“안전줄 160~170m 지점으로 중력자 설정 변경.”

 

“플라즈마 캐논 발사 시퀀스 돌입.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움직이지 말게. 그대로 가만히 있어.”

 

“목표 고정. 발사 명령 내려주십시오.”

 

“발사하게.”

 

“발……” 함장의 가냘픈 목소리는 부함장의 재빠르고 확고한 지시에 가려졌다.

 

“발사합니다. 3, 2, 1.”

 

함선이 크게 요동쳤다. 모두의 눈앞에서 전광판에 화려한 불꽃이 수놓아졌다. 대원들은 잠시 홀린 듯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거대한 폭발의 잔향이 함내에 울렁거리는 기류를 쏘아 보내주었다.

 

“이런 니이미럴 개애새끼들아아아!”

 

유황불을 배경 삼아 떠 있는 ‘바농의 소화기를 던진 자’는 무사했다. 의사는 그에게 양 주먹을 꽉 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제 다 왔어. 방향을 유지해서, 조심히 정면의 소행성에 착륙하게. 검은 물체에 직접 착륙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착륙할 때의 진동으로 기뢰가 폭발하지는 않을까요?”

 

“뭐야? 너 이 새끼 방금 뭐라고 그랬어?”

 

“그러니 아주 신경 써서 착륙해야 할 걸세.”

 

죄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온 힘을 다해 양손에 힘을 줬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 하수구 뚜껑만 한 검은 물체가 박혀 있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고, 잔구멍이 가득한 소행성의 꺼끌꺼끌한 감촉을 그러모아 쥐었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그의 몸이 점차 소행성 가까이로 끌려 들어갔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는 그 표면 위에서 우아하게 회전했다. 회전 속도는 무척 느렸다. 저 멀리 붉은 성운과 푸른 별들이 다가오는 듯 멀어지며 장황한 곡선을 그렸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역사적인 단어 하나가 검은 페이지에 막 작성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가 마치 우주를 재는 시계 바늘처럼 느껴졌다. 그가 이렇게 회전하고 있는 한, 저 빛의 궤적은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책에 또 한 가지 장을 소박하게나마 보탤 것이다. 그는 일순간 진정한 의미의 우주여행을 바로 지금에야 비로소 맛보고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20초 뒤, 그의 두 발이 소행성 표면에 맞닿았다. 이성은 안정감을 되찾았고, 그의 귓가에는 다시 무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해냈군! 잘 했어.”

 

“다행히 폭발하진 않았군요.”

 

“이제부터가 제일 중요해! 오른쪽 하의 주머니를 뒤져 보게. 드라이버와 주사기가 있을 거야.”

 

그는 오른쪽 하의 주머니의 잠금을 풀고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과연 드라이버와 주사기가 들어 있었다.

 

“중요한 물건이니 놓치지 않도록 하게. 주사기는 가슴의 안전 고리에 연결하고, 드라이버는 손목 쪽에 연결하게.”

 

그는 그 말대로 두 물건의 후크를 안전 고리에 이어 붙였다. 계속해서 지시가 있었다.

 

“이제 드라이버를 잡고 정면을 보시오. 검은색 뚜껑이 보일 텐데, 3시 방향과 9시 방향의 덮개를 젖혀서 조임을 푼 뒤 뚜껑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시오. 뚜껑이 분리될 겁니다.”

 

의사와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무튼 죄수는 하라는 대로 했다.

 

“뚜껑을 진동이 생기지 않도록 아주 조심히 지면에 내려놓으시오.”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드라이버를 다시 잡으시오. 가운데에서 조금 아래에 하얗게 표시된 구멍이 있소. 드라이버를 구멍에 꽂아서 밑에서 위로 들어 올려 보시오. 내부 덮개가 열립니다.”

 

내부 덮개를 여니 전선 다발과 유리관 두세 개가 정렬된 익숙한 모양새의 무언가가 드러났다.

 

“중앙의 유리관 아래에 연결된 고무관이 보이시오? 그 관을 따라가 보면 아주 작은 막대 유리관이 구석에 붙어 있을 겁니다. 찾았습니까?”

 

“예.”

 

“내용물의 색깔이 어떻게 되죠?”

 

“은색.”

 

“좋습니다. 그 관을 고정하고 있는 두 개의 걸쇠를 당겨 풀고 그 위치에서 뽑아내세요. 천천히.”

 

그는 집게손가락 두 마디만 한 길이의 유리관을 집어 들었다.

 

“이제 주사기를 한 손에 쥐시오. 관을 막고 있는 고무 패킹에 찔러 넣어 내용물을 충분히 채취하시오.”

 

그는 내용물의 절반가량을 주사기에 옮겨 담았다.

 

“됐어! 이제 그건 내버려두고 주사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단단히 잠그시오. 드라이버는 필요 없으니 갖다 버리고.”

 

시키는 대로 했다.

 

“이제 안전줄을 잡고 함선으로 복귀하면 됩니다.”

 

“이봐, 저것 좀 봐!”

 

누군가 깜짝 놀라 외쳤다. ‘저것’의 위치를 지시하는 말은 없었지만, 무엇을 말한 것인지 곧 알 수 있었다. 모두 죄수가 서 있는 소행성 뒤편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건 둥그스름한 모양의 또 다른 소행성이었다. 그러나 다분히, 훨씬 더, 엄청나게 무지막지한, 특대형 소행성이었다.

 

“20km…… 50km……? 아니, 준어스름진달래급 수준이잖아……!”

 

“어서 돌아와요! 빨리!”

 

“안 돼! 자리에 대기하라고 해!”

 

부함장이 날카롭게 지시했다. 그는 몇 초 사이에 상황을 완전히 진단했다.

 

“저 크기를 봐. 이 시점에 반중력장을 한 구역이라도 꺼버리면, 제어 장치에 과부하가 걸릴 거라고. 저걸 완전히 튕겨낼 때까지는 필드를 유지해야 해!”

 

“그럼 저 친구는 어떡하지?”

 

제1갑판장이 화면의 축척을 계산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다리십시오, 워낙 크기가 커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입사각을 볼 때 사실은 약간 스치는 정도로만…… 뭐, 뭐야? 저 새끼 뭐하는 거야?”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거대 소행성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죄수가 다급히 안전줄을 붙들고 함선으로 되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이봐, 움직이면 안 돼!”

 

“안전줄을 놓아! 정지하라고!”

 

“미친놈, 가만히 있으라고 해!”

 

“반중력장을 꺼야 합니다!”

 

“여기 빨간불 안 보입니까? 지금도 출력이 빠듯해서 간신히 오버클럭으로 버티는 중이라고요!”

 

“부딪히겠군, 부딪히겠어.”

 

“어떻게 좀 해 봐요!”

 

“저런 게 대체 왜 외곽 지대를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빌어먹을, 그만 움직이란 말이야!”

 

죄수가 함선과 약간 떨어진, 반중력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지점과 결국 충돌했다. 그는 마치 침대 매트리스에 부딪듯 부드럽게 속도가 줄었다. 그리곤 거기서 더 속도가 줄다가, 이내 날아온 방향으로 도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우와아아아안돼애애애애애애…….”

 

“병신 같은 새끼.”

 

“안전줄을 잡아 봐!”

 

“아니, 저기서 그대로 붙잡으면 분명히 저 소행성과 부딪힌다!”

 

“엔진을 최고 출력으로 가동해! 긴급 발진으로 끌어내야겠어!”

 

“오 세상에, 저 소행성이 저쪽 시야를 다 가려버렸어요.”

 

거대한 소행성은 위에서부터 떨어져 마치 온 하늘을 대상으로 하는 일식처럼 창밖을 어둠으로 뒤덮었다. 발광성운도, 이리매 쌍성도, 기뢰가 설치된 소행성도 이미 보이지 않았다. 곧 안전줄 끝에서 허우적거리던 죄수마저 그 뒤편으로 사라졌다.

 

“하느님 맙소사.”

 

“이럴 순 없는 거야.”

 

“어떻게 된 거야? 긴급 발진은?”

 

“진행 중입니다. 폐물 같으니! 이따위로 느려서야.”

 

“안전줄이 소행성에 걸렸어요!”

 

“부하가 장난이 아닐 텐데.”

 

안전줄이 소행성에 끌려 들어가면서 함선의 방향이 살짝 일그러졌다. 항로 기준으로, 그들은 수평 상태를 벗어나고 있었다.

 

“위험하다, 이건 안 돼!”

 

“니미럴! 어디까지 다가오려고 하는 거야?”

 

“튕겨내, 어서, 제발!”

 

급박한 목소리가 애타게 이어졌다. 그러나 모두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덜컥,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계기판의 한쪽에서 등 하나가 팟 하고 꺼졌다.

 

“안전줄이 뽑혀 나갔습니다.”

 

“제기랄 어처구니가 없군!”

 

“끝장이야.”

 

“이럴 순 없는데.”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거대 소행성은 점차 굼떠지다가 자기 자신의 반작용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힘이 부족함을 알고 조용히 물러났고, 방향 잃은 외로운 존재가 되어 지류에서 튕겨 나갔다. 거대한 흑갈색 바위는 썰물을 뒤쫓아 가는 거북이처럼 우주 저편으로 사라졌다. 함선에 가해진 추가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곧 뒤늦은 긴급 발진이 실행되었다.

 

 

 

저녁 식사는 호화롭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졌다. 검붉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송아지 고기와 걸쭉하니 국물이 진한 황금빛 야채 수프,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탱글탱글한 생선알, 찹쌀과 호두로 빚은 떡과 술이 오색찬란하게 번득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기에서 피어오르는 강렬한 불 냄새 사이로 풍미를 돋우는 은은한 송이버섯 향내가 감미롭게 맴돌았다. 뼈를 발라낸 돼지 앞다리살이 노르스름한 튀김 옆에서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말캉한 지방과 부드러운 살코기 위에 고소한 마늘 소스가 뿌려졌다. 이제는 환상적인 맛의 향연이 입안에서 솜씨를 발휘할 일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 판국에 무슨 잔칫상이야?”

 

부함장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내뱉었다. 제2갑판장은 손에 쥐고 있던 족발 쌈을 태연히 입안에 밀어 넣으며 답했다.

 

“재료가 썩기 전에 요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입에 든 것을 채 두 번도 씹기 전에 다시 젓가락을 들더니 깐풍기 한 조각을 자기 접시로 가져왔다.

 

“그히고 내래 조리실에 혀박혀 이썼쓰니 임므가 어뜨게 돌아가는지 제가 어뜨케 알 쑤 있었겠씁니까?”

 

그의 말은 벌써 음식물들과 함께 찢기고 뭉개지기 바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원들은 착잡한 마음으로 자기 접시에 조용히 음식을 옮겨 담았다. 식탁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식사는 단출하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제2갑판장이 기세 좋게 소 혀 요리 여섯 점째를 해치우고 입을 닦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서 이미 대원들의 반수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어떡하긴, 배를 돌려야지.”

 

부함장의 말에 함장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가 대신 물었다.

 

“배를 돌린다고요?”

 

“그래.”

 

“돌려서 뭐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