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없는 우주

  • 장르: SF
  • 평점×25 | 분량: 1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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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없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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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원 최소 두 명, 선객 최대 여덟 명의 작은 우주배였다. 실제 승조원은 한 명이었는데, 그래서 선장 겸 항법사 겸 기관사였는데 (물론 범용 그림자 하나가 보조해주었다) 스스로를 다만 뱃사공이라고 일렀다. 선객도 많지 않았다. 앳된 시동을 데린 늙은 도사가 하나, 그리고는 나이와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승니가 두 명, 젊은 유생 한 명이 전부였다. 흥미로운 조합이군. 사공이 생각했을 때, 그림자가 말했다. 그다지 흥미로운 구성은 아니군요. 이곳, 제국의 변방은 온갖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 들끓으니까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올 수 있는 흔한 조합일 뿐입니다. 승니 둘이 배를 빌리려 했을 때 뱃삯이 생각보다 많자 다른 배를 흥정하던 도사가 관대하게 끼어들었을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유생이 끼어든 건 예상되지 않았던 것이 맞습니다. “너는 네 예상에 한계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자각해야만 해.”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바로 말을 받았지만 사공은 단지 콧방귀만 뀌었을 뿐이었다.

우주배는 그 정도 급의 작은 배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추진부의 반대편에 조타실이 있고, 그 가운데에 주방 겸 거실이 있고, 거실에서부터 가로 세로 네 방향으로 작은 욕실 겸 화장실이 딸린, 중심축을 중심으로 회전해서 중력을 모사하는 객실이 있고 객실마다 비상시를 위한 밀폐옷이 두 벌씩 있고 바깥 방향으로 외부 출입용 공기문이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가운데 주방 겸 거실의 사용 시각이 각각 제각각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차츰차츰 동기화되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모여 간편식 위주의 점심을 먹고 나면 도사와 그 시동이 혹은 또 승니들이 각자의 다기를 갖추어 차를 함께 마시기 시작했고, 그렇게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청담 혹은 현담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태음은 곧 태허이며, 만물의 어머니라네. 그것이 만물의 어머니인 까닭은 그것이 곧 태허이며 태음이기 때문이지.” 물량-역량 등가 관계식에 따르면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다고, 유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승니 둘은 그저 빙긋 웃으며 차를 한 모금씩 더 마실 뿐이었다. 도사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니, 한 번쯤은 참예하고 싶었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승니 중 하나가 쓴웃음을 입가에서 채 지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은혜를 입어 이렇게 동승하게 된 처지에서 말씀드리기 다소 실례이지만, 자연물을 너무 숭앙하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자연물을 인격화하는 것은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러나 도사는 빙긋 웃었다. “인격화하지 않고 자연을 다만 자연 그 자체로 대하는 것일 뿐일세. 인격화라는 것은 인간들만의 너무 비좁은 편견이 아니겠나? 왜 굳이 자연 그 자체인 인간의 본성을 굳이 구획지어 인간 본연의 것이라고 한정하시려는 건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분점이 있겠는가? 물론, 가능은 할 것이네. 그러나, 그래도, 그랬을 경우에, 그것은 오히려 귀 불문에서 그렇게도 떨치고자 하는 분별, 바로 그것이 아니지 않을까?” 승니들은 약간의 흥미를 느끼고 비로소 눈을 가늘게 뜨고 차를 홀짝이며 생각한 뒤 둘 중 하나가 천천히 답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도와 축생도부터도 그 길은 각각 서로 다릅니다. 하물며 무생물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분별심을 버린다는 것이 반드시 모든 구분과 구별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분별심을 버리는 것은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지, 주관과 내면으로부터 현실과 실재를 뒤섞어버리고 무명에 빠지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사는 웃었다. “도를 따르는 것을 무명에 빠지는 것이라고 하시는 건가? 좀 너무하신 거 아닌가?” 며칠간 모여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 동안 그들은 그 정도 농담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 “도가의 도와 불가의 도가 서로 다른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다른 승니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주는데 사공이 끼어들었다. “성스러운 현인들의 가르침을 모은 제국의 학문은 유불도 삼도를 아울렀다고들 합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사는 이런 이런 하는 표정으로 눈을 굴렸고 승니들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생은 갑자기 주목을 받자 얼굴을 붉히며 주저했다. “아, 음… 저는 실험성리학자라 이론은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선학들도 견해가 서로 엇갈리는 극히 미묘한 부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도사가 웃으며 놀렸다. “젊으시군. 그저 제국의 표준 학설을 읊으면 될 것을 굳이 답을 피하려 든다는 것은 표준 학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백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당황해 하는 유생 앞에서 도사는 말을 돌렸다. “물론, 표준 학설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말씀하신 것처럼 인물성동이론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명확하거나 분명하지 않아 학자마다 견해가 다른 지점이긴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표준적인 이기론에서 아예 벗어난 학설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 이제는 승니가 끼어들어 유생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몰다니 짓궂으시군요. 소승들은 게으른 땡중들로서 단순히 구경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실험성리학자시라면 혹시 관측이나 실험을 위해 가시는 건가요?” 화제를 돌려준 승니에게 감사하며 유생이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도사도 호기심을 보였다. “어디서 의뢰나 후원을 받은 연구인가?” 그랬으면 이런 허름한 배에 탔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은 물론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어서 유생은 다만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인 탐구입니다.” 도사가 또, 소를 팔았나 집도 팔았나 쓸데없이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다른 승니가 물었다. “무엇을 어떻게 관측하시려는 겁니까, 짐이 많거나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그러자 유생은 슬쩍 사공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며 입을 떼었다. 어차피 조만간 해야만 했을 말이었다. “관측 기구는 대개 신호 수집 장치가 매우 크고 무겁습니다. 제가 가져온 것은 수집된 신호의 해독 해석기-정보 변환 처리기만입니다. 신호 수집 장치는 이 배의 것을 사용해도 충분합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사공이 당연히 입을 열었다. “별도의 대여료를 냈을 때만 충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승선 전에 먼저 협의했어야 합니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질문은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는 모두들 알았다. 그러므로 유생도 답하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시설 대여료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공은 완강했다. “태허 주위를 감도는 것은 최신의 우주배로서도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이 배로 그런 복잡하고 정교한 항해술을 시도하는 도중에 이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의한 무의미한 시도로 인해 간섭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경솔한 짓이 될 수 있습니다.” 유생은 답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공이 말을 끊었다.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생은 밀리지 않았다. “그 또한 이해합니다. 하지만 충분합니다.” 사공은 더 이상 반론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기관 점검을 구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관 점검은 구실만은 아니었다. 사공은 우주배의 진행 방향 반대편인 추진부로 내려가서 오행로를 점검했다. 이상 없습니다. 그림자가 말을 걸었지만 사공은 말을 잘랐다. “네가 이상이 있을 수도 있어.”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그나저나 이 배의 항해용 관측기구들을 정말로 빌려주실 생각입니까? “생각 중이야.” 유생의 정보 처리 장치에도 기능자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사공은 오행로의 출력 기록을 훑어보며 답했다. 그리고, “연료 공급이 좀 불규칙한 거 같은데?” 잠시 후 그림자가 답했다. 3번 연료관 조절 장치가 오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절판의 축이 뒤틀린 듯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사공은 3번 연료관을 잠그고 분해해서 조절판 축을 교환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교한 작업을 마친 뒤, “너는 계속 너의 오작동 가능성을 명심해야 해.” 가볍게 잔소리를 남기며 추진부에서 나왔다.

*

“태허까지는 사흘 남았습니다.” 다음날 사공이 선언했다. 저녁 시간이었다. 후식으로 승니들이 내놓은 곶감 조각을 먹던 좌중은 별 감흥 없이 그 말을 들었다. 사공은 씩 웃었다. “여객선에 익숙하시니 그게 뭐냐 싶으시겠죠. 하지만 태허 주변에는 정해진 항로가 없습니다. 시공간의 왜곡이 지극해지므로 예정 항로를 미리 잡을 수 없습니다. 지금 추정치는 예상 가능한 거리 이틀 치에 예상할 수 없는 시간 하루를 보탠 셈입니다.” 도사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길이라 이를 수 있는 길은 길이 아니지.” 승니들은 짧게 마주 보더니 하나가 질문했다. “그럼 그 이틀 뒤의 하루가 바로 우리가 한 세상의 온전한 적멸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것은 그 후의 일이 되는 것입니까?” 사공은 무심하게 답했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으나, 실제로 태허에 접근하면,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시간과 공간은, 즉, 크고 큰 집인 우주 그 자체는, 매우 불균형해지며 불규칙해집니다. 공간은 줄어들고, 시간은 늘어집니다. 이해하기 힘듭니다.” 승니들이 말을 받았다. “굳이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주는, 세계는, 현실은, 결코 인간의 이해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해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삶은, 그리고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균형하고 불규칙하며, 우리는 다만 그것을 바로 보고, 그것 외의 것을 욕심내거나 집착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사공의 눈이 심술궂게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실례지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다른 가르침인 불가의 견해이며, 우주 만물은 오로지 조화로우며, 그 자체로 질서가 내재되어 있으며, 인간과 사회 역시 그러하다는 제국의 학문에서는 납득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대는 혹시 저 태허마저도 제국의 학문적 관점에 편입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닙니까?” 유생은 그러나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그렇게 흔한 오해를 하실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요. 아시지 않습니까? 제국의 학문은 결코 형이상학에 경도되어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을 실재에 덮어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주만물의 실재에 깃들어 있는 조화와 질서를 직접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진실에, 진리에, 자신의 삶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에는 모두 음과 양을 내포한 태극이 깃들어 있으며, 그럼으로써 오행이 운행되며 공간 안에서 시간이 흐르고 삼라만상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인간 또한 자신의 안에 내재된 리인 성에 따라 삼라만상의 운행의 조화로움을 본받아 살면 되는 것일 뿐입니다.” 사공은 무심히, 관용구를 인용해서 유생의 말을 받았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모든 땅들에서도 이루어지는도다.” 유생이 다시 그 말을 받았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태초에 태극이 있었으니 태극은 곧 무극이었습니다. 그리고 태극에서 음과 양이 나오고, 음과 양에서 다시 오행이 어우러졌으며, 우주 그 자체가 태극과 음양과 오행으로 이루어졌으니, 우주 안의 모든 만물에 태극과 음양과 오행이 모두 내재되어 있습니다. 지나간 오래된 과거에 옛 성현들은 태극의 도에 대해서 지금처럼 정교하고 두터운 관찰과 지식을 갖지 못해 우주 만물을 상호대립적인 음양의 수준에서 이해하였으나, 지금 제국의 학문은 그보다 훨씬 상위의 태극과 무극의 관점에서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공이 말을 받았다. “그러니 내 말은 곧 제국의 학문이 그동안 무수히 많은 수정과 개정을 거친 것이 사실이니, 실험성리학자인 그대가 지금 여기서 하려는 것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대가 말했지만 초창기 제국의 철학은 음과 양의 구분을 엄밀히 해서 하늘을 양, 땅을 음, 남자를 양, 여자를 음, 빛을 양, 어둠을 음, 낮을 양, 밤을 음, 봄과 여름을 양, 가을과 겨울을 음, 해는 양, 달은 음, 홀수는 양, 짝수는 음으로 온통 우주만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으나, 후대에 그대의 선배에 해당하는 실험성리학자들이 음과 양은 모두 태극의 한 일면이며, 우주 만물에 내재된 것은 순수한 양이나 순수한 음이 아니라 태극 그 자체로서 가장 짙은 음도 양을 포함하고 있으며, 가장 진한 양도 음을 포함하고 있음을 발견한 뒤로 그 이론은 수정되었습니다. 가장 밝은 태양도 자세히 관측한 결과 (상대적으로) 차갑고 어두운 흑점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태극도와 마찬가지로, 실제 우주도, 양의 핵심에는 음이 깃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주는 명과 암으로 극명하게 구분된 단순명쾌한 곳이 아니라 온갖 짙고 옅음으로 가득 찬 회색 지대였습니다. 그 뒤로 제국의 도학자들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그들의 관점을 갱신했습니다. 음과 양 양쪽 모두 그 안에 태극이 깃들어 있으므로 단순히 음과 양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 우주 안에서 짙고 옅음에 따라 때로는 양으로, 때로는 음으로 그때그때마다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는 관점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을 근본부터 뒤바꾸어 버렸습니다. 양효와 음효의 64괘가 아니라 양효, 중효, 음효의 729괘로 확장된 신-주역이 그 시초였고, 64괘에 기반해 처음으로 인간의 지적 활동의 극히 일부를 모사할 수 있었던 초기 인공지능-기능자는 729괘에 기반한 신-주역이 적용되자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져 정말로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기능자-그림자로 발전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여성으로, 아녀자로서 바깥출입이 제한되었을 그대도 이렇게 온전히 교육받아 공적으로 사적으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유생은 말을 잠시 끊었다. “저는 저의 성별을 여성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사공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남녀의 구분은, 음양의 구분은 모두 지난 시대의 이야기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 바로 지난 시대에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바로 진리였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진리 역시 다음 시대에는 진리가 아니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대들, 실험성리학자들이 이 우주의 또 이상한 면을 새롭게 발견해내게 된다면 말입니다.” 유생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지금 상세하게 설명해주신 제국의 학문의 변화는 정정이나 개정 같은 질적 전환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주만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다 정교해지고 치밀해진 것이며, 그럼으로써 다만 발전한 것일 뿐입니다. 태허는 이미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주의 질서를 따르고 있을 것이며, 저는 그것을 확인할 것일 뿐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멈춘 사이 도사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격의 없이 한담하는 자리이니 부담 없이 흰소리 하나를 보태자면, 다들 교양이 두터우시니 이 몸이 속한 가르침에서는 인간을 우주의 한 부분이자 또 하나의 우주로 인식하고, 몸 안쪽의 우주와 몸 바깥쪽의 우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수행을, 정진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는 하시지 않을지라도 이해는 하시리라 믿네. 마찬가지로, 이 몸의 가르침 내에서 은밀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에 대해서 각자의 가르침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들으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환기만 잠시 해드리자면, 이 우주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동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며, 양을 상징하는 하늘과 음을 상징하는 땅 사이에서 인간이 중간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비롯되어, 과거에는 이 우주 전체가 지금과는 또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승니 한 명이 조용히 말을 받았다. “홍모인들, 벽안인들이 살아 있을 때 이 우주는 지금과 달리 움직였다는 이야기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도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공이 거실 한켠의 화면을 보면서 끼어들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부터 이 우주배는 통신 두절 지대에 들어왔습니다. 시공간의 곡률이 임계치 이상 왜곡되기 시작해서, 신호가 빠져나가기 힘듭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 자신은 여기서 오간 대화에 대해서 추후 다른 곳에서 발설할 생각은 없습니다.” 도사는 잔잔히 웃었다. “부추기는 건가. 어쨌거나, 하던 말을 하던 김에 마저 끝내자면, 아득히 오래 전, 지정 칠년, 개의 해에 시작된 역병으로 홍모인, 색목인 들이 모조리 죽어버리기 전에는 우주는 제국의 학문의 관점과 그들의 관점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었다고 하네. 그들의 우주는, 제국의 우주와는 달리, 리 없이, 다만 기로만 움직이는 우주였다고 하지. 그래서 그들의 학문은 오직 그, 기로 움직이는 우주를 이해하는 것일 뿐, 리를 알지 못하여 제국의 학문처럼 우주의 이치를 이어받아 개개인의 본성을 발현하여 인격을 도야하는 것과는 무관했다고… 어쨌거나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런 것이네. 만일, 그와 같이, 이 우주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생각하며 대하느냐,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면, 어쩌면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혹은 누가 어떻게 생각하며 대하든, 바라보든, 그에 부합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주의 본질은, 실상은, 그 모든 이들이, 누구든 바라보았을 때 그대로 나타나지도록 가능한 모든 우주가 겹쳐져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승니 하나가, 어쩌면 다른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마음은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우주와 이어져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제국의 학문에서는 인간도 우주의 일부이므로 우주의 질서가 인간에게도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지, 말씀하신 것과는 다릅니다. 배움이 얕지만, 귀하가 귀의한 가르침에서도 인간의 내부도 우주처럼 복잡하고 다양하다고만 할 뿐 인간의 의지나 인식이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도사님은 설마 리와 기의 우주 대신 영원한 도의 우주를 꿈꾸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도사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살짝 슬픈 표정이었다.

*

“태허까지는 이틀 남았습니다.” 사공이 말을 건네자 유생이 말을 받았다. “저에게만 환기시켜주시는 것은 이 우주배의 신호 수집 장치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사공은 살짝 웃었다. “그대에게 아량을 베푸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얼마까지 낼 수 있습니까?” 몇 번이나 속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유생은 겉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렇게 물어주시는 것 자체가, 협상을 허락해주신 것부터가 이미 반쯤은 승낙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내면 되겠습니까? 저는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선비입니다.” 사공은 웃음을 거두었다. “이전에 말했듯이, 앞으로의 항해는 통상적인 항로와 항법이 아니며, 그대의 관측과 실험은 자칫 이 배에 탄 모두를 극히 위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뱃삯을 모두 받았으니 더 이상 이문을 남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대는 그대의 실험과 관측을 위해 이 배의 모두를 얼마나 위험하게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입니까?” 유생도 표정을 굳혔다.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은화 백오십 문.” 사공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가진 돈은 얼마입니까? 그게 전부입니까?” 유생이 숨 한 번 쉴 시간 뒤에 답했다. “제 전 재산입니다.” 사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돈이 있을 것입니다.” 유생이 얼굴을 붉혔다. “집에 갈 차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공은 답하지 않았다. 유생은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은전 세 닢 더. 이제는 정말로 없습니다.” 사공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은전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제 그대는 이 배에 대해, 조타실과 관측 장비에 대해 제한된 접근권을 갖습니다. 유효 기간은 이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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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접근입니다. 승인할 수 없습니다. 그림자가 말했다. 유생은 쏘아붙였다. “넌 승인해야 해. 난 접근권을 가지고 있어.” 그림자가 응답했다. 제한된 접근권입니다. 이 정도 깊이까지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유생은 계속 밀어붙였다. “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이미 알아. 그리고 이건 그걸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야.” 그림자는 응답했다. 실시간 자료 처리 용량이 너무 큽니다. 자칫하면 항법 자료 처리가 늦어지거나 끊어질 수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유생은 잠시 고민하다 물러섰다. “좋아. 굳이 실시간 처리까지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지점에 임시 기억 공간을 추가하고 정보 처리 순위를 후순위로 돌릴게. 그러면 어때?” 그림자의 응답에 잠시 지연이 발생했다. 그리고, 괜찮을 듯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처리 장치에는 별도의 기능자가 깃들어 있군요. 이것은 그것과 정보 자료를 상호 교환하고 싶지 않습니다.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유생은 답했다. “보안 원칙 때문이겠지?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런데, 너 그러면 지금까지 다른 기능자와 자료 교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야?” 그림자가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유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특이하네.” 그림자가 다시 말을 걸어서 유생의 생각이 끊겼다. 이 우주배의 통신 장치를 사용해서 수동적인 신호 수신만 하시는데 보다 능동적인 탐사를 하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작은 탐사기를 가져오긴 했어. 이 배가 더 접근할 수 없는 지점에서 자동으로 내보내볼 생각이야.” 제 말씀은 이 우주배의 능동 탐지 장치를 사용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하는 것입니다. 유생은 작게 웃었다. “태허에 대한 격물적 관점의 자료가 없는 모양이구나.” 유생은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허공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 할까. 우주만물이 모두 그렇듯이 별들도 태초에 허공의 기가 모여 뭉쳐져서 만들어졌다는 건 알고 있겠지? 무거운 기들은 단단하게 뭉쳐져 토의 기운을 띄고 지구형 행성들이 되었고, 가벼운 기들은 성기게 뭉쳐져 물의 기운을 띄고 목성형 행성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고, 가벼운 기들이 훨씬 더 많이 뭉쳐진 경우에는 오히려 화의 기운으로 전환되어 불타올라서 빛과 열을 뿜는 항성들이 된 것도? 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이기 때문에 항성들도 나중에는 결국 소멸하게 돼. 우리는 이미 많은 관측 자료들을 통해서 별들의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어. 대다수의 별들이 마지막에 회광반조로 화의 기운이 극히 강해지는데, 어떤 별들은 다만 부풀어 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아서 화의 기운이 다시 금의 기운으로 바뀌어 단단하게 뭉쳐지고, 어떤 별들은 별 자체의 기를 팔방으로 흩뿌리며 눈부시게 불타오른 다음 사라지기도 해. 그 경우에도 별의 남은 기는 무거운 금의 기운으로 바뀌어 뭉쳐지고 다져지지. 불은 대개 쇠를 녹이지만, 어떤 불은 타고난 뒤에 쇠를 남기기도 해. 그건 마찬가지로 아마 만물에 고루 깃든 음과 양, 태극과 관련된 것으로 보여. 그리고 태허는, 금의 기운이 지극해져서 새로운 금, 혹은 금 아닌 무언가로 변한 것으로 생각돼. 떠돌이별들이 떠돌지 않고 붙박이별 둘레를 빙빙 도는 이유는 지남철이 다른 지남철이나 쇳조각들을 끌어당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되어 왔지. 다만 지남철은 금의 성질만 가지기에 다른 금만 끌어당기지만, 별들은 순전히 기 자체가 뭉쳐진 것이라, 화의 기운을 띄든 토의 기운을 띄든 다른 기의 뭉치들끼리도 서로 끌어당기는 것 같아. 어떤 이론성리학자들은 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해. 기는 우주 만물에 모두 깔려있고 리 역시 기에 실려 우주 만물에 담겨 있으니까. 다만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지 않으니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거지. 그리고 또 어떤 이론성리학자들은 우주 만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기와 기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아니라, 우주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 우주-시공간이 기 자체인지 혹은 기와 별개인 보다 근원적인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론이 분분해. 아직은 관측-실험을 통해 입증되지 않았어. 그러나, 그와 별개로 어쨌거나, 기 자체가 기에 대해, 혹은 기보다 선행하는 무언가 근원적인 것에 대해, 어떤 영향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 그에 따르면 기가 극도로 뭉쳐진 태허는, 우주의 근원적인 바탕과 하나가 되어서,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상태로서, 빛마저도 끌어당겨 결코 빠져나올 수 없게 한다고 생각돼. 그러니까 제국의 학문은 저 미지의 천체에도 여전히 이해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야. 흔히 태허라고 하지만, 사실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꽉 차 있는 거지. 그런데 지극히 꽉 찬 상태는 오히려 텅 빈 것과 통하는 것이고. 그러니 이제 납득하겠어? 이 우주배의 능동적인 탐측 장치들은, 그러니까 전자기력이라든지, 집중된 빛의 경우에도, 무언가를 내쏘아서 되튕기는 것을 받아서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태허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빛마저도 끌어당겨 삼켜버리는 것이니까.” 그림자가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납득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납득했습니다. 과거에 태양에서 흑점이 발견되어 우주만물에 내재된 태극-음양이 실증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태허=태음에서도 흑점에 대응하는 백점과 같은 양의 요소가 발견되기를, 그럼으로써 제국의 학문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로군요? 유생은 짧게 웃었다. “그러면 좋겠어. 정말로 좋겠어. 하지만, 우리들, 훈련받은 실험성리학자들은, 관측값이 나올 때까지는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만 해. 그건 우리의 의무이고 유일한 의무이고, 유일한 덕목이야.” 납득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림자가 나직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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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태허에 닿습니다. 태허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사공이 선언하자 도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승니들은 두 손을 모아 가볍게 합장했고, 유생은 잠시 망설이다 사공을 계속 바라보았다. 사공은 짧게 웃었다. “망했네요. 이해하고 웃으실 줄 알고 한 허언이었습니다. 태허는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도 역시, 무언가 되비춰서 나오는 빛을 잡아내는 것이라, 모든 빛을 잡아채는 저 태허는 그 자체로는 결코 직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도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볼 수 없다면 기껏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승니 중 하나가 웃었다. “도사님께서 형태에 갇혀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신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도사는 진지하게 눈썹을 모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 태음은, 정말로 그것이 태음이라면, 순수한 음 그 자체로 그 본질은 아주 현묘할 것이야. 이른바 현빈의 문이지. 형태를 완전히 벗어버린 본질일 것인데, 도대체 그 누가 과연 그것을 보고 싶지 않겠어?” 유생은, 맞받아 말하지는 않았어도 마찬가지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랬군요. 결국은 그랬던 것이었군요. 거기서 우리 둘은 완전히, 철저하게 갈라지는 것이었군요. 태허는-태음은 그래도 우리들-실험성리학자들이든 이론성리학자들이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의 일부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우주 만물 중에 어느 그 무엇이 과연, 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리는 결코 기에 포착되지 않을 것입니다. 리는 곧 태극이며, 무극이며, 만물의 각각의 성 역시 즉 리이며, 그러므로 곧 또한 태극이며, 무극입니다. 우주 만물에서 각각 모두 음과 양은 그 내부에서 회전하고 있으며, 한시라도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을 잡아 그 시점에서 음과 양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지 판별할 수는 결코 없으며, 나아가 순수한 음이나 순수한 양은 결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음과 양의 개념은 본디 당신들 도가에서 유래한 것임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더라도 우리들 학자들은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 결국 그 지점에서 당신들과 제국의 학문은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군요.” 승니 중 다른 하나가, 유생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이 사공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는 다만 이 우주배의 탐지 장치만으로 태허를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것인가요?” 사공은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이 근처는 배경에 다른 별들이 촘촘한 편입니다. 태허는 그 주위에서 시공간은 극도로 왜곡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먼 주위의 별빛들은 빨려 들어가지 않고 다만 휘어져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들이 모이면 태허는 마치 광배를 두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태허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공은 유생을 쳐다보았다. “물론, 우리 도학자님께서는 이 배의 탐지 체계를 빌려 보다 정밀하게 관측하시게 되겠지만요. 그에 따라 조타에 조금 더 부담과 위험이 감수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각자 선실에서 밀폐옷을 꺼내 입고 조타실로 올라오십시오. 밀폐옷을 입어도 선내 회선으로 대화가 가능하지만, 상황을 감안하시어, 청담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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