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없는 우주

  • 장르: SF
  • 평점×25 | 분량: 1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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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없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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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원 최소 두 명, 선객 최대 여덟 명의 작은 우주배였다. 실제 승조원은 한 명이었는데, 그래서 선장 겸 항법사 겸 기관사였는데 (물론 범용 그림자 하나가 보조해주었다) 스스로를 다만 뱃사공이라고 일렀다. 선객도 많지 않았다. 앳된 시동을 데린 늙은 도사가 하나, 그리고는 나이와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승니가 두 명, 젊은 유생 한 명이 전부였다. 흥미로운 조합이군. 사공이 생각했을 때, 그림자가 말했다. 그다지 흥미로운 구성은 아니군요. 이곳, 제국의 변방은 온갖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 들끓으니까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올 수 있는 흔한 조합일 뿐입니다. 승니 둘이 배를 빌리려 했을 때 뱃삯이 생각보다 많자 다른 배를 흥정하던 도사가 관대하게 끼어들었을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유생이 끼어든 건 예상되지 않았던 것이 맞습니다. “너는 네 예상에 한계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자각해야만 해.”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바로 말을 받았지만 사공은 단지 콧방귀만 뀌었을 뿐이었다.

우주배는 그 정도 급의 작은 배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추진부의 반대편에 조타실이 있고, 그 가운데에 주방 겸 거실이 있고, 거실에서부터 가로 세로 네 방향으로 작은 욕실 겸 화장실이 딸린, 중심축을 중심으로 회전해서 중력을 모사하는 객실이 있고 객실마다 비상시를 위한 밀폐옷이 두 벌씩 있고 바깥 방향으로 외부 출입용 공기문이 있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가운데 주방 겸 거실의 사용 시각이 각각 제각각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차츰차츰 동기화되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모여 간편식 위주의 점심을 먹고 나면 도사와 그 시동이 혹은 또 승니들이 각자의 다기를 갖추어 차를 함께 마시기 시작했고, 그렇게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청담 혹은 현담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태음은 곧 태허이며, 만물의 어머니라네. 그것이 만물의 어머니인 까닭은 그것이 곧 태허이며 태음이기 때문이지.” 물량-역량 등가 관계식에 따르면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다고, 유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승니 둘은 그저 빙긋 웃으며 차를 한 모금씩 더 마실 뿐이었다. 도사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니, 한 번쯤은 참예하고 싶었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승니 중 하나가 쓴웃음을 입가에서 채 지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은혜를 입어 이렇게 동승하게 된 처지에서 말씀드리기 다소 실례이지만, 자연물을 너무 숭앙하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자연물을 인격화하는 것은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러나 도사는 빙긋 웃었다. “인격화하지 않고 자연을 다만 자연 그 자체로 대하는 것일 뿐일세. 인격화라는 것은 인간들만의 너무 비좁은 편견이 아니겠나? 왜 굳이 자연 그 자체인 인간의 본성을 굳이 구획지어 인간 본연의 것이라고 한정하시려는 건가? 인간과 자연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분점이 있겠는가? 물론, 가능은 할 것이네. 그러나, 그래도, 그랬을 경우에, 그것은 오히려 귀 불문에서 그렇게도 떨치고자 하는 분별, 바로 그것이 아니지 않을까?” 승니들은 약간의 흥미를 느끼고 비로소 눈을 가늘게 뜨고 차를 홀짝이며 생각한 뒤 둘 중 하나가 천천히 답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도와 축생도부터도 그 길은 각각 서로 다릅니다. 하물며 무생물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분별심을 버린다는 것이 반드시 모든 구분과 구별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분별심을 버리는 것은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지, 주관과 내면으로부터 현실과 실재를 뒤섞어버리고 무명에 빠지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사는 웃었다. “도를 따르는 것을 무명에 빠지는 것이라고 하시는 건가? 좀 너무하신 거 아닌가?” 며칠간 모여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 동안 그들은 그 정도 농담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 “도가의 도와 불가의 도가 서로 다른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다른 승니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주는데 사공이 끼어들었다. “성스러운 현인들의 가르침을 모은 제국의 학문은 유불도 삼도를 아울렀다고들 합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사는 이런 이런 하는 표정으로 눈을 굴렸고 승니들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생은 갑자기 주목을 받자 얼굴을 붉히며 주저했다. “아, 음… 저는 실험성리학자라 이론은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선학들도 견해가 서로 엇갈리는 극히 미묘한 부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도사가 웃으며 놀렸다. “젊으시군. 그저 제국의 표준 학설을 읊으면 될 것을 굳이 답을 피하려 든다는 것은 표준 학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백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당황해 하는 유생 앞에서 도사는 말을 돌렸다. “물론, 표준 학설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말씀하신 것처럼 인물성동이론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명확하거나 분명하지 않아 학자마다 견해가 다른 지점이긴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표준적인 이기론에서 아예 벗어난 학설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 이제는 승니가 끼어들어 유생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몰다니 짓궂으시군요. 소승들은 게으른 땡중들로서 단순히 구경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실험성리학자시라면 혹시 관측이나 실험을 위해 가시는 건가요?” 화제를 돌려준 승니에게 감사하며 유생이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도사도 호기심을 보였다. “어디서 의뢰나 후원을 받은 연구인가?” 그랬으면 이런 허름한 배에 탔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은 물론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어서 유생은 다만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인 탐구입니다.” 도사가 또, 소를 팔았나 집도 팔았나 쓸데없이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다른 승니가 물었다. “무엇을 어떻게 관측하시려는 겁니까, 짐이 많거나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그러자 유생은 슬쩍 사공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며 입을 떼었다. 어차피 조만간 해야만 했을 말이었다. “관측 기구는 대개 신호 수집 장치가 매우 크고 무겁습니다. 제가 가져온 것은 수집된 신호의 해독 해석기-정보 변환 처리기만입니다. 신호 수집 장치는 이 배의 것을 사용해도 충분합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사공이 당연히 입을 열었다. “별도의 대여료를 냈을 때만 충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승선 전에 먼저 협의했어야 합니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질문은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는 모두들 알았다. 그러므로 유생도 답하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시설 대여료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공은 완강했다. “태허 주위를 감도는 것은 최신의 우주배로서도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이 배로 그런 복잡하고 정교한 항해술을 시도하는 도중에 이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의한 무의미한 시도로 인해 간섭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경솔한 짓이 될 수 있습니다.” 유생은 답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공이 말을 끊었다.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생은 밀리지 않았다. “그 또한 이해합니다. 하지만 충분합니다.” 사공은 더 이상 반론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기관 점검을 구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관 점검은 구실만은 아니었다. 사공은 우주배의 진행 방향 반대편인 추진부로 내려가서 오행로를 점검했다. 이상 없습니다. 그림자가 말을 걸었지만 사공은 말을 잘랐다. “네가 이상이 있을 수도 있어.”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그나저나 이 배의 항해용 관측기구들을 정말로 빌려주실 생각입니까? “생각 중이야.” 유생의 정보 처리 장치에도 기능자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사공은 오행로의 출력 기록을 훑어보며 답했다. 그리고, “연료 공급이 좀 불규칙한 거 같은데?” 잠시 후 그림자가 답했다. 3번 연료관 조절 장치가 오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절판의 축이 뒤틀린 듯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사공은 3번 연료관을 잠그고 분해해서 조절판 축을 교환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교한 작업을 마친 뒤, “너는 계속 너의 오작동 가능성을 명심해야 해.” 가볍게 잔소리를 남기며 추진부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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