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항지

  • 장르: 호러, 역사 | 태그: #좀비 #일제강점기 #조선
  • 평점×69 | 분량: 117매
  • 소개: 일제강점기 어느 작은 어촌 마을, 먼 바다에 본 적 없이 거대한 난파선이 나타난다. ‘너’는 그 뱃전을 온통 뒤덮은 검붉은 녹물이 불길하기만 하다. 더보기
작가

기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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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이 좋다.

난생 처음 올라온 뭍에서 숨이 넘어가며 헐떡이는 멸치 눈깔에 비친 너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너는 눈이 좋다. 어부들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맞춰 후릿그물이 출렁출렁 춤을 춘다. 배가 연안을 타고 둘러준 그물의 양 끝을 붙들고 어부들은 이마에 핏줄이 돋도록 힘을 준다. 사방에서 좁혀오는 그물 속에서 수 천 수만의 대멸치들이 서로의 무게로 짓뭉개지며 몸부림치고 있다. 눈앞은 온통 번쩍이는 은빛뿐이다.

모래톱 위에 끌려오고도 아직 살아 퍼덕이는 놈들이 있는 힘을 다해 위로 튀어 오른다. 허리를 숙이고 일하는 아낙들은 그놈들에게 온몸으로 두드려 맞는다. 손가락 길이만한 멸치 한 마리가 네 뺨을 친 순간 너는 몸이 굳는다.

셀 수 없이 많은 눈깔들이 너를 올려다보고 있다. 한순간 구역질이 치민다.

“야야, 니 머하노! 정신 안 차리나!”

벼락같은 질타가 날아온다. 너는 신물을 꿀꺽 삼키고 얼른 몸을 움직인다.

어부들이 모래사장까지 끌고 와 털어놓는 멸치들을 소쿠리에 퍼 담는 것이 너의 일이다. 네 곁에서 아직 눈을 흘기며 바가지를 끌어당기는 아낙과 묵묵히 팔을 움직이는 다른 여자들이 하는 일도 바로 그것이다. 갈매기들이 유독 맴도는 바다로 배를 몰아 그물을 둘러쳐 모래사장으로 끌고 오는 것이 남자들의 일이고, 이렇게 뭍에 올라오자마자 죽어 나자빠져 이리저리 구르는 게 멸치들의 일이다.

이놈들은 홀로 다니지 않는다. 작은 구름 마냥 떼 지어 다니는 이 하찮은 생명들은 죽을 때도 모두 함께다. 그래서 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산더미 같은 멸치들의 무덤이다. 제사상에도 못 올라간다는 이 천한 생선들로 이 마을은 먹고 산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