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사(萬人蛇) 이야기

  • 장르: 판타지 | 태그: #뱀 #만인혈석
  • 분량: 167매
  • 소개: 고려 말, 만 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뱀 만인사가 너무 허기진 나머지, 임금의 폭정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남매를 돌보겠다는 약속을 덜컥 해 버린다. 인간 세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 더보기

만인사(萬人蛇)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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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쇠는 생명이 야금야금 빠져나가고 있는 저를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체를 뜯어먹는 짐승 소리만이 익숙한 이곳에서 난데없는 사람의 발소리라니. 어차피 화타가 와도 살릴 가망이 없는 몸이었다. 지금껏 시체처럼 있었으니, 죽음이 이 고통을 거둬들여 진짜 시체가 될 때까지 계속 이대로 있을 생각이었다. 고통에 신음할 기운도 없는 달쇠는 발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지나쳐 갈 것이라 여기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달쇠의 예상과 달리 발소리는 그의 옆에서 우뚝 멈췄다.
“더딘 죽음으로 고통받는 자여!”
달쇠는 영원히 뜰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내려다보는 남자의 뒤로 태양이 후광처럼 빛났다. 달쇠는 희미하게 한쪽 입꼬리를 당겼다. 해를 등진 남자가 물었다.
“그대는…….”
“네!”
말을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달쇠의 대답에 남자는 적잖이 당황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 내가 아직, 말을 다…….”
“제발 부탁입니다.”
달쇠는 이번에도 남자의 말을 끊었다. 남자는 물끄러미 달쇠를 내려다보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마지못해 겨우 눈꺼풀을 들었던 달쇠는 이제 간절한 눈빛이 되어 있었다.
“내가 누구인 줄은 아느냐?”
남자가 물었다.
“소문 들었습니다. 어서 빨리 제 고통을 거두어주십시오, 소망합니다.”
달쇠는 눈물을 흘렸다. 창에 찔리고 칼에 베여 버려진 달쇠는 제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입과 눈뿐이었다. 남자의 발치에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빌고 싶은 심정을 최대한 눈물에 담아 애원했다.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벌렸다. 달쇠는 제게 가까워지는 남자의 입안에서 길게 뻗어 나온 두 개의 송곳니와 두 갈래로 갈라진 기다란 혀를 보았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