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와 카이소

  • 장르: SF, 로맨스 | 태그: #로맨스 #인외존재 #사막 #표류 #조난 #여행
  • 평점×5 | 분량: 212매
  • 소개: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와 사막을 떠난 적이 없는 인외의 존재. 그를 만났기에, 그것은 표류가 아니라 여행이 되었다. 더보기

사토와 카이소

미리보기

1.

이 이야기는 내가 만난 기이하고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행자로서 겪었던, 가장 절망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즐거웠던 표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한 것은 다름 아니라 혹시나 나와 같이 사막에서 표류하게 되는 여행자가 있을 때, 그가 기적을 마주치더라도 놀라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전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사람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와 같은 기적이 있다면, 그에게 나의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는 기적도 충분히 있을 법하지 않은가요?

그 때 나는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사흘이면 마을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물도 먹을거리도 3일 치 뿐이었고, 아껴서 먹는다고 해도 열흘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모래 폭풍 속에서 방향을 잃고 한 시간 이상을 떠밀려 간 곳이었기 때문에 차가 멈춘 곳이 어디쯤인지는 짐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런 상황이 그다지 생소한 편은 아니었으므로 차분한 마음으로 보닛을 열었습니다.

예상한 만큼 모래가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모래를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정오가 조금 지난 즈음이었고, 햇빛은 그날따라 기세가 더욱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뙤약볕 아래에서 미적미적 모래를 퍼내는 작업을 두 시간 정도 한 뒤였습니다. 밥을 지어 먹던 작은 냄비로 고운 노란 빛깔의 모래를 퍼낸 지 두어 시간 만에, 이 속도로는 몇 시간 안에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겠다고 인정하고 트렁크를 열어 텐트를 꺼냈습니다.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언제나 가장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텐트를 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완성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고, 나는 앞으로 며칠 정도가 걸릴지 어림을 해 보며 텐트 안에 드러누웠습니다. 아마도 최소한 5일은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며, 나는 물을 두 모금 마셨습니다. 열흘을 예상하고 물통에 금을 그은 다음, 알루미늄으로 된 수통에 약간을 덜고,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만 아니라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고요한 가운데에서 시뮬레이션을 계속했습니다.

삼십 분 뒤에, 나는 다시 모래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은 생각한 것 보다 빨리 진행되었지만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일단 휴식을 취한 뒤, 해가 뜰 무렵에 수리를 시작하자고 마음먹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사막의 고요는 소음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나는 편히 잠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튿날, 나는 정오가 되기 전에 모래 퍼내는 작업을 끝냈습니다. 이곳저곳을 확인해 본 결과 눈에 띄는 이상은 없었기에 곧 시동을 걸어 보았습니다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문제가 있는 모양인지 도통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막연한 불안감이 시작되었고, 그 후에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 선명한 기억이 시작되는 부분은 그를 만난 날입니다.

2.

가지고 있던 물이 거의 바닥을 보이던 무렵이었으니, 아마 표류가 시작된 지 아흐레가 되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북쪽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작은 물통을 허리에 차고, 아이보리 색의 기다란 머플러를 두르고, 어두운 청록 빛의 점프슈트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옷은 비행사의 옷 같기도 했지만, 어딘가 나로서는 알 기회도 없었던 왕국의 궁중 예복일 것 같은 묘한 느낌도 주었습니다.

“안녕?”

그의 첫마디였습니다. 물론 처음 만난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적절한 첫마디이기는 합니다만 그가 그 말을 한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와 말이 통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고개를 움직여 답을 했습니다. 다음은 그가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물통을 내밀었습니다. 물통은 사막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온도였고, 나는 그 차가운 물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그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뭔가 문제가 있어? 하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뭐, 그냥. 하고 밋밋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차가운 물을 마신 기운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수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어딘가의 볼트와 너트를 조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스패너의 손잡이가 툭 부러졌습니다. 나는 사막의 일교차 때문에 나무가 상한 탓이리라고 논리적인 분석을 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저런, 새 도구가 필요하겠네.”

그는 아직 어디로 가지 않은 채였습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나는 대답을 삼키고 텐트로 향했습니다. 이제 뭔가를 해 볼 여유도 없다, 그냥 여기서 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흐릿해진 머리로 소용없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죽을 텐데, 지금 누워 있을 게 아니라 마지막 유서 검토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집에 두고 나온 새로 산 게임기의 생각과, 아마 몇 주 전부터 쌓이기 시작했을 편지들, 그리고 그 편지를 보내온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그는 차의 부품들과 내 공구 통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생각을 하다 말고 까무룩 잠이 들어, 그가 언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헛것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기우는 해를 쳐다보다가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 편하게 잠을 청했습니다.

그 다음 날, 그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손에 물통과 공구함을 든 채였습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내게 물통과 공구함을 모두 내밀었습니다. 나는 멀뚱멀뚱 그 손을 바라보고 있다가 먼저 공구함을 받아들었습니다.

“물도 가져가.”

다시 한 번 내밀어진 물통을 받아들자 그는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표정이 아주 많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이 아닌, 아마도 분위기가 그렇게 변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한 물통의 온도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서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마워.”

아마 그 때 내가 조금 웃었는지, 그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물통을 그에게 내밀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에 가서 또 가져오면 돼.”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물을 한 모금 더 들이켰습니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 위장에 도착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가득해졌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묵묵히 차의 수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가 아무 말 없이 차를 수리하는 동안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의 부품을 처음 보는 사람 같기도 했고, 자신 이외의 사람을 처음 만나보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지금에 와서 이 글을 쓰는 동안 생각난 것이고, 당시의 나는 그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그리고 있어야 하는, 사막의 일부 같았습니다. 그 날, 해가 진 직후에, 나는 공구를 내려놓으며 그가 있던 자리를 보았지만 그는 이미 그 곳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또 다시 나타났습니다. 나에겐 이미 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의 왼손에 들린 물통이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마침 어제 저녁에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부품이 들려 있었습니다.

“고마워, 오늘도.”
“천만에. 서로 돕고 사는 게 인간다움의 발휘라고들 하잖아.”

그는 어려 보이는 얼굴과 어딘지 동떨어진 느낌으로 나이가 많은 듯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빙긋 웃는 모습이 여유로워서 나는 사막에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어딘가의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서 떨어뜨린 지갑을 주워 준 사람과 대화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에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말없이 자동차의 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해가 질 무렵까지 내가 차를 수리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그가 있던 곳을 돌아보자, 이번에도 그는 이미 돌아간 뒤였습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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