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때, 나는 어른들이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다. 내 주변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심하게 손상된 사람들이 많았다.
“무섭게 생겼지?”
은유에게 말했다. 은유는 내 옆에 쭈그려 앉아 모래를 만지다가, 내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미끄럼틀이 무서워?”
“아니, 미끄럼틀 위에 앉아 있는 거.”
“아무것도 없잖아.”
“너는 저게 안 보여?”
“안 보여. 무서운 거 없어.”
나는 은유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은유가 아직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미끄럼틀을 보기만 하자 은유는 모래놀이를 재개했다. 얼마 뒤, 은유의 어머니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나와 은유를 데리러 왔다. 나는 다시 한번 미끄럼틀을 가리키며 물었다.
“무섭게 생겼죠?”
은유의 어머니는 의아해하며 나와 미끄럼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깔깔 웃었다. 은유의 어머니는 어린 나의 상상력을 귀엽게 여기고 있었다. 미끄럼틀에 앉아 있던 것은 웃음소리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이 아래로 쭉 내려왔다. 나는 미끄럼틀 위에 진흙 같은 살점이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살점은커녕 핏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아?”
나는 등 뒤를 가리키며 은유에게 다시 물었다. 은유는 발을 질질 끌어서 모래 위에 뱀을 그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제법 열중했는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모래밭에 고스란히 남은 은유의 흔적을 보니 의구심이 더 커졌다. 그것은 으깨진 양다리 대신 배를 질질 끌며 움직였다. 그것이 나와 은유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동안, 모래밭 표면에는 그 어떤 흔적도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은유가 놀이터를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은유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죽음이 무엇인지 배운 적 없는 나이였지만, 아마 저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살 때, 나는 죽은 사람들이 내 눈에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치원에서 가위로 눈을 찌르려 했었다. 아동용 안전 가위의 뭉툭한 날이 각막에 닿기 직전, 은유가 내 손을 쳐냈다. 가위가 바닥에 떨어질 때는 그리 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는 데에만 열중해 있던 아이들과 그들의 작품을 차례로 둘러보던 선생은 내가 저지르려 한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뺨의 살점이 문드러져 뼈와 근육이 드러난 사람들이 창문 너머에 서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신승하. 가위로는 종이만 자르는 거야.”
은유가 내 이름을 짐짓 엄하게 부르며 꾸중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려 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은유는 내게 가위를 올바르게 쥐는 법을 알려주기만 했다. 모두가 은유를 조숙한 아이로 간주했지만, 내 견해는 달랐다. 몇 번이나 은유에게 내가 본 것을 설명했는데도 은유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은유와 함께 어른이 되지는 못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위는 이렇게 잡아야 해.”
은유는 내 앞에 놓인 색종이를 대신 잘라 주었다. 녹색의 삼각형을, 붉은색의 동그라미를 오려서 내게 건넸다. 내가 종잇조각을 스케치북 위에 적당히 붙이자 그것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안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열 살 때, 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산 사람들은 대개 두 다리로 걸었다. 몸에 피를 묻히고 다니지 않았고, 눈알이나 내장이 제자리에 있었으며, 피부가 불그스름했다. 무엇보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었다. 숨이 끊긴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거리를 어정대는 영혼들과는 달랐다. 은유는 산 사람치고 살갗이 창백했다. 가끔 은유가 이미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우 드문 경우였지만, 세상에는 뒤틀리거나 찢어지지 않은 몸을 가진 망자들도 있었다. 나는 은유에 대한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은유를 만나면 인사도 하기 전에 대뜸 은유의 손을 잡았다. 나는 은유에게 그 접촉의 의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은유는 말없이 손바닥을 겹치는 것이 우리 사이의 새로운 놀이인 줄로만 알았다.
열세 살 때, 나는 그들도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가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그들도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나를 따라왔다. 머리의 절반이 날아간 여자가 현관 앞까지 나를 쫓아온 적도 있었다. 그 여자는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며칠씩 버티고 있었다. 말을 걸어 보아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을 억지로라도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자, 어느 순간부터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기와 거친 절단면을 보는 데 익숙해졌다. 죽은 사람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상황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다가 때가 되면 사라졌다. 그들과 공유하는 시간은 의외로 안락했다.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죽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대꾸가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도 타인의 맞장구 따위를 바라지는 않았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나에게 새로운 안정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시선에 매 순간 반응하는 것은 다소 성가신 현상이었다. 번화가를 걸으며 곳곳에 흩어진 죽은 이들을 구경하고 있었을 때, 그들이 내 근처로 몰려들어 나를 에워싼 적이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실체가 없어서 손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너머의 물건이 보일 만큼 반투명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수십 구의 시체에 둘러싸여 시야를 차단당했다. 내가 목을 길게 빼며 앞을 내다보려고 하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내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사나운 눈총과 욕설이 여기저기에서 날아왔다. 나는 끝내 넘어졌다. 어떤 여자가 내 손을 밟고 지나갔다. 그 뒤로는 눈이 머리카락에 찔릴 때까지 앞머리를 길렀다. 죽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구부정한 자세로 걷기도 했다. 내 시선의 방향을 죽은 이들이 모르게 해야 불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열여섯 살 때, 나는 죽은 사람을 보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속속들이 깨달았다. 살갗을 한 겹 들어내야 눈에 보일 것들에 관해 누구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생겼다. 산 것들보다는 죽은 것들이 더 익숙했다. 죽어야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을 일절 내뱉지 않았다. 산 사람을 대하는 일이 껄끄럽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교실에 앉아 있을 때마다 누군가 지금 당장 옥상에서 뛰어내려 주기만을 바랐다. 다른 목격자가 비명을 지르면, 학교의 모든 사람이 시체를 보러 달려나가는 상상을 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나는 없었다. 나는 텅 비어 버린 학교 안을 홀로 지키고 있을 작정이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영혼이 으스러진 머리를 간신히 지탱한 채 나를 찾아오기를 바랐다. 상상 속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광경만 수백 번을 보았다. 그중 절반은 내가 장례를 치러 주었다. 불을 지핀 뒤, 인간의 몸이 타는 것을 그 몸의 주인과 함께 지켜보았다.
은유는 내가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언제부터 변해 버린 것인지 모르겠다고, 가까운 곳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그렇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네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서늘한 바람이 은유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고 지나갔다. 그 길고 곧은 실오라기들이 내 뺨을 스쳤다. 은유가 아직 살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그날따라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꺼렸으나 은유는 예외였다. 은유의 눈만큼은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은유의 머리카락이 닿은 곳을 손으로 감쌌다. 차갑게 식은 손끝 때문에 뺨의 온기가 점차 옅어졌다.
“너랑 알고 지낸 지 십이 년이나 됐어.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너를 잘 알았던 적이 있었나 싶어.”
은유는 잘못된 전제를 토대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은유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걸 하고 싶은 게 아니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알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그냥…….”
잠깐이나마 힘이 실렸던 은유의 목소리가 다시 조용해졌다. 은유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은유의 목 근처에서 거무튀튀한 것이 어른거렸다. 인간의 손이었다. 은유는 가만히 서서 말을 골랐고, 나는 은유의 어깨 뒤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온몸이 까맣게 탄 사람이 은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내가 그 손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자, 그는 곧 은유에게서 손을 떼고 비척비척 걸어갔다.
나는 결국 은유에게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은유도 내게서 정답을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은유와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소속된 세계의 단면이 조금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자신과 같은 선상에 두었다.
그게 싫었다.
싫은 것들의 호흡에 둘러싸인 채로 열아홉 살을 맞았다. 그리고 동네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