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사슴 하촵크 씨

  • 장르: SF, 로맨스 | 태그: #SF로맨스 #코로나 #코로나시대의낙석동 #모차렐라 #모차렐라치즈 #사슴과나무꾼 #로맨스 #옥탑방 #좀도둑
  • 평점×15 | 분량: 68매 | 성향:
  • 소개: 연작소설집 <코로나 시대의 낙석동> 제9화 [우주 사슴 하촵크 씨] 하촵크 씨는 알파센타우리 항성계 본행성에서 지구에 파견된 생태조사단 공무원이다. 지구에 코로나 바이러... 더보기

우주 사슴 하촵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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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오늘도 비어 있었다.
구조선이나 보급선은 오지 않았고 이 행성의 철새들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촵크 씨는 주린 배를 문지르며 허공을 더듬던 뚱한 눈길을 거두었다.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다 해도 본행성 측에서 구조 자체를 포기해 버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외계행성 탐사관리국의 파견 공무원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외계 난민 신분으로 전락한 일도 젊은 하촵크 씨의 인생 계획엔 없던 일이었다.

선배들이나 동료들은 본행성의 정치적 지형이 바뀌면 구조대가 오리라 믿는 눈치였으나 하촵크 씨의 생각은 달랐다. 무려 열둘이나 되는 공무원을 저리도 쉽게 포기해 버린 데는 이 행성에 대한 보잘것없는 기대치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지막 보급선을 몰고 왔던 비행사들도 미개문명이라는 둥 탄소 기반 살덩어리들의 도시니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 발언을 늘어놓았던 터였다.

하촵크 씨는 고향 행성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
특히나 이 지역의 행정관들이 군수송기를 파견하여 타 지역 난민들을 실어오는 모습을 뉴스로 지켜본 뒤로는 더더욱 그랬다. 이 행성보다 우주항공술이 발달하고 생물학적 짝짓기를 초월한 번식을 한다는 점을 빼고는 사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난민을 실어오는 군수송기를 필두로 이 행성에는 있으나 멀리 알파센타우리 항성계의 본행성에는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도…….

“모촤렐라! 너넨 좍좍 늘어나는 모촤렐라 없지?”
하촵크 씨는 아득한 하늘에 대고 가운데손가락을 세워 보인 뒤 현동할인마트로 들어섰다.

요즈음 하촵크 씨의 새 취미는 밤마다 마트 안을 두루 돌며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식료품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모차렐라 치즈는 이 창백하고 작고 푸른 점 같은 행성이 이루어낸 최고의 기적이었다. 이 아름다운 치즈의 밀도와 점성은 우주 진공의 에너지 밀도를 뜻하는 우주 상수와, 점성을 가진 유체에 대한 운동방정식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모두 끌어들여 설명해도 부족할 터였다.

하촵크 씨는 낙석동과 현동, 마엽동 일대에 흩어져 사는 본행성 공무원들 중에서도 현지어가 가장 미숙한 축이었다. 텔레마케터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일터에서도 어눌한 발음과 부족한 어휘 때문에 퇴짜를 맞은 터였다. 하촵크 씨는 십여 년 전에 이 지역을 답사하고 돌아온 선발대 공무원이 제작한 <대중가요와 설화에 기반한 고양시 현지어 교본>에 있는 표현들이 아니고선 긴 문장을 구사하지 못했는데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모차렐라 치즈와 관련한 어휘들이었다.

아처씨, 엽턱 매운맛 1단계에 떡이랑 모촤렐라 추가해 주쎄효.
파타흐 선배늼, 쿠워먹는 모촤렐라 치즈 먹어봐써효? 맛이 완전 대박이에효!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니 언어가 절로 늘었고, 그 점을 아는 탓에 동료들도 하촵크 씨의 밤마실을 말리지 않았다.

하촵크 씨는 오늘도 냉장식품, 냉동식품, 컵라면 코너를 두루 돌며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제품들을 물색했다. 그리고 마트 안을 세 바퀴째 돌아서 다시 냉동식품 진열대 앞으로 돌아왔을 때 …… 운명적으로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장차 하촵크 씨의 인생을 아릿하고 눈부신 파국으로 몰아갈 그것…….

냉동치즈돈까스.

튀김껍질과 통통한 돼지 살코기 사이에 모차렐라 치즈가 태양계 가장자리의 오르트구름처럼 실로 두툼하게 들어차 있는 신제품이었다.

“아아!”
하촵크 씨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 나왔다. 인간의 장기 형태로 재배치된 오장육부를 두루 훑고 나온 깊은 탄식이었다.
나는 왜 지구의 화폐가 없는가.
나는 왜 직장을 구하지 못하였는가.
왜 나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나는 냉동치즈돈까스 한 봉지를 차지할 구매력도 없단 말인가.
보급선이 끊긴 뒤로 오늘만큼 버림받았단 사실이 뼈저리게 체감된 날도 없었다.

설움에 북받친 하촵크 씨는 저도 모르게 냉동치즈돈까스를 품에 안았다.
깡깡 얼어 있는 그 위대한 식품은 마땅히 내 것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차갑고 바스락거리는 그것을 소중히 품고서 양념장, 김, 곡물, 채소, 과일 코너를 두루 지나 계산대를 우회하여 그대로 마트 정문을 통과했다.

삐이! 삐이이! 삐이! 삐이!

도난방지 센서가 울렸고 사람들의 눈길이 하촵크 씨에게 쏠렸다.
“돌려줄 쑤 업숴효!”
하촵크 씨는 도리질 친 다음 어둑한 거리로 뛰쳐나갔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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