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파타흐 씨의 1차 접종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코로나 #코로나시대의낙석동 #김아직작가 #외계인파타흐씨의1차 #백신 #외계인 #SF단편 #B급SF
  • 평점×30 | 분량: 59매 | 성향:
  • 소개: 연작소설집 <코로나 시대의 낙석동> 7화 [외계인 파타흐 씨의 1차 접종] 낙석동 휴먼빌의 경비로 취직한 박다후 씨는, 사실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의 본행성에서 온 외계인... 더보기

외계인 파타흐 씨의 1차 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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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도 구조선은 오지 않았다.

텅 빈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파타흐 씨는 숨이 막혔다.
날마다 새롭게, 더 모질게 버림받는 기분이란…….

애초에 출장지 지구에 역병이 창궐했다는 사실을 본행성에 보고하는 게 아니었다. 파타흐 씨는 고지식한 촤추흐 씨를 끝까지 말리지 못한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올 초에 지구의 상황을 곧이곧대로 외계행성 탐사관리국에 알린 게 촤추흐 씨였다. 지구의 사정을 알게 된 뒤 본행성에서 취한 조처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서 대기 중이던 기술지원팀 엔지니어들만 본행성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지구에 남은 열두 명의 생태조사단 공무원들의 구조는 사실상 포기한 셈이었다.

기술지원팀과의 마지막 교신 당시 파타흐 씨는 우리는 같은 팀 아니냐, 조사단들 모두 역병 감염체로부터 안전한 상태이니 우리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하지만 봄과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도록 기술지원팀에선 따로 연락이 없었다. 본행성에 복귀한 뒤 파타흐 씨 일행을 까마득히 잊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술지원팀이 복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본행성 측에선 일방적으로 통신 채널을 폐쇄해버렸다. 지구에 남은 자들은 구조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생태조사단의 유일한 통신장비마저 망가져 버린 터였다. 막내 직원 팤크하 씨 집에 보관 중이던 통신장비의 부품 일부가 올여름의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린 것이다. 경제적 사유로 에어컨을 가동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조사단 모두 집단우울증에 빠져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년층인 파타흐 씨와 촤추흐 씨를 뺀 나머지 10명은 갓 성년이 된 풋내기 공무원들이었다. 첫 직장의 첫 출장지에서 장기 고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으니 어린 친구들의 멘탈이 온전할 리 없었다.

분기별로 지원을 해 주던 보급선이 끊기자 지구의 통장잔고도 바닥이 났다. 기술지원팀 없이는 가상화폐를 만들거나 위조지폐를 찍어낼 능력들도 없는 터라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그나마 파타흐 씨는 두어 달 전에 낙석동 휴먼빌 주상복합단지의 경비로 취직해서 숙소 동료인 토타흐 씨와 촵파하 씨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월급을 받아도 낙석동 구제거리 골목에 있는 숙소의 월세를 내고 나면 셋이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했다. 현동과 마엽동 일대에 흩어져 사는 다른 동료들은 챙기고 싶어도 늘 마음뿐이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조사단의 결속력도 느슨해져갔다. 실제로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줌 화상회의에도 하나둘 미참석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팀의 리더인 촤추흐 씨도 3주 전부터 회의에 얼굴을 비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본행성에 지구의 팬데믹 상황을 보고한 일을 두고 깊은 실의와 자책에 빠져 있었다. 집세가 밀리진 않았는지 밥은 챙겨먹고 있는지, 파타흐 씨는 그를 걱정하곤 하였다. 하지만 토타흐와 촵파하를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인 데다 경비 일도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보니 하루하루 무심한 시간만 쌓여갔다.

일이 이렇게 된 거,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모진 마음도 있었다. 일단은 누구라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오후 5시, 휴먼빌 경비실에 도착한 파타흐 씨는 그 협소한 꿈조차 좌초시킬 만한 소식을 마주해야 했다.
“박다후 씨, 그 소식 들었어요? 여기 입주자협의회에서 관리실, 경비실 직원들에게 코로나 예방접종 확인서를 받기로 결정했대요.”
야간조 동료인 임종만 씨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제가 만성 두드러기에 요새는 대상포진까지 겹쳐 죽을 맛이거든요. 재작년에는 뇌출혈이 와서, 뭐 우리 딸이 바로 발견을 해서 치료는 받았지만, 고생을 꽤 했지 뭡니까. 마누라도 자식놈들도 고위험군 아니냐며 접종을 말리는데 참 난감하게 됐습니다.”

파타흐 씨, 아니 휴먼빌 경비 박다후 씨는 이 지역 사람들이 쓰는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표현을 비로소 이해했다. 이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더 깊은 수렁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구인을 위해 개발된 백신을 접종했다간 어떤 이상 반응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고 더 심각한 경우 지구인들에게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었다. 입주자협의회에서 공시한 기한은 2주였다. 2주 안에 접종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용상의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고위험군이라고 앓는 소리를 하던 임종만 씨는 발 빠르게 잔여백신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깊은 밤, 박다후 씨는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도시의 조명에 별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 하늘 어딘가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의 변두리에, 박다후 씨의 고향 행성도 있을 터였다.

박다후 씨는 외계행성 탐사관리국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했다. 다른 일을 했더라면 이 먼 우주까지 날아와서 장항습지, 안곡습지, 율곡습지, 전호습지 등을 헤매고 다니다가 버림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박다후 씨는 이제 습지라면 지긋지긋했다.
삵과 멧밭쥐, 고라니 똥 따위를 발견하고 환호했던 시간들도 부질없었다. 고라니 똥만도 못한 신세가 되고 보니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고, 생존 외의 것들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사흘 뒤, 입주자협의회 회장 황인자 씨가 경비실로 박다후 씨를 찾아왔다.
“다른 분들은 다들 내셨고 여기 임종만 씨와 박다후 씨만 남았어요. 흠…… 임종만 씨는 예약을 했다 들었고 박다후 씨는……?”
“저도 예약해놨습니다.”
“어머, 그러시구나. 잘됐다!”
황인자 씨가 돌아간 뒤 박다후 씨는 주먹으로 경비실 벽을 쳤다. 심한 알러지 같은 기저질환이 있으니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헛말이 튀어나가 버린 것이었다. 예약이라니! 지구인의 백신이라니!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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