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 장르: 로맨스 | 태그: #짝사랑
  • 분량: 31매
  • 소개: 아주 오랫동안 한 짝사랑. 마침내 다가온 기회. 더보기

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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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더구나 말수가 적은 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6년, 중학교에서 3년, 고등학교에서 다시 또 3년을 보내며 반장 같은 직무를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다.

 

그런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되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자리에서 과대로 선정된 건, 단순히 내가 동기들보다 나이가 한 살 많기 때문이었다.

 

무려 10만 재수생 시대, 그런 때에 같은 과에 재수생이 나 하나뿐인 건 어떤 우연의 일치인 걸까. 아니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학생 수 스무 명도 안 되는 소수 과라서 더욱 그런 걸지도. 그래도 단 한 명뿐인 건 조금 심한 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그러한 이유로 과대가 되었다. 반쯤은 강제적이었다. 내 의사를 물어보긴 했지만, 어떻게 스무 명 남짓한 선배와 스무 명이 안 되는 동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 싫다고 하나? 더구나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도 기왕 맡은 일인 만큼, 나는 열심히 했다. 1년 동안 참 열심히도 살았다. 과대라고는 하지만 1학년 과대라서 할 일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선배들이 계획한 행사에 1학년이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것 정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애도 있었다. 나처럼 말이 없는 남학생이었는데, 그런 주제에 여자친구는 있었다. 말이 없는 주제에 여자친구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졌다.

 

듣기로는 중학생 때부터 사귄 모양이었다. 원치 않은 정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다. 그 애는 술만 들어가면 여자친구 이야기를 늘어놨다. 솔로로 세월을 보낸 동기들은 학을 뗐지만, 취객의 주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애와 많은 교류를 했던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조별 과제 몇 번 같이 한 것이나, MT 갔을 때 등 두드려준 것 몇 번, 체육대회 때 2인3각 한 번 한 것. 딱 그 정도의 연이었다.

 

아마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그 애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은 단지 언제 술자리를 가질 예정인데 나올 생각 있냐는, 형식적인 이야기. 그 애는 술자리라면 빠지지 않았다. 말수도 적은 주제에 모임은 결코 빠지지 않았다.

 

나도 술자리는 거의 빠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대였으니까. 학과 차원에서 갖는 술자리에 빠져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그 애와 내가 술자리에서 항상 만나는 것은.

 

물론 우리 둘 누구도 그 사실에 신기함을 느끼거나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동기는 그 애 말고도 몇 있었으니, 그 애와 특별히 자주 만난 것은 아니었다.

 

다들 술에 취해 쓰러져 갈 때, 그 애는 좀처럼 쓰러지는 법이 없었다. 주량이 대단했다. 그런 그 애와는 정반대로, 나는 술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래서 건배를 할 때는 음료수나 물을 마셨다. 내가 마지막까지 제정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던 건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

 

나와 그 애, 둘만 빼고 다들 취했을 때면 그 애는 자기 카드로 결제를 하고 단톡방에서 더치페이한 술값을 받았다. 술 취한 동기들을 집에 보내고 난 뒤에 우리는 곧바로 헤어졌다. 둘만 남았다고 둘이서 마신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애는 여자친구가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술은 물론이고, 여학생이랑은 단둘이 밥 한 끼 먹는 것도 꺼렸다. 게다가 나도 이미 술을 싫어하고, 마시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둘이서 마시자고 권유할 명분이 없었다.

 

그 애는 또 드럼도 연주할 줄 알았다. 중학생 때 배웠다고 들었다. 나는 그 애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일이 없었다. 그래도 그 애가 드럼 스틱을 트레디셔널 그립으로 쥔다는 것은 알았다.

 

축제 때 그 애가 들어간 밴드 동아리가 공연을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애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럼은 무대 뒤쪽 조명도 비치지 않는 곳에 있었고, 화려한 솔로 연주를 하는 기타리스트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타 소리보다, 보컬의 노랫소리보다, 그 밖에 줄이 네 줄밖에 없는 괴상한 기타나 전자피아노보다, 드럼에서 나오는 소리가 제일 잘 들렸다. 그 애가 힘차게 발을 구를 때마다, 쿵쿵거리는 울림이 가슴 속에서 떨렸다.

 

밴드 동아리의 공연이 끝나고 동기들이 다 같이 백스테이지로 돌아가 악기를 정리하는 그 애를 도왔다. 돕는 건 핑계고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댔다. 나는 멀찍이 서서 끝이 갈라진 드럼 스틱으로 심벌즈를 문지르고만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렇게만 보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애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는 그 애의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뿐이었다.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남학생들은 하나둘씩 입대 소식을 알렸다. 그 애도 역시 곧 입대를 한다고, 인터넷 편지 쓰는 방법을 알려왔다. 물론 개인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고, 단톡방을 통해 공지를 올렸다.

 

동기들은 그게 공지로 설정해야 할 정도의 일이냐고 우스워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더불어, 공지가 아니라 개인 톡으로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도 생각했다. 그 애가 나에게 개인 톡을 보낼 이유는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애가 훈련소에 들어가고 마침내 편지 발송이 허락되었을 때, 나는 그 애에게 인터넷 편지를 썼다. 글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내용이 자꾸 늘어져 800자 안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전부 지워버렸다. 그냥 보내지 않았다. 보낼 이유가 없었다. 특별히 친한 건 아니었기에. 사실 우리 과 여학생 중에서 그 애랑 특별히 친한 애는 없었다. 있으면 안 되지.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 애가 강원도 산골 자락으로 배치되었을 때, 그리고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단톡방으로 인터넷 편지를 보낸 동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의리 차원에서 모든 남학생에게 편지를 쓴 동기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시간이 나는 3학년이 되었고, 그 애는 상병이 되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카톡 프로필이 바뀌고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으로 놀러 간 그 애는, 참 행복해보였다.

 

물론 그 애가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 모두 행복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보이는 인스타그램 사진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

 

훈련은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