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

  • 장르: 일반
  • 평점×59 | 분량: 47매
  • 소개: 택배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택배를 찾아주려고 하는데 더보기

사라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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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요즘 날씨가 동남아 날씨 같다고 말했다. 쨍쨍하다가 금방 어둑어둑해진 다음 양동이로 물 퍼내듯 쏟아부은 후에 또다시 쨍쨍해진다고. 습하고 덥고 비가 와서 힘들다고 했다. 난 아빠가 동남아는 커녕 제주도도 못 가본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러게 진짜 동남아 같다, 대답했다. 물론 나도 동남아에 가본 적은 없다.

방학을 맞아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아빠의 조끼의 냄새를 없애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빠는 조끼 두 벌을 번갈아입는데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났다. 그래도 최대한 설명을 해보자면, 담배냄새, 땀냄새, 잘못 말린 수건 냄새, 그걸 지우고자 너무 많이 넣은 섬유유연제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서 마치 학교 사물함 밑에서 발견된, 우유를 닦고 버려져 이상한 모양으로 굳어버린 걸레냄새 만큼이나 참기 힘든 냄새가 났다.

아빠가 날마다 하나는 입고 가니, 나는 남은 한 벌로 여러가지 시도를 번갈아가며 해보았다. 내 교복치마도 이렇게는 안 하는데, 아빠가 일을 하면서 냄새난다는 소리를 듣게 하긴 싫었다. 베이킹소다, 삶기, 손빨래, 페브리즈 왕창 뿌리기, 크린토피아 가서 건조기 돌리기… 그 시도들은 냄새 대신 조끼 등에 있는 ‘대신택배’ 글자의 모든 자음을 날려버리는 걸로 마무리 됐다.

아빠는 보통 7시 전에 나가서 오후 7시 후에 들어왔다. 화요일이나 명절처럼 택배가 밀리는 날에는 좀 더 일찍 나가서 좀 더 늦게 들어왔다. 난 저녁은 꼭 아빠를 기다렸다가 같이 먹었는데, 그게 뭐 효심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아빠가 해준 밥이 내가 끓인 라면보다는 훨씬 맛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살아있었을 때도, 저녁은 아빠가 했었다. 아빠가 요리를 할 때면 엄마는 아빠 옆에서 뒷짐을 진 채 아빠의 요리 강의를 듣기도 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옆에서 듣기로는 소금도 적당히 설탕도 적당히 간장 후추 뭐 모든 게 적당히라서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 터였다.

아빠가 쉬는 일요일에는 아침은 거르고 두 끼를 모두 시켜먹었는데 주로 점심은 내가 저녁은 아빠가 메뉴를 골랐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빠는 저녁에 소주를 먹어야 해서 라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였다.

아빠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음료수를 한 봉지씩 들고 왔다. 아빠가 짐을 배달하면서 받은 것들이었다. 보통 바카스 같은 피로회복제가 주였고, 그다음으로 커피, 이온음료, 과일주스, 가끔은 데자와같은 이상한 음료수도 있었다. 그건 내가 차곡차곡 냉장고에 정리해뒀다가 하루에 세 개씩 먹어치우거나, 학교에 갈 때는 들고가서 애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처리했다. 가끔 아빠가 반 병만 더 먹어야지 하고 취한 날에는 내가 정리해놓은 음료수를 보면서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중얼거리고는 했다. 나도 그 음료수 때문에 아빠가 담당하는 동네 사람들이 좋았다. 학원에서 만난 애들이 그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친해지고 싶어졌다. 그 동네에 있는 중학교 교복을 보면 창피한 걸 무릅쓰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삼촌들이 아파트 단지가 돈이 되지, 그런 동네는 많이 돌아다녀야 돼서 힘들기만 하고 돈도 못 번다고 했지만 그건 내게 큰 상관 없었다. 아빠도 그런 듯 했다. 그런 삼촌들의 말엔 야, 돈만 중요한 게 아냐 말하고는 했으니까. 거기엔 분명 그런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내가 이렇게 방학이거나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라 쉬고 있을 때, 아빠는 일이 힘에 부치면 내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보통 택배가 몰리는 화요일이나, 명절목에 그랬다. 그러면 나는 아빠 대신 문자를 보내거나 가벼운 짐들을 직접 배달하거나 했는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내 얼굴을 보고 이렇게 어린애가 택배를 배달해?라는 표정으로 놀라기도 했다. 그게 재밌어서 아빠가 부르면 다른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거절하지 않고 나갔다. 물론 용돈이 생기기도 했고.

개학을 이 주 앞둔 여름날에 그 할머니를 만난 것도 아빠의 호출 때문이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