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의 빛

  • 장르: SF, 추리/스릴러 | 태그: #콜드슬립 #신체강탈자
  • 평점×39 | 분량: 177매
  • 소개: 바이러스 감염으로 콜드슬립에 들어갔던 누나를 10년만에 치료하고 해동했다. 돌아온 누나는 전과 다를바 없는 우리 누나인 듯했지만, 갈수록 ‘선한’ 사람이 되어... 더보기

자애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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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의 빛

#1

누나를 해동했다.

10년 전에 콜드슬립에 들어간 누나를 치료하고 깨울 수 있게 되었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았을 때, 형과 나는 몇 번이나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희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바이러스성 기억 퇴행으로 인해 파괴된 뇌세포를 수복하는 방법이 거의 완성 단계에 왔다는 뉴스를 보긴 했다. 그쪽 방면의 뉴스는 지속적으로 수집해서 확인하고 있었으니 놓치려야 놓칠 수 없는 소식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냉소했다. 무수히 많은 연구가 그런 과정을 거치듯이, 그래 봐야 연구실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기껏해야 실험용 생쥐나 건강하게 해주는 기술에 불과할 거라며 희망을 있는 힘껏 걷어차야 했다.

생명 활동을 하는 이상 기억과 인지 능력이 점점 퇴행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피해서 누나를 냉동한 뒤로 우리는 너무 많은 희망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어느 대학에서 새 연구가 성공했다는데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죄송하지만 정말 임상에서 성공할지, 성공한대도 도입까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지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으시고…….

그런 식의 대화엔 답이 없었다. 의사 말에 틀린 게 하나 없었으나 사람인 이상 어떻게 답답한 울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사 멱살을 잡고 따지지 않을 만큼의 상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고,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렸다. 다스렸다기보다는 마음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찌들어버린 무기력과 절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살다 보니 의사에게서 그 연락이 왔다.

올해 초에 기계 학습을 기반으로 개발된 새로운 수복 방법이 4차 산업 시대의 간판을 찾아 헤매던 정부의 눈에 든 덕분에 쾌속으로 인가받아 누나가 한국에서 첫 번째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냉동 상태에서 10년을 넘기면 바이러스는 완전히 사멸하나, 체세포의 안정성이 떨어져서 영영 깨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형과 나는 의논할 것도 없이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전에 들은 설명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알기 쉽게 요약한다고 요약한 것일 텐데도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이해한 골자는 이랬다. 환자가 남긴 기록물과 시냅스 구조를 분석하고 두뇌에 나노봇을 주입해서 파괴된 부분을 95퍼센트까지 정확히 수복한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공룡의 뼈만 가지고 상상도를 그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내 말에 의사는 그건 과장이고, 지금은 파괴된 부분이 아주 적기 때문에 실수로 잉크 몇 방울을 떨어트린 그림을 복원하는 것에 가깝다고 했다.

형은 뭘 자꾸 따지려 드냐고 눈짓으로 핀잔을 주었는데, 나는 그래도 한 번 더 질문했다.

잉크 몇 방울이 떨어진 부분이 아주 독특해서 유추해내기 어렵다면 정상적으로 복원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러자 의사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안심시켜 왔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실 사람이라는 게 복잡한 듯하면서도 단순한 편이라 도저히 유추할 수 없는 부분이 나타날 확률은 지극히 낮고, 그런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정상인의 패턴도 참조하기 때문에 수복된 부분이 눈에 띄게 어색할 확률은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사람이 전과 약간 다르다고 해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달라진다 해도 그것은 10년만에 만난 사람에게서 느낄 법한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정말 예전처럼 되돌리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인간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재활하듯 되돌리는 것이 과학 기술을 넘어선 인간의 도리 아니겠냐는 설명은 그럴듯하다면 그럴듯했고, 책임 전가 같다면 책임 전가 같기도 했다.

나는 더 따져봐야 의사가 기술적 한계를 초월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바이러스가 사멸한 게 확실한지만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의사는 의심 많은 아이를 안심시키듯, 콜드슬립된 육체에서 10년을 살아남는 바이러스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고 거의 장담했다.

의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의심스럽다고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따지길 그만두고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수술을 요구했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요구에 완벽히 부응했다.

그리하여 누나는 아주 말짱히 깨어났고, 심각한 병을 앓고 10년이나 냉동되었다가 해동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해서 퇴원했으며, 마침내 우리 차 뒷좌석에 앉아 있게 되었다.

“왜 이렇게 늙었니, 둘 다. 괜히 미안하게.”

신체적으로 형보다 다섯 살, 나보다 세 살 어려진 누나가 10년 만에 건넨 첫인사는 그런 것이었다. 그 말에 형은 통곡했지만 나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의젓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어째서인지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는 그래도 나름대로 관리하고 살아서안 늙은 편이거든? 누나가 극단적으로 안 늙은 거야.”

“억울하면 너도 10년짜리 얼음땡하지 그랬어.”

“그러게 말이야.”

10년 만의 대화는 누나가 아프기 전에 흔히 하던 패턴과 다를 게 없었다.

그 대수로울 것 없는 실랑이가 가져다주는 안도감에 나는 한순간 무너질 뻔했으나, 첨단 기술도 보장하지 못한 5퍼센트의 차이가 어느 부분에서 나타날 것인지 열심히 관찰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감상을 눌러 참았다.

해동된 누나는 예전보다 더 호기심이 왕성해졌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개발되었다거나 어느 도시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 쏟아지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10년을 죽었다 깨어났으니 필사적으로 시대를 따라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과 내가 집에 돌아오는 두 시간 동안 앞다투어 설명하고 나니 딱히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온갖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생활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던 탓이다.

“난 깨어나면 집에 날으는 자동차 타고 돌아갈 줄 알았어.”

“무슨 초등학생이야?”

“미래 도시하면 비행 자동차잖아. 하우아유 하면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하듯이.”

“10년이나 잤으면 좀 더 그럴듯한 꿈 좀 꾸지 그랬어. 상상력이 그것밖에 안 돼?”

농담으로 받아친 말에 누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운전대를 잡은 채 우리 얘기를 듣던 형이 내게 핀잔을 주었다.

“말조심해라, 인마. 10년만에 본 누나한테 그게 뭐냐?”

하지만 누나는 딱히 기분 상하지 않은 듯 밝게 말했다.

“무슨 꿈을 길게 꾼 것 같긴 한데 기억은 하나도 안 나. 그래서 그냥 모든 게 다 거짓말 같고, 딱 하룻밤 깊이 자고 일어난 것 같아.”

당사자인 누나가 괜찮으니 굳이 마음 쓸 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꽤 오래도록 궁금했던 걸 물었다.

“진짜 기억나는 꿈이 없어? 꿈속 세계는 현실보다 세 배인가 빠르다니까 누나가 체감으로 30년쯤 살았으면 어쩌나 했는데.”

“안 그래도 서러운데 아주 늙은이 만들래?”

누나는 창밖을 구경하며 후후 웃었다.

차창 밖으로 지난 10년 사이에 변해버린 거리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따스한 애정 같은 것이 담겨 있었는데, 나는 그게 살아서 다시 만난 세상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리라 마음대로 생각했다.

#2.

집으로 돌아온 누나는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흔히 실종되거나 오래 떠났던 가족의 방을 잘 보존해뒀다가 그 사람이 돌아오면 ‘네 방은 그대로 뒀어’라며 감동을 주기도 하던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일단 누나의 뇌에 이어 누나의 방부터 복원해야 했다.

물론, 누나의 방을 마구 때려 부수거나 짐을 닥치는 대로 끌어내어 처분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손이 닿으면 아픈 상처처럼 여기고 가만히 놔뒀다. 그런데 점점 아픔에 무감해지고 생활의 필요에 쫓기면서 이런저런 물건들이 상처 위의 딱지처럼, 혹은 고대 문명 위의 퇴적층처럼 누적되었다.

누나가 집으로 복귀하기 위해선 이것들부터 치워야 했고, 이 과정에서 보인 누나의 반응과 행동은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야, 차라리 다 처분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깔끔하게 다 새로 사서 인생 2막 시작하는 건데, 이건 무슨 고고학자도 아니고.”

“방을 아예 봉인해두자고 했는데, 영재가 안 쓰는 물건 몇 개 두는 건 괜찮지 않냐고 해서 이렇게 됐어.”

박정한 형의 고발에 나는 기가 찼다.

“주인 없는 방에 박스 몇 개 놓은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로봇 도우미 스테이션을 여기에 두자고 한 형이 문제지.”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누나의 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집에서 가사노동의 상당 부분을 처리하는 로봇 도우미의 거처였다.

로봇 청소기에서 발달해서 청소와 설거지, 간단한 심부름 따위를 혼자 처리하는 로봇 도우미는 라면 박스보다 커다란 스테이션에서 대기하며 먼지도 빼고 배터리도 충전하며 자가 관리되어야 하는데, 내가 벼르고 벼르다 산 이 물건의 스테이션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누나 방에 놓았던 것이다.

“빈집은 금방 상하고 무너진다는 말도 못 들어봤냐? 이게 다 관리 차원에서 배치한 거야.”

“잘했다, 이것들아. 아무튼 밖으로 치우기나 해.”

어쨌거나 누나는 더 잘못한 사람을 가려낼 생각은 없는 듯했고, 냉동 전에 두각을 드러냈던 인테리어 실력을 발휘하여 거실에 자리를 발굴해내고 로봇 도우미의 새 거처를 마련했다.

나머지 작업도 시간은 걸렸지만 그렇게 난해하진 않았다. 누나는 앓기 전과 별반 차이 나지 않는 방식과 속도로 잡동사니를 치우고 물건들의 새 자리를 정했으며, 자기가 쓰던 것 중 필요 없게 된 것들까지 파악해서 내다 버렸다.

그렇게 누나는 이틀만에 우리 집으로 복귀해서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누나가 사회로 복귀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일단 친척부터 친구까지 한 명씩 연락해서 부활, 혹은 컴백을 고지해야 했는데, 그게 해외 나갔던 사람이나 연예인처럼 간단히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친한 친구들은 집까지 찾아와서 목놓아 울고 파티를 벌였고, 친척들은 잘됐다고 축하해주면서도 처음 겪는 경우에 난처해했다.

그런 한편으로 덜 친한 친구나 친구라는 호칭은 좀 버거운 지인들은 SNS로 인사를 나눠야 했는데, 10년 사이에 SNS는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바뀌었기에, 정지 시켜 뒀던 스마트폰 회선도 살리고, 최신 SNS의 생태와 이용 방법을 누나에게 처음부터 가르쳐줘야 했다.

그런저런 과정을 거쳐 인간관계를 수복하는 것까지는 겨우 해결되는 듯싶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을 일자리 문제는 어쩔 방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는 10년 전까지 작은 인테리어 업체에 다녔다. 썩 능력 좋은 사장이 몇몇 직원을 효율 좋게 부려서 나름대로 괜찮은 궤도를 달리는 회사였다.

그러나 요 10년 사이에 작은 회사들의 아이템을 훔쳐 간 대기업들이 세를 불리는 통에 그 회사는 속절없이 공중분해 되었고, 연락이 닿는 직원들도 자리를 새로 소개해 줄 만한 여건은 되지 않았다.

변호사인 형이나 외주 편집자인 나도 뾰족한 해결 방법은 찾지 못했다. 서류상 10년을 놀고 나이만 더 먹게 된 사람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잘 아는 사람이나 기관이 없기도 했다.

결국 누나는 이 일로 두어 달 스트레스를 받다가 힘들수록 남을 도와야 한다며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남을 돕는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집안에서 마냥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누나는 분명 선한 사람이지만, 10년 전까지 딱히 이타적 선행을 해온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신종 전염병으로 돌아가신 뒤 동생들을 돌보느라 남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것을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합리화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시간을 내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성금을 낸다는 발상 자체가 우리 삶의 궤 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물건을 떨어뜨렸다거나, 미아를 봤다거나 할 때는 당연히 돕지만 먼저 일을 찾아 나서지는 않는 정도. 그것이 우리 집안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었고, 그렇기에 누나의 결정은 약간 별스럽게 느껴졌다.

“무슨 봉사 활동을 하려고? 누구랑 같이 해?”

괜히 걱정되어 물으니, 누나는 태연스레 대답했다.

“플로깅이라고, 조깅하면서 쓰레기 줍는 활동이야. 요즘 등산 AR 게임이 뜨면서 경치 좋은 곳마다 쓰레기가 장난이 아니라더라.”

나는 10년간 사회에서 동떨어졌던 누나가 무슨 사기를 당했거나 수상한 종교 단체의 꾐에 넘어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운동 삼아 다니는 건 좋지만, 혼자 할 만하겠어? 그러다 발목이라도 접질리면 어쩌려고?”

“내가 혼자서 어디 오지를 가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 멀쩡히 잘 터지는 서울인데 별걱정이다.”

누나의 야외 활동에 대한 나의 걱정은 그렇게 깔끔히 정리되었다. 하기야 통신에도 아무 문제가 없고 어지간한 산에는 드론 경비대가 수시로 돌아다니니, 콜드슬립 후유증으로 근육이 어찌 되거나 길을 잃어 조난할 염려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누나의 플로깅은 썩 괜찮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이 증강 현실 게임을 하고 돌아다니다 버리는 쓰레기라고 해봐야 음료수 , 포장지 따위 가벼운 것들이라 수거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서울의 유명한 산을 걸으며 환경을 깨끗이 하는 활동은 누나의 정서에 드리워지던 희미한 그늘을 걷어내는 데에도 제법 효과가 좋은 듯싶었다.

굳이 문제랄 게 있다면 그렇게 수거한 쓰레기들을 집까지 가져온다는 점 정도였다.

누나가 쓰레기를 지고 먼 길을 오는 것도, 우리 집에서 처리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 동네에서 처리하고 올 수 없겠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누나의 신념은 단호했다.

“따지고 보면 그 쓰레기들은 전국에서 모인 건데, 그걸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려봤자 처리 비용은 그 동네에서 부담하게 되잖아.”

“그래도 산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일일이 수거하는 비용은 줄여준 거잖아. 굳이 우리 집에서 최종 처리 비용까지 대줄 필요가 있어?”

“어차피 운동 삼아서 즐기며 하는 활동인데 비용은 그 동네 세금으로 내겠다면 그건 너무 도둑놈 심보 아니야?”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 도둑놈 심보라는 건 분명 과한 표현이겠으나, 누나 말을 들어 보니 기왕 하는 일인데 깍쟁이처럼 구는 것도 치사스럽고 원래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두 손 들었고, 형은 처음부터 그랬듯이 누나를 응원했다.

“돈 걱정 말고 누나 하고 싶은 거 다 해.”

#3

그러나 누나의 플로깅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증강 현실 게임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번에는 그 대안으로 보물찾기 하듯이 쓰레기를 찾아다니는 증강 현실 플로깅 게임이 등장한 탓이다.

덕분에 인근의 산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던 쓰레기들은 깔끔히 자취를 감추었고, 누나의 봉사 활동은 단순 등산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세 번을 손해만 보고 돌아온(자신의 이동으로 인해 일으킨 탄소 문제가 쓰레기 몇 개를 수거해서 얻은 이익보다 크다고 했다) 누나는 곧바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이제 인근의 아동 보호 센터로 봉사 활동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라는 건 알겠는데, 꼭 그래야겠어?”

“꼭 그래야겠냐니,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말해?”

내가 묻자 누나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는데, 대답하기에 곤궁한 감이 없진 않았다.

기상 이변이 본격화되면서 코로나 19 외에도 갖가지 전염병이 창궐했고, 이로 인해 보호자를 잃고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약자들이 대거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가족도 그런 식으로 부모님을 잃고 국가 지원을 받은 적이 있으니, 누나가 아동 보호 센터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도의적으로도 올바른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누나가 강박을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기적적으로 더 살게 된 인생을 남에게 바쳐야 한다는 부채감.

어려울 때 남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자기도 어려운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당장 경제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그런 감정들이 누나를 자꾸만 봉사 활동이라는 숭고한 영역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마음이 도무지 편치 않았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야박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무슨 나쁜 문제가 생긴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시설에서도 인력을 뽑는 방식 같은 것들이 분명 있을 텐데, 불쑥 나타나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폐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지. 그리고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누나 생활도 기본적인 부분은 유지가 되어야 하니까 기왕이면 최소한의 급여라도 받는 형태가 서로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 누나는 잠깐 화를 내려는 듯하더니, 순간적으로 마음을 다잡은 듯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표정의 변화는 일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누나는 분명 내게 화를 내고 싶으면 그대로 화를 내는 성격이었는데, 오랜 동면이 수양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일까?

놀랄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를 보는 누나의 미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평화로웠으며, 누나의 두 눈에는 봄날 아침 햇살처럼 따스한 자애의 광채가 깃들어 순간적으로 동생인 나조차 낯설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누나는 그런 미소로 나를 타이르듯 말했다.

“서로 돕고 사는 건 좋은 일이잖아. 과정이 약간 매끄럽지 않을 순 있지만, 타인의 선의와 도움으로 살아온 내가 봉사를 한답시고 내 편의를 따지는 건 너무 이기적인 짓 아닐까?”

“아니, 그래도 남을 돌보려면 자기 자신부터 돌봐야……”

“내가 괜히 헛바람이 들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전에 관악산 갔는데 애들이 세상 신나게 쓰레기를 줍고 다니더라니까. 단체로 온 것 같아서 물어봤더니 보호소에서 나왔대. 남들만큼 혜택받지 못해서 자기 앞길 닦아나가기도 바쁠 애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봉사 활동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넌 모를 거야. 나도 기왕 더 사는 거 그렇게 남을 위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좋은 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을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나는 누나에게 밥 잘 먹고 건강 잘 챙기면서 다니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형에게 좀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봤는데, 형은 펄쩍 뛸 듯이 반응했다.

“누나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뒷바라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 그러다 병 걸려서 조만간 우리도 못 알아볼 판이라는 선고까지 받았잖아. 그때 나는 솔직히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세상만사가 부조리하게 느껴져서.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치료하고 새 인생 살 수 있게 됐잖아. 내가 솔직히 신은 믿지 않지만, 이건 고난과 시련 끝에 받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나는 솔직히 누나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신에게 널 바치자고 해도 찬성할 거야.”

바쳐질 거면 형이나 바쳐지라고 대꾸하긴 했지만, 형의 의견에 틀린 구석이 있진 않았다. 나는 반대를 포기하고, 누나에게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나 잘 지켜나 보기로 했다.

#4

무대를 옮긴 누나의 봉사 생활은 문제 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누나는 세 군데쯤 되는 아동 보호소를 돌아다니며 봉사 활동을 했는데, 보호소도 어떻게든 사람을 걸러서 받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도우러 왔다고 하자마자 흔쾌히 받아줬다는 모양이다. 보호 대상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예산은 제자리라 만성적인 물자,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탓이었으리라.

그런 한편으로 내가 걱정한 대로 누나는 어디에도 채용되지 않았고, 채용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직접 물어보진 못했으나 그 어떤 곳에서도 서류 통과 한 번을 못 한 듯싶었다.

혹시나 해서 콜드 슬립 환자 커뮤니티를 들어가 보니 다른 사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단한 전문직이거나 빼어난 연줄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일손은 부족하고 로봇은 투입하기 힘든 직종에 들어가거나, 국가가 지원하는 차세대 환경 복원 기술 쪽으로 창업해서 억지 계획서를 쓰며 고군분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개인 방송에 도전해서 콜드 슬립 당시의 임사 체험 썰 풀이로 시작해서 해괴한 음식 따위를 먹으며 고생하는 모양이었다.

그쯤 되니 기술도 경력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업계에서 알아줘서 방송에 출연하거나 강연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삶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다른 방도를 지닌 것도 아닌 누나가 삶의 위안거리로 자기희생에 몰두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곁에서 줄곧 지켜보자니 아무래도 점점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끊임없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지옥의 노동을 세 군데에서 6일 동안 하고 하루 쉬는 것을 주간 활동으로 삼았던 누나는 다른 사람들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일곱 군데에서 7일 내내 일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열네 군데를 전전하며 미친 듯이 일할 지경이 된 것이다.

말이 일주일에 열 네 곳이지, 이건 그냥 언어도단이었다. 그 어떤 노동자도 이렇게 일하지 않으며, 심지어 로봇도 비싼 모델은 일주일에 하루는 점검을 받는 것이 상식이다.

요컨대 누나의 봉사 활동은 이제 상궤를 넘어선 것이었다. 결국, 원하는 건 뭐든 시켜주겠다던 형조차 나와 합세해서 누나를 말리게 되었다.

“돈을 벌라거나 봉사 활동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그냥 제발 좀 쉬면서 해. 어떻게 살아난 목숨인데 그렇게까지 함부로 할 수가 있어?”

내 진심 어린 호소에 누나는 눈을 모로 떴다.

“함부로 하다니,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지금 얼마나 진심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내 평생 이렇게 충만했던 적이 없어.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가 기쁨으로 빛나는 걸 볼 때마다 삶의 아름다움을 느껴. 그런데 내게서 이걸 빼앗겠다는 거야? 내가 내 목숨보다 소중히 돌봐준 너희가?”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누나가 우리 뒷바라지한다고 그 고생을 했으니까, 죽다 살아났으니까 좀 편하게 살라는 말이야. 봉사 활동 좋지. 근데 그렇게 남들만 돌보다가 또 무슨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걱정하는 우리 생각은 안 해?”

나의 호소가 처절했던 탓인지, 누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형이 나섰다.

“누나, 내가 그 증상 알아. 회사에 그런 사람 있었어. 몇 년 사귄 여자 친구랑 안 좋게 헤어진 사람인데, 한 달 내내 일만 하더라니까. 결국, 쓰러져서 응급실 실려 갔어. 나중에 들어보니까 자기 효능감 상실로 인한 보상 체계 이상이래.”

“그러니까, 내가 지금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현대인 대부분이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소리 나온 지 50년은 됐잖아.”

누나는 이제 정말로 화를 내려는 듯 얼굴이 상기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10년 만에 지옥의 삭풍이 몰아닥치겠구나 생각했는데, 누나는 곧바로 고함지르는 대신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다시 들어 올린 누나의 얼굴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아무 근심도 없이 자비와 자애가 가득해서 어떤 고난에도 털끝 하나 상처 입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내가 내심 경악하는 사이, 누나는 다정하게 말했다.

“얘들아, 누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할 거 없어. 다음 주면 병원 정기 검진도 할 텐데 아무 이상 없을 거야. 그리고 정말 힘들다 싶으면 너희한테 먼저 말하고 쉴게. 하지만 지금은 일해야 해. 나한테도 필요한 일이고, 아이들한테도 필요한 일이야. 그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우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말이 이치에 맞거나 절실해서라기보다는, 그러한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누나의 온몸에서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5

콜드 슬립 및 뇌세포 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기 검진에서 누나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아마도 그게 지금의 누나를 이해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무관하게, 누나는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지독하게’ 건강했다. 근육량 같은 것을 빼면 건강하기로는 올림픽 출전 선수보다도 더 건강할 지경이었다.

건강만을 따져서 순위를 매기는 국제 경기가 있다면 금상은 이미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담당 의사는 농담 삼아 말했다.

건강한 건 좋은 일이지만 일주일 내내 일하는 사람이 이 정도로 건강한 게 말이 되냐고 내가 질문하자, 의사는 다소 난처한 듯이 대답했다.

“사람의 회복 능력은 제각기 다른 법인데, 최성주 환자분은 선천적으로 회복 능력이 빼어나신 것 같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회복이 빠를 수밖에 없는데, 완치 후의 삶을 감사히 여기면서 사시다 보니 더 좋아진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봅니다.”

이건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를 만들었다고 봐야 할까.

“아무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말씀이시죠?”

“네, 어떻게 봐도 지극히 건강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셨지만 봉사 활동이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보상이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많이 격려해주시고, 너무 걱정된다 싶으면 보호자분 혼자 상담소 한번 찾아주세요.”

요컨대 누나는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이 계속되면 내가 이상한 게 아닌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소리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이상해 보이냐고 버럭 화를 낼 뻔했으나, 그러면 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참았다.

아무튼 한국 최고의 의료진에게 완벽한 정상, 최고의 건강체라는 인증까지 받은 누나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고, 형도 나도 말릴 명분이 없었다. 형은 다시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그렇게 열성적으로 살다 보면 또 뭐가 잘 풀리는 법이라고 물러났고, 나는 그저 아프지나 말라는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가족들의 지지를 얻은 덕인지, 누나는 검진 이후로 일주일 동안 보호소 스물한 군데를 돌아다니는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이럴 수 있는가 싶긴 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을 어쩌겠는가?

심지어 누나는 그렇게 남을 위해 일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얼굴이 더 좋아지기까지 했다.

본인 앞에서는 입이 찢어져도 안 하는 말이지만, 원래도 예쁜 편이었던 누나는 이제 더 예뻐졌다. 화장술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닌데 피부는 희고 맑아졌고, 눈빛은 별빛처럼 총기가 가득했으며, 표정은 항상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따뜻하고 훈훈하며 신성하기까지 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그런 한편으로 내가 알던 우리 누나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누나의 이러한 변화에 내가 떠올린 것은 ‘여자는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해묵은 말이었다. 일리가 있긴 해도 누가 옷 좀 차려입으면 데이트하러 가냐고 묻는 꼰대 문화의 근원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 누나의 변화를 설명할 가설이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플로깅을 하다가 근사한 상대와 가까워져서 봉사도 하고 사랑도 하며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식의 흐름이 되었다면, 근래 의문스러웠던 부분이 대체로 해결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일을 하자면 딱히 남 생각 안 하고 살던 사람이라도 봉사 활동에 열성적으로 나설 법도 한 일이고, 하루에 세 곳씩 돌아다니는 강행군도 사랑하는 사람이 차를 태워준다면 한층 수월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봉사도 하고 사랑도 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한다면 얼굴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의문을 당사자인 누나에게 묻는 대신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물으면 정직하게 대답해 줄 것 같긴 했지만, 누나의 입을 거침으로써 누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보들이 윤색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말이라도 잘생기고 착실한 우등생이 하면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적당한 날을 잡아서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누나를 미행했다. 누나가 집을 나선 순간부터 뒤를 밟은 것이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누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지하철을 탔다. 남자 친구는 물론이고 여자 친구도 없었다. 누나는 조용히 혼자였다.

혹시 내가 미행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약속을 바꾼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오늘을 대비해서 어제 낮에 친구 집에 놀러 간다는 명목으로 미리 집에서 나왔고, 예전에 친구 집에서 찍어놓은 사진의 메타 정보를 조작하여 어제 찍은 사진인 척 보내기까지 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들킬 이유는 없었다.

누나는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을 이동한 뒤 인근의 아동 보호소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몇몇 아이들, 어른들과 마주치고 밝게 인사하긴 했으나, 특별히 돋보이는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사람이란 들켰다간 목숨이나 생계가 날아가는 상황이 아닌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특별히 반기고 더 크게 웃고 조금이라도 신체 접촉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직까지 누나에게 애인은 없어 보였다.

다만 굳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을 꼽자면, 누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몹시 공손했다는 점이다. 심성이 바르고 고운 사람들만 모였을 테니 그럴 수도 있을 법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누나를 대할 때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공손하고 예의를 깍듯이 지켰다.

좀 과장해서, 마치 지극히 존귀한 성인을 모시는 장면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망각과 죽음을 초월하고 돌아와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누나의 인물됨이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잠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시설 안까지 들어가 염탐하고 싶지만, 내겐 그럴 재주도 없을뿐더러 그건 아마 범죄일 것이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