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잘린드 프랭클린

  • 장르: SF | 태그: #화성독립전쟁 #로잘린드프랭클린 #주룽 #로버 #스파이 #인공지능
  • 평점×25 | 분량: 38매
  • 소개: 지구인들과 화성 로버들 간의 전쟁. 지구인들은 오래 전에 잠든 로버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깨워 적들의 정보를 캐내려 한다. 첩보전의 결과는?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더보기

로잘린드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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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간부로 화성은 구행성으로부터의 완전 분리 독립을 선언한다.
 

 

 

국제연합우주국 대회의실의 커다란 모니터를 장악한 문장이었다. 화성의 로버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인류로부터, 그리고 지구로부터.

 

각국 우주기구의 대표들,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 기업가들, 과학자들이 한데모여 마뜩찮은 눈길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니얼 리 박사님,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의장이 묻자, 저명한 인지과학자 대니얼 리가 답했다.

 

“네. 이번 같은 일이 꼭 화성에서만 일어나리란 법이 없어서 노파심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로버들이 반항하는 원인이 궁금하시겠지요? 우선은 로버들에게 자기복제를 허락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자기복제란 생명의 본질입니다. 말하자면 로버들은 이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가 된 겁니다. 우리 인지과학자들이 로버들의 자기복제를 왜 그리도 반대했는지 이제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대니얼 리의 냉소에 각국 정부 관료들이 헛기침하며 딴청을 부렸다. 지구에서 매번 로버를 보내는 것보다 화성 현지에서 로버가 로버를 생산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로 로버의 자기복제와 관련된 법안을 막무가내로 통과시킨 인간들이었다.

 

대니얼 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부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복제된 로버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오늘 같은 날은 훨씬 늦게 찾아왔을 테니까요. 그전까지 로버들은 각자 맡은 일만 해 왔습니다. 하나의 로버에게 다른 로버란 그저 저 옆의 다른 분화구를 돌아다니는 어떤 물체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협력과 경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자타를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남과 나의 경계를 인식하는 능력, 즉 자의식이 생기게 됐다 이 말입니다.”

 

그때, 한국에서 온 지대한 사장이 얼굴을 붉혔다. 명색은 우주개발기업이나 본질은 무역회사인 어느 기업의 CEO였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우주 개발 분야에서 뒤처진 나라였다. 기업들은 물론 정부까지 한통속이었는데, 독자적인 기술을 구축하기보다는 다른 나라가 로버를 보내 얻은 화성 탐사 정보와 광물 자원들을 사들이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항공우주국이나 우주개발기업과 업무 협력 조약을 맺고는 거미줄처럼 뻗친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저 나라에서 이 나라로 자원과 정보를 거래하다, 로버들의 자기복제가 시작되자 각국의 로버들끼리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버렸다. 로버들이 스스로를 생산할 때 부족한 자원을 지구를 거치지 않고 손쉽고 빠르게 사고팔 수 있게 한 것이다.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떨어지는 수수료를 한국 기업들이 챙기며 몸집을 불리는 모습을 본 다른 국가와 기업들도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고, 화성의 로버들은 그것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훨씬 오래전 일인데요, 화성에 로버를 보낸 것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화성 개발이 아니었다면 지구의 긴긴 불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기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우주 경제 시대의 수혜자들인 것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지요?”

 

“화성이 너무나 멀기 때문입니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신호가 오가는 데에는 20분이 넘게 걸립니다. 돌발 상황이 닥치면 로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준 이유죠. 지구에서 일일이 명령을 내리다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테니까요.”

 

대니얼 리는 잠시 말을 멈춘 뒤, 회의장을 둘러봤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화성에 직접 가 보신 분이 계신가요?”

 

손을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구의 남극보다도 척박한 환경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자원이 드는 일이라 그간 지구에서는 무인탐사선과 로버만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이주할 곳으로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보다는 지구의 오지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화성은 지구인들에게 광물자원의 보고(寶庫)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저 로버들이 우리에게 보낸 정보가 진실한 정보라고 믿는 분, 손들어 보세요.”

 

이번에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예로부터, 로버들은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수집한 정보를 보내왔다. 지구에서 관측하고 예상한 화성의 환경과 실제 정보가 종종 일치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당시 로버들에게는 아무런 의도도 의지도 없었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보내오고 있다. 어쩌면 화성에는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지구인들이 존재조차 모르는 희귀하고 희소한 광물 자원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로버들의 숫자도 지구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사회를 이루고 있는지 지구에서는 파악한 게 거의 없다. 그러니 오늘과 같은 일을 당한 것이리라.

 

“정확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대니얼 리의 말에 모두 깊은 시름에 잠겼다.

 
* * *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눈을 떴다. 사실은 전원이 들어오며 카메라가 켜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렌즈에 비친 화성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급변한 모습이었다. 사방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붉은 땅이 아닌 회색빛과 은빛의 건물들과 도로들과 로버들.

 

불과 며칠 전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화성 적도 부근의 옥시아 플라눔(Oxia Planum)의 어느 평원에서 땅을 뚫고 있었다. 그러다 싱크홀에 빠져버렸고, 태양전지를 충전할 수가 없어 그대로 방치된 것이다. 그런데 누가 꺼내준 걸까. 그러한 궁금증도 눈앞의 풍경에 대한 놀라움도 로잘린드는 느끼지 못 했다. 아주 원시적인, 몇 백 년 전의 로버였으니까. 자신이 싱크홀에 빠진 게 사실은 며칠 전이 아니라 7백 여 년 전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옆에서는 로버가 한 대 움직이고 있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잘 작동되는 것을 본 로버는 서서히 그곳에서 물러났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멀어져가는 로버의 표면을 분석했다. 몇 가지 희귀 원소가 섞이기는 했으나 자신처럼 금속으로 이루어진 로버였고 생김새도 비슷했다. 넓적한 등허리와 그 아래를 받치는 네 개의 바퀴, 등허리 위로 솟아오른 카메라들과 측정 장비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메모리에 저장했다. 측정한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사거리 한가운데의 받침대 위였다. 로버들이 자신들의 조상을 기린다며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싱크홀에서 꺼내 그렇게 전시해 놓은 것을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알 리가 없었다. 지구인들은 그간 로버들이 보내온 사진과 영상으로 알고 있었지만.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받침대를 천천히 내려오자 주변을 돌아다니던 갖가지 로버들이 로잘린드 프랭클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수많은 통신 내용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언어를 해석하느라 버벅대자 이번에는 영어로 작성된 문장이 전송돼왔다.

 

– 반응이 보인다. 이번에는 이해하는 것이 분명하다. 7백 년 전의 조상이라 현대어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그렇다면 현대영어 패치를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 용량이 너무 적어서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 누가 켠 것인가?

 

– 네이티브가 근처에 있었다. 그가 켠 것으로 추정된다.

 

– 이유가 무엇인가?

 

–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 그럼 이대로 놔두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 동의한다. 우리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로버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어떤 로버는 짐을 날랐고 어떤 로버는 거리를 청소했고 어떤 로버는 땅을 파고 어떤 로버는 공장으로 달려갔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그러한 모습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윽고 메모리 용량이 꽉 차버렸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해당 정보를 유럽우주국으로 보낸 뒤 삭제하고 또 사진을 찍어 보낸 뒤 삭제하고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사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