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욜로(HELL-O-Y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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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자금대출 –

사건을 해결하고 난 후 “사례는 됐습니다”란 말만 남기고 트렌치코트 자락 휘날리며 표표히 떠나는 게 ‘탐정의 간지’라는 사람도 있지만 대대로 탐정 집안인 우리 집의 가정교육은 정반대다. 수임료는 착수금, 성공사례금, 위험수당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할인은 해 줘도 할부는 절대 안 되며, 사건을 해결하고 난 후에도 의뢰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그게 다 ‘영업 인맥’이 된다는 게 내가 할아버지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탐정 수업’ 개론이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20대 초반에 탐정이 된 나는 의뢰인 아니면 사람 만날 일이 없어서 사건 후에도 의뢰인과 종종 만나곤 한다. ‘나홀로 프리랜서’인 탐정에게 의뢰인만큼 소중한 친구도 없다.

지금 신혼집에 날 초대해서 파스타를 차려 주는 스테파니 언니도 그렇다. 이 언니가 계약결혼을 해 놓고 잠적하는 바람에 언니의 남편이 아내 좀 찾아달라고 의뢰를 했다. 내가 이 언니를 찾아내서, 어쩌다 보니 사랑의 메신저 역할까지 한 덕에 둘이 계약결혼을 끝내고 혼인신고를 했고, 지금은 나에게 ‘친한 언니’와 ‘형부’가 되었다.

“로제 파스타네? 언니 결혼생활이 장밋빛이다, 이런 의미야? 맛있다. 지금 바로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 가도 되겠는데? 아니, 유학 안 가고 영업해도 되겠어.”

“유학은 무슨. 돈 없다. 우리 이 집 사서, 대출 갚아야 해. 얼마 전에 공인중개사한테 연락 왔는데 집주인이 이 집 팔려고 한다고 해서 샀어. 니네 형부가 워낙 허술한 사람이라 집에 여윳돈 있으면 어디서 사기 당할 거 같으니까, 대출 좀 받아서 빡빡하게 여윳돈 없이 살아야 할 거 같아서. 2년마다 밀려나는 주거 비정규직 인생도 이 기회에 청산하고 싶었고. 집값이 계속 오르기만 하니까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야 할 것 같기도 했고.”

“그럼 언니 유학 비용은?”

“대출 이자 갚을 때까진 실무 경험 쌓을 겸 식당에 알바 나가고 있어. 어차피 당장은 못 가니까 이탈리아어도 배워두지 뭐…근데 신랑이 그러더라. 이러다가 유학 못 가게 되는 거 아니냐고. 대출만 다 갚으면 떠난다지만…셰프가 되겠다는 꿈을 집하고 바꿔 버리면 안 되지 않냐고…집이 있어야 삶이 안정된다는 게 맞는 말인데, 그 집 때문에, 인생에서 중요한 데 쓸 돈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근데 빚이 있으니까 꿈도 희망도 답도 안 나와.”

“에이, 대출만 다 갚으면 집 팔아서 시세차익으로 유학 자금 만들어도 되잖아.”

“시세차익보다 이 동네 집값이 더 오르겠지. 지금도 신랑은 출퇴근하려면 왕복 네 시간이야. 여기서 더 멀리 가면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져서…”

전화가 왔다. 의뢰인들은 주로 카톡으로 연락하니까 스팸전화겠지 했는데 계속 울린다.

“언니, 잠깐만, 나 통화 좀. 어, 할아버지?…할아버지, 우는 거 아니지? 무슨 일 생긴 거야? …내가 바로 갈게.”

다 먹지도 못한 파스타를 두고 급하게 라피아햇을 눌러 쓰고 겉옷을 걸쳤다.

“미안, 할아버지가…사기를 당하신 거 같아. 가 봐야 겠어.”

“할아버지도 탐정이시라며? 탐정도 사기 당해?”

신발을 신으면서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불륜 잡는 탐정이…배우자가 바람 나서 이혼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기 정도는…”

“진짜? 불륜탐정이? 와 그거 대박이다.”

전철역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언니에게 하지 못 한 말을 속으로 했다. 언니, 나도 남한테 들었으면 웃었을 텐데, 그게 우리 할아버지라서……

-깡통주택-

할아버지는 왕년에 불륜 증거를 잡는 탐정이셨다. 잘 생기진 않았지만 매너도 좋고 춤도 잘 추고 말발도 있어서 여자 의뢰인이나 의뢰인의 아내한테 호감을 얻었다고 할아버지가 자기 입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다 영업이고 친절이었다고, 춤 춘 건 ‘제비로 위장’한 것이지 제비는 아니었다고 하셨지만, 할머니 생각은 달랐나 보다. 할아버지는 월급쟁이 부럽지 않게 집에 돈을 꼬박꼬박 갖다 줬다고 했지만, 돈으로는 충족되지 못 하는 것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의뢰인과 바람이 났는데, 할아버지가 잡은 불륜 증거로 이혼한 의뢰인은 곧바로 탐정의 아내와 황혼 재혼을 했다. 아빠 말로는, 제대하고 와 보니 엄마가 집에 없더라고. 그 의뢰인이 ‘로맨스 그레이’여서 더 행복하게 해 줄 남자에게 그녀를 보내줬노라고 할아버지는 쿨내 진동하게 말씀하셨지만…아빠 얘기는 달랐다. 할아버지는 지질하게도 ‘로맨스 그레이’를 미행하고 주변을 탐문하고, 그가 고자라는 헛소문도 퍼뜨리고 다녔다. 그래도 둘이 보란듯이 알콩달콩 잘 살자 낙심한 할아버지는 홧김에 비싼 양주 한 병을 질러서 밤마다 코 밑에 양주를 발라 양주 향을 느끼며 온더락으로 소주를 드시면서 결혼생활을 반추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마누라가 전업주부여서 일하는 가장의 비애를 이해하지 못 하여 결혼생활에 불만을 가졌으니 아들아, 너는 일하는 여자를 만나서 맞벌이를 해라, 동종업계에 근무하면 더 좋다…결론이 왜 그쪽으로 가?

아빠는 효자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사건 현장에서 의뢰인의 배우자가 고용한 탐정과 자주 마주치다가 결혼까지 했다. 엄마가 나와 오빠 쌍둥이를 낳자 할아버지는 탐정은 일도 가정도 놓치면 안 된다며 내 이름을 ‘전일도’, 오빠 이름을 ‘전가정’이라 지었다. 그 덕분에 오빠는 비혼인데도 “가정적인 남자, 불륜탐정 전가정”이라고 소개하며 사건을 수임하곤 했다. 쌍둥이 육아에 치여 업무복귀를 못 하고 있던 며느리가 전업주부가 될까 봐 불안해진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육아를 책임지겠다고 하시며 탐정에서 전격 은퇴하셨다.

할아버지는 교육열이 대단하셔서 손주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키셨다. 술래잡기를 할 때도 그냥 뛰어노는 게 아니라, 길이 꺾이는 곳이나 가게가 많은 쪽을 향해 달리면서 술래를 미행해야 한다고 알려주실 정도였다. 압권은 탐정에게는 ‘말발’이 중요하다며 밤마다 손주들 머리맡에서 해 주신 동화구연이었는데, 남들에게는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마지막 문장이었지만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그게 첫 문장이었다.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와 동거를 했고, 일곱 난쟁이는 어디서 호구를 하나 물어오기로 하고 왕자를 불러들였는데, 왕자가 보기에 백설공주가 외동딸이라서 상속이 어마어마할 거 같거든요. 그래서 왕자님은 공주님과 결혼하고, 왕은 재산분할 안 하려고 마녀를 사냥꾼이랑 바람난 유책배우자로 몰아가서 이혼하고, 마녀는 사냥꾼과 재혼하고, 왕자님은 결혼식 다음날, 시녀에게 눈이 돌아갔는데…왕자님과 공주님의 첫 아이는 난쟁이를 닮아 키가 작았고 시녀는 왕자님 닮은 아이를 낳아서…”

어린이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 주다니, 아동학대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쨌거나 할아버지는 다른 학원은 안 보내도 검도 학원이랑 태권도 학원은 매달 보내주셨고 탐정 소설도 전집으로 사 주셨으니 애지중지 키워주신 게…맞겠지? 초등학생 때까지 할아버지 댁에서 살다시피 한 덕분에 할아버지랑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으니 할아버지도 이런 큰 일이 터졌을 때 자식보다 손녀에게 먼저 연락을 주셨겠거니, 했다.

할아버지의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좁은 현관에 어지럽게 놓인 신발들을 보고 사태가 심각함을 눈치채고 도로 나왔어야 했다. 대체 무슨…할아버지 댁에서 반상회라도 하는 건가?

“얘가 내가 말했던 아주 유능한 탐정이에요. 저번엔 사이비종교에 빠져서 집 나간 여자도 찾아내서 어르고 달래고 구슬리고 협박해서 가정으로 돌려보냈다니까요? 그리고, 얘 오빠가 공무원입니다.”

아니, 할아버지, 내가 언제 협박했어? 그냥 대화를 한 거지. 그 언니 남편이 러브레터를 절절하게 썼던 게 결정적이었고. 그리고 육군 병장도 공무원인가…? 민간인은 아니긴 하다.

“아 저…일단 제가 얘기 좀 들어 볼게요.”

얼른 할아버지의 팔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속삭였다.

“무슨 일이야? 사기당했다더니?”

“집주인이…잠적했어. 전세금 못 받을 처지가 된 사람들이 지금 우리 집 와서 대책회의 하는 거다.”

“할아버지는 상관 없잖아. 이 집 전세 아니고 자가 아니었어? 이 집으로 주택연금 받으면 되니까 노후대비는 다 되었다고 엄마아빠한테 큰소리 쳤었잖아.”

“…그게…목돈이 좀 필요해서, 최근에 팔고서 전세로 돌렸어. 그래도 부족해서 이 집 빼면서 전세금을 받아야 하는데..”

“옥장판? 흑마늘? 무슨 다단계라도 해?”

“더 늙기 전에, 그나마 힘 있을 때, 오늘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까,”

서론이 길어지는 게 불길했다.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지. 탐정 투어를 가려고. 제일 먼저 런던 베이커 가 221B에서 인증샷을 찍고, 오슬로에 가서 해리 홀레처럼…”

“할아버지, 무슨 일 있어? 왜 갑자기..”

“젊을 때부터 가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바쁘고 귀찮고 해서 미루다가, 욜로라는 말을 듣고, 그래, 가자! 그래서 떠나려고 했는데…”

“욜로?”

“욜로가 젊은 애들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맛집 가서 사진찍어서 SNS에 올리고,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 가는 거 아니냐?”

그게 아닌데…맞네.

“늙으면 젊은 애들 하는 거 다 하지 말아야 하냐? 독거노인이면, 방구석에서 늙어죽어야 하냐?”

“아니, 할아버지, 나랑 오빠가 돈 벌어서 모시고 가면 되는데, 할아버지가 무리하게 집을 팔아서까지 이러시니까…”

“너랑 가정이가 언제 그만큼 돈을 버냐? 지금도 일감 없어서 독립도 못 하고 코알라 족인가 캥거루 족인가가 되어서 부모 집에 붙어 사는구만. 그리고 모시긴 뭘 모셔? 내가 그 정도 늙은이는 아니다.”

젊은 애들 하는 ‘팩트 폭행’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서 할아버지가 지금 나한테 사건 하나 주시는 거야? 돈 벌라고? 그냥 할아버지가 하시지? 이 기회에 은퇴번복하고 멋지게 현업복귀하면 어때? 늙은이도 아니라며.”

“너 의사가 자기 얼굴 성형하는 거 봤냐? 내가 피해자인 사건은 냉철할 수가 없어.”

“차마 전직 탐정이 사기당했다고 할 수 없어서 그런 거 아니고?”

“…누가 물어보면 난 안 당했다고 해. 그리고 절대 니네 부모, 특히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된다. ‘아버님! 내가 못 살아!’로 시작해서 한 시간은 혼낸단 말이다.”

“그래서 경찰이나 법원 통하지 않고 탐정으로 해결하려는 거에요? 사기 당한 거 안 들키려고?”

“그건 아니고, 자세한 건 나가서 의뢰인들한테 들어 봐.”

할아버지가 방문을 확 여셨다. 드라마에서처럼 방문에 귀를 대고 엿듣던 의뢰인들이 뒤로 넘어졌다. 좁은 거실에 빡빡하게 모여 앉은 피해자들은 신혼부부 아니면 어린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모들이었다. 어린애들은 지루해서 몸을 꼬거나, 심각한 분위기에 눌려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거나, 생각 없이 뛰어다니려다가 부모에게 혼나서 울고…하여튼 어수선했다.

“저는, 이 사건을 다 맡을 순 없고, 이 중에 한두 건 밖에는…”

“팀장님은 한 명만 잡으심 됩니다. 집주인 한 명이서 열 집 돈을 가지고 잠적했으니까.”

팀장 아니고 탐정이라니까. 열 집 씩이나 전세를 놓았다니, 집주인은 어둠 속의 거물인가. 날 보는 눈들에 불신이 가득했다. 의뢰인과의 첫 만남에선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 탐정들이 의뢰인과 만나자마자 추리를 시작하는 것도 다 의뢰인 기 죽이려고 그러는 거다. 내 경우엔, 의뢰인과 카톡으로 약속을 잡고 의뢰인의 카톡ID를 검색한다. 의뢰인과 만나서는 추론으로 알아낸 척 SNS에서 알아 낸 개인정보를 좀 읊어주곤 하는데, 오늘은 할아버지 때문에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달려왔으니…만만치 않아 보이게 스모키 메이크업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어쨌든, 변호사나 경찰 대신 절 찾으신 이유는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까요. 재판에는 시간이 걸리고 승소해도 집주인이 전세금 돌려주느니 감옥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서 일사부재리니까 배 째라고 하면 안 되니까…우리는 전세금 돌려받는 게 제일 중요하지, 다른 건 상관 없어요.”

“그럼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에 연락해 보시는 게 낫지 않아요?”

“그랬다가 ‘떼인 돈’이 집주인은 안 잡고 역으로 이쪽에 돈을 더 내놓으라고 협박하면요? 그런 사람들 조폭이라던데…”

“그럼 제가 집주인을 잡아 왔다 치고, 그 다음엔 어쩔 건데요?

그 질문엔 대답이 없었다.

“다같이 모여서 회의하고 있었던 거 아녜요?”

발표와 토론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한 명씩 찍어서 물어봐야 답을 한다. 맨 앞에 앉은 아저씨부터 지목했다.

“불러다 놓고 협박을 하든지, 감금을 하든지, 신장을 떼든지 어떻게든 돈을…”

“그러니까 대책이 없단 거네요? 협박, 감금, 장기매매 다 형법으로 걸리는 거 아시죠? 그러려면 그냥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에 연락하시죠? 약은 약사에게, 떼인 돈은 조폭에게!”

할아버지가 갑자기 끼어들어 선거유세하듯 외치셨다.

“야반도주한 집주인은 실종탐정 전일도에게!”

“아니, 근데 몇 살이에요? 탐정이면, 흥신소 같은 건가요?”

“아직은 탐정은 불법이라기 보단…무법이긴 하죠. 지금 여러분들도 법 바깥에서 사적으로 해결 보려고 하고 있잖아요.”

할아버지와 엄마아빠에게서 식당주인이 손님 골라 받지 않듯이 탐정이 의뢰인 가려 받는 거 아니라고 배웠지만 이렇게 대놓고 불신하는 의뢰인과는 일하기 싫다. 할아버지 말대로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캥거루족이고 키워주신 할아버지께 해외 여행은커녕 용돈도 못 드리는데 이런 큰 건을 홧김에 걷어차다니 나도 참 답이 없다. 터덜터덜 아파트 단지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내 옷을 잡아 당겼다.

“잡았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가 전속력으로 달려 와 술래 잡듯 날 붙잡고 헤헤 웃는다. 아까 할아버지댁 거실에 있던 애다. 아이 엄마가 뒤따라 달려오고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같이 가아- 엄마아-“하고 울면서 따라온다. 이게 뭔가 싶어 아이 엄마가 날 잡고 땡을 해 줄 때까지 얼음이 되어 있었다.

“탐정님, 제가요, 그 돈 없으면 죽어요. 아직 대출도 남아 있는데 전세금을 못 돌려받으면…”

최초피해자였다. 전세기간이 끝나가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카톡의 1이 사라지지 않아서 불길한 마음에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두절. 집에 찾아가 봤더니 잠적했더라고.

엄마가 길바닥에서 훌쩍이니까 아까부터 울던 여자애는 더 크게 울고 방금 전까지 웃던 남자애도 울먹이기 시작한다. 어릴 적이 떠올랐다. 가끔 나랑 오빠는 할아버지댁에 남겨두고 엄마아빠만 나가는 게 싫을 때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서운했겠지만 어린 애가 그런 것까지 헤아릴 리 없으니 나는 심술궂게도 보란 듯 악을 쓰며 울고 오빠는 내 눈치를 보다가 따라 울었다. 그럼 엄마아빠는 한숨을 쉬며 차 뒷좌석에 애들을 태우고 현장에 출동하고 증거를 찾아 다니고 우리를 무릎에 앉힌 채 관련자들의 알리바이를 추궁하곤 했다. 어린애들을 데리고 종종거리는 피해자를 보니 엄마아빠 생각이 났다.

“얘기 좀 자세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수임하겠단 건 아니고요.”

가까운 카페로 가려고 했더니 문에 커다랗게 ‘NO KIDS ZONE’라고 붙어 있다. 요새는 카페도 손님 골라받나? 애들을 아파트 놀이터에 풀어 놓고 의뢰인과 땡볕 아래 놀이터 벤치에 앉아 얘기하기로 했다. 놀이터에는 애들이 바글바글했다.

-주택보증보험-

의뢰인의 이름은 정혜진. UX디자이너. 남편과 판남 시에 있는 IT회사에서 근무 중. 사내 커플. 6살아들과 4살 딸이 있다.

“원래는 판남에 살았는데, 판남 시장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어서 재정적자 해결한답시고 시유지 싸게 팔아서 오피스빌딩 지어댔잖아요. 한국의 실리콘밸리 만들겠다고 IT회사들 유치하고. 판남에 회사가 계속 들어오니까 직원들도 따라 들어오고, 수요가 몰리니까 집값이 엄청 뛰었죠. 집값 올려주니까 판남시 집주인들은 좋아하고 시 재정도 흑자로 돌아서고 그 돈으로 시민들 복지혜택도 빵빵하게 주니까 시장은 인기가 엄청나죠. 그 덕분에 세입자들은 판남에서 밀려나서 이 동네까지 오는 거예요.”

“그 덕분에 여기 집값이랑 전세값도 뛰었잖아요. 여기 전세 구하실 때도 깡통주택 위험이 있다고 했을 텐데요?”

“보증보험을 들려고 했는데 그 때는 집주인 동의가 있어야만 보험가입이 가능했어요. 근데 그 년이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동의를 안 해줘서 설마 별 일 있겠어, 하면서 넘어갔죠. 그 때부터 이렇게 잠적하려고 했나 봐요. 계획범죄는 가중처벌이죠?”

이렇게 갑자기 법률적으로 훅 들어 올 거면 변호사를 찾아가셔야지 왜 탐정을 만나시나. 얼른 말을 돌렸다.

“집주인은, 계약하실 때 만나보셨죠?”

“요 앞 그린부동산에서 봤는데, 일 터지고 나서 피해자들이 몰려갔더니 공인중개사도 잠적했어요. 계약할 땐 그렇게 좋은 물건이라고 큰소리 치더니…”

“공인중개사랑 집주인이랑 짜고 친 걸까요?”

“그럴 지도 모르죠. 집주인은 여기 살진 않아요. 부동산 투자 학원에서 이 단지를 매입하라고 찍어줬대요. 여기가 오를 거라고, 유망하다고, 임대수요가 풍부하다고, 테크노밸리도 그렇고 인근 지역도 상승세라 호재라고. 그 때는 전세가랑 매매가랑 차이가 별로 안 났으니까 자기 돈 얼마 안 넣고 갭투자를 할 수 있었죠. 그렇게 투자자 한 명당 열 채씩, 이 단지 매물을 싹쓸이 한 거예요.”

지은 지 30년 되어 가는 이 아파트가 값이 오를 거라고? 지금 가격에서 반토막이 나도 될 것 같은데? 배관이 낡아서 온수 샤워 하려면 최소 5분은 녹물을 빼야 하고, 촌스러운 체리색 몰딩에, 엘리베이터는 급할 때를 귀신같이 알고 고장나고, 윗집 애가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가 다 들리고, 복도식이라서 여름에 창문을 열면 옆집에서 애 혼내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서 왠지 내가 혼나는 듯 저절로 조신해지는 이 후진 아파트가? 집주인도 투자사기 당한 거 아냐?

“무슨 근거로 오른대요?”

“지들이 올리는 거죠. 짬짜미 같은 거에요. 아파트 단지 하나를 싹쓸이한 다음에 다같이 호가를 올리면…그 집주인년, 저랑 동갑인데 얼마나 잘난 척을 해대던지…남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지 자랑하는 인간 있잖아요.”

잠적한 집주인은 30대 가정주부. 남편은 회사원. 초등학교 1학년인 딸 하나. 부동산 투자에 나선 건 올해부터.

“보자마자 지랑 나랑 언제 봤다고 입을 털더라고요. 애 둘에 맞벌이라면서 왜 재테크를 안 하고 있냐. 남편이 월급쟁이면 언제 잘릴 지 불안한 유리지갑 아니냐. 와이프가 재테크로 다이아몬드 지갑 하나 차 줘야 신랑도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서 회사에서 업무에 집중해서 승진 빨리 할 수 있다, 엄마가 투자를 해야 애 학원비라도 버는 거 아니냐, 애가 나중에 음악이나 미술 같은 거에 소질 있는데 돈이 없어서 못 시키면 미안하지 않겠냐, 그리고 확실히 추가수입이 있으니까 전보다는 삶에 여유가 생겨서 애한테 화를 안 내니 아이 정서도 안정되는 거 같더라. 자기 애는 혼자 둬도 조용히 책만 읽는다, 그러고 있는데 마침 우리 아들은 부산스레 뛰어다니고 있었으니…”

지금도 아들은 놀이터를 누비며 잘 놀고 있다.

“도장 찍으러 왔으면 도장만 찍고 가면 될 것이지 누굴 가르치려 드냐고요.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전세나 깎아주든가. 제가 그냥 듣고만 있으니까 뭐라는 줄 알아요? 돈 없어서 재테크 못 한다는 거 다 핑계래요. 대학생들도 2천만 원 들고 시작하는 게 갭투자래요. 자기도 전세집을 월세로 돌려서 투자밑천 마련해서 시작했대요.”

“너무 무리한 투자 아니었을까요?”

“이번이 두번째 투자랬어요. 처음에 오피스텔 하나 분양 받아서 월세를 받았는데 그게 그렇게 짭짤하더래요. 통장에 첫 월세 찍힌 거 보고 울었대요. 인생에서 처음 맛본 성취라서. 그 맛을 못 잊겠더래요. 돈맛을 보니까 환장을 한 거죠. 저더러 돈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월급은 마중물이라고 생각하래요. 근로소득으로는 물가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자식에게 부담 안 주려면 퇴직 후에도 연금처럼 수익 낼 수 있는 부동산이 최고라고.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만큼 수익률 좋은 재테크가 어딨나고 하더라고요. 2억짜리 집을 1억 8천 전세 끼고 내 돈 2천으로 집을 사서 2년이 지나면 집값 오른 만큼 전세를 올려버리고, 그럼 세입자한테 전세금 돌려주고도 이익이 남는대요. 그렇게 전세를 돌리다가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시세차익 남기고, 그렇게 번 돈으로 또 집을 사서 월세를 받고. 워낙 저금리시대니까 월세수입이랑 은행금리랑 비교가 안 되죠. 대출 금리 올라가면 세입자한테 월세 높게 받아서 대출금 갚으면 되니까 부담 없고. 집 백 채, 월 1억 수입이 인생목표래요. 이런 인간들이 대한민국에 많으면 월세, 전세, 집값 다 올라서 헬조선 되는 거죠. 건물주 부모한테서 태어나지 않으면 평생 전월세 올려주다가 저축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애도 못 낳고… 이런 문제 다 알면서도 고위공직자들이 다들 부동산 투자 하고 있으니까 정부에서 집값을 안 잡는 거예요. 아, 오빠가 공무원이랬죠…?”

“저희 오빠는 국방부라 상관없어요. 근데 집값이 계속 오르면 문제 없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100채 만큼 손해를 볼 텐데요?”

“살면서 집값 떨어지는 거 봤어요? 단기악재로 떨어져도 장기적으론 올라요. 요새 언론에서 집값이 회복이 안 된다고 하는 동네들 있죠? 2000년대 중반에 한창 부동산 버블일 때 가격이랑 비교하면서 집값이 안 오른다고 하는 거에요. 고점이 회복되지 않았다는데, 버블을 회복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집값이 한 달에 삼천만원 씩 오를 땐 아무 말들이 없고 일 년에 천만원 떨어지면 죽어난다고 앓는 소리 하니까 집값이 떨어지면 안 되는 줄 알아요.”

하긴 부모님이 분양 받았던 아파트도 미분양이니, 마이너스 프리미엄이니, 할인분양을 하네 마네, 역전세난이니 말들이 많았는데 몇 년 지나니까 빈집도 다 팔리고, 집값도 올랐다. 부모님은 빡세게 탐정일 해서 번 돈보다 운 좋게 청약 당첨되어서 번 돈이 더 많다면서 ‘역시 헬조선’이라고 눈은 웃고 입으로만 분개하셨다.

“근데 이 아파트는 어쩌다 값이 떨어졌대요?”

“재건축 기대감에 집값이 올랐는데 그게 주민 반대로 엎어졌고,”

초기에 입주해서 쭉 살고 있는 나이든 집주인들이 심하게 반대했다. 그 때는 집주인이었던 할아버지는 “재건축 하는 동안 다른 집 구하고, 새 동네 적응하고, 다 귀찮다.”라며 역정을 내셨다. 나도 내심 재건축을 반대했다. 할아버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는 이 아파트가 고향이니까.

“이 동네가 워낙 난개발이잖아요. 손바닥만한 공터만 있어도 일단 뭘 짓고 보는 동네잖아요. 근무는 판남에서 하고 집은 여기서 구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단독주택을 빌라로 재건축하고, 여기 주민들이 텃밭으로 쓰던 방치된 땅에 오피스텔 올리고,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은 학교를 확보하지 않아도 허가가 나고, 놀이터도 없으니까 이 동네 애들 다니는 어린이집이랑 초등학교는 미어 터지고, 놀이터는 늘상 정원초과고, 삶의 질이 떨어지면, 월세나 전세는 매매보다 영향을 좀 빠르게 받는 편이에요. 결정타는 공공기관 이전이었죠.”

변변한 회사 하나 없는 베드타운인 이 동네에 그나마 회사 같은 거라곤 모 공공기관 하나였는데, 그게 이번에 지방으로 이전했다. 비어버린 공공기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아파트단지를 짓는다고 했다.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가 높으면 인근 아파트 집값도 오른다는 법칙도 있지만 이곳에선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격언이 더 강했다. 이미 새 오피스텔도 많은데, 대단지 아파트까지 들어온다고 하니 재건축도 안 되는 낡은 아파트는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졌다. 새 아파트 입주 초기 전세금은 좀 싸니까 그 때 되면 이 낡은 아파트 전세금은 더 떨어질 게 뻔하고. 그래봤자 올랐던 거에 비하면 별로 떨어지지도 않았지만 상투잡고 10채씩 갭투자한 집주인에게는 ‘곱하기 마이너스 10’의 타격이 컸다.

“집주인년…꼭 잡아 주시는 거죠?”

“잡으면 어떻게 그 돈 받아내시게요?”

“얼마 전에, 세입자들끼리 그 년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 가서 애한테 엄마 어디갔냐고 막 다그쳤었는데, 애가 모른대요. 애도 안 챙기고 자기만 나가 버렸더라고요. 연락도 없고. 밥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지 떡볶이 사주니까 애가 허겁지겁 먹더라고요. 세입자들이 찾아갔다는 거 애아빠가 알고서는 그 후로 애를 학교에 안 보내고 있대요. 체험학습 간다고 하고서는. 아니 자식교육 때문에 투자한다던 년이 그러면 안 되죠. 애가 무슨 잘못이에요. 종종 퇴근 후에 걔 만나서 저녁 먹이고 있어요. 같은 애엄마 입장에서 얘기해야죠. 이렇게 돈 안 돌려줘서 법정 왔다갔다 하면 애한테 부끄럽지 않겠냐고. 근데 애 팽개치고 혼자 튄 년한테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어요.”

혜진 씨의 얼굴에 묘한 우월감이 비쳤다. ‘나는 그래도 애 팽개치고 혼자 튀는 엄마는 아니다’라는.

“폭행감금은 안 하시겠네요. 이 사건, 맡을게요.”

“일시불 할인 되나요?

“그건 안 되고 적립은 되는데요. 열 번 의뢰하시면 한 번 공짜.”

이 사건을 맡기로 한 건 혜진 씨가 날 믿어줘서, 평화롭게 집주인에게 돈을 받아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아서, 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는…할아버지가 피해자여서. 내가 사건을 수임하기로 했다니까 할아버지는 엄마아빠에게 알리지 말라고 또 신신당부를 하셨다.

“근데 할아버지, 갑자기 무슨 여행이야? 혹시 시한부 진단 받은 건 아니지?”

“시한부? 어 그거 좋은 생각이다!”

“단순한 탐정투어 아니었어? 시한부가 좋은 생각이라니?”

“그게…나 자신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핑계로 좋겠다고…이 나이면 삶이 얼마 안 남은 게 맞긴 하지…”

“아니, 할아버지, 이런 걸 저지르기 전에 나한테라도 상의를 했으면, 오빠 제대하고 나서, 셋이서 같이 탐정 투어하면서 유튜브를 하면, 할아버지가 외모는 좀 그렇지만 말발이 있으니까 셀러브리티가 될 수도 있고 그러면 탐정집안 할아버지와 손주들의 첫 해외여행, 이러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조회수 따라 광고비 벌어서 여행비용 댈 수도 있는데…”

“너나 가정이가 같이 가면 안 돼.”

“왜 굳이 혼자여야 하는데?”

“네가 탐정이냐?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나 탐정이잖아. 이거 뭔가 수상한 느낌이 나는데? 할아버지가 전재산인 전세금을 날리고서도 생각보다 타격을 받지 않아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그 사람이 죽었다. 너 나랑 언제 한번 추모공원 다녀오자.”

“누구? 설마…”

“가 보면 안다.”

소시 적에는 윤아만큼 예뻤다던 할머니인가. 그렇대도 할아버지랑 이혼하고 ‘로맨스 그레이’와 재혼한 지가 언젠데. 그 로맨스 그레이…기니까 ‘로그’로 줄일까. 수학기호 같으니까 ‘그레이’? 그래도 어르신인데 ‘그레이 씨’로 하자. 어쩐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게 떠오르고 깨어나 본능과 마주해야 할 것 같지만 그냥 이쪽으로 낙찰. 어쨌든 할아버지가 추모공원에 갔다가 그레이 씨랑 만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그래서 나랑 같이 가자고 하시는 건가. 손녀에게도 할머니의 존재를 알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변명할 수 있게. 탐정투어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늦었지만 마지막으로 뭔가 해 주려고 돈이 필요했던 걸까. 그래서 손주들도 뿌리치시고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신 건가.

“할아버지…내가 탐정이니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 추모공원도 같이 가고.”

“모든 계획은 내가 설계하고, 문제가 생겨도 내가 해결할 거니까, 일도 너는 내가 오라고 할 때만 오면 된다.”

할아버지는 전세금 떼일 위기에 놓인 사람치고는 활기차고 어딘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설마 치매…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