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장르: SF, 일반
  • 평점×20 | 분량: 136매 | 성향:
  • 소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조처럼, 병원은 얼룩을 지우는 반복 안에 있다. 더보기
작가

표백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실장님.”

 

세 번째 불렀을 때야 근아는 모래를 돌아보았다. 병원 지하 세탁실의 삼면을 둘러 채운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들이 토해내는 낮고 거친 회전음에 모래의 목소리도 말려 들어 가 잘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소리 볼륨을 30퍼센트 정도 높여 부른 세 번째에야 근아는 모래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 네, 모래 씨.”

 

근아는 남은 세탁시간이 가장 적은 세탁기를 향해 다음으로 넣을 세탁물이 가득 담긴 햄퍼 두 개를 낑낑 끌고 오던 도중이었다. 바퀴가 달렸어도 무거운 햄퍼의 방향 조절은 처음엔 수월하지 않다. 근아의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애쓰는 것이다.

 

전임 주간 실장에 이어 새로 들어온 지 이제 겨우 두 주를 넘긴 근아는 오래 근무한 평사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세탁실에 적응해가는 중이었다.

 

근아는 자기가 뭔가 실수한 거라도 있나 살짝 움츠러들었다. 마스크 위에서 두 눈이 깜빡인다. 실장이라고 해도 근무 일수로는 이 세탁실에서 가장 막내니까 아직 날마다 긴장 속에서 보낸다. 신임 실장은 변함없이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청년이다. 직급만 상사인 경험 적은 신입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모래에게 낯설지 않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근아는 자연스럽게 권위를 익혀서 모래와 다른 평사원들, 즉 휴머노이드들에게 스스럼없이 실무 지시를 내리는 실장이 될 것이다. 세탁실 3년 근무 후 행정실로 발령 받은 전임 주간 실장도 그랬고, 지금의 야간 실장도 그렇다. 세탁실은 낮과 밤 교대제로 돌아간다. 그래서 실장도 두 명이다. 실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모래 같은 휴머노이드다.

 

모래는 제 표정이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가 싶어 페이스 모듈에서 신중함의 수치를 15퍼센트 낮췄다. 이어 본격적인 용건을 말하기 전 안부나 상태를 묻는 가벼운 말로 상대의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소음, 힘들지 않으신가요?”

 

이거 있으니까 괜찮아요 라며 근아는 제 목덜미에 걸쳐진 청력보호구를 톡톡 두들겨 보였다.

 

“많이 거슬릴 땐 이거 쓰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근아가 저걸 쓰는 걸 모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휴머노이드가 소음에 영향을 받지 않듯, 이 세탁실에서 일하는 한 자신도 무뎌지고자 견디는 것 같았다.

 

“무거운 건 저희에게 맡기세요 실장님. 특히 오염 세탁물은요.”

 

“괜찮아요. 지금은 저도 배워야 하니까요.”

 

근아의 얼굴에서 긴장이 빠져나가자 모래는 전해야 했던 용건을 앞으로 내밀었다. 구겨져 뭉쳐진 환자복이었다. 빨아서 단정하게 개켜진 환자복이 아니라 병동에서 수거해 온 아직 세탁 전 그대로인 것이다.

 

“환자복이…… 왜요?”

 

의아하게 바라보는 근아에게 모래는 환자복의 접힌 면을 한 번, 두 번에 걸쳐 열었다.

 

“윽.”

 

근아는 마스크 위로 코를 한 번 더 막았다. 옷 속에는 쌀밥 한 뭉치와 연근조림 몇 개, 시금치나물, 동그랑땡 몇 개와 원래는 잘 말라 있었을 김이 한데 뒤섞여 음식물 쓰레기처럼 엉겨있었다. 한 끼는 거뜬히 될 양이었고 환자복은 당연히 각종 양념의 얼룩으로 엉망이었다.

 

“누가 음식을 이렇게. 이거 지워지는 거죠?”

 

세탁실 업무를 하면서 이미 혈액을 비롯한 다양한 체액과 토사물, 오염물질을 보아온 근아였다. 그에 비하면 음식물은 귀여운 수준이다. 주사침 같은 위험 물질이 딸려 나온 것도 아니고 휴대폰이나 귀금속 같은 귀중품도 아니다. 그저 매일 맞아들이는 12톤의 세탁물 중에서 식판을 그대로 쏟아 놓은 듯한 음식물 더미는 처음 맞닥뜨리는 물질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이다.

 

“그럼요. 표백할 수 있습니다.”

 

효소 세제를 사용하면 문제없다.

 

“혹시 오염 세탁물로…… 분류되었어야 하는 건가요?”

 

근아가 확인하듯 물었다. 의료기관에서 나오는 세탁물은 오염 세탁물과 아닌 것을 엄격히 구분한다. 일반적인 침구나 의류는 오염 세탁물이 아니지만, 환자의 혈액이나 고름, 분비물 또는 전염성 물질이 있는 경우는 오염 세탁물로 분류해 별도의 소독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니요. 일반 세탁물 맞습니다.”

 

“그럼 음식물은 버리고 절차대로 세탁하면 되지 않나요?”

 

근아는 그렇다면 뭘 굳이 내게 그걸 보여주기까지 했느냐는 질문을 그렇게 돌려 물었다.

 

“병동에 고지해야 하거든요.”

 

“음식을요?”

 

아직 세탁실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마다 근아의 고개는 살짝 비스듬해지고 왼손은 작업용 가운에 딸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까 살펴보다가 그대로 넣어두었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스포트라이트’ 페이지를 닫고 근아는 업무용 메모장을 실행시켰다.

 

실장의 낙은 업무 틈틈이 스포트라이트를 살피며 코멘트를 쓰는 일이었다. 교대 시간을 제외하면 세탁실에 인간은 근아 혼자이므로 대화랄 것을 나눌 상대가 전무하다. 그래서 거기에 잡담을 늘어놓는다.

 

“수거한 린넨에서 버려진 음식물이 다량 발견되면 간호사 데스크에 고지해야 해요. 이건 정신과 병동 햄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설명을 덧붙이자 근아는 제 나름의 이유를 추론했다.

 

“단식투쟁하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인가요?”

 

“맞아요.”

 

환자복에 이름표가 달린 것도 아니니 누가 입던 것인지 바로 특정은 못 하지만, 린넨에서 음식물이 발견되었다 알리면 간호사들은 대체로 어떤 환자인지 어림짐작한다. 당장은 몰라도 자연히 드러난다. 먹기를 거부하려고 작정한 사람은 한 끼만 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감시가 시작되면 계속 숨기기는 무리수다.

 

모래는 근아와 세탁실 한 편에 마련된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초라한 면적이다. 작은 방 중앙에는 낮과 밤 관리자 공용 책상이, 그 위에는 서류작업이나 업무 보고용으로 쓰는 태블릿 패널이 놓여있다. 나름 사무실이라 세탁실과 이곳을 분리하는 벽이 소음을 약간은 낮춰준다.

 

근아는 바로 정신과 병동 간호사 데스크를 호출해 버려진 음식을 펼쳐 보이고, 오늘 오전 수거한 세탁물에서 발견되었다고 보고했다. 말을 전하면서 근아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확인하듯 몇 번이나 패널 너머의 모래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그때마다 모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모래?”

 

중앙공급실에 수술실용 린넨을 전달하고서 빈 햄퍼를 끌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낯선 목소리가 모래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십 미터 정도 떨어진 흡연 구역에 두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은 중년의 남자 간호사, 한 사람은 이십 대 후반 연령의 여자였다. 모래가 들은 음성은 여성의 목소리다.

 

사실 불렀다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성량이었다. 여자가 무심코 중얼거린 것을 모래의 예리한 청력이 들어버렸다고 해야 옳았다.

 

모래는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확대해 생김새를 판독했지만 메모리에 정보가 없는 인물이었다. 캐시 파일에도 없었다. 즉 낯선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래는 환자들과는 접점을 가질 일이 없다. 린넨을 수거하고 불출할 때가 아니면 모래는 지하 세탁실에서 빨래 더미와 종일 부대끼며 지낸다. 업무적인 접점의 인간은 실장 아니면 간호사들뿐이다.

 

지금은 아무리 시력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모래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읽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환자는 다른 곳에서 이미 모래를 본 적이 있고 일방적으로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는 의미였다.

 

모래가 정보를 정리하는 동안 여자가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다크서클이 짙고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바람이 한번 지나가자 여자가 피우던 담배 연기가 모래의 얼굴을 덮었으나 모래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연기로 인해 눈이 따갑다는 감각은 없으니까. 그 정도로 이물질에 예민한 휴머노이드라면 애초에 세탁실에서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여자는 특정한 감정이 읽히지 않는 밋밋한 표정으로 모래를 쳐다보았다. 키가 모래보다 한 뼘 정도 작아 고개를 들고 보아야 했다. 사람 대 사람이었다면 약간 뻔뻔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가까이 보니까 확실히 차이가 있네요. 사람이랑.”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여자에게 모래는 매뉴얼대로 물었다. 환자를 비롯한 낯선 사람이 휴머노이드 직원, 즉 ‘휴인’에게 대화를 시도했을 때의 화법이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문자 그대로 돕고, 휴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부서를 연결한다. 위급한 상황의 경우 응급실에 원격 호출을 넣는다. 때에 따라 코드블루 경보도 울릴 수 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응급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냥 보는 거예요. 이렇게 정교한 모델은 한 번도 본 적 없어서.”

 

여자는 무심하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기관 곳곳에서 사회적 로봇이 인간들의 업무를 분담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그 시간은 모래의 나이와 같다.

 

사회적 로봇으로 활동하는 휴머노이드의 종류는 사양도 외형도 아주 단순한 것부터 정교한 수준까지 폭넓은데 의료기관은 모래 같은 인간과 가장 비슷한 생김새와 체형, 지능을 가진 모델이 투입된다.

 

행정 처리상 휴인은 병원이 소유한 고가의 장비로 등록되어 있으나, 일상적인 업무 중에는 평범한 직원처럼 대우받는다. 보통의 인간과 판 박은 생김새에 비슷한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진 존재에게는 사람을 상대하듯 대하기가 인간의 마음에 덜 불편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님을 머리로는 안다. 존중할 필요는 없으나 시선과 목소리를 가지고 반응하고 교감하는 존재가 주는 친근한 감각을 일부러 부정하고 유리하는 편이 더 어려운 법이다.

 

그 친근함이 환자들에게도 위화감을 덜 주기에 의료기관은 이 모델의 휴머노이드를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료인들과 비슷하게 말끔한 가운을 입히고 휴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해 전문적이고도 안전한 느낌을 준다.

 

모래를 비롯한 세탁실의 휴인들이 그 모델이다. 짙은 갈색의 쇼트커트에 갈색 눈동자. 성별을 가시화하지 않은 뉴트럴 모델. 휴머노이드의 개별 이름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나 자연물 중에서 정해지고 한 사업장에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동일한 디자인은 배치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현재 이 병원에 모래와 똑같이 생긴 휴인은 없다는 뜻이다. 세탁실에는 주야간을 합쳐 서른여섯 대의 휴인이 근무하고 있으며 모두 개별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보통 인간 직원들처럼.

 

물론 여자처럼 휴인을 코앞에서 관찰하면 인간의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눈꺼풀, 혈관이 전혀 비쳐 보이지 않는 일정한 톤의 피부, 질서를 이루고 있는 머릿결 등은 인간과 다른 이질감을 오래 숨기지 못한다.

 

여자가 다시 질문했다.

 

“당신은 간호사인 건가요?”

 

‘당신’이라는 지칭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의료법상 휴인은 의료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병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듣는 질문이다. 특히나 아이들이 많이 묻는다.

 

“저는 세탁실 직원이에요. 먼지가 많은 곳이라 인간은 호흡기에 무리가 생기기 때문에 최소 인원의 관리자 외에 오래 일하지 못하도록 법이 개정되었어요.”

 

“아, 그래서 빨래를.”

 

이제 알았다는 듯 중얼거리며 여자는 거의 꽁초만 남은 담배의 불씨를 떨었다. 모래는 이제 이 사람이 언제 자신을 눈에 담아 두었는지 깨달았다. 병동에 들러 햄퍼를 수거할 때 몰래 봐둔 것 같다.

 

“관찰력이 좋은 분이시네요.”

 

“근데 그거 알아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모래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표현이다. 그거 알아요?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해서 묻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의 순수한 욕망이 담긴 표현. 그런데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뜻밖이었다.

 

“내가 밥을 빨래통에 버렸다고 누가 고자질을 해서 말이에요. 그게 누군지 정도는 알고 싶었거든요.”

 

동시에 모래도 이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대면은 처음이고 이름도 모르지만 누구인지만은 명백하다. 며칠 전 빨랫감에서 나온 음식을 버렸을 그 사람.

 

그렇게 인식하고 보니 여자가 입은 환자복의 품이 상당히 컸다. 옷이 큰 게 아니라 몸이 작은 것이다. 모래가 제 시력으로 사이즈를 측정한 결과 이 사람은 성인의 환자복 중 가장 작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도 소매며 바지통이 벙벙하게 남았다. 깡마른 사람이었다.

 

여자는 조심스레 탐색하는 모래의 시선이 탐탁잖았는지, 내내 건조하던 목소리에 약간의 뾰족함을 더해 말했다.

 

“나 허락받고 나온 거예요. 밥 잘 먹으면 담배 피워도 된다고 해서.”

 

여자가 눈짓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아까 그 중년의 남자 간호사가 보였다. 감시로 따라 나온 것이다.

 

“어차피 개방 병동인데 되게 선심 쓰는 척이야. 안 그래요?”

 

이번에 모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건 모래가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모래의 반응은 아무래도 좋은 듯 여자는 이렇게 내뱉었다.

 

“그래도 올라가면 토할 거지만.”

 

“어째서요.”

 

“궁금해요?”

 

묻는 여자의 눈에는 날카로움이 선연했다. 고자질한 모래를 향한 호기심과 공격성도 섞여 있다. 파리한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원래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보다 더 도드라져 보여 괴기스럽기도 했다.

 

저쪽에서 대기하던 간호사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락된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궁금하면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나와요.”

 

간호사의 호위를 받아 돌아서며 여자가 말했으나, 모래에게 궁금할 것은 없었다.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는 드물지 않게 있고 원인은 신체적, 정신적인 요인에 있으며 환자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 치료하는 것은 의료진의 몫이다.

 

다음날 중앙공급실 불출 담당은 모래가 아닌 다른 휴인이었고, 그래서 그 길을 지날 일도 없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나와요‘라는 명령형 정보는 병원 관계자가 업무로 지시한 내용이 아니므로 중요하지 않은 데이터로 처리해 휴지통에 넣었다. 매달 그렇듯 월말 병원 9층에 있는 정보처리실에 가면 그쪽 관리자가 데이터를 점검하고 휴지통을 비워줄 것이다.

 

의료진은 환자의 고통을, 휴인은 빨래의 오염을, 관리자는 휴인에게 불필요한 데이터를 제거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조처럼, 병원은 얼룩을 지우는 반복 안에 있다.

 

 
*
 

 

며칠 후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근아가 모래를 불렀다. 고열 멸균 건조기에서 쏟아져 나온 침구를 다른 휴인들과 함께 작업대에서 차근차근 접던 중이었다.

 

“정신과 병동에 좀 다녀와 줘요. 모래 씨.”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오늘 근아는 출근했을 때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평소처럼 ‘돕는다’며 휴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지 않고 세탁실 맞은편의 충전소에 오전 내내 틀어박혀 있었다.

 

보통은 교대 후 휴인의 충전이 탈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야 정상인데 오늘은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울었는지 눈도 충혈되어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란 통제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근아에겐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런 근아가 퀭한 얼굴로 충전소에서 나와서는 모래에게 맥없이 지시했다.

 

“세탁물로 문제가 생겼나요?”

 

그런 경우엔 특정 휴인이 아닌 실장을 호출한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모래는 그렇게 물어야 했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드니까요. 가면 거기 데스크에서 알려줄 거예요.”

 

근아는 귀찮은 무언가를 털 듯 대꾸하며 모래가 일하던 작업대에서 침구 접기를 시작했다.

 

“건조 업무가 남았는데요. 60KG 세 통이 대기 중이에요. 각각 4분, 9분, 15분…….”

 

“알겠다고요. 내가 지켜볼 테니까. 왜요. 못 미더워요?”

 

말에 날이 섰다. 대꾸하기도 싫은 모양이었다. 모래는 아닙니다 응답하며 세탁실을 나섰다. 근아의 솜씨는 여전히 휴인의 속도와 정확도에는 못 미치지만 이제라도 일할 마음이 생겼다면 다행이다. 그걸로 됐다.

 

근아는 오전에 야간 실장과 교대하며 한 소리 들은 이후로 기분이 상해있다. 문 닫힌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대화였지만 휴인들에겐 아주 잘 들렸다.

 

원인은 세탁용 약품관리 대장에 근아가 실수로 수량을 잘못 기입해 발주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근아가 작성한 수량과 달리 재고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분량이었다. 늦어도 오늘 오후에는 입고되어야 빨래가 밀리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 야간 실장이 그걸 자정 넘어 발견하고서 총무팀과 거래처 양쪽에 한밤중에 직접 읍소해 입고 일정을 당일로 당겼다.

 

혼자 일을 수습해 놓은 야간 실장은 아침에 근아가 출근하자마자 혼냈다. ‘휴대폰만 들여다보지 말고 비품이랑 휴인한테도 관심을 좀 갖죠? 말 나온 김에, 아직도 부서별 세탁물 분류 실수하죠? 수간호사들이 나한테 컴플레인 한다고요. 못하면 차라리 휴인한테 전담시켜요.’

 

장기 근속자라고 해도 같은 실장인데 그런 대우를 받은 근아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 짜증의 잔여물이 모래에게까지 넘어온 것이다. 만약 모래가 휴인이 아닌 인간이었다면 근아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가설을 띄우며 모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 가설은 병동에 도착한 동시에 저 뒤로 밀어 놓아야 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한 이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를 지시받았기 때문이다. 정신과 병동 수간호사가 모래에게 부탁한 내용은 이러했다. ‘손의진 환자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병실에 함께 있어 주세요. 휴인 업무가 아닌 줄은 알지만요.’

 

식사요? 같이 있으라고요? 린넨 문제가 아니라요? 저는 세탁실 휴인인데요. 정확한 지시인지 재확인하자 수간호사는 난감해하면서도 그렇다고 했다. ‘네. 모래 씨가 와야만 식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안내를 받아 병실에 들어가자 침대 위에는 며칠 전 흡연 구역의 그 여자가 등을 돌린 채로 누워 있었다. 옷이 사람을 잡아먹은 듯 큰 폭으로 구겨진 뒤태만으로도 금세 알 수 있었다. 손의진. 모래는 휴지통에서 여자의 얼굴과 음성을 골라 복원해 이름을 더한 정보를 저장했다. 침대에 딸린 식판에는 죽 한 그릇이 올라간 쟁반이 놓여 있었다. 김은 오르지 않았다. 죽의 표면이 말라 광택 없이 엉겨있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를 내자 의진의 어깨가 움찔했다. 바로 돌아눕거나 일어나지는 않았다. 잠시 후 가라앉은 목소리가 힘없이 들려왔을 뿐이다.

 

“왜 왔어요. 계속 무시하지.”

 

그 일방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질타였다.

 

“업무에 관한 지시에는 응해야 하니까요.”

 

대꾸는 없었고 병실은 다시 고요했다. 바깥에서 새들 지저귀는 소리만 오래 흘렀다. 모래는 문밖의 간호사에게 잠시 맡겨달라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요구한 대로 모래가 와주었으니 의진은 이제부터 주어진 식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의진은 누운 채로 주삿바늘 꽂힌 팔만 들어 식판을 밀어 엎었다. 와장창 소리가 나자 간호사가 돌아와 이런 상황은 벌써 몇 번 경험한 몸놀림으로 한숨을 뱉으며 바닥을 정리했다. 모래에게는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세탁실로 복귀했을 때 모래는 이제부터 작업 속도를 2.2배 정도 높여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건조기 세 통에서 연달아 나왔을 세탁물과 씨름 중인 근아가 이유였다. 접은 면적이 들쭉날쭉한 채로 위태롭게 쌓인 세탁물은 다시 펴서 고쳐 접어야 할 테고, 검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부서진 단추가 달린 채로 개킨 환자복도 모래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단추 교체와 솔기가 터진 옷 수선을 전담하는 휴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차라리 충전 중인 야간조 휴인 하나를 임시로 투입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근아는 어쩐지 끙끙 앓는 사람처럼 다섯 명의 무표정한 휴인 사이에 섞여 땀을 쏟아내면서도 제 손으로 어떻게든 해내려 하고 있었다. 이런 행동을 고집이라고 부른다는 건 알지만, 어떤 형태의 마음인지까지는 모래가 알 방법은 없다.

 

 
*
 

 

그 이튿날, 그리고 그 이튿날도 모래는 병동으로 호출되었다. 의진은 그날처럼 쟁반을 밀치지는 않았지만 사흘을 꼼짝 않고 식사를 거부했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해쓱해졌다.

 

억지로 연결된 영양제 주사에 의지하던 의진은 결국 모래의 방문 나흘째 비로소 숟가락을 들었다. 흰죽 반 그릇을 비우는 데 한 시간이 꼬박 걸렸다. 모래는 침묵 속에서 수저가 간혹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을 묵묵하게 삼켰다.

 

남기긴 했어도 식사가 끝난 듯 보이자 모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때 아주 약간의 기운이 실린 목소리로 의진이 물었다.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느냐고. 로봇이라서 시키는 곧이곧대로만 하는 거냐고. 질문할 줄 모르는 인생 참 편하겠다고. 자신이 와달라고 불렀으면서, 영혼이나 인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존재를 조롱한다.

 

그리고 의진이 틀렸다. 휴머노이드도 질문한다. 알고리즘에 따라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데이터 내에서 우선하여 찾아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학습을 위해 묻는다.

 

사실 ‘기운을 차려서 한다는 말이 겨우 그것인가요?’ 같은 순수한 질문이 아닌, 조롱을 덮는 조롱도 데이터에 없지는 않으나 모래는 가장 안전한 매뉴얼을 선택했다.

 

“부르셨으니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셔도 좋아요. 도와드릴 방법을 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비에 동하지 않는 휴인에게 말할 의욕을 잃었는지, 의진은 아무런 대꾸 없이 창문 방향만 보고 있었다. 모래가 다시 말했다.

 

“토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럼 회복이 더디게 되잖아요.”

 

“상관없어요. 난 여길 나가고 싶지 않으니까.”

 

체념 조의 작은 음성이지만 또박또박 들려왔다. 궁금하면 다시 흡연 구역으로 나오라던 그 말에 이어지는 물꼬였다.

 

그때 외부인 두 사람이 병실에 나타났다. 간호사가 앞장서 들어오며 의진을 향해 형사님들이 오셨다고 하자 의진은 이불을 뒤집어쓰며 웅크려 누웠다. 모래가 더 있어서는 안 될 자리인지 간호사가 이젠 돌아가라고 했다.

 

병실을 나선 후 멀찍이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오늘은 조금이라도 말씀 좀 해주시지요. 정황 그대로 확인만 해주시면 되는데요. 솔직히 저희도 이게 일인데, 서둘러 종결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정은 모르지만 오늘이 그들의 첫 방문은 아닌 듯했다. 강제로 추궁하는 투도 아니었으나 형사들이 의진에게서 원하는 이야기를 오늘도 듣기는 힘들겠다고 모래는 추론했다. 패턴대로라면 내일도 의진은 모래를 부를 테고, 어쩌면 모래에겐 오늘보다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들려줄 가능성이 있겠다고만 결론지었다.

 

그러나 추론은 빗나갔다. 며칠간 정신과 병동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다. 중앙공급실에 다녀오는 날 흡연 구역에도 의진은 없었다. 병동에서 가져온 세탁물에서 음식이 나오지 않을까 유심히 살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하루는 근아가 먼저 물었다. ‘왜 요즘은 모래 씨 안 부를까요? ’

 

근아도 이 일의 경과가 무척이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휴인에게는 휴게시간이 없다. 실장의 교대에 맞춰 충전 완료된 열여덟 대의 한 조가 업무를 시작하고, 다시 교대 시간이 되면 충전 박스로 들어가는 일상의 반복이다. 휴게시간이 없다는 건 동료 휴인과 불필요한 잡담도 없다는 뜻이다. 이걸 수선해 주세요, 이 스위치를 확인해 주세요, 처리되었습니다 같은 업무 관련한 사항만이 음성언어로 오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욕망이 없어서다. 나만 알고 있던 무언가를 타인과 공유하거나, 서로 교감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자체가 휴인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래가 정신과 병동에 다녀왔을 때 그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존재는 다른 휴인들이 아닌 근아였다. 이 세탁실에서 잡담이라는 것을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모래가 돌아오면 근아는 상의할 게 있다며 사무실로 따로 불러 이것저것을 물었다. 야간 실장은 물론이고 전임 실장도 휴인과 이런 사사로운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근아는 좀 달랐다.

 

병동 간호사들이 보안 사항이라는 말은 안 했으니, 모래는 근아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더하고 빼는 것 없이 설명했다. 어쨌든 상사니까. 형사들이 등장한 날, 특히 근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 흥미롭게 들었다. 바깥에서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나가지 않고 병원에서 버티려는 것 같다고 모래도 추론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난 그 사람 기분 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4번 건조기의 남은 시간이 임박해서 그만 나가보겠다고 하자 근아도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도 의지하고 싶진 않은데 쓸쓸한 거 아닐까요, 그 사람. 그러니까, 이야기를 해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곤 싶은데 같은 사람에게 하긴 내키지 않고 휴인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일종의 자존심, 아니면 양가감정? 아니 차라리.”

 

근아는 문을 열기 전 다시 마스크를 썼다.

 

“마음의 얼룩을 세탁한다는 비유가 맞으려나.”

 

“세탁이요?”

 

“오염된 빨래를 세탁기에 돌린다고 세탁기도 오염되는 건 아니잖아요. 인간끼리는 아무래도 감정이 전이되니까. 말해 놓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고 들어 놓고 후회할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모래 씨 같은 휴인은…… 비유하자면 뭐, 그런 거죠. 기분 나쁜 거 아니죠?”

 

나쁠 기분이란 처음부터 없다. 오히려 쉬운 설명이다. 빨래를 빠는 세탁기. 불편한 이야기를 듣는 휴인.

 

근아는 딩동딩동 소리가 나는 건조기 방향으로 ‘그래 간다 가’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먼저 향해갔다.

 

 
*
 

 

바깥에 어둠이 내린 시각엔 주간조인 모래가 눈을 뜰 일은 좀처럼 없다. 눈이 열리고 공감각 센서가 작동하며 쿵쿵 돌아가는 익숙한 진동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래는 평소 실행되던 시간이 아니라는 것부터 인식했다.

 

세탁실은 지하라 창문이 없어서 시각으로 낮과 밤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휴머노이드는 그 각자가 시계다. 현재는 오전 네 시 이십 분이었다. 즉 야간 조 휴인이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휴인의 체형에 맞게 설계된 충전 박스를 벗어나자 야간 실장이 보였다. 이 세탁실에서 7년 근속한 실장. 실수로 잘못 실행시킨 걸까, 아니면 휴인 중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겨 대체 인력이 필요한 걸까.

 

“안녕하세요.”

 

“잘못 깨운 거 아니니까 프로그램 세팅해.”

 

가볍게 긴장을 푸는 말 따위는 없는, 오래 마셔온 먼지로 인해 마르고 칼칼한 특유의 목소리로 직설 명령조다.

 

야간 실장은 지금 정신과 병동으로 올라가 보라고 했다. 데스크에서 요청이 있었다고. 빨래해 갖다 바치기만도 바빠 죽겠는데 별 같잖은 수발까지 들어야 하냐며, 이게 다 주간 실장이 처신을 제대로 못 해서 만만하게 보여서 그런 거라고 모래가 세탁실을 나가기 전까지 불퉁스레 퍼부었다.

 

야간조 휴인들은 그런 실장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제 일에만 열중한다. 휴인은 폭언에 영향받지 않음을 긴 시간에 걸쳐 체득하게 된 실장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비롯한 집안 문제 등의 개인적 스트레스까지 휴인들에게 말로 푸는 성격이었다. 스포트라이트에 글자로 풀어내는 주간 실장과의 차이다. 근아의 논리에 따르면 야간조 휴인은 야간 실장의 세탁기인 셈이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의진은 침대 가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침대 헤드에 달린 독서등만 켜져 있어 의진의 왼편은 밝고 오른편은 어두웠다. 모래는 렌즈의 해상도를 높여 낮은 조도에 적응을 시도했다.

 

“식사 시간은 아닌데요.”

 

먼저 입을 열자 의진은 ‘알아요’ 라고 곧장 대답하며 받아쳤다.

 

“설마 그동안 내가 부르기 기다렸던 거예요?”

 

휴머노이드가 그러길 ‘바랐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기 중’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지속의 여지가 있는 대화였으므로 아직 휴지통으로 보내지 않았다. 완료되지 않은 업무처리의 일환으로 남겨둔 마무리의 영역은 분명 있었다. 그게 새벽이 될 줄은 몰랐지만.

 

응답이 없는 모래에게 의진이 말했다.

 

“나 아침에 퇴원하려고요.”

 

“다 회복하신 건가요?”

 

“회복.”

 

의진이 뇌까렸다.

 

“그런 게 있기는 할까요.”

 

푸념 같은 말꼬리에 모래를 향한 질문이 붙는다. 당신은 그러니까, 휴인이라고 했던가.

 

“휴인은 평생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거죠?”

 

“감각은 있습니다. 시각, 청각, 촉각…….”

 

“아니. 예를 들면 누군가가 좋다거나 가엾다거나, 한심하게 여기거나, 질투하거나 동정하거나 증오하거나, 상처받거나 그런.”

 

모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삶일까. 그런 상태는.”

 

“영영 알 수 없겠지요. 저는 손의진 씨를, 손의진 씨는 저를.”

 

모래는 모래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