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가시는 어디를 향하는가

  • 장르: SF
  • 태그: #SF
  • 분량: 93매
  • 소개: 피폐해진 지구를 떠나는 인류. ‘철’도 떠나야 하지만 왜인지 그는 망설이고 있다. 그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과거는 돌이킬 수도 없고 미래는 그에 대한 결과이다. 더보기

고슴도치 가시는 어디를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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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화성이 좋았다. 하루의 절반만 볼 수 있는 달보다도 이른 저녁부터 볼 수 있는 화성이 좋았다. 일이 늦게 끝난 깊은 밤, 철은 숙소로 돌아가면서 하늘을보았다. 너무 지쳐 땅만 보고 걷는 날도 있었지만 대게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화성을 찾았다. 붉게 반짝이는 작은 별. 철은 화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된하루의 피로가 사라졌다. 어쩌면 철은 지구가 아닌 화성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철은 모성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산화철이 가득한 붉은 사막의 행성. 철은 언젠가 돌아가리라 꿈꾸었다.

 
*
 

“영감님은 언제 타요?”

전자호흡기에 새 필터를 꽂으면서 철은 다가오는 목소리를 향해 돌아보았다. 3층 홍보실 소속 청년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철은 청년의 이름을 떠올리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에 입사한 친구라는 사실만 떠올렸다.

철은 세월이 야속했다. 당장 5년 전만 해도 회사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술술 읊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철은 노쇠한 자신을 마음속으로완강히 저항했지만 확장 이민이 발표된 작년, 택배를 다른 사람에게 잘못 전달한 일이 있은 후로 현실에 완전히 굴복했다. 철의 건망증에 대해 들은 사람들은대기질이 나빠져서 기억력이 떨어진 거라고 지구온난화로 더워진 기후 탓에 지쳐서 기억력이 떨어진 거라고 위로했다. 철은 나이 탓이라고 변호했지만 사람들은 자꾸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았다. 요즘 시대에 70이면 한창인데 무슨 소리예요. 마음이 늙으면 안 돼요. 그리 들을 때마다 철은 자신이 늙은이 행세를 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하긴 예전 같았으면 청소부라도 70이면 은퇴할 나이긴 하지. 어쨌든 철은 청년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미안했다. 홍보실 사람들만큼 환경 관리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없는데. 철은 청년이 앉을 수 있도록 옆으로 움직였다.

“고맙습니다.”

청년은 철이 내어준 자리에 앉아 전자호흡기를 꺼냈다.

“나는 다다음 라인이야.”

“그러시구나. 그럼 저랑은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같은 라인이었으면 우연이라도 만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청년은 자켓 프론트 포켓에서 원통형 필터를 꺼내 필터에 붙은 모래를 후 불고 전자호흡기에 꽂았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장관이에요. 장관. 이걸 공짜로 볼 수 있다니. 저는 진짜 복받은 놈이에요.”

철은 전자호흡기를 짧게 빠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동일한 간격으로 로켓 우주선이 십열 종대로 줄지어 서있는 모습은 청년의 말대로 장관이었다. 불가사의라 칭송받은 창조물이 역사 속에 더러 존재했지만 지평선을 메운 로켓 우주선 무리는 그것들보다 몇 수는 위였다. 공기 저항을 덜 받기 위해 설계된 매끈하게 빠진 유선형 코와 멀리 나아가기 위해 단계별로 차곡차곡 결합한 추진부와 엔진 더미는 인간이 창조한 어떤 존재보다 아름답고 장엄했다. 지금처럼 노을이 질 때면 자연의 후광을 얻어 본디 가진 위용을 더욱 뽐냈다. 새하얀 몸체는 태양빛을 사방으로 반사하며 잔잔한 물결을 이뤘고 붉게 물든 유선형 코는 어떤 고난도 뚫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사진으로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인 우주선 무리가 귀엽다며 우주 센터를 ‘고슴도치’라 불렀다.

“그거 최신 모델 아니야?”

철은 청년이 보란 듯이 들어 보인 전자호흡기를 가리켰다.

“역시 영감님은 알아보시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디스플레이만 틀면 줄기차게 광고를 해댔기 때문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최신형 전자호흡기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 기쁜모양이었다.

“이게 전 모델에 비해 크기는 커졌는데 산소 거름효과가 장난 아니에요. 수치로 비교하면 산소 발생량이 전전 모델에 비해서는 8배, 전 모델에 비해서는 2배나 차이 난다니까요. 그런데 주위에서는 냉장고 들고 다니냐고.”

청년은 한숨을 푹 쉬고 전자호흡기에 입을 가져갔다.

“좀 커보이긴 하지만 냉장고 정도는 아닌데.”

“제 말이요. 크기가 좀 큰 건 저도 인정하는데요. 성능이 워낙 좋아야 말이죠. 이거, 이거 보세요. 클라랜스의 정수를 보세요. NAL모델이 사용자한테 좋은건 물론이고 빨 때마다 산세비에리아처럼 산소를 뿜어대는데. 이건 뭐 정부에서 환경비를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하하하.”

청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전자호흡기를 쭉 빨았다. 청년의 가슴이 개구리 볼처럼 부풀었다.

“근데 벌써부터 호흡기 쓰나? 아직 젊잖아.”

철은 구형 전자호흡기를 짧게 빨았다 뱉었다. 멀리서 보면 엄지를 빠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철이 사용하는 전자호흡기는 아주 작았다. 전자호흡기를 배우면서장만한 중고였다.

“‘벌써’가 아니에요. 요즘 애들은 10대 때부터 써요.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어릴 때부터 써야 산소를 많이 저장할 수 있는 몸으로 바뀐대요.”

철은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가 미덥지 않았지만 태클 걸지 않았다.

“자네는 언제부터 배웠는데?”

“저는 좀 늦은 편이죠. 스무 살 되고 나서 배웠으니까요. 부모님이 성인 될 때까지는 전자호흡기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셔가지고. 영감님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청년은 젖병 문 아기처럼 입에서 전자호흡기를 떼지 않았다.

“자네에 비하면 조금 늦어. 5년 전에 배웠으니까.”

“5년 전이요? 와, 영감님 연세 생각해도 엄청 늦네요.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혹시 전자호흡기에 선입견이라도 있으신가요?”

“선입견?”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이게 다 정부에서 세금 빨아먹으려고 홍보하는 거다. 사실 몸에는 아무 영향 없는데 좋다고 과장하는 거라고. 저희 부모님이 그러셨거든요. 생긴 것도 전자담배랑 비슷해서 몸에 안 좋을 거라고 어찌나 말리시던지. 요즘 누가 담배 피운다고 참. 친구들은 중학교 올라가는 기념으로 선물 받고 그랬는데. 저는 친구들 꺼 빌려서 몰래 빨고 그랬어요. 그게 다 바이러스 전염시키는 짓인 줄도 모르고…. 이제는 다 추억이지만요.”

“나는 순전히 도움이 될까 해서 배웠어.”

청년은 전자호흡기를 쭉 빨며 눈을 크게 뜨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억력이 안 좋아져서 말이야. 이거 쓰면 건망증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철은 전자호흡기를 짧게 빤 다음 주먹 쥔 손을 풀었다. 아직도 철은 이것이 건망증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의료 목적이면 더 좋은 거 쓰셔야죠.”

청년은 전자호흡기를 문 채 철의 구형 모델을 턱으로 가리켰다.

“더 늦으면 전자호흡기 사지도 못해요. 미리미리 준비하셔야지. 그래서 저도 큰맘 먹고 신형으로 지른 거예요. 이거 진짜 좋아요.”

청년은 클라랜스 사 홍보 대사라도 되는 양, 한 손에 간신히 들어오는 최신 전자호흡기를 모델처럼 우아하게 들어 보였다.

“하, 제 말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는 표정이시네. 제가 웬만하면 안 빌려 드리는데 한 번 빨아보세요. 진짜 좋아요, 이거. 쭉 빨아보세요. 자.”

“아이, 쓰더라도 필터는 내 꺼 써야지.”

철은 구형 전자호흡기에서 필터를 뽑으려 했다.

“그냥 제 꺼 쓰세요. 방금 뜯으신 거 아니에요? 호흡 습관 보니까 필터 하나로 며칠은 쓰실 텐데. 필터값이 싼 거도 아니고. 그냥 쭉 빠세요.”

철은 망설였다. 같은 필터를 공유하는 행위는 위생에도 나쁘고 바이러스 전염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결국 청년의 요구에 철은 백기를 들었는데 끈덕지게 달라붙는 청년의 끈기도 있었지만 청년의 얼굴에서 손자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철은 청년이 내민 전자호흡기에 입만 살짝 갖다 댔다 뗐다.

“신형이라 좋네.”

“아이, 영감님. 제대로 하시라니까요? 이러시면 제 마음만 상해요. 진지하게 제품 사러 왔다 생각하시고 쭉 빨아보세요.”

철은 한 번 더 전자호흡기에 입을 가져갔다. 사용자마다 애용하는 필터는 다르지만 필터 크기의 규격 때문에 철은 물리적인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청년은옆에서 쭉! 쭉! 동물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철은 청년의 구호에 맞춰 전자호흡기를 빨아들였다. 그 순간 철은 눈이 번쩍 뜨였다. 아무래도 청년의 경험담이 과장은 아닌 모양이다. 정확한 수치를 내세울 순 없지만 철의 비루한 구형 중고 모델 성능보다 몇백 배는 좋게 느껴졌다. 입 안으로 들어온 신선한 공기가 목을통해 몸 전체에 전달되었다. 미처 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깨끗한 공기는 코를 통해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철은 그것마저 아까워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울창한 숲 사이를 걷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진짜 좋죠?”

철은 필터에서 입을 떼며 고개를 위아래로 반복해서 끄덕였다. 청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자호흡기를 거둬갔다. 철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들썩이며 한모금 더 원하는 모습을 청년이 보지 못해 다행이었다. 청년은 아쉬워하는 철 앞에서 자랑하듯 전자호흡기를 깊게 빨았다.

“더 늦기 전에 하나 장만하세요. 어차피 다 두고 떠날 건데. 여기 남아있어도 못 살 걸요?”

철은 고개를 주억였다.

각 정부들이 동일 동시에 확장 이민을 발표하면서 기업들도 생산 중단 스케줄을 발표했다. 어떤 기업은 마지막 불꽃을 태워 역작을 출시했고 어떤 기업은 스케줄에 따라 순차적으로 서비스가 종료함을 알렸다. 아무런 고지 없이 서비스를 내리고 도망친 양아치 기업도 있었다. 소비자들은 무책임한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그들이 이민선에 오를 때까지 판결을 받지 못할 것이다. 공동체 안정을 위해 반드시 판사는 라인당 한 명씩 이민선에 올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속도보다 판사가 지구를 떠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판사는 줄고 사건은 쌓이고 판사는 이민선에 올라 더 줄고 사건은 더 쌓이는 고갈의 악순환은 법조계는 물론 일상 전반에도 퍼져 있었다.

“그나저나 TRAST에 입사하길 진짜 잘했어요.”

어스름이 낀 하늘을 보며 청년은 감상에 젖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중간 라인 이민선에 오를 수 있겠어요. 전부 회사 덕분이죠. 독과점이 심하다. 한국 경제 박살낸 기업이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한국 사람들 전부 TRAST 이민선 탈걸요? TRAST가 한국 기업이 아니었으면 한국인들 전부 지구에 남겨져서 죽는 날만 기다렸겠죠? 다른 나라에서 난민을받아준다 해도 자국민들한테 밀려서 한참 뒤에나 탔을 거고. 어후,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청년은 몸서리치며 전자호흡기를 빨았다. 철은 청년이 산소 중독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말을 아꼈다. 이민선에 오른다 해서 무조건 산다는 보장은 없다.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죽을 때 후회가 남지 않는다. 철은 이러한 신념 아래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별 일 없겠죠? 폐인공위성이나 데브리들 전부 제거했다고 발표했으니까요.”

“어련히 잘 하지 않았을까.”

“그렇겠죠? 사고도 크게 한 번 났었고….”

청년은 전자호흡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그것을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책상 정리하러 가봐야겠어요. 전부 버리고 가고 싶지만 두고 가면 다른 분들이 고생하실 테니까. 어, 저기 하나 올라가요.”

청년은 지평선 가까이 증기와 열기를 뿜으며 날아가는 고슴도치 가시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서있는 고슴도치 발톱(인공위성 사진에 찍힌 울퉁불퉁한 지형이고슴도치의 앙증맞은 발처럼 보인다)과 제법 거리가 있어 발사 폭음이 닿진 않았다. 두 사람은 느긋하게 발사 광경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끄트러미와 엔진이맞닿은 모습은 태양이 이민선을 밀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별을 주저하는 자식의 등을 밀어주는 어미처럼 저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힘껏 밀어주었다. 태양의힘을 업은 이민선은 구름 가시를 남기고 힘차게 지구를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가시는 형태를 잃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한 대가 출발했으니 30분 뒤에 또 다른 가시가 등을 떠날 것이다. 옆 발사대에 이미 대기 이민선이 설치 중이다. 발사 속도가 너무 빨라 고슴도치 동산이 민둥산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마지막 라인 출발 예정일인 반년 뒤까지 빈 발사대에 3일마다 새로운 가시가 돋아날 테니까.

“저녁 타임 시작인가 보구먼.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해도 졌으니 더위는 좀 가시겠어.”

“그래도 더워요. 엔지니어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디죠. 올해 여름 또 최고기온 경신했다던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기계 때문이라도 우주 센터는 냉방 시설이 우수할 테고 대부분 기계화에 성공해서 사람 손이 필요한 부분은 상당 부분 줄었으니까. 그래도 우리보단 바쁘겠지. 새벽부터 밤까지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이려면 호흡기 빨 시간도 없을 거야.”

청년은 입을 헤 벌리고 인상을 썼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전자호흡기를 꺼내 흡 한 번 길게 빨고 도로 집어넣었다.

“사실 저 이민선 출발하는 거 처음 봤어요.”

“발사대 옆에서 근무하면서 말이야?”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본 건 처음이에요. 디스플레이에서는 숱하게 봤죠. 어제는 몇 대 올라갔다. 오늘은 몇 대 올라간다. 내일은 몇 대 올라갈 예정이다. 이때 배경 화면이 발사 장면이잖아요.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다르네요. 조금 더 가까이서 봤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보호 장비가 필요했겠죠?”

“다른 건 몰라도 고막은 보호해야지.”

“그러면 이렇게 멀리서 본 것으로 만족해야겠어요. 영감님은 다다음 라인이라고 하셨죠? 제가 떠나는 거 보시겠네요.”

“몇 시에 떠나나?”

“아, 잠시만요.”

청년은 손목부착형 디스플레이를 조작했다.

“오전 9시요.”

철은 머릿속에 동그란 계획표를 떠올렸다.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환경 관리부 조례를 마치면 8시 40분. 10분 준비하고 8시 50분부터 업무 시작. 내일은 꼭대기 층 청소니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볼 수 있겠군. 하지만 철은 이 사실을 청년에게 알리지 않았다. 떠나는 뒷모습을 누군가 지켜봐 준다는 사실만으로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영감님은 가족이랑 같이 떠나세요?”

철은 흠 하고 대충 콧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여자친구랑 떠나요. 결혼 생각까진 없었는데 같이 떠나기로 했어요. 목적지도 없는 먼 길을 혼자 떠나려고 하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싸우기도 엄청싸웠는데 확장 이민 발표를 듣자마자 여자친구만 생각났어요. 생존 본능인지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여자친구도 같은 마음인 거같고. 제가 이 얘기를 왜 꺼낸 거죠. 관심도 없으실 텐데.”

청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철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억지로 지었다.

“더 늦기 전에 가야겠어요. 진짜 마지막이네요! 고슴도치 동산도. 지구도. 영감님도.”

청년의 눈에 붉은 별이 반짝이는 거 같았다. 육안으로도 아주 작게 보이는 화성이 비칠 리 없지만 철은 그렇게 보였다. 밤하늘 어딘가에 무조건 화성은 떠있으니까.

청년은 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철은 허둥지둥 장갑을 찾았다.

“아이, 마지막인데 뭐 어때요. 매일 회사에서 검사받으시잖아요. 이미 필터도 공유한 사인데. 괜찮아요.”

철은 장갑을 끼는 대신 작업복에서 그나마 깨끗한 부분에 손바닥을 슥슥 문질렀다. 청년은 망설이는 철의 메마른 손을 강하게 붙들었다.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자네도 언제나 건강하길 바라겠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전자호흡기를 빨아들이는 시간만큼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철의 손을 놓은 청년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합성 라텍스 장갑을 끼고 고슴도치 발톱을 떠났다. 한참을 내려가던 청년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리고공경을 담아 철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철은 청년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청년은 한 번 더 고개를 살짝 숙이고 가던 걸음을 서둘렀다. 혼자 남은 철은 청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청년과 그의 여자친구를 실은 이민선을 직접 배웅하지 못하는 대신 청년의 뒷모습이라도 끝까지 봐주고싶었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철도 고슴도치 발톱에서 내려갔다. 지역에서 전기 절약을 위해 통행이 적은 장소는 가로등을 꺼버린다.

“그래, 기호였어.”

철은 고슴도치 발톱에서 다 내려왔을 즘 이름을 떠올렸다. 손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청년의 이름을. 자신을 대신해 화성으로 향할 손자의 이름을.

 
*
 

업무 스케쥴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정부가 확장 이민을 발표한 뒤로 TRAST사는 각 부서에게 자율을 주었다. 이민선 발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엔지니어팀을 제외한 부서는 하루 할당량만 채운다면 하루에 한 시간만 일해도 터치하지 않았다. 반대로 하루에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회사에 남아있어도 상관없었다. 어떤 미친 인간이 회사에 스무 시간이나 남아있겠냐고 묻겠지만 철이 바로 그 미친 인간이었다.

고슴도치 발톱에서 내려온 철은 곧장 회사로 향했다. 2층 비상근무팀을 제외한 건물은 깜깜했다. 오후 7시가 지나면 건물 입구 등은 움직임이 있을 때만 작동하는 자동 센서 타입으로 바뀐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전면 유리로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와 로비가 숭고한 신전처럼 느껴지지만 해가 사라진 밤에는 지하 묘지처럼 음침했다. 오늘처럼 달도 뜨지 않는 밤에는 더욱 으스스했다. 30년 근속인 철도 걸음마다 메아리치는 대리석 동굴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철은 자동 센서 등이 꺼지기 전에 비상 계단문으로 잰걸음을 놀렸다.

철이 소속한 환경 관리부서는 비상근무팀과 같은 2층에 있었다. 환경 관리부서로 들어가려면 비상근무팀을 거쳐야 하는데 철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듣는활기찬 인사가 부담스러웠다. 철은 숨을 가다듬고 비상근무팀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고요했다. 철을 반겨주는 소리도 일상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근무태만. 철은 네 글자를 떠올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높은 확률로 우주 센터 쪽에서 발생할 것이고 그건 엔지니어만이 처리할 수 있다. 비상근무팀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엔지니어팀에게 전화를 연결하는 정도다. 아니면 겨우 짬을 내서 밥을먹으러 간 걸지도 모른다. 요즘은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막을 알지 못하면서 떠들 수는 없다. 철은 이유 모를 고독을 씹으며 터덜터덜 환경 관리부서로 들어갔다.

철은 책상에 빌트인 된 디스플레이를 작동시켰다. 디스플레이는 10초 간격으로 미묘하게 다른 고슴도치 동산을 비추었다. 이는 철이 구독한 채널로 세계 발사 지역을 24시간 보여주었다. 철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의자 허리가 부러지도록 등받이를 뒤로 젖혀 의자에 앉았다.

철은 먼 나라의 고슴도치 동산을 보는 걸 좋아했다. 철은 고슴도치 동산처럼 이민선이 빽빽하게 들이찬 발사 지역을 좋아했지만 그 사건을 목격한 뒤로 철은유니콘의 뿔처럼 고고하게 홀로 선 발사지에 조금 더 마음이 쏠렸다. 존. F. 케네디 우주 센터가 그러했다. 플로리다 주 브레바드 메리스 섬에 있는 존. F. 케네디 우주 센터는 우주선 발사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졌지만 확장 이민을 목적으로 세워진 센터가 아니다 보니 규모가 작았다. 규모 확장 리모델링도 거쳤지만 확장 이민을 위해 지어진 발사 지역에 비해서는 한참 작았다. 그래서 존. F. 케네디 우주 센터는 발사 준비 시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래 걸려 빈 발사대만보여주는 시간이 길었다. 오늘처럼 마음이 들쑥날쑥한 날에는 슬로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