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티대학교 녹차빙수제조공학과 신입생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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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며 취미로 미시사를 연구하고 있다. 흔히 사용하는 향토사라는 용어 대신 아직 학계에서 제대로 정의되지 못한 ‘미시사’라는 술어를 구태여 언급한 것은, 내가 천착하는 분야가 말 그대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변두리의 한간(汗簡)(그렇다. 내가 폼을 좀 내려고 직접 만들어 쓰는 용어다)’, 풀어 말하자면 극도로 지엽적이고 미소한 역사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공자가 아닌 만큼 연구방식은 단순하기 그지없는데, 전문적인 사학보다는 외려 박태원의 고현학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유가 생길 때마다 지역 안 여기저기를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 ‘뭐, 요즘 이 주변에 별일 있나요?’ 하는 식으로 신변 잡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청하는 식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듣게 된 이야기가 연구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면, 다시 말해 ‘내 흥미를 끄는 내용이라면’, 해당 사건에 대한 증언들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수집해 기록해놓고, 가능하다면 관련된 ‘유물’들도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 사진으로 남겨 놓게 된다.

간혹 가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길을 걷다 우연히 보거나 줍게 된 물건이 연구의 단초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일전에 남동쪽 산악 지역에 위치한 달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실종된 일가족에 대해 흥신소에서 만든 현상수배서가 담벼락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와 관련되어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신경을 쏟게 된 주제 또한 폐쇄된 대학교 부지 내에서 발견한 문서 한쪽이 시발점이었다. 문서의 제목은 ‘그린티대학교 녹차빙수제조공학과 신입생 안내문’으로, ‘그린티대학교 녹차빙수제조공학과 학생회’의 명의로 되어있었으며, 아래와 같은 문단으로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업적을 자랑하는 그린티대학교 녹차빙수제조공학과에 입학하신 신입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새내기 여러분들의 원활한 학과 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숙달해야 할 내용들을 아래에 정리하였으니, 부디 모든 항목을 빈틈없이 숙지하시어 즐겁고 보람찬 학과 분위기를 이룩하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협조하실 수 있도록 거듭 당부 드립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린티대학교는 원래 그린티 그룹에서 출자하여 세운, 100%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로만 이루어진 4년제 종합대학이었다. 그린티 그룹이 직접 관리할 때는 취업률이 괜찮고 입결도 높아 평판이 좋았지만, 그린티 그룹이 기업 승계과정에서의 불미스러운 사유에 의해 정부 주도로 해체된 이후 모 부실 사립재단에 인수되면서 10년여에 걸쳐 꾸준히 쇠락해오다가,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은 것이 결정타가 되어 2017년 결국 폐교되었다. 듣기로는 폐교되기 몇 년 전부터 대학원 연구실이 전격적으로 폐쇄되거나 교직원에 대한 임금체불이 일어나는 등, 차마 정상적인 대학이라고는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내부 조직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는 것 같았다.

개중 녹차빙수제조공학과는 대외적으로는 식품공학과로 알려진 과로, 녹차빙수제조공학과라는 명칭은 해당 대학 식품공학과 인원들이 스스로의 과를 지칭할 때 쓰던 일종의 은어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 맥락을 고려하면, 내가 이번에 습득하게 된 문서는 아마 과 내부에서만 공유할 목적으로 과 구성원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문헌이라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해당 문서는 다음의 첫 항목부터 내 흥미를 강하게 끌었다.

「01. 수연록 교수님께서는 본교 학부 및 석박사통합과정 출신으로서, 2009년부터 학과의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현재 수연록 교수님께서는 거룩하신 성령의 감화를 받으사, 당신께서 직접 성삼위의 인도를 받아 직조하신 영성신학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한 차례 신적강하한 존재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