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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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이이잉, 기이이잉, 기이이잉, 기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연구소 전체에 울리고 있었다. 연구소 총책임자인 오나도 실장은 경보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치 그의 귀에는 경보음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방으로 누군가 급하게 뛰어들었다.

“엇, 식사 중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방에 뛰어든 사내는 검정색 양복에 검정색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지요? 밖이 좀 소란스러운 것 같네요.”

실장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사내에게 묻자, 사내는 정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실험 중이던 농작물 하나가 탈출했습니다. 품명 애니멀 201입니다. 담당 연구원이 애니멀 201을 캡슐에서 꺼내 상태를 점검하던 중, 애니멀 201이 갑자기 의식을 회복하더니 연구원을 공격한 뒤 탈출했다고 합니다.

공격을 받았던 담당 연구원 말로는 분명히 애니멀 201을 캡슐에서 꺼내기 전에 늘 하던 대로 디프리반을 다량 투입했다고 합니다만 어떻게 애니멀 201이 의식을 회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일단 담당 연구원은 감금 조치 시켰습니다.”

“음,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담당 연구원도 놀랐겠네요. 어쨌든 알았어요. 가서 김술 대위 좀 불러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대위님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사내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방을 나왔다.

사내는 그제야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휴우, 볼 때마다 섬뜩한 사람이란 말이야. 차가워. 사람이 아니라 그냥 얼음 같아. 마주 대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른다니까.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연구원 새끼 때문에 괜히 식은땀만 줄줄 흘렸네.’

*

오나도 실장. 남자. 하지만 목소리만 듣는다면 여자로 착각. 나이 미정. 30대 중반으로 추정. 출신 성분 미정. 출신 대학 미정. 전공 분야 미정. 오나도라는 이름도 가짜라는 소문이 나돈다.

온통 미스터리에 휩싸인 인물 오나도 실장.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 연구소의 총책임자다. 연구소 이름은 미래생명과학연구소.

미래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태아의 세포 조작을 통한 질병 없는 아이 탄생,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 복제인간 실험, 냉동인간 실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미래생명과학연구소가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인간병기 양성.’

미래생명과학연구소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일종의 전투용 무기 공장이다. 인간과 동물 간의 이종교배를 통해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소 설립 목적이다. 역사가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미래생명과학연구소는 이미 20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연구소 총책임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3년 전에 새로 부임한 총책임자가 오나도였다.

미래생명과학연구소는 그가 총책임자로 부임한 뒤부터 비약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던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이 되더니, 부임 1년 만에 성과물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물의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의 탄생이었다. 이종 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일종의 키메라 생산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연구소 탈출 소동을 벌인 실험체 역시 연구소가 생산에 성공한 키메라, 즉 동물의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이었다. 연구소에서는 그 실험체를 애니멀 201로 부르고 있었다. 물론 애니멀 201 이전에 연구소 사람들은 모두 실험체들을 농작물이라고 불렀다.

연구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곳을 연구소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는 연구소 대신 농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실험하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농작물이라고 불렀다.

오나도 실장이 처음 부임하자마자 지시한 사항이 그것이었다.

“이곳은 미래생명과학연구소가 아니에요. 농장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실험하고 있는 대상은 농작물이고요. 앞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농작물이라고 부를 거예요. 우리는 새로운 품종의 농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제 앞에서는 다른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농장, 농작물, 품종, 품명이라는 말들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릴게요.”

오나도 실장의 지시가 있은 뒤로는 확실히 연구원들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실험 대상을 인간 대신 진짜로 농작물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연구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농장 경비대의 대장인 김술 대위가 방문을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검정색 양복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어서오세요, 김술 대위님. 거기 소파에 잠깐 앉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대위는 실장이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그의 움직임은 간결했다. 불필요한 동작이 없었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의 모습이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보음 때문에 식사하는 데 약간 불편했어요.”

“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지금 경비대원들이 농장 안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습니다. 곧 농작물을 포획할 수 있을 겁니다.”

“음,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그 농작물이 애니멀 201이 분명하다면 아마 포획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애니멀 201은 이곳 농장 안에서 재배하는 품종 중 가장 품질이 우수하거든요. 어쩌면 농장 탈출에 성공할 수도 있어요.”

“…….”

“그렇게 되면 저도 나름대로 조치를 취할 거예요. 그러니 대위님께서도 경비대 중 우수한 대원들을 뽑아 농작물을 찾아와 주세요. 농장물이 제 발로 돌아오게 하면 더 좋고요. 중요한 건 뭔지 아시겠죠. 세상 사람들이 농작물의 정체를 알아서는 안 돼요. 그리고 농작물이 다쳐서도 안 되고요. 원래 상태 그대로 이곳으로 데리고 오셔야 해요.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만일 농작물이 탈출하게 되면, 그 즉시 우수 경비대원들을 데리고 농작물을 수거해 오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어요. 참, 너무 많은 인원은 필요 없어요. 그럼 오히려 사람들 시선만 끌게 되잖아요. 알아서 몇 명만 골라 가세요.”

“알겠습니다. 대여섯 명 생각해 놓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김술 대위는 실장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방을 나갔다. 그 순간 오나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농작물을 꼭 잡아오셔야 해요.”

실장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 뒤 흘러내린 안경을 바로 하기 위해 혀를 길게 내밀어 안경 브리지를 밀어 올렸다. 그의 혀는 도마뱀 혀처럼 가늘고 길었다.

*

방을 나오자마자 대위의 송수신 겸용 이어폰 너머로 경비대원들의 비명이 들렸다.

“으, 으악! 연구소 나동 서쪽 출입문 부근! 애니멀 201과 대치 중! 대원 세 명 사상! 즉시 지원 요청 바람! 지, 지원 요청, 으악!”

대위는 서둘러 연구소 나동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슴에 두른 권총 홀스터에서 베레타 시리즈 권총을 빼들었다. 그 사이 이어폰을 통해 경비대원들의 지원 요청이 몇 번 더 이어졌다. 김술 대위가 연구소 나동에 급히 도착했을 때는 또 다른 곳에서 지원 요청이 들려왔다.

“연구소 북쪽 초소! 애니멀 201이 대원 네 명 공격 후 숲으로 도주! 지금 대원 두 명과 함께 애니멀 201을 쫓고 있으나 추격이 어려움!”

‘끄응, 역시 오나도 실장 말대로 돼버린 건가. 꽤나 품종이 우수한 농작물인가 보네, 애니멀 201.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도망쳐 봐라.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쳐 봐. 그래봐야 어디 시내 한복판에서 벌벌 떨고 있겠지. 평생 실험실 캡슐 속에서 지내던 네놈이 바깥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 벌벌 떨기만 할 뿐이지.

넌 사람이 아니거든. 농작물이잖아. 불쌍하군. 오히려 실험실 캡슐 속이 그리워질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내가 곧 가서 구해줄 테니까. 다시 안전한 캡슐 속에 넣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애니멀 201.’

김술 대위는 곧장 농장 경비대 본부로 향했다.

*

한편 이를 예상했던 오나도 실장은 국방부 산하 특수정보지원단에 연락을 취해 애니멀 201의 탈주를 알렸다.

“네, 농작물 하나가 도망쳤어요. 애니멀 201이라는 품종인데요, 우리 농장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한 종이에요. 제가 아끼는 종이기도 하고요. 그게 도망을 쳐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단장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일단은 전국에 있는 특수정보지원단 소속 에이전트들한테 애니멀 201 실물 좀 보여주세요.

그리고 애니멀 201을 발견하게 되면 저한테 연락 좀 주세요. 다른 조치 같은 건 하실 필요 없어요. 저한테 연락만 주시면 돼요. 지금 제가 단장님한테 애니멀 201 실물 전송해 드릴게요. 외모, 체격 다 제가 보내드리는 실물 그대로예요. 부탁 좀 드려요, 단장님.

참, 그리고 인터넷 쪽도 검사해 주시고요. 애니멀 201이야 인터넷 사용은 못 할 테지만, 그래도 혹시 다른 사람이 애니멀 201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2

발가벗은 상태로 숲을 빠져나온 애니멀 201은 한동안 도로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신기해했다.

‘뭐지. 굉장히 빠르다. 안에 사람이 있네. 나도 저걸 타면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그럼 농장에서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을까. 농장에는 가기 싫어. 매일 캡슐에만 갇혀 있는 건 싫어. 연구원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싫어. 이제 농장으로는 안 가.

연구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농장 밖에서 지내던 얘기를 들었어. 아주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어. 농장 밖으로 나가면 나도 캡슐 안에 갇혀 있을 필요 없어. 나도 연구원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어. 극장이라는 데도 가고, 놀이공원이라는 데도 가고.

나도 연구원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어. 이제 농장으로는 안 가. 캡슐 속에 갇혀 있는 건 싫어. 농작물은 싫어. 그런데 저거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애니멀 201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다. 마침 마주 오던 차는 느린 이동형 주택 차량이었다. 2층집에 바퀴가 열두 개가 달려 있었다. 1층 운전석에 앉아 있던 집주인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차는 가까스로 애니멀 201 앞에서 멈췄다.

“뭐하는 놈이 갑자기 뛰어든 거야? 젠장. 저, 저런 미친놈을 봤나. 백주대낮에 나체로 활보하다니, 어디 정신병원에서라도 탈출한 건가?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지.”

그때 2층 자기 방에서 내려온 고선이 도로에 서 있는 애니멀 201을 보자마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악, 아빠, 쟤 뭐야? 왜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있어? 아빠 혹시 차로 쟤 치기라도 한 거야?”

“아니. 저 미친놈이 그냥 갑자기 차에 뛰어들었다. 왜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그리고 선이 너, 볼 거 다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손으로 얼굴은 왜 가리고 있냐?”

“아직 다 안 봤어. 결정적인 부분만 보고 얼굴은 못 봤어.”

“그럼 다 본 거네. 손 내려도 된다.”

“그런가. 음, 그런데 아빠, 쟤 뭐래? 뭐 하려고?”

“글쎄, 어떻게 하지? 근처에 정신병원에서 도망이라도 친 게 아닐까?”

“아빠답지 않게 뭘 그렇게 고민해. 일단 얘기라도 해보자. 혹시 누구한테 옷이며 소지품 같은 거 몽땅 털린 걸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일단 말이라도 걸어보자. 너는 여기에 가만히 있어.”

“알았어.”

차 주인이자 집 주인인 고정도는 밖으로 나와 애니멀 201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애니멀 201은 차량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야, 인마! 그렇게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면 어쩌자는 거야! 목숨이 열 개라도 되는 거야 뭐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그리고 옷은 어쩐 거냐! 혹시 누가 뺏어가기라도 한 거냐? 그런 거면 내 하나 주마.”

“옷 줘. 그리고 나도 당신 차에 태워줘. 농장에서 멀리 가야 하니까 나도 차에 태워줘. 걸어가는 것보다 차 타고 가는 게 더 빨라.”

“당연히 걸어가는 것보다 차 타고 가는 게 더 빠르지. 그건 그렇고, 넌 어른 공경도 모르냐! 그렇게 함부로 반말 하면 안 돼!”

“그런 거 몰라. 아무튼 나도 차 태워줘. 농장에서 멀리 도망쳐야 돼. 그리고 극장에 가자. 놀이공원에도 가고.”

“별 미친 녀석 다 봤네. 도대체 농장이 근처에 어디 있다는 거냐? 뭐 어찌되었든 내 차에는 태워줄 수 없구나. 보아하니 내 딸 또래인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네놈 아버지뻘이란 말이지. 그런데 너처럼 어린놈한테 반말 듣는 거 태어나서 처음이다. 일단 옷은 줄 테니까, 그거 입고 나서 다른 차 얻어 타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싸늘하게 말하곤 다시 차로 돌아오자 딸이 부리나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아빠, 쟤가 뭐래! 왜 옷도 안 입고 있대? 우리 차에는 왜 뛰어들었대?”

“몰라. 그냥 옷 달란다. 그리고 농장에서 멀리 도망쳐야 한다고 우리 차에 태워달라는구나. 웃긴 놈이야. 나한테 반말까지 써가면서. 내참, 저런 놈 처음 봤어.”

“아빠한테 반말을 해! 정말 웃긴 녀석이네. 보아하니 내 또래 같은데, 건방지게. 그나저나 농장은 뭐야! 이 근처에 무슨 농장 있어?”

“모르지. 좌우지간 저 녀석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옷이나 하나 던져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하자. 우리가 신경 쓸 일 아니다.”

“음, 그래도 일단 시내까지는 데려다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냥 여기에 두고 가면 아무도 차에 안 태워줄 거 같은데. 혹시 강도를 만나 몽땅 털리고 정신이 이상해진 걸 수도 있잖아. 그런 거라면 조금 불쌍하기도 하고.”

“흠…… 정말 못 얻어 타려나?”

“그렇겠지. 아빠도 태워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르겠어?”

“그러면 또 곤란해지는데. 그런데 저 녀석 왠지 어디 정신병원이라도 탈출한 거 같단 말이야. 게다가 말끝마다 반말이라 그것도 기분 나쁘고.”

“응, 내가 볼 때도 그런 거 같더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너 혹시 창문 열고 다 들은 거냐? 분명히 아빠가 차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리고 애초에 다 들었으면서 묻기는 왜 물어!”

“아무튼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내가 보기에 왠지 저 애 무슨 사연이 있는 거 같아. 그러니 시내까지라도 태워주자.”

“그럴 수도 있긴 하겠다만…… 그러고 보니까 극장에 가자는 둥 놀이공원에 가자는 둥 이상한 소릴 지껄이던데.”

“맞다, 그런 말도 했었지! 혹시 정신지체나 뭐 그런 쪽이 아닐까? 부모가 어디 놀이공원 데려간다고 해놓고 산에다가 버리고 왔다든가 그런 사건도 있잖아.”

“알았다, 그럼 일단 차에 태우고 나서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생각해 보자!”

*

애니멀 201은 운전석 옆에 앉아서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멋대로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갑자기 자동차 유리 전체가 시커멓게 변하기도 했다. 야간에 차를 세워놓고 잠을 잘 때 작동시키는 장치였다.

고정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자동차 유리를 다시 투명하게 만들었다.

“신기하다! 또 해보고 싶다!”

“안 돼! 그러다 사고 나잖아! 괜히 또 그러면 당장 내리라고 한다!”

고정도의 말에 애니멀 201은 버튼을 누르려다 얼른 멈췄다.

그런 애니멀 201의 모습을 보면서 고선이 피식 하고 웃었다.

“넌 또 뭐가 웃겨서 그렇게 혼자 피식 웃는 거야!”

“얘 너무 어린아이 같아서 그래. 행동도 그렇고, 자폐아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부모한테 버려졌거나 혹은 부모를 잃었거나.”

그러면서 고정도는 애니멀 201을 힐끔 쳐다보았다.

애니멀 201은 창밖 풍경에 넋이 빠져 있었다.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하늘, 구름, 건물, 자동차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 그런데 넌 이름이 뭐냐!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고정도가 창밖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애니멀 201에게 물었다.

“이름! 그게 뭔데? 나 그런 거 몰라. 나는 농장에서만 살았어. 캡슐 속에서만 살았어. 그래서 그런 거 몰라. 이름이 뭔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냐! 내가 너한테 물었잖아!”

그러자 운전석 뒤에 있던 고선이 끼어들었다.

“아빠, 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자기 이름이 뭐냐고 물은 게 아니고, 이름이라는 게 뭐냐고 물은 거잖아!” 그러면서 고선이 애니멀 201의 어깨를 톡톡 쳤다.

“내가 설명해 줄게. 이름이라는 건 말이지, 누가 나를 부를 때 쓰는 거야. 예를 들어서 아빠는 나를 부를 때 고선이라고 불러. 고선이 내 이름이거든. 우리 아빠 이름은 고정도고. 그래서 남들은 우리 아빠를 고정도라고 불러.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 뭐라고 불러?”

“애니멀 201.”

“애니멀 201? 진짜로 그렇게 불러?”

“진짜로 그렇게 불러.”

그러자 고정도가 끼어들었다.

“그래 좋다, 애니멀 201! 그런데 이봐, 애니멀 201! 너 아까 왜 차도로 뛰어든 거냐?”

“차를 타고 싶어서.”

“그렇구나. 간단해서 좋네. 그럼 왜 옷은 하나도 안 입었던 거냐?”

“원래 나는 옷이 없다.”

“계속 간단해서 좋구나. 아무래도 내가 뭔가 잘못 질문했나?”

“그런 거 같아.”

고선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거들지 않아도 된다, 욘석아. 좋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해보자. 넌 어디서 온 거냐? 그리고 부모님 연락처는 뭐고?”

“나는 농장에서 지냈어. 하지만 다시 농장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난 부모님 같은 거 몰라. 그런 거 없어.”

“아빠, 그래도 얘 말이지, 이름이라는 게 뭔지도 모른다면서 다른 건 다 알아듣네. 부모님이라는 말뜻도 알아듣고.”

“그러네.”

“나 연구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못 듣는다고 생각했겠지만, 틀렸어. 캡슐 안에서 연구원들 얘기가 들릴 때가 있어.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야.”

애니멀 201은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도대체 연구원은 뭐고 캡슐은 또 뭐냐? 너희 집에 연구원들이 자주 찾아오기라도 한 거냐?!”

“나는 농장에서만 지냈어. 연구원들은 농장에서 나를 캡슐에 가둔 사람들이야. 그리고 나를 가지고 실험해.”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모르겠구나.”

고선이 끼어들었다.

“아빠, 얘 아무래도 정신지체나 뭐 그런 쪽인가?”

“그렇겠지. 혹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충격을 받았거나. 어쨌든 이거 난처하네. 일단 시내로 가서 경찰서에라도 데려가 보자.”

그러자 고선이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 이 아이를 경찰에 넘겨도 그 사람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거야. 그냥 늘 하던 대로 신원조회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유기아동보호소에 떠넘길 거라고. 그럼 거기선 얘를 갖은 연구소의 실험 대상으로 보낼 수 있어. 집도 부모도 없는 정신지체아가 갈 곳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함부로 경찰에 넘기는 건 조금 무책임한 것 같아. 아빠답지 않아.”

“글쎄, 그거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 설마 그럴 일이야 있겠어?”

“그건 모르는 일이지!”

둘 사이에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그럼 좋은 방법이 있어!”

고선이 먼저 제안했다.

“그래! 뭐냐?”

“뭐라 그랬지! 아, 애니멀 201! 그러니까 애니멀 201을 우리가 직접 실물 스캔해서 중앙미아센터 사이트에 들어가서 조회해 보면 되잖아. 혹시 부모가 얘를 잃어버린 거면 거기에 이 아이를 등록해 놨을 거야. 버려진 거라면 주변인 중에 혹시 얘를 아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쪽의 연락을 기다려 보는 건 어때? 아빠, 우리 스캐너 어디에 있지?”

“2층 아빠 방에 있을 거다.”

고선은 고정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일반 노트북 크기만 한 구식 스캐너를 가지고 와 애니멀 201의 전신을 스캔했다. 그 다음 중앙미아센터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중앙미아센터에 있는 ‘등록된 미아 정보’ 코너로 들어가, 자신이 만든 애니멀 201 전신 스캔 파일을 ‘미아 등록’에 등록시켰다. 그러고 나서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사이트 내에서 중앙미아센터에 등록된 미아들 중 애니멀 201과 일치하는 자가 있는지 검색을 시작했다.

3초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일치하는 미아가 없습니다.’

화면에 그런 메시지가 떴다.

중앙미아센터에 등록된 미아의 수는 총 1만 5000명. 그중 애니멀 201과 일치하는 미아는 없었다.

“없네. 애니멀 201 부모님이 중앙미아센터에 미아 등록을 안 했나 보네.”

고선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선이 네가 저 아이의 스캔 파일을 만들어서 사이트에 등록해 놔. 그리고 우리가 아이를 보호하고 있으니까 연락처 남기라고 해놓으면 되잖아.

그럼 혹시 알아! 쟤 부모님이 나중에라도 중앙미아센터에 미아 등록하려다가 우리가 먼저 등록한 걸 보고 연락처 남겨둘지. 어쨌든 우리가 수시로 중앙미아센터 사이트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되잖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응, 일단 그렇게라도 해놔야겠네.”

“하지만 길어야 며칠 정도야. 그때까지 애니멀 201 부모님이 중앙미아센터에 연락처 안 남기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 그땐 경찰서에 보내도 선이 네가 이해해야 된다.”

“알았어. 아무튼 며칠 동안은 우리가 애니멀 201을 보호하고 있기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도 지금 당장 애니멀 201을 경찰에 넘기는 건 좀 그렇구나.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그럼 이제 슬슬 저녁 준비를 해볼까. 오늘 저녁은 모처럼 3인분으로 준비해야겠네.”

고선은 휘파람을 불며 주방으로 향했다.

*

“왜 안 먹어? 배 안 고파?”

고선은 약간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껏 애니멀 201을 위해서 솜씨를 발휘했건만, 정작 애니멀 201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음식 먹는 거 본 적은 있어. 하지만 왜 먹는지는 몰라. 나는 이런 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 왜 사람들은 이런 걸 먹어?”

애니멀 201의 말에 고선 대신 고정도가 끼어들었다.

“뭐라고? 왜 먹긴, 배가 고프니까 먹지. 음식을 먹어줘야 살 수 있는 게 사람이잖아. 안 그러면 기운이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해. 너 지금 기운 없지!”

“기운 없어. 쓰러질 것 같아.”

“그거야. 배가 고파서 그런 거다.”

“전에는 이런 적 없었어. 농장에서 캡슐 안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어. 기운 없었던 적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니까. 그런 상태에서 계속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어서 먹어. 어떻게 먹는지는 알고 있겠지! 씹어서 삼키면 돼! 간단해!”

“알고 있어. 연구원들이 이런 거 먹는 모습 본 적 있어.”

그러면서 애니멀 201이 각종 소스로 버무려진 고기 한 조각을 빵에 얹었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아빠, 쟤가 하는 얘기 말이야, 혹시…….”

“그래, 이 아이, 정신지체 쪽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연구원이라고 하는 걸 보니 어떤 연구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연구소에서 도망친 거 같아. 계속 농장이라고 부르는 곳이 아마도 연구소겠지. 게다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곳이라면 정부 기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연구소일 것 같구나.

하지만 인지로봇연구소는 아닌 것 같아. 이 아이, 정신지체 쪽은 아니야. 단지 태어날 때부터 학습을 전혀 받지 못한 게지. 행동 자체가 어린아이 같으니까.

정부의 비밀 연구소는 많아. 그중 한 군데일 듯한데. 아마 지금쯤 연구소에서도 이 아이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자칫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을 테니까. 가만, 그러면 아까 그 중앙미아센터에 글 올린 것도…….”

고정도의 말에 고선은 손에 쥔 음식을 내팽개친 채 곧장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중앙미아센터에 접속해 자신이 올린 글을 찾아보았다. 이미 누군가 글을 남겨놓은 후였다.

‘우리 모리를 찾아 급히 올리려고 했는데 이미 등록해 놓으셨군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잘 보살펴주고 계시죠?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리가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 학습 능력이 모자라서 치료를 받는 중이거든요. 그리고 이상한 상상 속에 빠져 지내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우리 모리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만 잠깐 사이에 우리 모리가 없어졌네요. 모두 제 탓입니다. 혹시 우리 모리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제 연락처 남겨놓겠습니다. 이 글 보시는 대로 바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례는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빠, 벌써 누가 연락처 남겨놓았는데. 어떻게 하지?”

고정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일 우리 추측이 맞는다면, 글 남긴 사람은 분명히 연구소 측 사람일 게다. 모리라는 이름도 대충 지어낸 것일 테고. 어쩌면 연락처 남긴 사람 이름이 모리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사람은 저 아이를 다시 연구소로 데려가려고 할 거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

“중요한 문제라니, 그게 뭔데?”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