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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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전자는 비(非)성염색체에 속한다. 암컷 생쥐에게서 이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무력화하여 ‘스위치를 끌’ 경우 별도의 호르몬 요법이나 수술 없이도 수컷으로 변했으며, 건강에 다른 이상 없이 기대 수명대로 생존했다고 전한다. 이 유전자는 남성과 여성 모두 공유하며, 남성의 몸에서 상응하는 반대 유전자를 무력화시킬 경우 여성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타임스》 2009.12.11

이 발견은 성별이 영구적으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며 다만 성체에서 유전자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질 뿐임을 시사한다.
《인디펜던트》 2009.12.11

I.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는 여자였다. 엄마도 여자였다. 엄마는 지금도 여자다. 그렇지만 엄마도 아빠처럼 남자였던 적이 잠깐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엄마 뱃속에 내가 막 생겨나서, 아주 작았다고 했다. (엄마가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서 보여주었다. “요만했지!”)

엄마 말로는 몸이 남자가 되면, 여자였을 때 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못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뱃속에서 아주 작았을 때 남자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잘 자라지 못할까봐 무척 걱정했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작은 아기였을 때도, 엄마는 똑같이 막 걱정했다. 그건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엄마는 요즘에도 걱정한다. 그래도 그 때처럼은 아니다. 지금은 내가 야채를 안 먹으면 걱정한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화를 내면 걱정한다. 그러면 아빠도 같이 걱정한다. 엄마는 항상 걱정 투성이지만 아빠는 웬만하면 걱정 같은 건 안 한다. 그래서 아빠가 걱정하면 나는 겁이 난다. 아빠가 걱정할까봐 요즘에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하긴 요즘에는 별로 화가 나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자꾸만 화를 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그게 ‘영향’ 때문일 거라고 한다. 아빠는 과학자다. 호르몬이라든가, 세포라든가, 염색체라든가, 그런 어려운 것도 전부 다 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무척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빠가 하는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똑같은 일도 엄마가 설명하면 잘 알 수 있는데, 아빠가 이야기하면 무척 어려워보인다.

그래도 아빠는 그냥 웃는다. 좀 더 크면 다 알게 돼, 하고 말한다. 더 크면 저절로 알게 되는 걸까? 그렇지만 초록색 언니는 나보다 나이도 네 살이나 많고 벌써 중학생인 데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큰데 염색체가 뭔지 모르는 걸. 그렇게 말했더니 아빠는 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초록색 언니는 정말로 키가 무척 크다. 자기 반에서도 가장 크다고 한다. 그건 언니가 원래 남자애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아마 진짜일 거다.

아빠랑 엄마랑 둘 다 일하러 나가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초록색 언니가 나를 봐주러 온다. 늘 초록색 잠바를 입고 커다란 초록색 배낭을 들고 오기 때문에 초록색 언니라고 부른다.

진짜 이름은 따로 있지만, 남자애 이름이라고 싫어한다. 그래서 그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 이제 조금만 기다려서 완전히 여자애가 되면 이름도 예쁘게 바꿀 거라고 한다.

지난 번에 우리 집에 와서 아빠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 저녁밥을 데워주면서 다 얘기해 줬으니까 아마 진짜일 거다. (아빠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없지만, 그래도 데우면 괜찮다.)

언니 말로는 목에 뭐가 튀어나오고 목소리가 감기 걸린 사람처럼 이상한 것도 전에 남자애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애들은 언니 나이 정도 되면 몸이 그렇게 변하는데, 언니가 너무 늦게 여자가 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미처 피하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질 거야, 너네 아빠가 그랬어.” 하고 언니는 감기 걸린 사람 같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웃었다. 언니가 말할 때마다 목소리에서 끽끽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게 웃겨서 나도 웃었다.

“목소리가 이상한 게 싫어서 여자애가 되기로 한 거야?” 하고 내가 물었다. 그렇지만 아빠도 남자지만 목소리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데. 전에는 여자였기 때문에 목소리가 안 이상한 걸까?

그랬더니 초록색 언니는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여자애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자애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때마다 언니의 아빠가 슬퍼하셔서 할 수 없이 그대로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떻게 변하냐고 물어봤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대답을 안 해 줬다.)

그대로 두면 진짜 남자가 돼서 영영 그대로 살아야만 할 것 같아서,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너무 무서워졌다고 했다. 그래서 울면서 이야기했더니 부모님이 병원에 데려가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는 바라던 대로 여자애가 되었다.

초록색 언니가 다니는 병원에는 우리 아빠가 있다. 아빠는 거기서 여자애가 되고 싶은 남자애나 남자애가 되고 싶은 여자애들을 마음에 들게 바꿔주는 일을 한다.

초록색 언니도 아빠한테서 치료를 받는데, 아빠 말로는 목소리는 조금 더 기다리면 달라져서 보통 여자 목소리가 될 거지만, 키는 이미 커 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초록색 언니는 조금 실망한다.

어떻게 남자애를 여자애로 바꾸느냐고, 아빠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는 웃으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더 크면 다 알게 될 거야’ 하고는 얘기를 안 해 줬다.

아빠가 나를 애기처럼 쳐다보면서 웃기만 하고 안 가르쳐주는 게 얄미워서 계속 졸랐다. 그랬더니 아빠는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람 몸속에는 스위치가 있거든. 여자애한테서 그걸 끄면 남자애가 되고, 남자애 걸 끄면 여자애가 되는 거야.

“그럼 나도 그런 게 있어? 내가 물었다. 어디 있는데? 보여 줘, 아빠. 보고 싶어.”

아빠는 웃었다.

“그 스위치는 아주아주 작아서,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눈에 안 보이면, 어떻게 꺼?”

아빠가 설명했다.

“현미경으로 보면 되지.”

예전에 한 번 병원에 놀러갔을 때 아빠가 그 스위치를 보여준 적이 있다. 아빠는 그게 스위치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스위치같이 안 보였다. 남자애를 여자애로 바꾸는 마법 스위치가 별로 재미없어서 실망했지만, 현미경은 무척 재미있었다. 굉장히 신기하다. 현미경으로 보면 뭐든지 눈으로 볼 때랑은 완전히 달라 보인다.

그리고 또 아빠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는 왜 여자애였다가 남자가 됐어? 아빠도 초록색 언니처럼 목소리가 이상해졌어?”

아빠는 곤란한 듯이 웃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안 해줬다. 내가 계속 물어보니까 아빠는 어물어물 일어나더니 안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삐쳤다. 나 이제 어린애 아닌데, 아빠는 더 크면 알게 된다는 말만 하고, 대답도 안 해 주고…… 내가 계속 삐쳐 있으니 엄마가 옆에서 달랬다.

“그런 거 아냐. 아빠가 여자였을 때는 아주아주 힘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얘기해 줄 수가 없는 거야.”

내가 다시 물었다.

“왜 힘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우리 딸도 열한 살이니까, 이젠 다 컸지. 이젠 애기가 아니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해줄 것 같아서, 열심히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뭐라고 말을 할 것 같더니 다시 한숨만 푹 쉬고는 아빠를 따라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삐쳤다.

“뭐야, 엄마 아빤. 자기들끼리만 비밀 얘기를 하고, 나한텐 말도 안 해 주고.”

계속 삐쳐 있는데도,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나와서 달래주지 않았다.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서, 나는 방문 앞에 가서 귀를 대고 엿들었다.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지만, 그래도 방문에 귀를 대면 안에서 하는 얘기가 잘 들린다. 열쇠 구멍에 바짝 대면 더 잘 들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잘 들리지가 않았다. 엄마하고 아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속삭 이야기했다. 그래서 드문드문 들렸다 말았다 했다. “곧 사춘기…….”, “늦기 전에…….”, “혹시나 선택하게 되면…….”, “여기서는 흔한 일이니까…….”

나는 좀 더 잘 들으려고 귀를 더 가까이 갖다 댔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문가로 걸어오는 소리가 사삭사삭 들려서 깜짝 놀랐다. (엄마 발걸음 소리는 가볍다.) 엿들은 걸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도망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그 때 문을 확 열어버렸다. 그래서 뒤로 확 넘어졌다. 하마터면 문에 얼굴을 부딪칠 뻔했다.

“어머, 너 거기 있었니?” 엄마 눈이 둥그레졌다. “넘어졌어? 다쳤어? 아파?” 말하면서 엄마는 얼른 나를 일으켜서 훑어보았다. 다친 데가 없는 걸 알고 엄마는 말했다. “너 혹시 여기서 엄마랑 아빠 얘기하는 거 엿들었니?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모르고 문 열다가 부딪쳐서 어디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런데 정말로 다친 데 없니?”

엄마가 또 걱정을 해서 나는 미안해졌지만, 그래도 엄마가 걱정만 하고 달래주진 않아서 입이 삐죽 나왔다. 그랬더니 안에서 아빠가 불렀다. 저기, 데리고 들어와 봐. 말 나온 김에 얘기하지 뭐. 네 말대로 여기선 흔한 일이고, 언젠가 선택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까.

엄마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침대 위에 아빠가 앉아 있었다. 나는 아빠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갔다. 엄마가 그 옆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랬더니 엄마보다 아빠가 먼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II.

아빠와 엄마가 예전에 살았던 곳은 먼 나라였다. 그곳에서 한 번 남자애로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남자였고, 한 번 여자애로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여자였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화가 나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화를 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화를 냈고, 아는 사람끼리도 화를 냈다. 아는 사람끼리가 더 심해서, 소리를 지르고, 못되게 굴고, 때리는 일도 자주 있었다.

“때려? 어린 애들처럼?”

내가 물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건 아주 어린 애들이나 하는 일이다. 자기 생각을 아직 찬찬히 말로 이야기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른이 소리를 지르거나 서로 때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엄마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거기서는 어른들도 서로 소리 지르고 때려. 자주 그래. 항상 그래.”

어른들끼리만 그러는 게 아니고, 거기서는 누구나 다 그랬다. (라고 엄마가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때리고, 어른들도 어른들끼리 때리고, 어른이 아이를 때리고, 남자는 여자를 때리고,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때리고, 그리고 모두가 모두에게 화를 냈다.

화를 잘 내지 못하거나, 남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남보다 더 세게 더 아프게 때리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가 비웃고 깔보면서 더 못살게 굴었다.

“왜 그래?” 하고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다들 화를 내는데? 왜 서로 못살게 굴어?”

엄마와 아빠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한동안 마주보고 있다가 아빠가 먼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아빠가 말했다. “그냥, 거기서는 다들 그랬어.”

“그럼, 아빠도 그랬어?” 내가 다시 물었다. “아빠도 막, 사람들 때리고 그랬어?”

아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빠는 그런 적 없어.”

나는 안심했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봤더니 다른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다른 사람이 아빠 때리고 그랬어? 다른 사람들 못살게 굴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때린다고 했잖아?”

아빠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대신 말했다.

“응, 다른 사람들이 아빠를 못살게 굴었어. 그래서 아빠하고 엄마하고 도망쳐 나온 거야.”

“누가 그랬는데? 누가 못살게 굴었어?” 내가 흥분했다.

아빠는 다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뭔가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아빠가 먼저 말했다.

“나는 그 때 여자였어. 그건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한참동안 나를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엄마랑 아빠가 자주 때렸어. 그리고 커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남자가 괴물이었어. 매일매일 때렸는데, 너무 많이 맞아서, 나중에는 죽을 것 같았어.”

다 큰 어른이 어린 애기처럼 때리다니? 매일매일? 나는 우스워졌다. 그런 애기 같은 사람을 왜 ‘괴물’이라고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아빠 얼굴을 보니까 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그렇게 막, 사람들이 때렸어?”

엄마도 아빠처럼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얼굴도 아빠처럼 굉장히 슬퍼 보였다.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도 슬픈 얼굴로 엄마와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참 쳐다봐도 아무 말도 안 해서 다시 내가 물었다.

“왜 때리는데? 엄마랑 아빠가 있었던 곳에서는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선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차분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로 이야기하면 되잖아? 그럼 서로 기분 좋게 해결할 수 있잖아?”

학교에서 선생님은 늘 그렇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는 차분차분하게 말로 이야기하는 걸 경멸했거든. 차분한 사람은 약한 거고, 말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비겁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마음이 느긋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하다고 비웃었어.”

나는 계속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경멸’이 뭘까? 그보다도, 차분하고 느긋한 게 가장 좋은 거라고 학교 선생님도 그러고 초록색 언니네 아빠도 그러고 이웃집 아주머니도 그러시는데, 그럼 모두들 틀린 건가?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 분들 말씀이 다 옳아. 차분하고 느긋하게 말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거야. 거기, 엄마랑 아빠가 예전에 있었던 곳, 그 곳 사람들이 틀린 거야. 그 사람들이 나빠.”

그리고 엄마는 옆으로 다가와서 아빠와 나를 꼭 껴안았다.

“괜찮아, 이젠 도망쳐서 여기로 왔으니까. 다시는 안 돌아갈 거야. 이젠 괜찮아.”

아빠 무릎에 앉아서, 아빠랑 통째로 엄마한테 꼭 안겨서, 기분은 좋았지만 그래도 잘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안겨 있었는데, 아빠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때 너희 엄마가, 네가 잘못 될까봐 굉장히 걱정했어. 남편이 자꾸 때리는 것도 무섭지만, 네가 태어나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이 될지, 남에게 당하기만 하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지, 그게 걱정이 돼서 도망쳐 나오기로 한 거야.

네가 없었으면 아마 아빠랑 엄마는, 도망칠 엄두도 못 냈을 거야. 아직도 그 끔찍한 곳에, 끔찍한 사람들 사이에 갇혀 있었을 거야.”

엄마가 안았던 걸 풀고 아빠한테 뽀뽀했다. 나는 좀 창피해서 뽀뽀가 끝날 때까지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뽀뽀가 다 끝나고 나서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빠는 눈에 눈물이 매달려서 반짝반짝했다. 이럴 때 보면 아빠는 엄마만큼 예쁘다. 예쁜 아빠가 내 이마에 뽀뽀를 해 주었다.

내가 물었다. “그럼 아빠하고 엄마는 어떻게 도망쳤어?”

아빠는 다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도 아빠를 마주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한숨도 쉬지 않았다.

대신 아빠와 엄마는 웃었다. 아주 소중한 비밀을 함께 간직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아빠가 말했다.

“스위치를 껐지.”

내가 물었다.

“스위치?”

아빠가 설명했다.

“예전에 병원에 놀러왔을 때, 현미경으로 보여준 그거 있지? 아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스위치야. 아빠가, 그걸 껐어.”

그래서 여자였던 아빠와 여자였던 엄마는 둘 다 남자가 되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