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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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는 기계다. 먹기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입이다. 인간이 한평생 먹는 음식의 양은 평균 6만 4000킬로그램이며 위장을 채우고 비우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요컨대 4시간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36도가 넘는 체내에서 똥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날 난 다니던 헬스클럽을 3개월 연장했다. 카드 단말기가 16만 원의 명세표를 토해내는 동안 후회와 오기가 고막을 쉴 새 없이 때려댔다. 이번엔 제발 제대로 운동하자. 빠지지 말자. 돈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병신! 병신! 나의 애타는 울분이 전파라도 탄 것일까? 소파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던 관장이 카운터 여자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우리 회원님, 15일 더 추가해 드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데 코치가 인사를 했다. 눈빛으로 보아 무슨 말이 나올지는 뻔했다. 나는 그가 계획한 프로그램의 첫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미적대고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이었다. 3개월을 끊어봤자 일주일에 두어 번이나 나오고 마니 도무지 진전이 없는 것이다.

천성이 운동을 싫어하는데다 불규칙한 퇴근도 영향을 끼쳐 야근이다 뭐다 시달리다 보면 운동이고 뭐고 삶 자체가 귀찮아졌다.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헬스를 끊었다. 그런 위안이라도 없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러닝머신만 간신히 30분을 채우고 나왔을 때다. 헬스장 앞에 있는 던킨 도넛을 보니 커피가 당겼다. 아이스카페모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였고 휘핑크림이 듬뿍 얹어져 나오는 그 달콤한 맛만은 다이어트라는 중차대한 목적에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커피를 사서 빨대로 휘젓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바뀐 신호를 따라 한 여자가 건너오고 있었다. 짧은 핫팬츠 아래로 쭉 뻗은 다리, 가느다란 팔뚝을 그대로 드러낸 나시티와 허리 등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자였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흩날리자 몸만큼이나 아름다운 얼굴이 햇살에 빛을 발했다.

입 안을 채우고 있던 달콤함은 끈적끈적한 불쾌함으로 변했다. 손에 든 게 커피가 아니라 구정물 같고 녹아내린 크림은 뱃살이 터진 구더기의 잔해로 느껴졌다. 나는 더러운 물건 버리듯 커피 잔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졌다.

다시 고개를 들고 여자를 보는데 이상했다. 분명 처음 보는 여자인데 묘하게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까닭 없이 심장이 뛰었다. 난 위축되지 않으려고 배에 힘을 주었다.

“너, 나 모르겠니?”

“누구?”

“나 미선이야. 홍미선.”

홍미선이라는 이름 석 자를 듣는 순간 눈앞 여자의 모습과 불완전한 머릿속의 정보가 합쳐지며 선명한 기억이 떠올랐다.

“세상에, 미선이? 너 정말 많이 변했다!”

난 그야말로 입을 딱 벌리고 비명처럼 소리쳤다.

고등학교 시절 미선이는 뚱뚱했다. 줄을 서면 양옆으로 살덩어리가 삐져나왔고 의자는 그 큰 엉덩이를 감당키 어려워 부러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곤 했다. 책상도 사물함도 미선이에겐 너무 작았고 혼자만 소인국에 온 걸리버 같았다. 그랬던 미선이 ‘미녀는 괴로워’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동창을 만났다는 반가움은 잠시였다. 난 미선을 이렇게 만든 게 무엇일지 미치도록 궁금했고 시기와 질투심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너 살 엄청 빠졌구나. 어떻게 한 거니?”

“남들처럼 다이어트 했지 뭘.”

“다이어트 어쩌구 해도 빼는 게 좀 쉽니.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그렇다. 이건 마법이다. 마법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하다. 미선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얼굴은 내 쪽에 고정돼 있지만 곁눈질로 바닥을 계속 힐끔거리는 것이다. 마치 그곳에 신경을 거슬리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왜 그래?”

“아, 아냐.”

“얘는, 살 빼는 비법 좀 알려달라니까! 그래, 얌체같이 혼자만 알아라.”

“그런 게 아니라니까. 우리 어디라도 들어갈까?”

우린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선이는 오렌지주스를 시키고 나는 밀크티를 시켰지만 둘 다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나야 살을 빼겠다는 투지 때문이라지만 미선이 저러는 것은 정말 눈꼴셨다. 이래서 마른 년들이 더 독하다니깐.

“우리 졸업하고 처음이네. 그치?”

“졸업하고가 아니라 졸업 전부터였지. 너 졸업식 앞두고 계속 학교 안 나왔잖아. 애들이 걱정 많이 했었어. 그 뒤로 연락도 전혀 안 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할머니 장례식이 있었어.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럼 그것 때문에 졸업식도 제꼈던 거야?”

장례식 때문에 한 달씩이나 학교에 안 나온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미선은 잔을 어루만지며 그 속에 든 액체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먹어라. 좀 먹어!’

“나 참 많이 변했지? 너도 알잖아. 나 엄청 뚱뚱했던 거. 고등학교 때 별명 잊히지도 않아.”

“그때야 별명 같은 거 부르고 놀 때니까.”

홍드럼. 미선의 별명이었다.

“그땐 참 많이 먹었어.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말이 있지만 내 경우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거든.”

사실이다. 미선이는 정말 잘 먹는 소녀였다. 도시락을 미리 까먹고 점심시간에 제일 먼저 매점으로 달려가는 것도, 쉬는 시간 내내 온갖 군것질을 달고 사는 것도,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에 교문을 빠져나가 떡볶이를 사먹고 들어오는 것도 역시 미선이었다.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너무 마르고 밥을 하도 안 먹어서 엄마가 입맛 돌아오는 한약도 먹이고 그랬거든.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오자마자 갑자기 먹는 게 좋아지더라고. 밥이고 라면이고 케이크고 예전 그 맛이 아니었어. 혀에 착착 감기는 음식들이 얼마나 달던지.

전엔 한 끼를 먹으면 다음 끼니까진 생각이 없거나 아예 거르곤 했는데 소화가 잘되는지 먹고 나면 금방 꺼지고 또 금방 꺼지고 그러는 거야.”

“지금은 조절을 잘하는 것 같은데?”

“일이 있었지. 아주 대단한 일이.”

미선이는 말을 끊고는 피식 웃었다.

“할머니가 계단에서 굴렀을 때 다들 돌아가실 거라고 했어. 팔십이 먹은 노인네가 허리뼈가 부러졌으니 붙이고자시고 해봤자 끝났단 거지.

하지만 할머니는 일찍 죽기를 바란 큰집의 소원과 달리 넉 달을 더 버텼어. 병문안을 가면 할머니는 늘 혼자였지. 괴팍하신 분이라 식구들이 다 싫어했지만 나만은 할머니를 찾아가 전래동화 책을 읽어주거나 팔다리를 주물러드렸어.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을 거야. 여느 때처럼 할머니를 안아드렸는데 화를 내시더라고. 살 때문에 숨 막히니 치우라면서. 나름대로 위해드린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니 어린 맘에 충격이 컸지.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이 날보고 저마다 잔소리를 하는 거야. 쟤 살이 왜 저렇게 쪘느냐.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니냐.

장례에는 관심이 없고 변한 나만 그저 신기한 모양이었어. 웃기지 않아? 바쁘단 이유로 코앞인 병원도 찾아오지 않던 것들이 내 욕할 주제나 되냐고?”

“오랜만에 봐서 그랬겠지. 원래 친척이란……”

“내가 자기들한테 해를 끼치기라도 했어? 피해라도 준 거 있냐고! 왜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해?”

미선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낮아지길 반복하며 꾸준히 이어졌다. 마치 이제껏 당한 고통의 대변자라도 만난 듯 그 속에는 악의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래서 학교에 안 나온 거니?”

“모든 게 지긋지긋했어. 난 방안에만 틀어박혔고 대학도 포기했어. 대신 등록금으로 지방흡입을 받았지.”

세상에 계집애, 역시 그런 거군. 저런 변화가 노력이 아니라 돈 지랄의 결과였다니. 내 표정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미선이 고개를 저었다.

“지방흡입을 한다 해도 큰 효과는 없어. 몇 차례에 걸쳐 빼줘야 하고 시술 중에 혈관이라도 막히면 죽을 수 있거든. 못 믿겠지만 난 운동도 정말 열심히 했어. 먹지도 않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을 체육관에서 살았으니까. 덕분에 지금의 몸매를 만든 거야.”

난 어느새 컵을 쥐고 식은 밀크티를 들이키고 있었다. 갑자기 목이 미치게 탔고 가공할 다이어트 체험기는 의욕을 꺾어놓기 충분했다. 역시 살을 빼려면 그런 독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 같은 의지박약아가 어떻게 이런 독종들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어쨌든 축하한다. 얘. 다들 놀라 자빠질 거야. 네가 이렇게 변한 걸 알면.”

“그래. 놀랄 거야. 놀라겠지.”

미선은 그렇게 말하며 벽을 봤다. 바닥을 흘낏거릴 때와 비슷한 눈길이었다. 불쾌하면서도 꺼림칙한 뭔가를 보는 것 같은. 고갤 돌렸지만 거기엔 흥미를 끌 만한 그 무엇도 없었고 대신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미선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이전의 미선이라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시선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학창시절만 하더라도 단연 미선이 보다는 내가 한 수 위였고 남자들의 관심 역시 나의 차지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소위 좀 논다는 아이 하나가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그 애는 대범하게도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3학년 4반에는 자장면과 군만두가 배달됐다. 매콤한 춘장 냄새가 교실 안을 휘감았을 때 문이 열리며 담임이 뛰어들었다.

“이것들이,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인 줄 알아? 어느 놈이 시켰어!”

아이들은 긴장했지만 리더인 애가 지목한 것은 미선이었다. 가져온 도시락을 1교시에 까먹고 매점 갈 준비를 하는 미선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담임은 미선을 윽박질렀다. 미선이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입보다는 몸이 증명을 해 주었으니까.

솔직히 그땐 미선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제발 살을 빼서 사람답게 살기를, 여자로서의 매력을 발산하길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작 그렇게 바뀐 미선을 보니 그때 그렇게 바랐던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친구의 행복? 개가 웃는다. 동정과 행복도 자기보다 못한 상태에서지 자길 뛰어넘으면 뭐 같아지는 법이다.

갑자기 미선과의 만남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게다가 어디서 역겨운 냄새까지 풍겨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며칠 안 빤 속옷을 코앞에서 흔들어대는 느낌이랄까. 반찬을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냉장고에서 썩히면 비슷한 냄새가 날것이다. 아까부터 콧속을 찔러오는 그러나 얘기에 팔려 애써 무시하던 그 냄새에 나는 신경을 집중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거야?

그 순간 미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나가자.”

*

미선이 내가 사는 오피스텔 근처로 이사 왔다는 얘긴 나중에 들었다. 우린 종종 만나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거나 잡담을 즐겼다. 계절이 계절이니만치 노출이 강조되는 시기였다.

나는 더워도 청바지를 선호했지만 미선은 몸매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짧은 치마가 간신히 허리 밑을 가려줬고 손바닥만 한 천 쪼가리가 가슴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밖에 나가면 남자들의 시선은 전부 미선에게 쏠렸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번호를 묻는 대학생도 있었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절망감에 시달려야 했다.

미선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녀가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의심을 하면서부터였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난 미선이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것 봐. 칼로리가 제로래. 음, 맛도 괜찮은걸.”

“난 됐어.”

일부러 칼로리가 없는 음료를 찾아 미선의 눈앞에 흔들어댔지만 그녀는 관심이 없었다.

김밥천국 아줌마는 먹지도 않을 돈가스를 시켰다면서 투덜거렸다. 미선이 먹지도 않을 음식을 시키는 짓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커피숍에서 오렌지주스를 시킬 때처럼 말이다. 오렌지주스뿐만이 아니다. 미선은 물 한 모금 안 마셨다.

“너 소화 장애 같은 거라도 시달리니?”

“내가? 왜?”

“전혀 안 먹는 거 같아서. 너무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거 아냐? 그러다 몸 상할라. 적당히 해.”

미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안 그래도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고양이상인데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노려보는 모습이 살벌하기 그지없다. 거짓말 보태서 살의까지 느껴지는 싸늘함에 난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무슨 의도야?”

“뭐가?”

“왜 그렇게 못 먹여서 안달이냐고! 내가 너한테 그런 거 걱정해 달라고 했니? 칼로리가 없는 음료니 뭐니 하며 자꾸 먹이려고 하는데 꿍꿍이가 뭐야?”

“기막혀. 꿍꿍이는 무슨 꿍꿍이? 걱정도 못 하니?”

미선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진짜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속으론 비웃고 있을 텐데? 예전의 홍드럼이 이런 모습으로 변했으니 얼마나 배 아프겠어. 하나라도 더 먹여서 이전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 아냐?”

예리한 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틀렸다. 난 궁금할 뿐이다. 네가 숨기는 게 뭔지. 네 다이어트의 진짜 비결이 뭔지.

“너 나하고 만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먹은 거 알아? 점심도 안 먹고 왔다면서? 오늘만 그런 것도 아냐. 저번에도 그렇고 지지난번 극장 갔을 때도 그랬잖아.”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해! 살아 있잖아! 이렇게 건강하게. 그거면 충분한 거 아냐?”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지만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미선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었던 자신의 행동이 후회스러웠는지 가는 길에 맥주를 사겠다고 했다. 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국 나 혼자 먹고 마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맥주를 들이켜고 안주에 포크질을 하는 동안 미선은 음식엔 손도 대지 않고 떠들어대기만 했다. 펜팔 하던 남자애에게 몸무게를 속여 약속장소까지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온 일, 장례식장에서 잡친 기분을 풀러 백화점에 갔다가 옷을 못 입게 한 점원과 싸운 일, 변신에 성공하고 처음 사회에 나갔는데 사장이 변태라 일주일 만에 그만둔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나는 고개만 주억거렸다. 대화가 멈췄다. 고개를 들자 미선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은밀하고도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녀는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잠시만.”

“어디 가는데?”

“화장실.”

혹시 내가 자기 얘길 건성으로 들어 화난 게 아닌가 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나는 계속해서 돈가스 조각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벨을 누르자 아르바이트생이 빈 500CC 컵에 맥주를 가득 채워왔다. 벌써 3잔째였고 적당히 취기도 올랐다. 내 위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산타의 자루처럼 끝도 없이 부풀어 갔다. 맥주는 금세 반이 비워졌다.

그때까지도 미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가방이 소파 귀퉁이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5분쯤 뭉그적거리던 나는 화장실로 갔다. 여자화장실에는 변기가 3개였고 앞의 두 칸이 모두 비워져 있었다. 잠긴 셋째 칸으로부터 신음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 …… 우읍 ……으.”

순간 맹렬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신음소리는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를 내는 거 같기도 하며 넋이 나가 흐느끼는 거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이 냄새! 용변 칸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단순한 암모니아 가스하고는 비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가공할 만큼 역겨운 냄새였다. 어찌나 지독한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누구얏!”

“나야, 그 안에서 뭐해?”

“가! 가 있어!”

“토하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가! 가란…… 으읍…… 우우우…… 으어억.”

나는 몇 걸음 물러섰다. 꺼림칙한 감각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몇 분간, 실제로는 몇 초였을지도 모르지만 냄새와 싸우며 필사적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저 문을 열고 미선의 등을 두드려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가서 약이라도 사와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씨, 이거 무슨 냄새야?”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입술에 뚫은 피어싱 만큼이나 성깔 있어 보이는 여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출처가 내가 아니라고 판단했던지 잠겨 있던 문을 발로 찼다.

“야! 안주를 뭘 처먹었기에 냄새가 이래? 너 혼자 쓰는 화장실이냐?”

“으…… 우우…… 으읍…… 으.”

“씹할 년아, 술 처먹으려면 곱게 처먹어. 난 너같이 주량 무시하고 주는 족족 다 받아 처먹다가 오바이트 쏟는 것들만 보면 귀싸대기를 갈기고 싶어. 야! 안 들려?”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위장이 들썩거리며 금방이라도 음식물이 역류할 것 같은 느낌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름다운 미선의 속에 뭐가 있기에 그런 끔찍한 냄새를 게워내는 것일까. 남자들이 그 냄새를 한 번이라도 맡게 된다면 이전처럼 미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난 얼음물을 시켜 속을 달랬다. 찬 기운이 알코올을 몰아내자 조금 전의 목격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인식할 수 있었다. 위장이 텅 빈 애가 쏟아낼게 뭐가 있다고.

*

여전히 먹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미선은 별 탈이 없어 보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다시 자기 몸을 과시했다. 그때마다 난 체육관에 다니겠다고 열을 냈지만 작심삼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자기야, 이쪽은 내 고등학교 친구.”

미선이 소개하는 동안 나는 멍하게 남자를 바라봤다. 180? 아니 185는 되지 않을까? 남자는 모델처럼 늘씬한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다. 벤치프레스를 하루에 수백 번은 드는 것 같았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마치 내가 침을 흘리며 감상하던 영화 속에서 갑작스레 현실로 튀어나온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성호라고 합니다.”

“아, 네.”

뒤늦게 나는 그가 손을 내밀고 있다는 걸 알아채곤 얼른 손을 내밀었다.

“미선이 친구라 기대했는데 인상이 참 귀여우시네요. 그런 말 많이 듣죠?”

손가락은 부드러우면서 힘이 있었다. 적당히 차가운 기운이 도는 게 딱 내가 원하던 감촉이었다. 이런 남자가 미선의 남자친구라는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디자인 관련 프리랜서였다. 각종 로고, 홈페이지, 앨범 재킷, 공연 포스터를 제작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티셔츠 디자인으로 자신이 만든 티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마침 들고 온 쇼핑백에는 미선의 얼굴이 새겨진 셔츠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특별히 제작했다는 그 말에 나는 아랫배가 칼날에 베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깍듯이 매너를 지켰고 애인친구라고 이것저것 신경써 주었다. 돌아오는 길의 기분은 한 마디로 똥 같았다. 나보다 못한 년이 어느새 훨씬 잘난 남자를 꿰차고 있다는 시기와 그 남자를 갖고 싶다는 욕망. 미선이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다이어트로 만들어낸 말라비틀어진 몸 때문이다.

예전에 본 「환상특급 시리즈」에서 그런 내용이 나왔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의 정의를 풍자했던 것 같다. 한 여자가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은 채 입원해 있다. 여자는 자신의 추한 얼굴을 드러낼 수 없어 붕대를 풀 시기가 왔음에도 미룬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끔찍한 얼굴을 뒤에서 조롱한다.

결국 여자는 다른 곳으로(아마 그녀같이 저주받은 괴물이 모여 사는) 보내져서 붕대를 풀게 되는데 놀랍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정작 그녀를 비웃던 의사와 간호사야말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물들이었던 것이다.

대체 이 시대의 남자들은 왜 미선이처럼 말라비틀어진 년만 좋아하는 것일까. 그날 나는 기어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체육관에 갔다. 덤벨을 들어 올리던 코치가 신기하단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운동하려고 왔죠.”

“술 드셨어요? 어후. 음주운동은 원래 하면 안 되는데…….”

나는 날벌레를 쫓듯 코치를 쫓아냈다. 그러곤 러닝머신에 기어올랐다. 새벽이라 갈지자걸음으로 달리는 내 꼴을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뒤에 온 코치는 비웃기보다는 진지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평소에도 그렇게 열심히 해보세요.”

*

내가 제 애인을 넘볼 주제가 못 된다고 생각해선지 미선은 성호와 만날 때마다 날 불러냈고 우린 셋이 어울리는 날이 많아졌다. 질투에 몸부림치며 난 둘 사이가 깨지길 간절히 빌며 교묘하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 미선이 학교 때 얘기 좀 해봐요. 어땠어요?”

화제가 나오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떠들어댔다. 반에선 어땠고 선생들 사이에서는 어땠으며 성적은 어느 정도였는지. 처음엔 당황하던 미선도 내가 좋은 쪽으로만 얘기해 주자 안도하는 투였다. 히죽히죽 웃는 입술 사이로 미백한 이빨이 드러났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가방을 뒤졌다.

“안 그래도 내가 사진을 하나 찾았거든. 다 없어지고 이거 한 장 남았더라고. 이게요, 우리 수학여행 때 찍은 거거든요.”

미선이 막으려 했지만 내 동작이 더 빨랐다. 성호 또한 미선의 과거가 궁금했는지 얼른 사진을 낚아챘다.

“와, 자기 고등학교 때란 말이지.”

“미선이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세요.”

성호는 시험지를 받아든 꼬마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당최 사이즈가 비슷하기라도 해야 말이지. 미선이 스스로 학창시절 얘기를 했을 리도 없고. 성호가 엉뚱한 아이들을 찍을 때마다 미선의 표정은 초조하게 붉어졌다.

“찾았다! 얘가 미선이죠?”

“아닌데.”

“어, 이상하네. 그럼 여기!”

“땡.”

성호의 난감해하는 표정과 미선의 불안해하는 표정을 번갈아 보는 맛은 정말 짜릿했다. 가관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는 사악한 속마음을 숨긴 채 그저 학창시절의 여흥을 돋우려는 순수한 의도처럼 깔깔거리다 미선의 옆구리를 찔렀다.

“네가 알려줘. 자꾸 헤매잖니.”

“말하지 마. 내가 맞출 거야.”

답은 계속 빗겨갔고 나는 사진 맨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살덩이를 가리켰다.

“참내, 여기 있잖아요. 애인 얼굴도 몰라요?”

“에? 정말요? ……뭐야, 자기 학창 땐 복스러웠구나. 나도 얼굴은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이 너무 말라서 저런 때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지. 이때도 매력 있는데 너무 뺀 거 아냐?”

저런 것을 보면 인간의 간사함이 놀라울 정도다. 이때도 매력 있어? 너무 빼? 웃기고 있네. 솔직히 당황스러울 거다! 역겨울 거다! 나는 사진을 받아들고 말했다.

“지방흡입을 엄청 하긴 했죠. 지금처럼 만들려고 미선이 정말 독했어요. 돈도 얼마나 들었는지. 얼마나 들었니? 오백? 천?”

“지방흡입? 그런 것도 했어?”

“살 빼는 게 쉬운 줄 알아요? 연예인들 그거 다 지방흡입 한 거예요. 요가니 헬스니 떠들어대지만 지방흡입으로 어느 정도 빼주고 그 다음부터 운동을 하는 거죠.”

성호는 말이 없었다. 미선이 원망어린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 모양으로만 중얼댔다.

‘내가 뭘?’

그때 누군가의 생일인지 조명이 꺼지며 생일 축하곡이 경쾌하게 울렸고 우리도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는 맥주를 들이켰다. 힐끔 보니 미선은 어스름한 틈을 타 재빨리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나도 이젠 미선을 만날 때마다 풍겨오던 역한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까. 끔찍한 악취는 바로 미선 자신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냄새를 그보다 더 독한 향수로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악취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이어트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진짜 병이라도 있는 건지.

‘미친년, 향수로 그 끔찍한 악취를 지울 수 있을 것 같아? 언제까지 그런 추악한 가면을 쓰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주제에 무슨 다이어트를 한다고. 애초부터 넌 홍드럼으로 머물렀어야 해.’

이제 성호는 완전히 풀어져 미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테스토스테론(고환에서 추출되는 남성 호르몬)의 분비로 후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는 근사한 몸매와 성적 욕망으로 그는 미선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 당신이 고른 꽃은 썩었다고!

*

나의 바람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이유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돼지처럼 살찐 고등학교 때 사진을 잊을 수 없거나 독한 향수 뒤에 숨어 있던 악취의 정체를 알아차렸거나.

“성호 씨 일이 잘 안 풀리나 봐. 마음이 복잡해서 마음 편히 연애에만 매달릴 수가 없대.”

“그럼 헤어지재?”

“당분간은 일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알다시피 나이도 있고 한참 중요할 때잖아. 그 사람 꿈도 크고……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둔하게도 미선은 성호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남자 마음 한 번 떠나면 끝이야! 잊어버려!”

성호가 내게 연락을 해온 건 예상 외였다. 우린 미선이 몰래 만나기 시작했다. 꿈꾸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죄책감이나 미안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진작부터 이렇게 됐어야 했다는 생각이 훨씬 강하게 들었다.

성호와 헤어진 충격 탓인지 한동안 미선은 외출도 하지 않고 연락도 해오지 않았다.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것 같았다. 어차피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상관은 없지만 싸돌아다니면서 과시하기 좋아하던 애가 갑자기 변하니 이상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 다음에 수화기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야, 살아 있기는 한 거니? 얼굴 좀 보자.”

“싫어.”

“칙칙한 집구석이 뭐 좋다고 그래. 영화 보자. 내가 쏠게.”

“집에 있어야 해. 나가면 안 돼.”

“얘 좀 봐, 왜 갑자기 세상에 환멸이라도 느낀 거니? 나가면 안 되게.”

미선이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들이…… 싫…… 해.”

전화는 끊어졌다.

‘그것들이 싫어해’ 라고 말하는 듯했다. 워낙 작게 중얼거려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것들? 그것들이 누군데? 무리하게 추측해 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단순히 의미 없이 내뱉었을지도 모를 말이었다.

*

며칠 뒤 미선의 집을 찾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나와 성호의 관계를 눈치 챈 게 아닐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미선의 집주변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렇잖아도 칙칙한 회색 건물이 혼자만 뚝 떨어져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초인종을 누르려다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난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소리 없이 문을 밀었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호흡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실내에 농익은 은행열매가 독소를 뿜어내는 것 같은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던 것이다. 잠깐의 순간에도 뒷골이 지끈거리고 구토가 치밀었다. 언젠가 술집 화장실에서 맡았던 그 악취와 비슷했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거실로 들어섰다.

“미선아, 나야. 걱정돼서 와봤어.”

어쩌면 요 앞 편의점에 나갔을지도 모른다. DVD를 빌리거나 세탁소에 옷을 찾으러 갔을지도.

“얘, 미선……?”

“……으읍 ……우우우 ……으그 ……억.”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