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호구역

  • 장르: 판타지, 기타 | 태그: #좀비 #코믹
  • 평점×49 | 분량: 124매 | 성향:
  • 소개: 좀비사태 1년 후 여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한 김유월은 카페 ○○○로부터 푸시알림을 받는다. 가게가 재오픈했다고. 더보기

좀비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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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유월님, 푸시알림이 도착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검고 그윽하고 씁쓸한 액체가 넉넉한 얼음을 가득 품고서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마신 것도 벌써 1년 3개월 전이다.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후 김유월에게 가장 곤란했던 일을 꼽으라면,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매일이 생사의 기로인데 그까짓 커피 생각이 나냐고 묻는다면, 유월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실제로는 어떤가 영영 알 수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일은 벌어졌고 그런 시국에도 커피는 절실했다. 날에 따라 아주 구체적으로 마시고 싶었다. 보통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강추위에 얼어 죽을 것 같은 날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새 소리가 들리는 날은 카푸치노. 생리를 앞둔 날이면 바닐라 라떼. 좀비가 나타났다고 해서 갓 갈아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유월도 알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이름과 같은 유월의 어느 하루다.

유월은 자취방에 드러누워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부터 생존자들은 재난배급카드로 매월 30코인씩 생필품을 결제할 수 있는 금액을 지급받게 되었다. 오늘은 주민센터에 재난코인을 충전하러가는 날인데, 때 이른 더위 때문인지 시간도 늘어진 것만 같았다. 정해진 시간인 오후 2시는 멀고도 멀었다.

땀이 흘렀지만 에어컨은 켤 수 없었다. 좀비바이러스로 인해 한 번 무너졌다가 다시 기지개를 켜려고 하는 나라에서, 가정집의 에어컨은 아직 사용허가가 나지 않은 사치품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그랬다. 전력 사용에도 우선순위가 엄격히 매겨졌다. 와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생각이라니.

“하 하 하…….”

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때 드르륵 하고 휴대폰이 진동했다. 요즘 오는 메시지라고는 공공기관에서 오는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일지 대충 알 수 있었으니까.

⌜재난코인 충전 5부제, 금일 김유월님의 해당일이니 아래 시간을 엄수하여 지정된 주민센터로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거나

⌜좀비바이러스 예방수칙 : 1. 불필요한 외출을 삼간다. 2. 예방 백신은 필수 접종. 3. 잠복자(의심자)는 좀비보호구역에 신속하게 신고한다.⌟

이거나

⌜좀비 퇴치용 호신 무기는 꼭 주민센터에서 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불법 무기 소지 시 코인 삭감 등 불이익이 있습니다.⌟

이거나

⌜힘내라 대한민국, 일어나라 대한민국. 좀비바이러스를 이겨낸 한민족의 의지로, 다시 한 번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약속합니다.⌟

이거나. 매번 오는 메시지들은 저 네 가지 유형 중에 하나였다. 가장 받고 싶은 건 지인의 생존 알림이었지만, 유월은 이젠 포기했다.

좀비증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하며, 정부는 3개월 전 행정업무 재가동을 시작했다. 통신망과 전기도 그 무렵 회복이 되었는데, 바로 그날 쌓였던 메시지들이 한 번에 와다다다 몰려들었다. 진동이 끊이지 않아서 처음엔 방바닥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다. 휴대폰 진동을 너무 오랜만에 경험한 탓이었다.

통신이 연결된 걸 불현듯 깨닫고 유월은 후다닥 폰을 확인했다. 1년 반 전에 보낸 것이 이제 도착한 것도 있고, 이제 막 보내진 것도 있었다. 재난 알림 문자가 대부분이었다. 마치 국경을 넘으면 영사관에서 이런저런 문자를 한꺼번에 보내주는 것처럼, 나라에서 보낸 알림 및 요청사항들이 쉼 없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아는 이름이 있을까 싶어서, 하나하나 빠짐없이 확인했으나 불행히도 없었다. 가족들도 친한 친구들도. 고작해야 눈에 익은 트위터 팔로워 몇 명의 생존 신고 디엠이 있을 뿐이었다. 그전에도 가족들과 살갑게 소통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사실 싫어했다고 보는 편이 맞았으나, 자발적으로 무시하는 것과 타의에 의해 못하게 된 것은 경우가 좀 다른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첫 한 달은 순수하게 기다렸다. 누군가는 살아있겠지. 다는 아니더라도 하나쯤은. 온 나라가 난리통이니 소식이 닿는 것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러나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째에 접어들며 유월은 기대를 버렸다. 대한민국은 빠른 나라였다. 코인을 준다는데도 연락이 없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어서 오후 2시가 되어서 재난코인을 받고, 배급 제휴 마트로 직행해 인스턴트커피라도 사는 것이 유월이 현재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낙이었다. 재난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1시 20분.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겨우 이 시간에 도달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 했다. 씻고 양치하고 누가 봐도 사람답게 매무새를 정리한 후 천천히 걸어 나가면 주민센터에 1시 55분쯤 당도할 것이다. 몸을 일으킨 김에 유월은 아까 왔던 진동의 출처를 확인했다. 그런데 재난알림이 아니었다. 한 앱의 푸시알림이었다.

“뭐야…… 야, 야옹이?”

유월은 푸시알림을 보자마자 액정을 코에 바짝 갖다 댔다. 카페○○○에서 보낸 가게 재오픈 알림이었다.

“헐, 진짜로? 진짜?”

자연스러운 혼잣말도 이 시국에 생겨난 유월의 버릇 중 하나였다. 1년 간 홀로 고립되어 있을 때, 그렇게라도 혼자 떠들지 않으면 제 목소리가 어떤지도 진즉에 잊어버렸으리라.

“진짜로 열었다고, 야옹이가?”

카페 ○○○는 유월이 가장 좋아하던 커피숍의 이름이었다. ○○○는 상호 보호를 위해 일부러 비워뒀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카페 이름이 문자 그대로 ○○○다.

동그란 테이블이 세 개 들어가 있는 작은 카페라서 이름을 그리 지었다고 들었는데, 사업자등록상으로는 그렇게 쓸 수 없어서 편의상 모음이 이응으로 모두 시작하는 ‘야옹이’라고 쓴 것이 손님들에게도 애칭이 되었다고, 야옹이를 닮은 여사장님이 말했다. 그래서 다들 야옹이라고 불렀다. ○○○를 뭐라고 읽어야 할지는 누구에게든 난감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야옹이는 유월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편의점에서 대각선으로 길 건너 있는 건물 1층에 위치한 작은 개인 카페였다. 원두 맛도 다른 프랜차이즈 못지않고 값도 싸서 이삼 일에 한 번은 꼭 들렀었다. 무엇보다 야옹이를 닮은 사장님의 살가운 매력이 손님을 끄는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유월은 적어도 휴학 중 이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동안만큼은 ○○○가 망하지 않고 남아주기를 바랐는데, 카페가 아닌 세상이 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야옹이가 이 시국에 재오픈을 했다니, 가족도 친구도 누구도 돌아오지 않은 비극인 중에 미안한 일이지만 유월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아직 인근에서 영업을 시작한 카페는 눈을 씻고도 못 봤다. 그런 사치품을 파는 가게는 다시 생겨나는데 시일이 더 걸릴 줄만 알았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절실히 필요해진 이 계절에 야옹이가 딱 맞게 찾아오다니, 등줄기를 타고 땀과 함께 전율이 흘렀다.

오늘 재난코인을 받으면 야옹이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부터 마실 거야.

유월은 처리해야 할 좀비를 맞닥뜨린 것 마냥,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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