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미리보기

놈들이 집 안을 들여다본다.

눈가죽 밖으로 튀어나온 붉은 눈동자가 우리 움직임을 잡아내려고 희번덕거렸다. 새파랗게 질려 김치냉장고 뒤에 숨어 있는 엄마가 보인다. 놈들이 유리를 깨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면 겁먹고 비명 지르는 엄마를 제일 먼저 물어뜯을 게 분명했다. 식탁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온 경수의 발을 잡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빠가 자꾸 놈들을 불러들이잖아.”

경수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조용히 해!”

“저것 봐! 냄새를 맡고 있어. 우리가 안에 있는 걸 알 거야.”

“제발 좀 조용히 해.”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몸을 들썩이는 경수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날이 저물기 전에 거실 창을 막고 있던 매트리스를 다시 세워 놔야 했다. 놈들은 어둠 속에서 더 잘 보고, 더 잘 들었다. 거실 창에 반사되는 햇살이 사라지면 우리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놈들 모르게 저걸 다시 세우지?

*

모든 일이 시작된 그날, 창백한 얼굴로 뛰어 들어 온 아빠가 소리쳤다.

“빨리 문 닫아! 빨리!”

한 번도 본적 없는 겁먹은 모습이었다. 구두를 신은 채로 거실 불을 끄고, 커튼 뒤에 숨어 밖을 내다봤다.

“거리에 미친놈들이 날뛰고 있어. 절대로 밖에 나가면 안 돼.” 하며 팔을 들어 보였다. 구멍 난 와이셔츠를 타고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물렸어! 미친놈한테 물렸다고. 경찰은 뭘 하는 거야!”

피를 보고 현기증을 느낀 엄마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멀리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가 뛰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였다. 사람들의 비명과 날카롭게 울리는 사이렌.

“전화가 안 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TV 틀어봐! 빨리!”

전화기를 내팽개친 아빠가 멀쩡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빠가 움직일 때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젠장.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창백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아빠를 소파에 앉히고 약 상자를 찾아오라고 경수를 불렀다.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 화면에 빠져 있던 경수가 겁먹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누나 이것 좀 봐.”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브라운관을 하얗게 밝히고 있는 건 아침마다 정체구역을 알려주던 방송국의 CCTV 영상이었다. 뒤집혀 불타는 승용차들과 다리에서 떨어질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버스, 불붙은 사람이 강으로 뛰어들고, 차와 차 사이에 끼어 죽은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끌어 내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63빌딩. 굽이치는 한강과 함께 금색으로 빛나고 있어야 할 63빌딩이 검붉은 화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불타는 63빌딩을 보고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화면이 바뀌고 익숙한 곳이 나왔다. 남대문 시장 앞이었다. 꽉 막힌 거리에 차와 사람이 가득했다.

“집 근처야.” 하며 경수가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 금세 화면이 바뀌었다. 불타오르는 강남대로였다. 뒤엉킨 차 사이를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강남역 6번 출입구 계단에 처박힌 3412번 버스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창밖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던 여자가 아기를 내밀었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아기를 밑에 있던 어떤 남자가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물어뜯었다. 아기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기가 물어뜯기는 모습을 보고 아기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아기 엄마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버스 밑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화면이 바뀌었다. 창백한 얼굴의 남자 아나운서가 말을 더듬었다.

“보……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서울, 경기 일대와 충북 음성, 충주, 제천, 충남 천안 등지 그리고 강원도 춘천, 홍천, 횡성 근처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금일 16시 30분 특별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상기 지역에 연결된 모든 도로는 봉쇄되었으며 차량 이동 중이신 모든 분들은 속히 귀가하시거나, 여의치 않으실 경우 근처 공공기관으로 대피 하십시오. 그 외 지역 또 한 외출을 삼가시고 사람들과 접촉하지 마십시오.

특히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용산구, 중구, 경기도 남부지역, 부천, 금천 지역의 주민 여러분들은 문을 잠그시고 외부 출입이 가능한 창문, 계단, 환기구 등을 폐쇄하시고 방송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모든 방송은 정부의 통제 하에 진행되며, 동일 방송이 TV, 라디오, 위성, DMB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서울, 경기…….”

아빠에게 매달린 엄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여보 이게 뭐예요!”

다친 팔을 움켜쥔 아빠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빠가 숨을 내쉴 때마다 벌어진 입에서 끈적끈적한 침이 흘러내렸다.

“사…… 무실에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내다보니 거리가 엉망진창이었어. 전화도 불통이고…… 사무실 근처 전기가 나가서 인터넷도 안 되고……, 큰일이다 싶어서 집에 돌아오다가 차에 뛰어든 애를 쳤는데……, 그 애가…… 나를 물었어. 나를…… 나를…… 물…… 나를 물었어…… 나를.”

고개 숙인 아빠 입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들이 웅얼웅얼 흘러나왔다. 검푸르게 부풀어 오른 팔뚝에 진물이 노랗게 고여 있었다.

“설마…… 누나 이거 말이야. 말도 안 되지만 말이야. 설마 좀비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하지만, 누나 만약에 그렇다면…….”

당황하고 겁에 질린 경수가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듯했다.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맴돌고 있었다.

‘이게 뭐야?’ 라는 질문 하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왜 손발이 떨리고 숨이 막혀 오는지, 피 흐르는 아빠의 팔, 사이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아빠 옆에 붙어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엄마. 눈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구겨지고, 비틀어지고, 압축되어 머릿속에 들어와 맴돌았다. ‘도대체 이게 뭐야?’

한가한 토요일 오후였다. 엄마는 낮잠을 즐기고, 나는 침대에 누워 『취업 면접 100% 성공하기』라는 책을 읽었다. 토요 학원 특강 때문에 일찍 저녁을 먹은 경수가 배부르다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다. 그래……. 바로 몇 분 전이었다. 아빠가 뛰어 들어오기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안락하고 한가한 토요일이었다. 비명도, 피도, 두려움도 없었다.

“가족 중에 사망자나 부상자,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경우 격리하시고, 절대 접근하지 마십시오. 정부 비상대책반의 행동 지침 발표를 기다리셨다가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사망자와 부상자,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격리하시고.”

TV속의 아나운서가 비명처럼 떠들어 대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어느 누구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TV에서 경고하는 부상자가 우리 눈앞에도 있었다. 아빠를? 격리? 어디에? 겁먹은 눈으로 나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던 경수가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아빠 옆에 바짝 다가앉은 엄마가 그런 경수를 눈동자로만 쫓았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본 경수가 나를 손짓해서 불렀다.

“누…… 누나. 밖에.”

그때 아빠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는 팔에 맞은 엄마가 소파 밑으로 나동그라졌다.

“으아아아악! 머리가! 머리가 아파! 으아아아악.”

“아빠! 아빠 조용히 해! 집 앞에 이상한 놈들이 있단 말이야!”

경수가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는 듯 악문 이 사이로 내질렀다. 아빠에게 달려들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따듯하고 축축한 입술이 손바닥에 닿았다.

“아빠! 제발 조용히 해! 아빠!”

날 밀어 내려고 내민 아빠 손이 얼굴을 할퀴었다. 고통보다도 상처에서 나온 피가 뺨에 흐르는 감각이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고,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고, 경수가 뛰어오는 그런 모습들이 왠지 스크린에 비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질적으로 보였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경수가 버둥거리는 아빠 다리를 움켜잡았다.

“안 돼! 정신 차려 누나! 아빠 입을 막으라고.”

바로 옆에 있는 경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빠가 제정신을 차린 건 엄마에게 밀린 내가 소파 옆에 기대앉아 울음을 터트리려 할 때였다.

“괜찮아. 나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괜찮아.”

조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파랗게 핏줄이 돋은 창백한 얼굴에 송골송골 돋아 있던 땀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여보!” 하며 엄마가 아빠 품에 뛰어들었다. 서럽게 우는 엄마를 품에 안은 아빠가 숨을 몰아쉬며 겨우 일어나 앉았다.

“문 다 걸어 잠그고…… 창문도 다 막고…… 장롱하고 책상 같은 거 가져다 쌓고……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돼.”

아빠 코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그것을 닦아 내려는 내 손을 매정하게 뿌리친 아빠가 경수를 바라봤다.

“아빠는 지금 마당으로 나가서…… 창고로 갈 거야. 아빠는 거기…… 테니까 경수가…… 올 때까지 누나랑 엄마를 지켜야 해.”

아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여보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여기 같이 있어야지 어디를 가! 당신 지금 좋아지고 있잖아. 아까보다 좋아졌어! 점점 좋아질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경찰이든, 군인이든…….”

“맞아! 아빠 지금은 괜찮아. 영화 같은 데서 봐서 잘 알아. 아빠는 절대 안 죽을 거잖아. 죽기 전까지는 괜찮아. 우리가……. 우리가 아빠 상태가 나빠지면 그때 알아서 할 게,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제발.”

경수도 아빠에게 매달렸다. 우리 모두 절박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뒤따른 두려움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빠가 제정신을 차렸다는데 안도하고, 우리를 두고 밖으로 나간다는 말에 몸을 떨었다. 아빠를 잃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아빠를 붙들었다. 어정쩡하게 소파에 앉은 아빠가 멍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소파 밑으로 툭 떨어졌다. 아빠 입에서 흘러내린 덩어리진 피가 바지를 붉게 물들였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에 섞인 괴상한 신음이 아빠 몸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아빠.”

아빠의 뜨거운 뺨에 손을 댔다. 움찔 놀란 아빠가 고개를 들었다.

희뿌옇게 번진 회색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방금까지 우리를 바라보던 그 눈동자가 아니었다. 아빠에게 매달려 있는 엄마를 잡아당기며 벌떡 일어섰다.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아빠가 내가 움직이는 것을 알고는 “케에에엑.”하는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빠 손톱이 팔뚝에 파고들었다. 더 이상 아빠의 얼굴이 아닌 얼굴이 내 살점을 물어뜯으려고 이를 드러냈다. 물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경수가 아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앞으로 꼬꾸라지듯 나에게 달려들던 아빠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뜯긴 머리카락을 움켜쥔 경수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나에게 달려든 아빠를 얼떨결에 떼어내기는 했지만, 자신의 그런 행동에 자신이 놀란 듯했다. 뒤로 넘어져 버둥거리던 아빠가 벌떡 일어나 경수를 덮쳤다. 경수가 그랬듯이 나도 무의식중에 아빠를 옆으로 밀쳐냈다. 중심 잃은 아빠가 옆으로 쓰러지며 내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아빠와 함께 나뒹굴었다. 아빠가 내쉬는 격한 숨결이 피부에 와 닿았다. 담배 냄새를 풍기던 따뜻한 숨결이 아니었다. 차갑고 역한 냄새가 피부를 녹여낼 듯 독하게 느껴졌다. 아빠에게서 벗어나려고 정신없이 발버둥쳤다. 경수와 엄마가 지르는 비명과 내 비명이 아빠의 괴성에 섞여 어지럽게 들려왔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뒤엉킨 우리 위로 장식장이 쓰러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할 통증이 번개처럼 엄습했다. 통증은 머리에서 먼저 터지고 온몸으로 퍼졌다가 다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다시 머리에서 새까맣게 터졌다.

*

펄펄 끓는 물에 삶아지는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 새벽 해가 두꺼운 커튼 사이에서 반짝였다.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몸 깊숙이 느껴지는 열기가 뜨거웠다. 악몽 속의 뜨거운 물이 몸 속에 흐르는 것 같았다.

무겁고 둔한 몸이 매트리스 깊숙이 가라앉았다. 마냥 이렇게 누워 있으면 몸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매트리스와 함께 나를 녹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의 정적과 아직 남아 있는 잠을 느끼며, 어제의 몽롱한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변해버린 아빠와 지옥 같은 거리. 꿈이었나? 하고 눈을 깜빡였다. 어딘가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열기와 함께 노곤하게 녹아 있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빠가 지르던 괴성이 머릿속에 소리 없이 울렸다. 일어서려고 몸을 비틀었다. 다리를 강제로 잡아 뜯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의 축축하고 차가운 손이 비명 지르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쉿! 하며 눈앞에 얼굴을 들이민 건 경수였다. 겁먹고 지친 경수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조용히 해! 놈들이 집 앞에 있어.”

경수가 말했다.

놈.들.이.집.앞.에.있.어.

*

큰길 쪽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집 안을 기웃거리던 놈들의 머리가 소리 나는 쪽으로 확 돌아갔다. 먹이가 지르는 비명에 반응한 놈들이 누런 침을 줄줄 흘리며 큰 길 쪽으로 뛰어나갔다.

잡고 있던 경수의 어깨를 놓으며 말했다.

“지금이야. 밖에 남아 있는 놈이 있나 보고 얼른 다시 세워!”

안절부절못하며 기회를 노리던 경수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식탁 밑에서 뛰어나갔다. 조심스럽게 창문 옆에 몸을 숨기고 밖을 내다보다가, 매트리스를 세워 거실 창의 틈을 메웠다. 먼지 섞인 햇살이 사라지며 거실이 어둠에 잠겼다. 울음을 참고 있던 엄마가 오열을 터트렸다.

“어디 가는 거야!”

현관문 쪽으로 몸을 트는 경수를 불러 세웠다.

“놈들이 마당에 못 들어오게 대문도 닫아야 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이 새끼야! 지금 문 열고 나가면 죽여 버릴 거야!”

창백한 얼굴로 현관문 앞에 서 있던 경수가 나를 돌아보고는 피식 웃었다.

“누나가 그런 말 하는 거 처음 들었어.”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지만 안 한 거야. 그러니까 얼른 이리와. 제발.”

예전처럼 어리고 순진한 미소가 번졌던 경수의 얼굴이 금세 심각해진다. 입술을 깨물고 어두운 거실 한편을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누나도 알잖아. 물도, 먹을 것도 금방 떨어질 거야.”

“아직 괜찮아. 싱크대에 받아 놓은 물도 그대로 남아 있고 쌀도 많이 남았어.”

“그게 며칠이나 갈 것 같아? 기껏해야 열흘?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질문은 부러진 다리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당장이라도 혀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은 나에게 되물어 오던 질문이었다. 해답은 없었고, 나는 계속 죽고 싶었다.

장식장에 깔린 건 나뿐이었다. 엄마와 경수가 내 부러진 다리에 매달린 아빠를 떼어내 화장실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변해버린 아빠는 화장실을 때려 부수고 몸부림을 치다가 잠들었다. 아빠는 죽음처럼 조용한 잠에 빠져 있다가 발작처럼 깨어나 괴성을 질렀다.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좀비 영화의 선택된 주인공들이 많은 기회를 얻는 것에 반해, 우리에게는 기회도, 선택도 없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총이나 도끼도 없었고, 기동성 좋은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쁜 여주인공도, 용기 있는 멋진 남자 주인공도 없었다. 겨우 며칠 흘러나온 수돗물과 상하기 시작한 냉장고의 음식들, 생으로 먹어야 하는 라면, 쌀, 야채 그리고 비명과 괴성이 넘치는 바깥세상이 전부였다.

집 안 가득한 절망이 숨 막히는 더위와 함께 절절 끓었다. 장식장에 깔려 부러지고 찢어진 내 다리는 금방 곪고, 금방 썩었다. 나를 따라다니며 코를 마비시키는 이 지독한 악취가, 닫힌 문틈을 통해 비집고 들어온 미친 세상의 죽어버린 사람들의 썩은 내인지, 부러진 내 다리에서 나는 냄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엄마는 온종일 울었다.

아빠가 깨어나면 아빠의 괴성과 함께 울고 아빠가 잠들면 혼자 울었다. 나를 보고 울고, 경수를 보고 울었다. 엄마는 아빠의 꽃이었고 보물이었다. 아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였다. 엄마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경수는 조금씩 말라갔다.

나와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내 뒤에 숨고 싶은 어린 두려움으로 자신을 달달 볶았다. 밖을 노려보고, 뭔가를 계획하고, 혼자 분노하고, 그리고 지쳐갔다. 경수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 이 모든 걸 등에 짊어지기에는 너무 어렸다.

*

놈들은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움직였다. 놈들이 사냥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비명과 괴성, 부수고 찢고 먹는 소리였다. 거리에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된 놈들이 주택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출근했던 부모가 돌아오지 않아 혼자 남겨졌던 아이들이나 도망칠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 먼저 당했다.

우리 뒷집이 그랬다. 다른 가족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 집에는 할머니와 세 살짜리 준이가 남아 있었다. 3일째 되던 날, 우리를 애타게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박한 표정으로 준이를 창밖으로 밀어내며 할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 우리 준이 좀! 살려줘! 살려줘!”

겁을 잔뜩 집어먹은 준이가 우리를 보고는 통통한 작은 손을 내밀었다. 손이 닿는 거리가 아니었다. 준이를 구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 담을 넘어야 했다.

우리가 망설이는 아주 잠깐의 순간,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준이가 창틀에서 사라졌다. 비명도 없고, 피도 없었다. 조용한 어둠이, 준이가 사라진 창가에 남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사람들이 사냥 당하는 모습도 보였다. 배고픈 놈들에게 잡힌 사람과 개, 고양이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다행히 놈들은 잠근 문을 열거나 막힌 곳을 뚫는 지능을 잃어버린 후였다.

부서지지 않는 문을 굳게 닫고 있으면 놈들은 집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집의 높은 담과 튼튼한 대문을 믿었다. 대문이 닫혀 있는 한 놈들은 집 안은커녕 마당으로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장롱으로 창문을 막고 옷과 매트리스로 틈을 메웠다. 창이 막히자 어둠이 집 안에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아빠가 내지르는 괴성과 엄마의 흐느낌, 그리고 경수의 초조한 인기척을 들었다.

나는 창을 막아서 더는 바깥세상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했다. 언덕 아래의 불타는 명동거리와 어릴 적 내가 뛰어 놀던 골목을 썩은 침을 질질 흘리며 누비는 놈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대문이 열린 건 4일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자기 방 책상 위에 올라 앉아 창을 통해 망을 보던 경수가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누나! 놈들이 세탁소에 들어갔어!”

건너편 언덕 밑에 있는 만세 세탁소를 말하는 거였다. 거실 창을 가려 두었던 매트리스를 움직여 틈을 만든 경수가 그 밑에 쪼그려 앉았다. 지독한 비명이 들려왔다. 칼로 생살을 저미는 듯한 소름끼치는 비명이었다. 절대 익숙해 질 수 없는, 인간이 내는 가장 잔혹한 소리였다.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어 경수 밑으로 기어가 밖을 내다봤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썩은 살점과 피가 거리 이리저리로 휩쓸렸다. 전날 놈들이 벌인 잔치가 끝나고 남은 찌꺼기였다.

세탁소 앞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놈들이 보였다. 깨진 세탁소 유리창에 피가 튀었다. 놈들이 버둥거리는 세탁소 아저씨를 끌고 나왔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었다. 아저씨 뱃속에 기어들어가 내장을 파먹던 어린 놈 하나를 다른 놈이 쑤욱 끄집어냈다.

어린놈과 함께 아저씨의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세탁소 2층 창문이 열리고 그 집 중학생 아들이 어린 여동생을 안고 뛰어 내렸다. 그 뒤를 피투성이 아줌마가 뒤따랐다.

아저씨를 뜯어 먹느라 정신을 팔고 있던 놈들 중 몇 놈이 그들을 바라봤다. 넘어진 아줌마를 일으켜 세운 남자 아이가 우리 집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언덕 위쪽에는 커다란 아파트 담과 가파른 축대가 이어져 있어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한참을 올라와야 담이 끝나는 곳에 면한 우리 집 파란 대문과 경수가 다니는 고등학교 정문이 나왔다. 먼저 도착한 남자아이가 우리집 대문을 두드리며 우리를 불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벌떡 일어선 경수가 말릴 새도 없이 현관문으로 달려가, 문을 막고 있던 의자를 끄집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경수를 도와 줄 수 없었다. 절룩이며 뛰는 아줌마를 뒤쫓는 놈들의 썩은 입김이 피부에 와 닿는 것 같았다. 경수를 불러 옆에 앉히고 아무것도 못 본 척,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숨어 버리고 싶었다.

대문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의 절망과 고통이 담긴 애원이 소름 끼치게 절박했다. 아이의 비명이 날카로워질수록 경수의 움직임도 격해졌다. 놈들이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단단하게 쌓은 의자와 서랍장을 치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엉켜 움직이지 않는 의자를 잡아당기는 경수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뒤따라온 아줌마에게 품에 안고 있던 여동생을 맡겼는지 남자 아이 혼자 담을 뛰어넘었다. 담을 넘으며 벌렁 넘어진 아이가 고추밭 꼬챙이 위에 쓰러졌다. 녹슨 쇠꼬챙이가 아이의 목을 꿰뚫었다. 피가 품어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경수에게 어서 서두르라고 소리쳤다. 담 밖에서도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죽은 듯 누워 있던 아이가 여동생의 비명을 듣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목을 움켜쥔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한 움큼 토해낸 아이가 비틀비틀 걸어가 대문을 열었다.

바로 문 앞에, 딸을 안은 아줌마가 있었다. 멍한 눈으로 피 흘리는 아들을 바라보다가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쩍 벌렸다. 그 입에서 붉은 살덩이가 떨어졌다. 어린 딸의 얼굴에서 뜯어낸 살이었다. 볼에 구멍이 난 딸을 집어 던진 아줌마가 아들에게 손을 뻗었다. 아줌마가 자신의 아들을 물어뜯는 동안 다른 놈들이 우리 집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창밖을 내다보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당까지 들어온 놈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내가 움직이면 집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놈들이 알게 될까봐 숨도 쉬지 못했다. 그때 소파에 누워 잠든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였다.

가죽 소파에 살이 닿으며 뿌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치 천둥 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당에 있는 놈들에게 그 소리가 들렸을까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놈들이 우리 집에 뛰어 들어와 엄마를 물어뜯고, 내 뱃속을 휘젓고, 경수의 뼈를 씹어 먹는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느 틈엔가 잠에서 깬 엄마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엉거주춤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나를 보고 웃었다. 창백한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보였다. 한쪽이 눌린 부스스한 파마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른하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연이야.”

세상이 변한 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부른 엄마가 다시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집이 이렇게 어둡니? 라고 묻는 것 같았다. 이 가구들은 왜 꺼내 놨니? 이 냄새는 뭐니? 네 다리는 왜 그러니? 경수는 왜 저기 저러고 서 있니? 아빠는 어디 있니? 아빠는?

방긋 떠올랐던 엄마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잠결에 달아올랐던 엄마의 뺨이 파랗게 질리는 게 보였다. 머리를 쓸어 올리던 손을 들어, 내 등 뒤 창을 가리키며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여 물었다.

저. 게. 뭐. 니?

오들오들 떨며 등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밖을 내다보려고 만든 틈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었다. 한쪽 눈알 대신에 볼펜이 박혀 있는 놈의 눈이었다. 놈이 좀 더 집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굴을 들이밀자, 튀어나와 있던 볼펜이 유리창에 닿았다.

볼펜이 눈동자에 다시 박히며 노란 진물이 볼펜 끝을 타고나와 유리창에 흘렀다. 놈이 통증을 느꼈는지 볼펜이 박힌 쪽 입술을 찡그렸다. 마치 미소 짓는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재빠르게 달려온 경수가 비명 지르는 엄마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을 짓누르는 사람이 아들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한 엄마가 몸부림치며 경수를 잡아 뜯었다. 뒤엉킨 엄마와 경수가 쿵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떨어졌다. 비명을 듣고 집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안 놈이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거실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흔들렸다.

놈이 다시 유리창을 들이박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비명을 질렀다. 유리창이 깨지면, 놈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더러운 발로 집에 들어와 우리를 죽이고, 우리 가족의 피로 집 안을 물들일 게 분명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다. 뱃속의 내장을 입으로 뱉어 내기라도 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놈들이 다른 누구보다 나를 먼저 죽여주기를 빌었다.

그때 집 안 저쪽에서 내 비명보다 더 큰 괴성이 들려왔다. 잠에서 깬 아빠가 화장실에 갇혀서 내는 소리였다.

집 안을 노려보던 놈의 눈동자가 집 뒤편 화장실 쪽을 향했다. 문이 닫혀 있는 집 안보다 작은 창이 마당 쪽으로 열려 있는 화장실에서 아빠의 괴성이 더 잘 들리는 듯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놈이 그 소리를 찾아 유리창 앞에서 사라졌다. 마당 저쪽에서 서성거리던 다른 놈들도 화장실 쪽을 향해 느리게 움직였다.

후다닥 달려온 경수가 옆에 밀어 두었던 이불을 말아 틈을 메웠다. 허술한 장벽의 틈을 메웠다고 해도 놈들이 유리창을 깨고자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깨고 들어올 수 있었다. 얼굴 한쪽에 깊은 손톱자국이 생긴 경수가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경수의 새로 생긴 상처에서 흐른 피가 내 옷에 떨어졌다.

“거실에 있으면 안 돼! 안방으로 가야 해.”

“먹을 걸……. 먹을 걸 챙겨!”

나를 안방에 끌어다 놓은 경수에게 먹을 걸 챙기라고 소리쳤다. 잠시 망설이던 경수가 거실 한쪽에 모아둔 음식을 향해 뛰어가 손에 잡히는 대로라면 몇 개를 안방에 집어 던지고는, 생수통을 들고 들어왔다. 경수가 문을 닫자 안방이 어둠에 휩싸였다.

잠시 조용해졌던 아빠가 다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놈들이 그 괴성을 듣고 화답이라도 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쿵! 쿵! 쿵! 하는 벽 두드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빠가 화장실 벽을 두드리는 건지 집 밖의 놈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벽을 두드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화장실은 집 오른쪽 구석에 있었다. 작은 창 하나가 높이 달렸을 뿐, 집 밖에서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출입문은 없었다. 놈들이 아빠를 뜯어 먹을 수도, 아빠가 놈들을 뜯어 먹을 일도 없었다. 문제는 우리였다. 유리창이 많은 거실에서 안방으로 도망쳐 왔지만 안전하지 않았다.

라면 몇 개와 생수 몇 통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을뿐더러, 안방 문 건너편에 놈들이 활보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와장창 하는 거실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옆에 앉아 숨을 헐떡이는 경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경수가 몸을 바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

놈들은 거실 창 앞에 세워 두었던 장식장에 막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두 개의 거실 창 중 한쪽은 장식장으로, 한쪽은 매트리스로 가려둔 상태였다. 놈들이 양쪽 유리창을 다 깼거나, 장식장 쪽이 아닌 매트리스 쪽의 유리를 깼다면 우리는 굶어 죽을 때까지 안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괴성을 지르던 아빠가 조용해지고 마당을 배회하던 놈들의 기척이 사라진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간 경수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제발 나 좀 도와줘. 거실 창문 앞에 소파를 쌓아야겠어. 나 혼자 못해. 엄마가 도와줘야 해.”

자신이 아들 얼굴에 남긴 손톱자국을 멍하니 바라보던 엄마가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나는 안방에서 나가지 못했다. 부러진 다리의 시커먼 살이, 부목을 고정하기 위해 묶어둔 혁대에 눌려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혁대가 파고든 피부에서 진물이 흘러 내렸다.

무엇이 더 아픈지 알 수 없었다. 부러진 다리인지,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인지,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머리인지. 조용히 곁에 다가와 앉은 엄마가 내 다리 쪽으로 손을 뻗어 피부에 파고든 아빠 혁대를 풀어내며 말했다.

“아프지? 미안해……. 엄마가 너무 바보 같아서 미안해……. 엄마는 아빠가…… 아빠가…….” 하고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엄마가 미처 끝내지 못한 말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어느 날인가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의 초조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날 내 흔들리는 젖니를 뽑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아주 간단한 선택이었다. 20개의 젖니 중 마지막 남은 하나였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빠질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도 이를 뽑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가 안 된 건 엄마뿐이었다. 여러 번 내 이를 뽑아봤으면서도 흔들리는 어금니를 뽑아야 할 적기가 언제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아빠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자 반색을 한 엄마가 나를 끌고 아빠 앞으로 갔다. “연이 이를 뽑아야 할 것 같은데 봐주세요.” 나는 입을 벌려 보라는 아빠에게 내가 직접 뽑은 어금니를 내밀었다.

*

벽에 걸린 작은 액자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빠 얼굴이 보였다. 아빠 손을 잡은 엄마가 새침하게 토라져 아빠를 흘겨보고, 엄마 아빠 뒤에 선 경수와 내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려 웃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크게 뽑을 수 없었던 실패한 가족사진이었다.

근엄한 표정과 예쁜 미소와 어색한 자세의 잘 찍힌 가족사진은 커다란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 두고, 이 실패한 가족사진은 작게 뽑아서 안방에 두었다. 나는 큰 사진 보다 이 작은 사진이 더 좋았다. 이 사진속의 우리는 가슴 벅찰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했다.

아빠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명 세제 광고에 나오는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 라는 CM송을 불러댔다.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오세요오―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오세요오― 밝고 화창한 오늘! 상쾌한 향이이― 가득 가득한 깨끗한 우리 집에 어서오세요오―’ 광고 속에서는 보송보송한 귀여운 토끼가 노래를 불렀지만, 우리 집에서는 배불뚝이 아빠가 불렀다.

가끔은 오페라 가수처럼 멋들어지게 부르기도 하고, 가끔은 콧노래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엄마랑 부부싸움을 했을 때도, 토라진 경수를 놀려 먹을 때도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라고 노래를 불렀다.

물론 통속적으로 행복한 집이라고 말하는, 그런 그림 같은 가족의 모습이 우리 집에 있었던 건 아니다. 꽃이 만발한 정원 대신 고추와 상추, 호박 따위가 가득한 마당과 녹슨 파란 대문이 삐걱거렸다. 레이스 커튼 대신 엄마가 대충 박음질한 꽃무늬 나일론 천이 창가에 휘날렸다.

사춘기를 오래 앓았던 경수는 아빠와 싸움질을 해댔고, 우유부단한 엄마는 꽤나 전문적인 과학전집을, 꽤나 정직해 보이는 외판원에게, 꽤나 비싸게 사들여서 아빠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런 우리 집에 행복이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가끔 마당 고추밭에 물을 뿌려주는 아빠의 모습이라든가, 수줍어하며 나에게 생일선물을 건네주던 경수의 여드름 난 얼굴, 재수생이었던 나에게 말없이 도시락을 내밀며 등을 쓸어주던 엄마의 따듯한 손에서 행복을 느꼈다.

낚시를 즐기는 아빠를 위해 밭에서 지렁이를 찾아내고는 환호성을 지르던 엄마의 모습, 엄마의 바뀐 옷이나 머리 모양을 금방 알아채고 예쁘다고 기뻐하는 아빠의 모습, 학년 석차가 조금 올랐다고 기세 등등 집에 들어오던 경수의 모습이 행복했다.

추운 겨울날 어린 우리를 품에 안고 언 몸을 녹이며 내 보물들이라고 속삭이던 아빠의 목소리, 어디에서든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움켜잡고 있던 경수의 작은 손, 내 대학 졸업식 날 흘렸던 엄마의 눈물, 경수가 받아온 개근상장,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역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와 아빠의 뒷모습, 그 우산에 떨어지던 빗방울, 나를 향한 두 분의 미소.

사람들은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행복의 가치를 모른다. 좀 더 위를 보고, 그 위의 위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자신이 아홉을 갖고 있으면 열을 갖고 싶어 하고, 남이 가진 걸 욕심내게 된다. 그래서 나도 내가 더 갖지 못한 것, 원하는 것을 위해 아등바등 살았다.

좀 더 좋은 시험 성적을 받고 좀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좀 더 좋은 남자를 만나고자 초조해 하고, 분해하고, 슬퍼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순간 뒤집혀 버린 세상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조금 더 갖고 있던 행복을 즐겼어야 했다.

아빠가 수줍게 내밀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을 용기가 있어야 했다. 엄마와 단둘이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지쳐버린 경수를 위해 어깨 한 번 토닥여 줄 여유가 있어야 했다. 나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와 함께 좀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했다.

쌀자루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오던 경수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쌀자루에서 쌀알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 안방 가득 퍼진 쌀알이 희뿌옇게 빛났다. 풉,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넘어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경수가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고 웃어버렸다. 어이없어 하던 경수도 나를 따라 소리 내서 웃었다. 늦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좀 더 이들을 사랑할 시간이, 더 행복해질 시간이 내게 있다고.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내지른 참혹한 비명이 들려왔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