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 장르: 호러
  • 분량: 54매
  • 소개: 1초라는 짧은 순간동안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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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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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라는 시간은 굉장히 짧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변호사 개업을 한 이래로 수많은 재판정에 들어갔지만, 판사가 법봉을 내리치고 난 후, 감정이 폭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언제나 1초 남짓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희비가 나뉘고, 법정은 승리자와 패배자로 갈려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난 언제나 그 감정의 홍수속에서 상황을 관망하는 입장이었다. 이성의 극치에서 두 집단을 바라보고, 내 옆의 사람을 이성의 방패로 변호했었다. 언제나 이성과 지식의 첨병으로 서있을거라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제작년 겨울에 느꼈던 그 지옥같았던 1초, 그 감정의 홍수가 쏟아졌던 나의 1초는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변호사 업을 그만두는 그날까지.

 

 

 

 

 

의뢰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파일을 다른 국선변호사에게 넘겼어야 마땅했다. 처음 도슨씨의 케이스 파일을 받아 들었을때, 난 믿을 수 없었다. 일주일에 최소 세번은 도슨 씨의 가게를 들러 도넛과 커피를 사곤 했었으니까.

 

동네에 있는 다른 어느 가게보다 달달하고 고소한 도넛을 만들던게 바로 그의 가게였다. 가끔 그의 가게에서 경찰들을 만나 진행되고 있는 사건들 이야기를 엿듣거나 직접 사건의 디테일을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런 장소를 운영하던 도슨씨가 1급 살인으로 기소됐다는 소식에 내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변호 의뢰를 수락하기 사흘 전 그의 가게를 잠시 찾았을 때, 도슨씨는 자신의 가게에 왔던 소녀가 실종되어 경찰들이 잠시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설마 ‘그 사건’ 관련된 것이냐고 묻자, 그는 얼굴부터 찌푸렸다. 그는 무엇인가 불만인 듯 보였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도시로 옮겨온지 거의 10년째였지만, 이 도시의 사람들은 내 직업을 밝히는 순간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댔다. 특히 도슨을 찾아갔던 그 즈음에, 부패되어 신원조차 확인하기 힘든 시체가 다섯구나 발견되어 마을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했다. 그 상황에 한구의 시체가 더 발견됐다니. 형사 사건을 전문하는 변호사로써 토악질이 나오려 했다.

 

문득 머리속으로 스치는 이미지가 있어, 혹시 그 소녀냐고 물어보니 도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잡았다.

 

아마 2주 전일 것이다. 밝게 웃는 그 아이의 모습을 나도 똑똑히 기억했다. 도슨은 걸스카우트 쿠키를 파는 그녀를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쿠키 한봉지를 구매했다. 나에게 ‘하나 맛이나 보슈’ 하며 쿠키 반봉지를 건넸었다. 눈썹을 으쓱대고 봉지를 받아들었던 난 손수레를 끌며 사라지는 소녀의 뒷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실종된 소녀들이 쉐르보 저수지에서 하나 둘씩 발견되고 있는 뉴스가 신문을 도배하고 있던 때라,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부모들은 마당에 나가려는 아이까지 낚아채어 자신들의 집으로 밀어넣는 판국이었고, 젤로우 시 경찰국은 이를 갈고 살인자를 찾아내려 혈안이었다.

 

도슨씨의 가게를 찾던 경찰들마저도 살인사건 해결에 투입되었는지 그들의 발길마저 뜸해졌었다. 그랬기에 더 그 실종 사건이 안타까웠다. 당장 내 앞에서 웃음을 짓던 그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에 숨이 턱 막혀오기도 했다. 내 사무실 책상 옆 쓰레기통에서 구르던 쿠키봉지가 눈에 보여 도슨의 가게로 달려간게 의뢰받기 사흘전이다. 그때 들었던 것이, ‘모르겠습니다, 저도. 도대체 그 괴물같은 놈은 언제 잡힌다는지 모르겠군요.’ 라는 옅은 분노였다.

 

그는 이를 갈며 나에게 공짜 커피를 내어주었다. 변호사 일을 하고있단 걸 들었다며, 나같은 법조인들도 힘을 보태어 그 괴물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작지만 힘이라도 주고싶다며 커피를 쥐어준 그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도슨이 용의자라니. 난 의뢰서를 집어들고 젤로우 시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슨씨의 동업자와 상담하는 자리에 같이 있던 셸던도 나를 따라 변호인을 자청했다. 아마 그의 생각도 나와 같았었지 싶다.

 

심문실로 들어가니, 도슨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하얀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황색 수형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유독 수척해보였다.

 

“젠슨 변호사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10년만에 만난 고향 친구를 만난 듯 세차게 악수를 마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혹시 랑케가 다 이야기 해줬습니까?”

 

그는 주먹을 꽉 쥔 한손을 다른 손으로 긁적이며 물었다.

 

“동업자분이요? 네. 이야기는 대충 듣고왔죠. 이게 도대체 무슨일인지 모르…”

 

“경찰이 생사람 잡고 있는겁니다 이건.”

 

도슨은 이를 부득 갈며 내 말을 끊었다.

 

“아니 다 큰 어른이 직업 여성들이랑 자는게 그게 큰 문제입니까?”

 

난 흥분한 그에게 진정하라며 손짓하고는 노트를 꺼내들었다.

 

“우선 성매매는 불법이긴 합니다만… 그러면 도슨씨를 성매매 관련 법으로 체포했어야 맞는거죠. 갑자기 살인죄라니 이게 무슨일인지…”

 

난 이해할 수 없어 질문을 던졌다. 도슨은 콧방귀를 뀌고는 이를 부득 갈았다.

 

“내가 압니까? 그렇게 우리 가게 열심히 오던 그 경찰들이 저를 벌레새끼 보듯 한다구요.”

 

“그 말인 즉슨…”

 

“제가 그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구요. 그 걸스카우트 애도 그렇고 저수지에서 발견된 사람 전부요.”

 

난 어이가 없어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전날, 그의 가게로 찾아온 경찰들은 그에게 수갑을 채워 그를 끌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곤 끈임없는 질문과 추궁이 그를 괴롭혔고 급기야 도슨은 동업자에게 연락하여 나를 선임했다는 것이었다.

 

“87년 8월 18일 궁시렁 이런 이야기를 제가 어떻게 또 다 일일이 기억합니까. 경찰들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거라구요.”

 

난 그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십수년 전의 부패한 시신에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사라진 걸 스카우트 소녀까지. 이 모든 알리바이를 전부 확인해야 했었지만 그게 가능이나 할까 싶었다. 걸스카우트 건은 그렇다 쳐도, 15년 전 일까지 들먹일 수는 없어 보였다.

 

난 당장 어제 밤에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근데 15년 전 몇월 며칠 어디있었는지를 기억할수는 있을까. 그건 도슨에게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반복했었고.

 

하지만 경찰의 입장은 달랐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증언들이나 목격담을 취합한 그들은 모든 방향에서 도슨을 압박해 들어왔다. 15년 전에 직업 여성을 하던 사람들까지 샅샅이 찾아 가져온 증언들은 한결같았다.

 

실종자들, 아니 피해자들의 지인들은 피해자들이 ‘누군가’ 의 호출을 받은 이후 사라졌다는 일관된 증언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목한 호출자 ‘살레시오’라는 사람이 바로 도슨이란 증언을 했다고 한다. 10년 전 도슨의 사진을 가져가 그 직업 여성에게 보여주니, 이 사람이 맞다는 증언까지 확보 한 상태였다.

 

경찰은 집요하게 살레시오와 도슨의 연결점을 파고들었고, 3년 전 도슨의 개인 전화번호와 21번째 피해자 제시 아이본을 호출했던 전화번호가 일치한다는 것을 가져왔다. 그 이후 과거의 모든 전화기록과 전화의 소유주를 대조하여, 실종된 피해자들을 호출했던 사람이 도슨이라는 결론을 이미 내어 둔 상태였다. 그리고 도슨이 그 사람들을 성폭행 한 후 살해, 그 이후 유기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빈틈을 찾아야했다. 경찰이 내 앞에서 전화번호의 일치성을 가지고 오자, 난 차분하게 그들을 맞받아쳤다.

 

“의뢰인분께서도 말했듯, 그들을 호출한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까? 그 증거가 있습니까? 그냥 외로워서 부른거라고 이미 증언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화가 전부였다구요.”

 

도슨을 심문하던 경찰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도슨씨에게 연락 한 이후 행적이 전부 묘연해졌습니다. 그건 알고 계시겠…”

 

“그렇다고 해서 도슨씨가 살인을 한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도슨씨 집에서 나온 이후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납치를 당한거라면요?”

 

“하…”

 

형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도슨을 쳐다보았다.

 

“도슨씨. 당신 고자는 아니죠?”

 

“네?”

 

도슨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냥 대화만 했다고 주장하셨죠?”

 

형사는 옆으로 밀어뒀던 파일에서 서류 한장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피해자들의 질내에서 정액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머리카락 뽑으신거. 거기서 나온 DNA와 일치하다더군요.”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을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난 이미 도슨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나름 사정이 있었다.

 

“만약 도슨씨 당신 말대로 납치를 당했었다면 왜 거기서 당신 정액이 나왔냐는거죠. 그리고 질 안에 왜 정액이 남아있는지도 의문이군요. 생각해봐요, 도슨씨. 어짜피 이 직업여성들은 아무런 기록도 없고 말조차 못하니까. 그러니까 손쉬운 타겟들이죠. 안그래요?”

 

형사가 선을 넘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난 그를 제지해야했다.

 

“의뢰인을 겁박하지 마십쇼, 형사님.”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과거에 있던 다른 연쇄살인범들 처럼요.”

 

“허…”

 

난 콧방귀를 뀌었다. 도슨은 형사의 말을 듣고는 발끈하여 몸을 일으켰다.

 

“펄먼 형사님. 제가 그 사람들을 죽일 그런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도슨은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머금으며 항변했다. 양팔을 걷어붙인 펄먼 형사 조차도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행여나 그가 의심을 받을만한 말실수를 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난 살짝 손을 들어 도슨을 제지했다.

 

“도슨씨, 말려들지마세…”

 

“형사님도 저희 도넛 가게에 자주 오셨었잖아요. 안그러십니까? 어디 제가 도넛 가게랑 제 집을 떠나는 사람이던가요?”

 

도슨은 한손으로 지그시 얼굴을 가렸다. 그는 정말 피곤해보였다.

 

“그러니까 그런 분이 왜 그런 직업여성들을 굳이 불렀냐는겁니다. 최소한 그 직업여성분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해주셔야 우리가 유인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화만 하셨다는 분이 왜 정액이 검출됩니까.”

 

펄먼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도슨의 말을 맞받아쳤다. 도슨은 머뭇거렸다. 그는 내 눈치를 슥 보았다. 그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었지만,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오픈할 수밖에 없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도슨도 그에 맞춰 확인하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냥 시원하게 불러서 한번 하고, 그리고 떠났습니다. 그게 다라구요. 와이프가 몸이 안좋아서 제대로 섹스를 할 수 없으니 제가 부른거라구요. 그래도 와이프한테 안보이게 별채에서만 했습니다.”

 

도슨의 답에 펄먼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공판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관찰했었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이 나오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혐오를 나타내는 찡그린 미간, 혼란을 나타내는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보였다.

 

“그러면 당신 차 트렁크에서 왜 그 정액이 발견된겁니까.”

 

펄먼은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유독 낮게 깔려 있는 것처럼 들렸다.

 

“별채에서만 했다면서요.”

 

“…”

 

도슨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