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결혼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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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연락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10년 만에 연락해온 친구는 친한 척을 엄청 하더니만 메신저로 청첩장을 보내왔다. 마음 같아서야 니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뭔 짓이냐고 쏘고 싶었으나 마음 약한 나는 일단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계좌로 돈만 보낼까 하다가 그냥 가서 5만원 내고 밥이나 먹고 오기로 했다. 장소는 XX시 외곽에 있는 어느 웨딩홀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가는 길을 찾아봐야 했다.

 

그날 아침부터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집에서 나설 때만해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맑은 날씨였는데, 지하철에서 내리기 무섭게 그 맑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우산이 아까울 만큼 짧게 내린 여우비였다. 길을 잃고 웨딩홀을 찾아 헤매는 동안 땅바닥이 금방 마를 정도로 말이다. 역 앞에 셔틀버스 대기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 무슨… 습기와 땀으로 끈적해지는 이마를 느끼며, 역시 계좌로 돈이나 쏘고 끝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미아가 되어 돌아다니는 사이 결혼식 시작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인적 없는 골목 여기저기를 헤매던 나는 겨우 사람 한 명을 만나서 웨딩홀의 위치를 물을 수 있었다.

 

“결혼식장이요? 저쪽으로 쭉 가다보면 꽃으로 장식된 집이 나올 거예요. 저도 거기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시죠.”

 

그레이톤의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단발머리 여자는 상냥하게 말하고서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뭔 골목이 이렇게 복잡한지. 도무지 길을 찾을 방도가 없는지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아무리 봐도 웨딩홀은 아닌 것 같았다. 전원주택 같은데? 하긴 요즘은 하우스웨딩도 유행이지 않은가. 하얀 꽃으로 장식된 대문과 담장이 정말 예뻤다. 그런데 저게 무슨 꽃이지? 처음 보는 꽃인데. 향기도 완전 생소한 향기였다.

 

홀린 듯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마당을 가진 3층집이 나타났다. 마당은 서양의 느낌이고 집은 예스러운 느낌이어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이었다. 잘 정리된 잔디를 밟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나를 안내해준 여자는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신부 축의금 데스크로 가서 봉투를 집어넣자 식사권 대신에 손목에 하얀 끈을 묶어줬다. 알 수 없는 문양이 섬세하게 수놓인 천이었다.

 

“신부님과 어떤 관계이신지?”

 

축의금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물었다.

 

“동창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결혼식은 마당에서 하는 걸로 보였다. 잔디밭에 수많은 하얀 테이블과 신랑신부의 행진을 꾸며줄 아름다운 꽃장식이 쭉 늘어져있었다.

 

어중간한 뒤쪽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래도 결혼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갈수록 머릿수도 줄어가는데 말이야.”

“아이고, 요즘 그런 이야기하면 조선시대냐는 이야기 들어요.”

“하지만 우리는 수가 워낙 적잖아. 인간처럼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거 경삿날에 이런 이야기 그만 합시다. 다 신부가 각오하고 선택한 일인 걸요. 존중해줘야 해요.”

“신랑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만하면 성정도 바른 편이니…”

 

말투들이 되게 문어체시네. 그나저나 대화 내용이 뭔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의아해하며 휴대폰을 꺼냈는데, 이상하게 휴대폰 화면이 켜지질 않았다. 뭐지? 배터리가 다 됐나? 보조배터리 안 들고 왔는데.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데 웬 여자아이 하나가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그만 좀 뛰어다녀!”

 

엄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아이를 붙들었다.

 

???

 

아이의 머리 위로 솟아있는 귀와 치마 아래로 길게 늘어져있는 꼬리를 보고 나는 눈을 비볐다. 뭐, 뭐시여? 코스프레인가?

 

“칠칠맞지 못하게 귀랑 꼬리는 다 내놓고!”

“어차피 인간도 없잖아요! 넣고 있기 답답해요!”

“아주 그냥 원래 모습으로 있지 그러니! 숨기는 습관을 들여야지!”

 

그러면서 중년여성은 아이의 머리에 솟아있는 귀를 양손으로 꾹 눌렀다. 손을 떼니 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치마 밖으로 나와 있던 꼬리도 눈 깜짝할 새 사라져있었다. 분명… 여우 귀랑 꼬리 같았는데…

 

혼란스러운 가운데 하객이 또 들어왔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훤칠한 키의 남자는 신랑 쪽에 축의금을 낸 후 말없이 내 근처에 앉았다. 청년의 표정이 워낙 안 좋아서 자꾸 신경 쓰였다.

 

꽃장식을 뚫어져라 보던 청년은 잠시 후 눈시울을 붉혔다. 차마 사람들 있는 데서 울 수는 없었던지 그는 다시 일어나서 좀 더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무슨 사연이길래 결혼식장에서 저리 우는지.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청년이 간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자네가 여길 왜 와! 지금 제정신인가!”

 

중년남성이 청년에게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구경가보니 청년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아까와 달리 담담한 표정으로 중년남성을 대하고 있었다.

 

“제가 여기 못 올 건 또 뭡니까. 저 신랑 친군데요.”

“친구? 친구면 더더욱 오지 말아야지! 겨우 마음잡은 애를 다시 흔들 셈인가!”

“흔들려요? 겨우 이런 걸로 흔들릴 거면 오늘 이 결혼식이 있었겠습니까? 억지 부리지 마십쇼. 청첩장도 받고 왔습니다.”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대꾸했다. 뭐야 이거. 분위기를 보니까 신부 전 남친 뭐 그런 건가? 그래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이었구나. 아이고…

 

“조용히 식만 보고 바로 가겠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청년은 단호하게 말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사연 있는 결혼식이구만. 뭐 나는 식 보고 박수쳐주고 밥이나 먹고 가면 되겠지. 밥 맛있었으면 좋겠다…

 

예식 시작 시간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고 나는 식전에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자리에서 잠시 일어났다. 화장실은 건물 2층에 있었다. 1층의 신부대기실과 집안에서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나는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계단을 다 오르자마자 2층 신랑대기실 문 앞에서 마주보고 서있는 신랑과 청년을 발견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나는 무심코 소리를 죽이며 몸을 숨겼다. 어휴, 둘이 눈빛 교환 살벌하네.

 

…라고 본 내가 바보였다. 청년은 금세 아까 봤던 울먹이는 표정으로 변하더니 신랑을 폭 끌어안았다. 아, 나는 편견 때문에 단단히 오해했던 것이다. 신랑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