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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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거리의 나무들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폭풍의 입 안으로 뿌리째 뽑혀 나가는 듯했고, 고막을 찢을 듯 맹렬한 파도가 치는 검은 강은 아스팔트를 덮쳤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그 검은 물 속으로 한 발을 들여놓는 것이 보였다.

진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달리고 또 달렸지만 어쩐 일인지 조금도 그들에게로 가까워지질 않았다. 사지는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고 바윗돌에 깔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심장이 펄떡였다.

남편은 영미의 손을 꼭 잡고는 강을 향해 또 다시 한 발자국을 떼어놓았다. 제 아버지의 손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며 영미가 비명을 질러댔다.

“엄마! 엄마! 나 죽기 싫어!”

영미는 팔을 내뻗어 무엇이든 잡고 버텨보려고 허우적거렸지만 뭔가에 홀린 듯 완강한 눈빛으로 또다시 한 걸음을 떼어놓는 남편은 기어이 영미를 데리고 검은 흙탕물을 건너고야 말았다.

그녀는 털썩 주저앉아 영미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검은 강 건너편의 남편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슬프게 웃었다. 살아서는 결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귀밑머리가 축축하다는 느낌이 들며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꿈에서 운 가슴이 아직도 쓰라렸다. ‘이젠 일어나서 애를 데리고 와야 해.’라고 생각했지만 의지와는 달리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며 일어나길 거부했다.

진은 거실의 소파에 가만히 누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꿈속에서처럼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끊임없이 윙윙거리는 섬뜩한 폭풍 소리.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체가 폭풍에 휘말려 떨어지는 소리들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제야 악몽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진은 눈을 떴다. 꿈에 목이 터져라 아이의 이름과 남편을 불러 댄 때문일까. 목구멍에 머리카락 같은 것이 걸린 듯 꺼칠꺼칠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목구멍으로 소리를 밀어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꽉 막힌 듯한 목구멍의 갑갑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도시로 이사 와서부터는 늘 악몽에 시달렸고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같은 증세가 일어나곤 했다. 진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 증세의 원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으로 첫 등교를 했던 날, 영미는 부모들의 손을 잡고 하교하는 친구들을 향해 “잘 가.”라고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벌써 친구를 만들었나 싶어 대견한 생각이 든 진은 당연히 인사가 되돌아 올 것이라고 믿으며 잔잔한 미소까지 띠우고 발걸음을 늦추었다.

‘너도 잘 가.’라고 누군가가 말해 준다면 그녀도 아이와 함께 돌아보며 우아한 얼굴로 ‘응. 너도 잘 가.’라고 말해 줄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상한 눈초리로 부모와 함께 흘낏흘낏 돌아만 볼뿐, 손을 흔들며 ‘영미야 너도 잘 가.’라고 대꾸해 주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는 계속해서 손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인사를 해 댔다. 진은 가슴이 철렁해지도록 모멸감이 느껴져 아이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빠른 걸음으로 차로 들어와 다짜고짜 아이에게 화를 냈다.

“그만해! 아무도 너한테 인사 안 하잖아! 너 바보야?”

그렇게 한국말로 소리치고는 거칠게 시동을 걸고 학교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모멸감은 끔찍하게도 진의 심장을 짓눌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매일 아침, 잠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 백인들 일색인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도록 두려웠다.

그 차가운 외면에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자 절로 목구멍이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병이라도 나 드러누우면 남편이 대신 아일 데리러 가줄 테니까, 그러면 진은 모멸감을 매일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하는 마음이 그런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누구라도 곁에 있다면 아이를 데려오는 일만큼은 대신 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은 영미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만 그때 받은 모멸감은 어떤 병균처럼 몸속에 기생하다가 영미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만 되면 스멀스멀 신경을 타고 올라와 진을 옭아매곤 했다.

‘이젠 정말 일어나야 해. 늦으면 어떡하려고 이래.’

진은 가까스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다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낮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방이 밤처럼 어두웠던 것이다. 맙소사 도대체 지금 몇 시야!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영미야.”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온 기억이 없다. 그녀는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진은 다시 소리 높여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의 끝이 갈라지며 떨려왔다. 아이가 집에 없다는 것이 확인 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린 진은 벌떡 일어나 재빨리 전기 스위치를 올리고 벽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 12시인지, 낮 12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낮잠을 잔 건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온 뒤인 아침 9시 20분경이었다. 열두 시간 이상 낮잠을 잤을 리는 없다.

낮 12시라면 어째서 밖이 이렇게 어두운 걸까?

그제야 밖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컴컴할 수가 있을까. 그래. 지금은 밤이 아닌 낮 12시다! 하교 시간은 오후 3시 반. 아이는 지금쯤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겠지.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진은 심장 근처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회사에 있을 남편에게 폭풍이 심해졌으니 오는 길에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진은 망연자실해졌다.

진을 휘감고 있던 불안의 정체가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단지 폭풍 때문이 아니라 끔찍했던 어젯밤의 마지막 통화 때문이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진아 잘 들어. 나 미쳤나 봐. 날 좀 도와줘. 당신한테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카지노에서…… 돈, 돈을 모두 날려 버렸어. 처음에는 앉은 자리에서 4만 불이나 땄단 말이야. 4만 불이면 나 몇 개월 월급이야. 그런데…… 그런데 으흐흑. 그 돈, 아니 우리 은행돈까지 모조리 날려버렸어. 나 어떡하지? 우리 이제 어떡하지?”

진은 남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겨 버렸고 이후로 휴대폰도 되지 않았다. 진은 다시 전화가 올까 봐 뜬 눈으로 울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남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미래와 꿈이 어젯밤 카지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단 소리였다. 진의 머릿속으로 진창 속을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은 막막함이 이어졌다.

오늘 아침, 동이 트기 무섭게 남편의 수첩에 적힌 회사 사람들의 집마다 전활 걸어 다짜고짜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댔다. 그러나 아무도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몇 번씩이나 남편의 이름을 발음해 주고 한국에서 온 남자라고 설명을 덧붙이자 겨우 “아.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남편이 어디에 있을지는 추측조차 하지 못했다.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남편의 부재감이 여실히 느껴져 전화기를 든 채 혼자 울먹이고 말았다. 그렇게 몇 번 전화를 돌리는 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게 됐다.

공중분해.

멀쩡하게 잘 다니던 남편의 회사가 공중분해된 것이다. 어째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은 한 달 전이었다고 했다. 한 달……. 지금까지 남편은 월급을 꼬박 가지고 왔고 같은 시간에 출근을 했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출근을 한다고 해 놓고 어디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인지, 월급으로 들고 온 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카지노를 가게 된 것인지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웃는 얼굴로 집을 나서야만 했던 남편의 속마음을 생각하자 미치도록 마음이 아팠다.

남편은 지금 이 시간까지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절망에 휩싸여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남편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나쁜 자식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돈 없다고 사람이 죽니. 그냥 돌아와 주기만 해.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

진은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억척스럽게 닦아 냈다.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향해 다가섰다. 무심히 블라인드를 걷어내던 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창밖을 회색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게 뭐지?’라고 의문을 가지는 순간 그것이 눈이라는 것을 알았다. 눈이 베란다 유리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밖은 눈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언제 이렇게 눈이 많이 온 걸까.

아침엔 이렇지 않았다. 뉴스에도 이 정도의 심각한 눈 폭풍을 예고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들은 분명 조기 퇴교를 했을 것 같았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며 현기증이 일었다.

조기 퇴교!

아일 데리고 와야 한다. 전학 온 지가 몇 달 되지 않아 백인들 일색인 아이의 학교에는 아는 학부형도 없었다. 누구 하나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 줄 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늦은 것이 아니길 바라며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66구역 선셋힐(sunset hill) 초등학교의 전화번호를 눌렀지만 전화는 불통이었다. 자신이 잠든 사이 난리가 난 것이 분명했다.

무서운 환상이 뇌리를 스쳐갔다. 영미는 울면서 엄마를 찾으며 서 있고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만을 황급히 차에 태워 폭풍을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학교 문이 닫히고 영미 혼자 겁에 질려 어둠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자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문득 자동응답기의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한 진은 잠바를 입으며 황급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선셋힐 초등학교 비서 미시즈 케이에요. 오늘 날씨 때문에 11시에 수업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영미만 남았어요. 어서 데리러 와 주시기 바랍니다.”

바보같이 어째서 전화가 온 것도 듣지 못하고 잠을 잤던 것일까. 안타까움과 불안으로 심장이 옥죄어왔다.

진은 다급하게 신발을 신으며 리모콘으로 TV를 틀었다. 치직하는 잡음과 함께 화면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사납게 불어오는 얼음 폭풍에 마이크를 든 아나운서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나운서의 보도는 자꾸 끊겨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화면은 온통 눈에 파묻혀 버린 도시와 도로의 눈을 파헤치는 재설차량을 비춰주고 있었다.

화면의 하단에는 오마하를 비롯하여 이웃의 모든 학교가 조기 퇴교를 한다는 빨간색의 경고 문구가 쉴 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치직, 오전 10시를 전후해서 내리던 눈은 얼음 폭풍과 함께 끔찍할 정도의 속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치직……, 11피트의 눈 폭풍이 몰아 치……, 치직, 얼음 폭풍은 오마하를 덮치겠습니다. 빨리 가까운 대피소로……, 치직, 안전하게 대피……, 스쿨버스가 운영되지 않으…….”

영미야…….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오금이 저려왔다. 혼미한 의식으로 앓듯이 흐느끼며 차 열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진의 머릿속엔 온통 영미 생각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너무 떨려 운전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어서 학교로 달려가 아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진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 올 때 챙겨 왔던 우황청심환을 꺼내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왔다.

바깥은 엉망이었다. 모든 차들이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고 사방은 온통 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불안이 엄습했다. 그녀는 아침에 차를 주차한 지점을 어림잡아 나아가 눈을 헤쳤다. 눈을 조금 파헤치자 빨간색 사이드 미러가 나타났다. 1974년도 현대 액셀. 진의 차였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진은 아찔해졌다.

‘어쩌지 삽은 차 트렁크 속에 있는데’

진은 망설일 틈도 없이 처녀시절부터 끼고 다니던 낡은 가죽장갑을 꺼내 착용하고 차의 트렁크 부분에 쌓여 있는 눈을 두 손으로 허겁지겁 파내기 시작했다. 비교적 쉽게 파지는 윗부분의 눈에 비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눈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쯤에서 눈은 더디게 줄어들었고 시간은 점점 눈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작은 체구의 영미가 겁에 질려 우는 얼굴이 속수무책으로 떠올랐다. 진은 입술을 깨물며 미친 듯이 눈을 파냈다.

문득 하얀 눈 위로 붉은 피가 방울방울 번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행동을 멈추었다. 발광하듯 파낸 눈은 차의 표면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신 장갑의 가죽이 굳은 눈에 쓸려 구멍이 나면서 손끝의 살이 터져버린 것이다. 손가락은 이미 얼어붙어 아픔조차 느껴지지 못했다. 오직 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진은 급히 주위를 살폈다. 저쪽 주차장에서 검은 털모자를 쓴 바싹 마른 백인 남자가 커다란 삽으로 눈을 파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벤은 이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바퀴 근처에 쌓인 눈만 파내면 될 것 같았다.

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도움을 요청해 본 적이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참고 살아왔고 무엇이든 자신의 손 안에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살아왔다. 그런 점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들에게 거절을 당할까 그것이 두려워서 그랬지만 이후에는 나름대로 삶의 패턴이 되어 그렇게 사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저 백인 남자도 지금 진 못지않게 삽이 필요할 테니 빌려달라고 하면 거절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남의 입장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진은 무작정 백인 남자 앞으로 가서 섰다. 심장이 요동쳤다. 첫마디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 왔다는 걸 느끼면서도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쌀쌀맞은 행동에 더 위축된 진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저……, 삽, 삽을 좀 빌려주세요.”

남자는 대꾸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진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저기요. 삽 좀 써도 될까요?”

“바쁜 거 안 보이시나?”

남자는 여전히 파는 데만 열중했다.

“아저씨. 지금 제가 좀 급해서 그래요. 학교에 아일 데리러 가야 해서요.”

그는 계속 삽질을 하며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불어 들어와 이가 딱딱 부딪쳐왔다. 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되었건 이 남자라도 설득해서 삽을 빌려야만 했다. 그가 아무리 바쁘다고 한들 진처럼 아이 문제가 걸려 있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애들은 부모들이 모두 데리고 가고 내 딸 아이 혼자만 학교에 남아 있어요! 날씨가 이렇게 미쳐 날뛰는지 몰랐다고요!

“……!”

아이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버럭 소리를 질러서였을까? 그제야 남자는 삽질을 문득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뜻밖에도 남자의 시선은 진의 꽉 쥐어진 두 손에 가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새빨간 손가락을 의아한 표정으로 훑어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고 진을 쳐다봤다.

“나 원 참…….”

남자는 투덜거리며 트렁크를 열었다. 진은 순간, 트렁크 안에 들어있는 다른 삽을 보았다. 씨발. 속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이기적인 새끼. 삽을 두 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모른 척해?

“빨리 쓰고 돌려줘. 지금 슈퍼엔 삽이 다 팔려버려서 살 수도 없으니까.”

남자는 추위에 잔뜩 얼어붙은 얼굴을 확 구기며 삽을 건네주었다. 삽을 받아든 진은 자신의 차를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운전석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와 차바퀴가 나갈 수 있을 만큼의 눈만 파면 그대로 달려 나갈 생각이었다. 진은 단단히 삽을 잡고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눈을 파내기 시작했다.

“나쁜 자식! 옹졸한 백인 놈.”

두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빌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놈을 향한 욕이 삽질을 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개자식. 개새끼. 씨발 놈! 놀부 같은 놈!’

그리고 그 욕은 희한하게도 삽질을 하는데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

가까스로 눈을 파내고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접어들고 보자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눈은 미친 듯이 공기 사이를 휘저으며 섬뜩한 소리로 퍼붓고 있었고 빠르게 움직이는 와이퍼에도 불구하고 차창 밖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리창 위로 와이퍼가 한 차례 지나간 그 짧은 순간에도 살얼음이 끼고 두꺼운 눈이 쌓였다.

평소대로면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30분이 지나도 채 반을 가지 못했다. 진은 자신의 몸이 꽁꽁 얼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히터를 켰다. 뜨거운 바람이 곧바로 불어나왔다. 시선이 연료판에 가 닿았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겁이 덜컹 났다.

74 현대 액셀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빠진 고물이었다. 언제 멈춰 설지 알 수 없었다.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서서 영미를 데리러 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진은 재빨리 히터를 껐다. 방금 한 상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모두가 떠나고 없는 텅 빈 학교 안에 홀로 남아 있을 아이 생각을 하자 조급해진 마음에 손바닥에선 진땀이 흐르고 온 몸은 팽팽하게 긴장됐다. 사륜구동이 아닌 진의 차는 조금만 액셀을 밟거나 브레이크를 밟으면 사방으로 미끄러지며 빙그르 돌기가 일수였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시속 5마일로 달리며 진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침착해. 침착해. 넌 할 수 있어. 영미는 무사할 거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엄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미시즈 케이가 전화를 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영미를 잘 보호해 주고 있을 거야.’

‘아냐, 그 여자도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벌써 학교에서 떠났을걸. 어느 누가 백인도 아닌 동양인 여자 애 하나를 지켜주려고 남아 있겠어?’

‘그래도 공무원인데.’

‘혹시 경찰이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 아이가 겁에 질려 있을 텐데…….’

경찰이든 누구든 상관없었다. 누구든 아이를 데리고 있어주길 바랐고 아이 혼자 집을 찾아 학교를 떠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평소에도 겁이 많은 그녀는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운전을 했다.

도로 여기저기로 눈 속에 처박혀 있는 차들이 보였다. 전파 방해로 치직거리는 뉴스에서는 얼어 죽은 거리의 홈 리스들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구급차량이 비틀거리며 기어가고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소로 피신하라는 신호였다. 아우성을 치며 대피소로 도망가는 사람들과 바닥에 넘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혀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시시각각 눈이 쌓이는 도로 위로 앞서간 차들이 만들어 놓은 타이어 자국들이 보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앞서 달리는 차도 연신 미끄러지기만 했다.

그녀는 앞 차들과 충돌할까 두려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했지만 마음이 급해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였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뿌연 눈보라 속으로 들어서는 차들의 빨간 후미등은 들어서자마자 눈 속으로 사라졌다.

“진, 넌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영미는 안전하게 있을 거야”

어깨를 잔뜩 모으고 운전대가 부서져라 잡고는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중얼거렸다. 자기 최면이라도 걸지 않고서는 차바퀴의 방향과 다르게 헛 돌아가는 운전대와 중앙선을 넘어 제멋대로 움직이는 차를 감당할 수 없었다.

맥박은 초시계 바늘처럼 펄떡였다. 끔찍한 폭풍 소리에 아이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저 앞으로 언덕이 보였다. 언덕, 하고 생각하자 머릿속이 텅 비며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왔다. 눈앞에 보이는 급경사가 진 하얀 언덕은 전혀 눈이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언덕은 아이의 학교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도저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학교는 언덕 지대를 지나 저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저 언덕을 넘는 것은 일종의 공포였다. 언덕 중간쯤에 앞차들이 정차해 있기라도 하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고 밟았다 떼는 순간 차가 뒤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차라리 차를 세우고 내려서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진은 액셀을 세게 밟았다. 바퀴가 헛돌며 눈을 튕겨냈다. 눈은 양 사방으로 분수처럼 치솟았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싶었지만 결국은 다시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렇게 미끄러운 길을 다른 차들은 어떻게 넘었을까?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진은 몇 번을 시도하던 끝에 눈 위로 다른 차들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길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모르고 그들만 아는. 다른 길. 그렇지.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부모들이 아이를 태워갔으면 분명 눈이 치워진 길이 있을 거야.’

진은 샛길을 찾기 위해 후진 기어를 넣었다. 후진을 한다 싶은 순간 덜컥, 차가 어딘가로 빠지는 기분이 들더니 기울어진 상태로 바퀴만 헛돌았다. 어딘가에 바퀴가 빠진 것이 분명했다.

진은 코트 후드를 턱밑으로 단단히 묶고 헤진 장갑을 낀 손으로 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눈과 함께 회오리치는 섬뜩한 폭풍 소리가 퍼붓듯 쏟아져 들어왔다.

운전석에서 발을 내리자 푹, 하고 눈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악.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공포에 질려 버린 진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짙은 눈보라 속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와줄 인적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다. 얼굴로 휘몰아치는 눈가루는 눈 속으로, 콧구멍 안으로,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침착해, 침착해. 넌 할 수 있어.’

자기 최면을 걸며 눈 속에 빠져 버린 바퀴를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자기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딘지 모를 샛길을 찾아간다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아는 길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서두르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욱 참혹한 사태가 몰려올 것만 같아 겁이 더럭 났다. 두 발로 걸어간다면 오히려 차보다 더 빠르게 저 언덕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덕만 넘으면 곧장 아이의 학교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발, 한 발, 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눈 속으로 몸이 쑥쑥 빠져 들어갔다. 온 몸이 얼어버려 급기야 감각이 없어졌을 때쯤 진은 네 발로 기는 짐승처럼 눈을 헤치고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

*

어느 정도 올라서자 저 밑으로 학교가 보였고 재설 차량이 학교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눈을 파 놓은 것이 보였다. 학교는 기괴한 동굴 같은 모양으로 재앙의 눈에 뒤덮여 있었다.

“영미야!”

내리막길을 구르듯 미끄러져 내려온 진은 딸의 이름을 외치며 학교로 뛰어 들어 갔다.

“영미야! 으흐흑.”

어서 대답해. 엄마. 나 여기 있어! 하고 달려 나와!

텅 빈 학교 안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모두 돌아간 듯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진은 아이의 이름을 외치며 차가운 복도를 달렸다.

복도의 끝으로 서무실이 보이고 왜소한 체격, 검은 단발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아이가 백인 비서 미시즈 케이의 풍만한 허벅지 위에 앉아서 지겹도록 읽고 또 읽은 해리포터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

진을 발견한 영미가 미시즈 케이의 허벅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반가움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영미야!”

영미를 끌어안은 진은 자기도 모르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한국말로 울먹였다.

“엄마 무서웠단 말이야. 얼마나 무서웠다고. 우리 영미 잃어버릴까봐서!”

옷자락으로 엄마의 눈물 콧물을 닦아주는 영미를 보고 있던 미시즈 케이가 진에게 조용히 휴지를 내밀었다.

학교 앞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미시즈 케이의 요청으로 집 밖으로 나온 몇 명의 노인들은 노련한 솜씨로 진의 차를 구덩이 위로 빼주었다.

“폭풍이 저녁 무렵 되면 더 심해진다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 해지면 운전하기도 어려울 거야.”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말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어색해하며 쩔쩔매는 진과는 달리 영미는 시원스럽게 노인들을 힘껏 포옹했다. 미시즈 케이는 따스한 미소로 진을 꼭 안았다가 등을 툭 쳤다.

“서둘러요.”

운전석에 올라 탄 진은 시동을 걸었다.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가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지만 영미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됐다.

“영미야. 엄마 너무 무서워서 오줌까지 쌀 뻔했다.”

“에이 바보.”

“진짜야.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왜 놀래?”

“다들 가고 너 혼자만 남아서 울고 있을까 봐.”

“미시즈 케이가 있잖아.”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미시즈 케이가 잘해줬어?”

“응.”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영미는 다음 순간 부끄러운 듯 살짝 웃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첨에는 울었어. 다들 엄마나 아빠가 와서 데리고 가는데 나만 남았잖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너무 무서웠거든. 학교 청소부 탐 아저씨랑. 미시즈 케이가 마지막까지 남았는데 미시즈 케이가 걸(girl)은 걸끼리 있어야 된다면서 나랑 있어줬어.”

가끔 진의 눈에 비친 미시즈 케이는 예순 정도의 백인 할머니로 머리 모양은 단정한 커트에 백발을 하고 있었고 주름진 입가에는 늘 다정한 미소를 잃지 않는 여자였다.

“미시즈 케이는 애들한테 인기가 많아. 애들은 아프지도 않으면서 목 아프다고 꾀병 부리고 미시즈 케이한테 가거든?”

“왜?”

“왜냐면 미시즈 케이가 레몬 사탕을 갖고 있다가 그런 애들한테 하나씩 주는 거야. 그 사탕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넌? 너도 그랬어?”

“헤. 헤. 그 사탕 되게 맛있어. 엄마도 하나 먹어볼래? 다음에 학교가면 목 아프다 그러고 하나 받아서 갖다 줄까?”

“됐네. 이 사람아. 그 사탕 어디가면 살 수 있는지 알아와. 엄마가 가득 사서 미시즈 케이한테 갖다 주게.”

“정말?”

“응.”

“하지만 우린 돈 없잖아?”

“에이 그 정도는 있어.”

“오케이.”

영미 덕분에 유쾌해진 진은 차갑게만 느껴지는 이 마을 백인 중에도 그녀같이 사려 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속이 따스해져 왔다. 어쩌면 백인들이 아니라 진 스스로가 인종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런데 아빤?”

영미가 물었다.

“아빤…….”

차마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말한다고 해도 영미가 이해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빤 출장 갔지. 곧 오시겠지?”

파산이라고 했다. 매일 밤 직장에서 일이 밀려 늦게 돌아온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시간에 남편은 카지노에서 피를 말려가며 돈을 잃고 있었다.

남편의 일이 떠오르자 다시 절망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같이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고 매일 얼굴을 보며 지냈던 자신이 어떻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눈치를 채지 못한 걸까.

자괴감이 들었다.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끝으로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눈앞으로 시퍼런 불빛이 번쩍인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앞으로만 달리고 있는 데 갑자기 꽝! 하고 천둥번개가 바로 차 앞에서 터졌다. 망막이 네거티브 필름처럼 검어지며 시퍼런 불빛의 잔상만이 남았다.

“꺄악!”

영미가 비명을 질렀다.

오싹한 전율이 등을 타고 내렸다. 바로 눈앞에서 세상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전신주가 진의 차 앞으로 쓰러졌다. 끊겨나간 전선 가락들이 휘몰아치는 폭풍에 살아있는 전기뱀장어처럼 꿈틀거리며 전기를 튕겨내고 있었다.

“엄마. 무서워.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브레이크를 꽉 밟은 진의 오른쪽 무릎이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리더니 온 몸이 함께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 영미야. 어, 엄마 어떻게 하지? 엄마 이 길 말고는 집에 가는 길 몰라. 어쩌지? 응? 어쩌지?”

진은 자기도 모르게 영미에게 매달리며 중얼거렸다. 아이의 학교, 집. 몇 군데의 슈퍼마켓. 진이 아는 도로는 그것이 전부였다.

진의 차 뒤로 달려오던 차가 쓰러진 전신주를 발견한 듯 깜빡이를 넣고 유턴을 하는 것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던 진은 무작정 그 차를 따라 유턴을 했다. 광폭한 폭풍에 차가 뒤집힐 듯 흔들렸다. 연료판의 바늘은 가장 밑바닥의 붉은 선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차는 기름이 떨어져 간다는 경고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진은 앞서 달려가는 차를 놓칠까 봐 바싹 붙어 그 차를 따라 도로를 달렸다. 진을 송두리째 부수고야 말겠다는 듯 운전석 유리창 앞으로 커다란 우박덩이들이 부딪혀 왔다. 영미도 난생 처음 들어서는 낯선 거리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을 꾹 다문 채 창 밖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앞서가던 차는 오른쪽 깜빡이를 넣더니 고급 주택가 단지로 들어가 버렸다. 길잡이를 잃어버린 진은 자신의 헤드라이터 불빛에만 의존한 채 깜깜한 어둠 속을 달렸다. 울퉁불퉁한 길에 차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만 해도 다시 바퀴가 빠지는 일을 당하게 될까봐 더럭 겁부터 집어 먹었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 나, 이 길 알아!”

영미가 손가락으로 세븐일레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잠시 희망이 엿보였지만 세븐일레븐은 어느 동네에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그것만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문을 닫았는지 어스름한 불빛만이 밝혀져 있었다. 진은 주차 장소로 들어와 차를 세웠다.

“여보, 이 지도 당신 차에 넣어둬.”

남편의 목소리가 불쑥 떠올랐다.

“지도는 무슨……. 지도도 볼 줄 모르는데. 우리가 언제 지도 필요할 일이 있으려고? 만날 다니는 그 길이 그 길인데. 어디 남들처럼 휴가를 갈 것도 아니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래 지도!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진은 실내등을 켜고 지도를 찾았다. 지도를 펼쳤지만 도무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자 지도도 무의미했다.

“아빠가 우리 집은 남쪽에 있대. 그러니까 남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되잖아?”

“남쪽?”

그러고 보니 차를 세운 곳 앞으로 사거리가 뻗어 있었고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집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은 시동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시동이 걸려 주었다.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5분 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차체가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니 탕탕 하고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가 서고야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여기서 서면 안 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발!”

진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엄마! 저거 우리 아파트 아냐?”

영미가 소리가 지르며 가리키는 그곳에 진의 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

아파트로 들어온 진은 차의 속도를 줄이고 가장 가까운 주차 공간에 차를 세웠다. 한 무리의 주민들이 손전등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황급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만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가라앉았던 불안감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차문을 열자 사이렌 소리가 터지듯 들려왔다. 아파트 주민들은 비상 대피소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처럼 눈보라를 뚫고 대피소를 향해 달려갔다.

아이를 안고 달리면서도 좁은 대피소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들이 걱정스러웠다. 대피소는 아파트 주민 모두를 수용할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대피소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 누군가가 진의 가족이 아니길 바랐다.

그 순간에도 남편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아이와 함께 들이닥치는 재앙의 폭풍을 피해 살아남는 일이 우선이었다. 달리는 진의 발이 빨라졌다.

*

대피소의 공간은 입구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진은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입구에 멈추어 섰다. 광적으로 휘몰아치는 폭력적인 얼음 폭풍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 그녀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진은 그들의 사나운 눈빛에 질려 버렸다. 그들은 거대한 바위였고 진은 그 바위에 깔린 물고기였다. 맥박이 뛰며 목구멍이 턱턱 막혀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좀 더 좁혀주면 몇 사람은 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 질 텐데도 누구 하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았다.

처음 이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도 그랬다. 마을에는 동양인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어 저절로 위축감이 느껴졌었다. 온통 백인들 일색이었고 간혹 흑인 한둘이 보일 뿐이었다.

맥도날드를 가든 KFC를 가든 어떤 곳에서든 진의 가족이 들어서면 보지 않는 척하며 흘깃흘깃 이상한 눈길로 지겹도록 돌아보곤 했다.

그 눈초리를 견뎌내기 힘들어 오랫동안 마음이 상해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은둔자처럼 지내기도 했다. 소수민족을 무시하는 듯한 그 눈초리. 그것은 학부형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도 차갑고 매서운 눈초리가 괴물처럼 진의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존재감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눈초리라는 괴물과 모멸감이라는 자괴감에 둘러싸인 진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괴물은 삽시간에 진과 영미를 둘러싸고는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진은 그 눈초리를 피해 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이빨을 앙다물며 모멸감을 견뎌내려고 노력했다.

진땀이 흘렀다. 지금 여기에 남편이 있다면. 남편의 따스한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이들의 눈초리가 이토록 두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안으로 움직여 주세요.”

대피소와 연결되어 있는 위층 사무실에서 내려온 아파트 직원은 입구에 걸쳐 서 있는 인원들을 모조리 대피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덕분에 억지로라도 간격을 좁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대피소 안에 설 수 있었다.

대피소 안에서는 라디오로 간간이 전해지는 소식 외엔 도무지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더 나빠진 건지 아파트 측에서는 커다란 박스를 들고 들어와 담요와 비상식량 주머니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반 지하를 비롯해 아파트 전체가 거의 눈에 파묻혀 버렸고 맨 위층은 지붕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파트 계약 서류 사인할 때 주택 보험 들어 놓으신 분들은 보험에서 보상 받으시게 될 겁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직원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보험이라니 무슨 보험? 진은 남편이 아파트 보험을 들어놓았는지 아닌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외부와도 차단되어 최대한 비상식량은 아끼도록 하십시오. 장기화 된다면…….”

노련해 보이는 아파트 직원은 사람들을 동요시키기엔 이르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말끝을 흐렸다. 한 가족당 한 주머니의 비상식량이 나눠지는 동안 영미는 식량주머니를 받아가는 사람들의 손을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배가 고파 보였다. 보통 때라면 하교해서 간식을 먹고 있을 시간이 아닌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진은 혹 자신들에겐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미리부터 걱정이 됐다.

“곧 집에 들어 갈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좀 참자. 집에 가면 엄마가 영미 좋아하는 야채 만두 구워줄게.”

진은 영미에게 속삭였다.

“그때 아빠랑 나랑 같이 만들었던 만두 아직 남아 있어?”

“응.”

대답하는 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적이 있었지. 진의 가슴 속으로 잠시 슬픔이 일렁였다. 부엌 식탁에 세 가족이 둘러 앉아 만두를 빚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남편과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선했다. 어째서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 것일까? 불행의 시간에 비해 행복의 시간은 항상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어느 인도인이었다. 인도인이 식량주머니를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중대가리 백인 남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인도인을 밀어 버리고는 직원이 들고 있는 상자를 강제로 빼앗았다.

사람들은 놀란 시선으로 그를 주목했다. 식량 주머니를 가로챈 남자는 자신의 가족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먼저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도 주머니를 받아 챙겼다.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누구 한 사람 나서는 사람 없이 날카로운 침묵만이 흘렀다. 여차하면 터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침묵이었다.

“씨발, 그 상자 내려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흑인 남자가 주먹을 쥐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흑인 특유의 누런 색깔을 한 눈동자는 증오심에 불타는 것 같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흑인 남자에게 쏠렸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멍청한 니그로 새끼.”

네브라스카의 대표 축구 팀인 붉은 악마의 약자 N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백인 남자는 아예 인종을 씹으며 거칠게 나왔다.

“뭐? 니그로? 이 씹할 화이트 트래시(백인 쓰레기) 같은 새끼가!”

백인 남자에게 결코 지지 않겠다는 듯 흑인이 욕지거리를 내뱉자 실내는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진은 두 사람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기묘한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눈치 채고는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색깔이 다른 이 두 사람이 피터지게 싸워주길 바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재앙의 공포로부터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문제가 일어난다면 두 패로 나뉠 것이다. 소수 쪽과 주류 쪽. 또는 흑인 남자 하나를 두고 집단 폭행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먼저 주먹을 날린 것은 커다란 덩치의 백인 남자였다. 그리고 잽싸게 피하며 백인 남자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은 것은 흑인 남자였다.

“으윽!”

백인 남자가 옆구리를 움켜잡으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자 그의 뒤에서 백인들의 무리가 서서히 상체를 일으키고 섰다.
반대로 흑인 남자의 가족인 듯한 아프리카계 여자는 바싹 겁에 질려 6살 정도로 보이는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진은 그녀의 눈에서 공포와 살의를 동시에 느꼈다.

“좆 같은 니그로 새끼!”

백인이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여기저기서 편을 드는 듯한 백인들의 조소가 이어졌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덤벼 봐.”

아내를 등 뒤로 세우고 죽으면 죽었지 당하진 않겠다는 저돌적인 눈빛으로 흑인이 대꾸했다. 그때였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나이가 지긋하게 든 백인 직원이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더러운 입 닥치고 조용히 하시오. 아이들 앞이란 걸 잊지 마시오.”

목소리는 강한 힘이 배어 있었고 그의 말대로 아이들의 눈초리가 어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흑인의 아내가 남편의 어깨를 잡자 그는 마지못한 듯 살기를 억누르며 상체를 낮추었다. 그러나 그의 검은 주먹은 여전히 꽉 쥐어진 그대로였다.

백인 남자는 비상식량 주머니 상자를 직원에게 돌려주었다. 아파트 직원은 침착한 행동으로 식량 주머니를 다음 차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뚱뚱한 백인 여자와 진의 앞에서 식량주머니는 끝이 났다.

직원은 흘끗 진과 아이를 돌아보았다. 진은 그 눈빛 속에서 조금의 동정심이나 관심을 기대했지만 어떠한 메시지도 읽을 수 없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뚱뚱한 백인 여자도 식량 주머니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 인종 차별이라고 느끼기에도 뭣했다. 그러나 분명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컥한 심정에 진은 꿀꺽 숨을 삼켜야만 했다. 그때였다.

“이건 불공평해!”

갑자기 영미가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는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 외쳤다.

“저 사람이 두 개나 가졌어!”

영미의 작은 손가락이 방금 전의 백인 남자를 지목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영미가 지목한 백인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 쥐새끼 같은 중국 년아! 넌 네 나라로 돌아가서 살아!”

백인 남자는 비열한 표정으로 영미를 쏘아보았다. 진은 남자가 금방이라도 영미에게 달려들어 손찌검이라도 할 것 같아 재빨리 영미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아이에게 어떤 해코지라도 한다면 목숨 따위 내팽개치고는 저 놈을 물어뜯어 죽여 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영미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와 섰다.

“그래? 내가 쥐새끼 같은 중국 년이면 넌 살만 뒤룩뒤룩 찐 머리 나쁜 양키 새끼야! 세계사 공부 좀 더 해! 여긴 인디언의 땅이고 이민자들의 나라야! 그리고 난 중국애가 아니라 한국 애야!”

또는